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맨 눈의 마을 트리플 22
조예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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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은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단편은 연작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속성을 지닌 동일 캐릭터이며, 배경 또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난화로 인해 극지대의 빙하가 80퍼센트 너머 녹기 시작하면서 활성화된 신종 바이러스로 인류 신체의 변형이 발생한 근미래(近未來)이다. 이러한 감염자(변형 신체자)들이 증폭되자 변이를 겪지 않은 일군의 사람들은 인간이 찾지 않은 황야에 마을을 건설하여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다. 이렇게 건설된 곳이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가는 타운이라 불리는 곳이다.

 

표제작 꿰맨 눈의 마을을 시작으로 히노의 파이그리고 의 순서로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의 원처럼 첫 단편과 마지막 단편이 시간상 맞닿아 있으며, 그 사이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회상의 시간이 놓여 소설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합니다

교장 나침이 조례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타운을 변이를 겪지 않은 사람들로만 유지하기 위해 감염자, 즉 신체에 변형이 발견된 사람들은 타운 밖으로 버리듯 내쳐진다. 그래서 타운을 지키는 제 1규칙은 얼굴이 아닌 곳에 난 이목구비를 보면 신고하라!”. 교장의 말은 한 아이가 버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꿰맨 눈의 마을은 이렇게 한 아이를 타운으로부터 퇴출시키는 사건을 중심으로 고립된 공간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찰토록 한다.

 

자신의 등에 또 하나의 눈을 옷 속에 감추고 살아 온 소년 이교는 타운 밖 황야로 내쳐진 절친 에 대한 그리움과 그와 나누었던 타운 밖의 세계에 대한 상상의 이야기들, 그곳에 관한 소문들을 통해 타운의 규칙들이 공포라는 하나의 장치에 의존한 공간이라는 의심을 키운다. 폐쇄적 공간의 존립은 외부 정보의 유입 차단과 단일 정체성을 위한 수많은 장치들로 구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의 발생은 불가피하며 장치들은 거짓으로 축조된 것임을 드러낸다. ‘이교는 자가용 비행기의 추락으로 타운에 떨어져 만나게 된 타운 밖의 변형된 존재인 으로부터 타운내 사람들이 구인류, ‘도망친 포비아들로 불린다는 것을, 최선이자 배려라 믿었던 타운의 규칙이 야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단일성, 순수성이라는 역겨운 폭력성의 잠재태임을...

 

히노의 파이는 조카인 이교를 황야에 버리고 돌아온 문지기인 백우의 자기 행위에 대한 윤리적 성찰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감염자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타운 밖 황야에 감염자를 유기하는 일, 그들에게 치사량의 독극물을 버무려 구워낸 미트파이와 콜라 한 병을 들린 채 버리고 돌아오는 일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정심이나 죄책감으로 감정을 소모하는 것은 멍청한 문지기라는 신념으로 할아버지까지 버린 문지기인 아버지의 대를 이은 문지기 백우는 외부자로서 독극물 파이를 구워내야만 했던 히노와의 사랑의 추억, 히노가 그에게 던졌던 황야에 남겨진 이들의 최후에 대한 상념으로 이어지며, 타운의 규칙들에 의혹을 품지 않았던 자신을 발견한다.

 


권력의 명령, 체제의 수호를 책임진다는 미명 하에 젊은이들을 고문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며 자신의 도덕성을 돌아보지 못했던 민주화투쟁 시절의 고문기술자를 떠 올리게 한다. 백우는 최선을 다하는 게 어떤 최악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사유할 줄 모르는 이 땅의 공권력 수행자들과 다르다. 타운의 장노들, 권력이 요구하는 짐짓 배려인 채 행하는 유기가 과연 추방되는 이들의 선택, 문지기인 자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외면했던 질문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다. 황야로 자발적으로 사라진 히노에 대한 그리움, 그녀가 미트파이 레시피와 함께 남겨놓은 우리는 언젠가 황야 너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널 위한 쿠키를 구워둘게. 사랑해, 백우.”, 라는 메모는 그가 행한 일에 대한 정당화란 비루하기만 한 한낱 위로와 합리화에 불과했다는 각성에 이르게 한다.

 

단편 은 추방된 이교의 친구 램의 버려진 황야에서의 삶을 향한 도전의 걸음이다. 램은 굶주림에 독이 있다는 미트파이를 꼭꼭 씹어 삼킨다. 스스로 조용한 죽음에 이르기 위한 행위지만 그는 깨어난다. 미트파이에 독극물이 주입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은 아마 히노의 은밀한 전환, 타운의 체제에 대한 저항, 동료 주민에 대한 연민의 행위였을 것이다. 램은 이교와 나누었던 황야에 대한 상상, 괴물이 득실거린다는 황야란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한낱 거짓이었음을 상기한다. 램은 추락하는 비행기를 환영처럼 발견하지만 그 실체의 확인을 위해 추락지점으로 반죽음의 육신을 옮긴다. 그리곤 추락한 비행기 무전기에서 울리는 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타운은 소거법으로 유지되는 땅.  그렇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 곳에는 몇이나 남게 될까?”   -155쪽에서

 

이렇게 꿰맨 눈의 마을에서 추락했던 비행기와, 추락한 비행기의 소년 람과 이교의 발걸음 은, 시체가 파이와 나뒹구는 황야를 조카 이교가 벗어나길, 그리고 그리운 이 히노를 향해 황야를 걷는 백우의 히노의 파이를 경과하여, 다시 무전기를 향해 살려주세요를 부르짖는으로, 회귀한다. 세 편의 소설은 굵직한 하나의 주제들을 품고 우리들에게 윤리적 질문을, 그리곤 자성(自省)을 촉구하는 듯하다. 세계 밖을 상상해 보세요, 그 상상의 지대에 진실이 숨 쉬고 있어요. 라고.

 

이 가상의 이야기들은 작가의 에세이 빛나는 모형들에서 들려주는 진실보다 더 진실로 여겨지는 삿포로 시장의 어느 음식점의 진열대 너머 모형이 일으키는 진짜에 대한 맛의 상상처럼, 더욱 풍성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닫힌 세계, 고립을 요구하는 폐쇄된 세계를 벗어나 열린 외부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수한 다양성, 그 다름의 세계와 인간을 사랑할 수 있게 될 터이다. 타자를 향한 너그럽고 부드러운 시선, 조금은 더 진실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때론 가짜가 거짓을 말하는 진짜의 위선보다 더 진실하다는 것을. 나른한 평온함과 밝은 생명력이 절로 발산되는 조예은 작가의 이 소설을 읽으며 왠지 세상이 살만한 이유가 있다고 느꼈다면 과장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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