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 출간 400주년 기념 에디션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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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고리대금업자, 식인종으로 설정하면서 편견을 가중시킨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된 동기가 있다. 그것은 인종, 자신과 다름이라는 타자성을 향해 내뿜는 악의, 서구 기독교 문명에 내재한 인간의 몸에 대한 끊임없는 분리와 차별이 어떻게 도시의 불안에 표상되었는지를 과학과 건축과 회화예술, 문학의 지대를 넘나들며 해박하게 인간의 도시 드라마 역사를 펼친 위대한 도시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걸작 살과 돌; Flesh and Stone, ‘베네치아 유대인 게토라는 글에서 비롯되었다.

 

희곡 베니스의 상인16세기 베네치아를 무대로 하고 있다. 이 공간과 시간적 배경이 중요한 까닭은 주요 등장인물인 유대인 샤일록과 그의 상대역인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포셔, 살라리노 등 베네치아 기독교인들을 지배하고 있던 정체성의 이해를 위한 필수의 선()지식이기 때문이다. 15세기 말, 16세기 초는 선진 문명인 동방으로부터의 교역거점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베네치아가 에스파냐를 비롯한 포르투갈 등이 새로 개발한 교역로로 인해 쇠퇴가 시작되던 시기이며, 더구나 1509614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한 아냐델로 패전으로 군사적, 경제적 손상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네치아 기독교인들은 참담한 패배감과 소실의 원인을 돌릴 대상을 찾는다. 즉 도덕적 타락의 상태가 야기한 것이며, 이는 불순한, 육체를 타락시키는 유대인의 악이 된다. 유대인을 자신들의 영역에서 걷어내면 기독교인의 순수함이 평화와 품위로 자신들의 도시에 돌아 올 것이라 희망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게토, 즉 이탈리아어 주물공장을 뜻하는 제타레(gettare)에서 유래된 유대인 격리구역을 뜻하는 명사가 탄생한다. 게토 누오보, 게토 베키오 등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었고 건물은 중심을 비운 채 경계를 따라 벽을 세우고 오직 두 개의 다리로만 베네치아의 다른 영역으로 연결되는 봉쇄된 유대인 거주 구역을 만들어 낸다.

 

이 다리 중 오늘날에도 유명한 관광 명소인 리알토 다리다. 희곡에서도 바사니오와 안토니오가 샤일록으로부터 석 달간 삼천 다카트를 빌리는 장소로 등장한다. 즉 금융과 상인, 교역 중개상들이 거래하던 상업관문 역할을 하던 공간이다. 이것은 도개교(跳開橋)로 다리를 들어 올리면 게토를 바로 차단하는 기능을 하였다. 거래를 위해 낮에는 베네치아 기독교인과 뒤섞일 수 있었지만 저녁에는 여지없이 자신들의 게토로 돌아가 격리된 생활을 하여야만 했다. 이것은 야릇한 결과를 낳는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자신들만의 공간에 모이게 됨으로써 유대인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소수의 고립으로 다수의 순수함이 보장될 것이라는 베네치아인들의 물의 지리를 이용한 분열의 욕망이 무엇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진실의 한 면과 마주하게 된다.

 

반면에 이 세계의 주류 대중인 베네치아 기독교인들은 격리된 유대인의 삶에 대해 유혹과 혐오의 양가감정에 시달리며 수수께끼를 키운다. 물론 이 상상력은 타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대화된 부정적 감정이 되어 유럽 최대의 집단 학살이란 역사를 남긴다. 자신들의 사회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격리하고는 그 폐쇄된 영역에 범죄와 우상숭배로 곪아터진 죄악의 지대로 상상해 내는 것이다. 이것을 세넷은 억압에 의해 부여된 집단정체성은 억압자의 손에 달려 있다...,이방인이란 언제나 풍경 속의 비현실적인 인간임을 의미한다.’라고 단순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당대 베네치아의 이러한 억압의 지리(地理), 정체성의 지리를 이해하게 되면 샤일록은 단순히 탐욕의 화신으로 읽을 수 없게 되고, 그를 패배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하는 포셔의 판결이라는 것은 아무런 도덕적 해법도 될 수 없는, 단지 법의 언어를 이용한 억지의 천박한 잔꾀에 불과함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많은 셰익스피어 비평가들이 이미 이 해결을 변변치 않은 대단원이라고 지적하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풍속희극은 정말 하찮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서구 기독교인들의 사회가 이방인에 대해 어떤 상상과 혐오의 저주를 씌우곤 했는지를 당대 주류의 언어로 듣게 된다는 것, 그리고 샤일록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 육체의 보편적 존엄성을 주장하는 장면처럼, 한편으로는 이러한 유대인을 동류의 인간이 아닌 동물과 질병, 악의 화신으로 멸시하면서도 돈이라는 경제의 주체인 유대인으로부터 그 돈을 가져가기위해 저자세의 비굴한 몸짓을 하는 기독교인들의 저열함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자기 성찰로서 조롱이요, 괜찮은 희극이 된다.

 

여기서 하나의 클리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지극히 자기 확신이 없는 사회는 저항할 힘이 부족하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베네치아 기독교인 공동체의 하찮음, 그 무력함의 세계가 빚어내는 불순함만이 내게는 분명하게 보이는 작품이었다고 하겠다.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친구인 살라리노가 샤일록을 향해 편견으로 똘똘 뭉쳐진 비하와 비난을 하자 샤일록이 항변하는 3157절에서 70절을 채우는 문장은 어쩌면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유대인은 눈 없어요? 유대인은 손도 기관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냐고요? 기독교인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무기로 상처를 입으며,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법으로 치유되며, 여름과 겨울에도 같이 덥고 같이 춥지 않느냐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피 안나요? 간지럼을 태우면 안 웃어요? 독약을 먹이면 안 죽어요? ...당신들이 가르쳐준 비열한 짓을 난 실행할 겁니다.” - 3157~70

 

 

샤일록이 삼천 다카트에 대한 배상으로 계약서에 정해놓은 안토니오의 살 1 파운드를 고수하는 것은 자비를 요구하는 공작에 대해 대답하지 않겠다는 답변에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감정의 주인인 정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분에 따라서 요동친다는 것, 끊임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멸시와 혐오와 증오, 폭력을 감수하여야 했던 유대인 샤일록의 분노는 결코 탐욕으로 간단히 치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답변될 수 없는 것이며, 정서의 문제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 400주년 기념 에디션의 말미에 역자(譯者)슬기로운 포셔라는 제하의 해설을 붙이고 있는데, 나는 이러한 해석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법학자로 변장하여 안토니오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내는 포셔의 계약 해석은 물론, 샤일록의 전()재산의 몰수는 물론 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대목과 이에 환호하는 베네치아 기독교인들의 천박함, 악의만을 발견하게 된다.

 

대체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으로부터 자신의 연인 바사니오의 사랑을 차지한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슬기롭다는 것인지? 다시 말하거니와 이 풍속희극은 비록 샤일록의 정당한 분노와 혐오를 조롱하고 베네치아 기독교인들의 승리로, 그들의 희희낙락하는 행복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셰익스피어는 서구 기독교인들 세계의 하찮음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서 망설였음을 읽게 된다. 아마 이런 까닭에 이 작품이 지닌 비극성이 희극의 사이에서 애매하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류의 인간을 타자화하는 것, 타자와 뒤섞일 때 자신의 영역이 무너질 것이라 여기는 권력이나 집단의 두려움은 항시 자신의 무능과 무력감에 비롯되고, 이를 위장하기 위해 폭력을 도구로 휘두르곤 한다. 샤일록의 고리대금업은 당대 프랑스의 일반금리보다 낮았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라 하고 있다. 유대인의 부를 활용하면서도 여기에 혐오의 언어를 덧씌우는 그 행위 자체가 자신들의 취약성, 천박성인 것을 셰익스피어는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베네치아의 도덕주의자로 자처하던 인간들, 그네들의 사회는 관능과 음란성의 쾌락도시로 이미지를 떨치고 있었다. 15011031, 발렌티노 공작이 주최한 섹스파티에 교황 알렉산드르 6세가 참석하여 50명의 고급 매춘부와 뒤엉켜 놀았다는 것은 역사의 기록이다. 매독이 창궐하자 유대인에게 질병의 책임을 씌우는 기독교인들의 몰염치와 패악질은 동서를 막론하고 오늘에도 유형을 달리하며 세대를 이어오며 전해지고 있다. 이 타고난 분열의 욕망, 그리고 억압의 지리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하찮은 베네치아 기독교인 등장인물들 때문에 읽을 이유가 되는 작품이라면 궤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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