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박재욱 옮김 / 까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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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와 국가의 비극,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읽을만한 강력한 이야기>

 

이 읽기는 국제 사회의 신()냉전 질서와 갈수록 그 골이 깊어지는 소득 양극화와 정치체제와의 상호성을 분석한 경제사가(經濟史家) 마이클 허드슨이 통찰도구로 이용한 역사기록에서 비롯되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역사학자 도널드 케이건도 지적하듯 비록 2,400년 전에 끝이 났지만 끊임없이 모든 시대 지식인들을 사로잡는 영향력을 지니고있다. 특히 그것은 스파르타로 대표되는 펠로폰네소스(또는 아카이아)동맹과 아테네로 대표되는 델로스 동맹이 기원전 431년부터 27년간 벌인 대()전쟁이 인간사의 특별한 비극이 있을 때마다 실로 무수한 정치적, 경제적, 지정학적, 외교적 모델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동맹의 중심인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각 동맹의 맹주로서 그들의 역사적 행위는 오늘의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하는 대립 체제의 실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아테네의 민주주주의적 제국주의는 오늘날 미국이 그 동맹과 세계에 행사하는 다양한 형태의 행위 의도를 분석하는 맞춤의 도구가 되어준다. 동시대 아테네의 장군으로 현장의 당사자였던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테네 정치체(政治體)의 혼란스러운 변화상은 물론 그리스 전역에서 치러진 전투의 전략적 전술적 사례를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국제 질서와 교역 및 실질적 국가권력의 이동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거시적 질서의 변화와 더불어 아테네 민주정과 과두(寡頭)정의 갈등과 같은 내부체제가 빚어내는 양상들은 오늘 한국사회의 정치체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의 긴요한 분석도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무려 27년간 지속된 오늘날 그리스 전역과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소아시아지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진 투키디데스의 장엄한 전쟁의 역사서술은 예언적 지혜들로 가득 차 있어 가히 인간사의 전범(典範)이라 해도 지나친 이해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 짧게 아테네 민주주의적 제국주의가 오늘의 미국과 얼마나 똑같은 지 마이클 허드슨의 글을 인용해 보겠다. 아테네는 매년 자국 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액수를 동맹국들로부터 공납으로 거두어 들였다. 그것도 자신의 은광에서 채굴한 광석으로 주조한 4 드라크마 짜리 은화 올빼미로만 납부할 수 있었다. 마치 21세기 기축통화인 달러의 역할과 동일한 것이다. 결국 델로스 동맹은 아테네가 동맹도시국가들에 지원을 요구하는 민주주의적 제국주의의 착취체제가 되었다....오늘날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비롯한 동맹국가들로부터 군사지원을 얻어내 자신의 경제적 요구에 저항하는 국가들을 파괴할 때 한 짓과 똑같다.”

 



이것은 동맹 도시국가들을 부채 위기에 몰아넣으면서 금융긴장을 유발하는 오늘과 유사한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펠로폰네소스의 전쟁은 이러한 금융긴장, 즉 아테네 제국에 복속된 도시국가들의 경제적 곤란이 하나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이와달리 주종의 공납 관계가 아닌 느슨한 우호적 방어 동맹이어서 공납을 받지 않았다. 물론 스파르타는 동맹의 리더로서 권위, 헤게모니를 놓지 않았다. 특출하게 강력한 아테네와 장기적이고 힘겨운 분쟁을 수행하는 데 스파르타는 당연 주저했기에 동맹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아테네의 식민국이나 동맹국, 아테네 당사자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스파르타의 참전을 요구했다.

 

아슬아슬한 평화의 긴장을 깨는 전쟁은 스파르타의 즉각적 위협도 없고 손에 잡히는 이익도 없는 중립국가의 다툼으로 발발했다. 주저하는 스파르타의 개입을 유도한 것은 동맹국 코린토스의 식민 지역이 아테네에 위협받자 지정학적으로 곡물 수입지역인 그리스 북부와 연결되는 중부 교점 지역 코린토스의 강력한 요구를 물리칠 수 없던 까닭이기도 하지만, 동맹 지도자로서의 신뢰성을 과시하지 않을 경우 동맹이탈로 인한 헤게모니 상실 위험, 아테네가 지나치게 강력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연합인 NATO 회원국이 아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인접 서방국가들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수물자 등 경제적 지원을 하는 양태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파르타는 주요 동맹국인 코린토스의 이익을 돕고 그리스의 유일한 헤게모니 국가였던 옛 지위와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아티카(아테네)를 침공하는 것이 기원전 431년이다. 전쟁 수행 슬로건은 그리스인의 자유, 아테네 제국의 파괴와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도시들의 해방을 표방했다. 대만 침공을 협박하는 중국이 하나의 중국실현을 내걸 듯 이들이 모두 자국의 이기적 이익을 위한 불의한 침략 행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강함에 대한 떨칠 수 없는 공포였듯, 중국이 지닌 미국의 힘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든지 전쟁 발발의 주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최초의 전쟁 발발은 인류 역사이래 평화 시기에 사용된 최초의 사례인 경제적 금수조치 때문이다. 코린토스의 식민국인 메가라에게 아테네 제국의 항구와 아고라 출입을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켜 금수조치를 가했다. 이러한 경제적 제국주의의 적대행위는 아테네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막대한 피해를 피할 수 없다는 경고의 천명이다. 이것은 메가라를 향해 있지만 그들의 모국인 코린토스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다. 다시말해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대한 도전장으로 여겨질 만한 것이었다. 도널드 케이건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는 동명의 역사서인 투키디데스의 책을 저본으로 하여 크세노폰의 아테네인의 國制, 아리스토델레스 혹은 그의 제자가 쓴 또 다른 저술 아테네의 국제와 작자를 알 수 없는 헬레니카, 플루타르코스의 전기저술을 보조적으로 사용하여 쓴 통합적 분석서이다.

 

분파들 때문에 도시들에서 많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런 일들은 지금도 벌어지고,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인 한 

언제나 벌어질 것이다.”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각 전투의 참전 결정과 승리와 패배에 따른 시민의 심리 변화, 요동치는 정치질서, 전쟁비용 부담의 고통, 3국 페르시아와의 동맹을 향한 외교적 모색, 정치가의 능력에 따른 국가 생존에 미치는 영향, 분파적 투쟁으로 인한 국력의 부침현상 등으로 오늘의 국내외질서를 비교, 예견할 수 있는 유사양상들로 빼곡하다. 무엇보다 특별히 시선을 끄는 부분은 참주정을 끝내고 100년을 시민의 자유를 기조로하는 민주정을 펼쳤던 아테네의 과두정으로의 이행이 야기한 몰락이다.

 

아테네는 평화를 지향하는 온건한 민주정을 지지하는 시민세력과 전쟁에 대한 광적 열광을 지지하는 과두정으로의 전복을 꾸미는 세력의 분파갈등이 전쟁 내내 지속되었다. 민주정이 전복되는 기원전 411년은 아테네의 국가 존망을 다툴 수 있는 시칠리아 전투에서 대참패를 겪은 후 과두정을 세우려는 극단적 과두파들이 민주파 지도자들 및 정적들을 암살하며 급격하게 수행되었다. 이들은 반대자들을 공포로 침묵시킨 후 반대 발언을 하려하면 즉각 편리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아무런 고발, 조사, 재판도 받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자유를 빼앗는 일에 신속하게 움직였으며, 단지 개인적 야망에따라 행동하는 이기적 기회주의자들 뿐이었다.

 

이들 세력은 모든 시민이 참여하던 민회(에클레시아)를 폐지하고, 중장보병 계급 이상의 특권층으로만 이루어진 정치체로 상위부자들만을 위한 정부를 구성했다. 그리고는 모든 하위계급에 지급되던 급여지급을 중단하고 무료봉사를 강요했으며, 그들에 대한 사회적 지출 역시 전부 중단했다. 오늘의 말로 하자면 일종의 긴축재정으로 시민의 생활을 졸라맨 것이다. 이 긴축재정은 부채를 창조하고 그 부채의 채권자인 상위 계급 부의 증가를 만들어낸다. 가장 야만적이고 탐욕스러운 정책을 아테네의 과두세력이 자행한 것이다. 지금 한국의 검찰정권이 하는 행위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2400년 전 투키디데스의 이러한 일의 반복 예견을 다시금 확인하는, 그 통찰력을 확증하게 된다. 부자감세와 시민대중의 가계를 착취하는 파렴치함의 극치를.

 

급기야 스파르타의 위협이 아테네의 목전에 이르자 이들 과두파들은  민주정의 복원을 받아들이기보다 적국을 끌어들여 배들과 성벽을 포기하고 오직 자신들의 생명과 부를 구하기 위해 아테네에 관한 모든 조건들을 받아들일 작정으로 스파르타와 평화를 추구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테네를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먹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후 민주정으로 복귀에 따라 이들 과두파들은 도주하거나 사형을 당했다. 27년에 걸친 무수한 해전과 육상전은 물론 적의 동맹파괴와 자국의 교역로 확보를 위한 전략과 술책에 따른 찬란한 해석들이 정치체와 시민의 의식과 관련하여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또한 진정한 리더와 시민정신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전범으로서의 역사 서술이 가득하다.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가 승리하고 아테네는 몰락함으로써 장구했던 전쟁은 막을 내렸다. 스파르타가 아테네보다 강해서 승리한 것일까? 아테네는 내부의 분파적 갈등, 특히 귀족과 부유층의 탐욕에 의해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히 단 하나의 원인으로 붕괴했다고 말 할 수 없다. 리더의 부재, 시민적 무지로 인한 오판, 지속되는 내분, 전쟁재정의 파탄, 외교적 실패 등의 총체적 귀결이지만 그 궁극적 바탕에는 부와 권력을 독차지 하려는 상위계층의 추악한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차지하기 위해 저항하고 반대하는 대중을 유린, 억압하는 공포정치를 동원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지름길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해있는 모양이 아테네가 몰락을 향해 달려가던 즈음과 너무도 흡사하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30인 참주정을 부과하여 과두파 괴뢰정부를 수립하고 공포정치를 편 것은 예견된 일이다. 시민의 재산 압류와 광범위한 사법적 살해를 시행하였다. 어쩌면 아테네 시민이 자초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 리더는 시민의 수준 만큼이다. 17만 표만큼 앞서 만들어낸 대통령이 바로 지금 한국사회 시민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라의 존망을 바꾼다.


이를 어쩌나, 몰락의 길을 향해 질주하는데 시민은 이에 대해 하는 일이 없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이후의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비롯한 여타 도시국가의 흥망을 바라보면 범()그리스의 실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7년에 이르는 장기 전쟁은 오히려 분노와 좌절, 복수심을 증폭시켰으며, 분파적 분쟁을 더욱 악화시켰고. 따라서 각 도시국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다시금 끊임없는 침략을 상시화 했다. 내전과 국제전의 확산으로 공포가 일상화되고 잔혹한 난폭성이 줄지어 벌어졌다. 스파르타의 승리는 일시적인 것이었을 뿐 그들은 범 그리스를 유지할 정책도, 재화도, 정치적, 인적 자원도 없는 과두정에 의존한 군사국이었을 뿐이다. 스파르타는 동맹이었던 테베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였으며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그리스 남부의 보잘 것 없는 세력으로 몰락했다.

 

그리스의 지배라는 27년 전쟁의 헛된 시도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쇠약함을 가져왔을 뿐, 그리스인에 의한 지배는 페르시아의 개입과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되면서 그 영화는 사라졌다. 오늘의 신냉전 질서의 우두머리로 자처하는 미국, 중국 갈등의 미래를 투키디데스를 통해 예견하게 된다. 한편으로 아테네의 국제(國制) 변화로 야기되는 부와 권력의 집중을 탐욕스럽게 추구하는 세력이 만들어낸 것은 국가의 침몰이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시민 대중의 전통적 믿음과 가치들에 의문이 제기되고 사회를 더욱 분열시키는 권력은 국가의 기초를 파괴하는 짓거리가 된다. 사회는 회의론과 냉소적 합리성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사람들은 의고적(擬古的)이고 비합리적 경건함으로 퇴행하게 된다. 즉 수구화되어 시대정신의 퇴화로 인해 이루어놓았던 시민적 결과물인 민주주의, 여성주의, 사회적 안전망 등 사회적 정의, 인간 존엄성, 표현과 언론의 자유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중세적 폭력의 시대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물리적 파괴를 만들어내는 현상적인 전쟁이든, 경제적 정치적 분리를 종용하는 야비한 정쟁이든, 인간을 계층화하여 분리하는 권력의 갈라치기 획책이든 사람들에게 편안한 만족과 일상적 필요를 빼앗아가는 이들 갈등과 당쟁과 전쟁은 사람들의 성향을 그 환경과 같게 맞추는 난폭함을 닮게 된다. 이러한 긴장을 만들어낸 권력처럼 나쁜 것은 없다고 역사는 말해준다. 멍청하게 이러한 짓을 반복하지 말라고. 그럼에도 이 사회는 바보짓을 멈추려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이 과두권력과 같은 계층이라는 이 가공할 망상이 도둑놈들을 보호해준다. 다음의 인용문장으로 맺음에 갈음한다.

 

당파에 대한 소속감과 충성심이 가장 높은 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다른 모든 것들을 뒤덮고 전통적 도덕성의 모든 제한을 폐기하는 행위를 정당화했다. 광신적인 행위와 등 뒤에서 적을 파멸시키려고 계략을 꾸미는 짓거리 역시 마찬가지로 존경받았다. ...맹세는 그 의미를 잃고 표리부동의 도구가 되었다.”

- 도널드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P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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