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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유물론이다 - 브뤼노 라투르,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의 생각
심귀연 지음 / 날(도서출판) / 2024년 4월
평점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인간 유일의 영혼을 주장하는 문장이 출현한 이래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 식물, 사물(물질) 등 비인간 존재는 위계질서에 의해 객체의 자리로 밀려났다. 근대의 인간중심주의는 이렇게 지구 생태계를 이분법으로 구분하여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인간과 사물로 갈라놓았다. 그리고는 이들 비인간 존재는 수동적이고 억압당하는 대상화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홀로 주체의 자리를 누리던 인간은 객체라고 억압되고 이용되기만 기다리던 비인간존재의 활력을 어렴풋 깨닫기 시작했다. 물질인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폭염과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등 지구온난화라는 초객체(hyper-objects)로서 행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의 활력도 능동성도 없다고 여겼던 비인간존재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류를 지배해 온 근대적 인간중심주의적 이분법은 이제 자신들이 부여한 오만한 주체의 자리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 이후 500년에 이르는 ‘정신과 물질’, 이분법에 의한 위계질서는 새로운 사고의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신유물론(新唯物論)’은 이러한 새로운 사고들에 대한 주요 사유들을 통해 인간 인식 우선에 의해 배제되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던 것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만물의 궁극적 실재는 물질이며, 정신적 관념적인 것 모두 물질로 환원 설명했던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유물론에 대해 “물질을 바라보는 태도가 새롭다”는 의미에서 ‘新(New)’ 유물론이다. 다시 말해 “물질은 외부의 어떤 작용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활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는 이론이다. 물질의 활력과 능동성을 인정하고 그 고유성을 발견하는 노력인 것이다. 20세기 후반기부터 이러한 전환적 사유가 발아하기 시작해 21세기에 이르러서는 객체지향이론, 사변 실재론, 유물론적 페미니즘, 행위자 연결망 이론, 비판적 포스트 휴먼, 비판적 생기론, 급진적 관계주의 지향 이론들이 신유물론적 토대위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적 사고를 해체하고 있다.
인간이 판단 통제해야 될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연관은 더 이상 지구 생태계의 위계적 관점이 될 수 없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분법의 경계를 의심케 한다.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모든 인간, 비인간 존재는 현실 존재로서 무수히 다양한 행위자로 기능을 하고 있다. 인간은 위기와 두려움을 느끼며 자연의 능동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세상은 무수한 행위자들이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힘을 겨루는 곳이며, 인간, 비인간 존재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진 행위자가 되어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통제 관리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인간의 정신은 비인간 존재의 부름에 응답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어쭙잖은 이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인간 존재의 능동성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그 무관심과 무시, 폄하에 반발한 비인간 존재는 생태계 연결망의 한 행위자로서 본래의 불안정성과 변화 동력으로 인간의 오만한 환상을 깨워대고 있다. 이성적인 것만이 합리적이라 생각게 했던 근대의 사고는 인간 자신의 몸이 물질임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며, 동물이고 자연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삼림의 파괴와 동물과 식물의 멸종, 즉 자연의 멸종은 곧 인간의 종말임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식을 바꿔야 새로운 패러다임이 가능하다. 비인간의 행위 능력과 존재 권리를 인정해야 하며 스스로 존재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고 교만의 지위에서 내려와 이분법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인간, 비인간 모두 행위자이며 행위자들은 모두 연결망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며 행위자 연결망 이론을 주장했던 ‘브뤼노 라투르’를 출발점으로 하여 미셸 세르, 화이트 헤드의 과정 철학을 경유하여, ‘뤼스 이리가레’의 영향을 받아 권력과 억압의 구조를 해체하고 공생방법을 제시했던 유목하는 주체로서 경계를 넘나드는 변신하는 존재를 말했던 유물론적 페미니스트 ‘로지 브라이도티’의 ‘~되기’의 철학을 검토한다. 변하지 않는 것을 진리로 여긴 오랜 근대적 이분법을 탈피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유목자의 떠돌아다님의 자유로운 연결,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의 변신을 받아들이는 계급, 연령, 젠더, 인종을 초월한 활기찬 연대의 철학을 소개한다. 데카르트식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은 여성을 타자로 배제함으로써 멸시해왔다. 개체화되고 대상화된 존재, 즉 물질적이고 기계적이며 수동적인 존재라는 여성 담론을 해체하고 신유물론을 통해 페미니즘을 윤리적 문제로 전위(transposition)시킨 것이다.
책은 이처럼 신유물론이 인간 삶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사고로서 세상을 어떻게 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주요 영향력있는 석학들의 실천적 이론을 안내하고 있다. 사실 유물론 하면 ‘마르크스의 사적(史的)유물론’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사회구조와 역사발전의 원인을 물질에 근거해 파악하여 물적 토대가 곧 사회발전의 근원이라 본 유물론이다. 그런데 이 또한 정치철학자인 ‘제인 베넷’의 지적처럼 인간의 노동과 그 가치를 최우선시 하는 사고라는 점에서 인간중심주의 이론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가구를 만드는 데는 목재와 망치, 못, 톱, 인간의 노동이 각기 그 자체의 활력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파급력을 품게 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간과 비인간은 동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생명에 대해 여전히 합의된 정의가 없듯,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 논리는 수상쩍은 것이다. 물질이나 기계는 수동적이고 죽은 존재라는 기계론적 관점을 벗어나면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에 깃들어있는 자연관에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다못해 인간이 버린 쓰레기조차 매립지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활기 넘치는 화학물질로 휘발성 강한 메탄을 생성하며 스스로 변화한다. 물질은 스스로 영향을 미치는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생기란 이러한 물질의 활력에 관한 것이다. 제인 베넷의 비판적 생기론은 이처럼 신유물론적 사고에 기반을 둔 사유이다. 그녀는 또한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위계 권력을 배제하기 위해 브뤼노 라투르의 영향을 받아 ‘행위소’라는 스스로 자신이고자 하는 능동적 힘으로서 물질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같은 이분법적 권력질서를 해체하고 자연과 문화, 인간과 기계,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없애고자했던 사상가들은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에서 ‘그레이엄 하먼’, ‘티모시 머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석학들이 등장했으며, 오늘 인류의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려종, 사이보그 등 “얽혀 연결된 존재로서 서로 감염시키는 관계에 집중”하여 “개체성이란 관계망에서 생성되는 것이며. 독립적 개체성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해러웨이의 ‘공동생성의 존재론’이나, 양자역학에 터 잡아 얽혀있으되 분리되지 않은 유동적 상태가 현상이며 이 안의 행위 요소들의 움직임인 내부-작용을 통해 비로소 개체가 출현하는 것이라는 물질을 과정에 있는 현상으로 이해한 카렌 바라드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과 비인간을 실재하는 행위자로서 고려케 한다.
이제 우리 인간은 다른 존재를 판단하는 주체의 자리가 가당치 않은 것임을 직시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주체가 있음으로 인해 객체라는 대상화된 존재가 있어 억압당하고 불평등을 강요당하며 무시되고 배제된다. 이러한 데카르트식 이분법적 사고로는 더는 이 세계에 팽만한 문제들에 접근 할 수가 없다. 물질이고 자연이고 타자라며 자신 역시 하나의 타자임을 이해하지 못한 채 타자의 목소리를 무시한 결과 온갖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하고 기후온난화와 같은 재앙이 일상화 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신유물론은 이러한 구분,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인간 사물이라는 차별의 경계를 해체하고 세계는 더는 수직적이지 않으며 여러 갈래의 복잡한 연결망임을 인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고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시급한 시대이다. 이 책 신유물론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하나의 철학적 이론이나 사조인 것만이 아니다. 바로 현재하는 인류인 우리들의 일상적 행위를 돌아보아야 할 이유의 직시이다. 책은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위한 첫 번째 문으로 보다 심화된 사유 속으로 이행하는 안내서로 삼기에 적절할 만큼 친절하고 수월한 문장으로 씌어 있다. 늦었다고 여길 때가 어쩌면 가장 빠른 때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에 노정된 무수한 불평등과 재앙적 위기를 생각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거대하게 변화하는 사고의 조류에 동승할 기회를 제공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