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출판사 창비 출간 예정인 이유리 작가외 5인의 학교괴담 앤솔로지인 스터디 위드 X가제본에 대한 감상글입니다.


다섯 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수능 출제 방침에 혼선을 야기하는 무책임한 권력의 목소리로 가뜩이나 지치게 만드는 폭염 더위가 어린 학생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즈음이다. 경쟁에 내몰리고, 주변에서 가해지는 각양의 압박, 그리고 알록달록 널린 유혹을 인내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환경이 에워싸고 있다. 지친 심신에 휴식을 줄 시간조차 없는 청소년 학생들이 이 소설 선집을 읽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앤솔로지의 이야기들은 위로가 되고 공감의 목소리로 평온한 휴식의 기회가 되어줄 터이다.



수록된 여섯 작품은 어느 학교건 으레 하나쯤은 지니고 있는 학교괴담을 중심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다. 그렇다고 몸을 으스스 떨어댈 만큼 괴기스럽거나 잔혹성을 표방하는 그런 선정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다. 고래로 전해오는 처녀귀신 이야기가 현생의 억울함과 불의를 호소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였듯, 학교 괴담 또한 그곳에 존재했던 정당치 못한 어떤 사태에 내재된 고발을 품고 있을 것이다. 혹은 실현되지 못한 소망의 안타까움이나, 죄책감, 조롱과 모멸을 동반한 폭력, 강요되는 부당한 억압에 대해 항거할 수 없었던 취약하기만 했던 아이들의 이의제기와 같은 도덕적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에워싸고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그 표현 방식을 떠나 애틋한 마음이 앞선다. 여섯 작품 모두 상이한 소재와 테마를 전하고 있지만 특히 나푸름 작가의 하수구 아이는 학생들의 집단화된 폭력성의 점진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소위 왕따라는 집단 따돌림의 형태가 보편적 행위처럼 광범위하게 번져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기성권력인 어른들이 왜 구체적 시정을 위한 정책적, 사회구조적 개선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된다. 무엇보다 부모의 권력과 부가 아이의 학교권력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의 추악한 세습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하수구 아이에서 화자(話者)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한 상황을 떠올리며 자신이 회피하려한 것의 정체를 마주하고 죄책감을, 친구를 감싸지 못하고 집단 폭력에 무관심의 형태로 동조했음을 뉘우친다. 누군가 가장 만만해 보이는 한 아이에게 결점이나 모욕이 될 언행을 시작하고, 이것을 본 주변의 아이들에게 대상이 된 아이에겐 무언가 결점이 있어 당할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된다. 이렇게 존재치 않았던 결점이 대상의 것으로 굳어지고, 이것이 일상화되면서 집단은 의식적이고 악의적 따돌림, 폭력을 행사한다. “‘하수구에 사는 아이’. ...아이들은 그 애가 지나가면 코를 잡고 과장되게 얼굴을 찌푸렸으며...” , 화자는 그 아이의 집을 알지만 그 아이와 같은 취급을 받을까봐 진실을 발설하지 못하고 집단에 동조하고 만다. 집단의 불의를 시정할 용기를 지닌다는 것이 물론 힘겨운 일이다.

 

아마 이러한 양태에 대비되는 작품으로 조진주 작가의 그런 애의 주인공인 예나는 진정한 친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가 되려는 소망의 의욕이 앞선 나머지 과도한 몸짓과 치장으로 급우들의 비난과 조롱, 모멸을 당하는 친구 솔희의 노력을 감싸고 그녀에게 중단 없는 우정을 보낸다. 자칫 무너지거나 빗나갈 수 있는 친구에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음을. 네게는 저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아니라 너를 진정 이해하는 친구가 있음을.

 

상대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주의력 깊은 눈을 요구한다. 타인을 알기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인간들로 넘쳐나고, 또 세상은 그렇게 이끌고 있다. 네 주위는 내가 밟고 디뎌야 할 하찮은 경쟁의 무리만 있다고. 권여름 작가의 영고 1830과 이유리 작가의 스터디 위드 미는 이러한 오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영고 1830은 지역 내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영흥고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로 시작하는 고등학교가 여럿 있지만, 소위 명문대 진학에서 압도하는 영흥고만이 영고로 불린다.

 

이 학교에는 섬뜩한 괴담이 지역에 모르는 이 없을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1학년 830번 학생은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석차 순으로 반 배정과 번호를 부여하는, 즉 모욕을 아이들에게일상적으로 강요하는 이 학교에서 1830은 곧 꼴찌를 뜻하는 표상(表象)어다. 주인공 희준은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측에 속하지만 영고의 입학은 왠지 주저하게 된다. 자신이 1830이 되어 불행의 주인공이 될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그러나 영고의 교사인 아버지의 강압으로 희준은 영고에 입학하고 반배치 고사를 보게 되지만 행여나가 현실이 된다. 근심과 우려는 아이를 떠나지 않는다. 희준은 학교의 상징이자 불행의 전설 속 나무가 있는 장소를 마주하면 명치끝에 매달린 통증이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낀다.

 

그 장소에 이사장실이 있어 누군가 그 앞에 서있는 것이 거슬린다고 엄금한 곳이다. 그러나 희준은 그곳만이 유일한 위안의 장소이기에 고통이 몰려 올 때면 반복적으로 찾는다. 이런 쪼다 새끼를 봤나....작살로 물고기 잡는 원시인처럼 이사장은 지팡이로 희준 몸을 여기저기 억세게 찔렀다. .... 8반 놈이지, .” 소설이 끝나가는 장면에서 한 학생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연민도 없이 주절거리는 이사장의 대사는 그야말로 호러가 따로 없다. 황천 가는 관짝이지 뭐였겠어, 그게. ...호방하게 웃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오늘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들의 현주소이기에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매양 뻔뻔하고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는 부패한 의식의 어른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유리 작가의 스터디 위드 미는 영고 1830과는 그 궤를 달리하며 성적(成績)지상주의에 내몰린 아이들의 혼돈에 찬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만연한 성적 경쟁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한의 경쟁심에 포획된 아이들의 어두운 심리, 그리고 성적이라는 진부하고 퇴색한 표상을 넘어 돌출적으로 비어져나가는 실태로서 온라인상에 번성하는 선정성의 관련성을 엿보게 한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아는 <스터디 위드 미>라는 브이로그 영상을 운영한다. 어느 날 수아의 영상에 유령이 악의적 모습으로 그녀를 짓누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연은 이를 수아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한다.

 

마침 짝 윤서의 필통에서 저주 인형을 발견하게 되고 소연은 이것을 수아의 영상 속 유령과 연결 짓는다. 마침내 수아에게 이 사실을 전하지만, 수아의 대답은 정말 가관이다. 소연아, 이젠 단순히 공부만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시대가 아냐. 성공하려면 유명해져야 돼. 돈이건 명예건 일단 유명해져야 따라온다구.” 속된 말로 어그로를 끌기 위해 합성한 영상임을, 아마 소연이 수아의 얼굴이 이제 소름끼치게 무서웠다고, 귀신들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고 하는 말은 진심일 것이다. 지금 아이들을 이렇게 내몰고 있는 우리 사회, 이 사회의 교육 현실은 잘 못되어도 한참이나 잘 못된 것 같다. 인기, 권력, 부를 성공이라는 언어에 담아 이를 향한 무한 경쟁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가르치는 사회는 확실히 빗나간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에 틀림없다.


누군가에게는 흥밋거리로 소비되지만

누군가에겐 절실한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된다.”

 

윤치규 작가의 카톡 감옥은 중학교 내내 동급생 병세 등으로부터 지속적 괴롭힘을 당했던 준우가 이들을 피해 멀리 외딴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비대면 수업으로 시작된 팬데믹 시절의 어느 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학급 단체 카톡방에서 반 친구 도상현으로 추정되는 'D‘라는 계정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의 중학교 시절 괴롭힘 이야기를 들려주고, D는 준우의 복수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나갈 수 없는 채팅방”, “카톡 감옥에 들어 온 것을 환영한다.” 아마 이 신선한 소재의 독특함이 소설적 재미를 더하지만, 동료의 괴롭힘이 얼마나 잔혹한 폭력인지를 등골이 서늘하게 깨우치게 하는 작품이라 하면 부족할까?

 

끝으로 은모든 작가의 벗어나고 싶어서는 교사 미진의 첫 사랑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학창시절의 친구 우리에 대한 고백되지 못한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다.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 또 너냐?” 칠판을 보고 선 미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채는데, 소설의 이 시작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라는 반복과 보지 않고서도 아는 존재는 누구일까? 아마 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지닌 의미를 발견하는 읽기를 통해 이 작품의 애틋한 감성에 공감을 끄덕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동료 인간을 범주화, 대상화해서 편협하고 악의적인 이미지를 덮어씌워 다름을 틀림이라는 부정의 존재로 낙인찍어 파괴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사회는 인간 모두를 파편화, ()인륜적 존재로 전락시키고 만다. 불신과 경계가 팽배한 사회에서 그 어떤 공존과 유대와 화합이 싹틀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처한 오늘의 환경이 낳은 이 무수한 학교 괴담들은 비뚤어진 이 사회의 반영일 것이다. 가장 익숙한 학교가 아이들에게 무서운 곳으로 인식되는 이 현실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독특하고 신선한 이 젊은 시선의 이야기들이 흥미로운 공포담과 어울려 재미와 진실의 무게를 함께하며, 더위에 무거워진 우리의 심신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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