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 심리학의 명과 암 스켑틱 SKEPTIC 33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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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취약성, 바로 이 무지를 공략하여 부, 권위, 명예, 세력 등등을 취하는 무수한 행태들로 가득하다. 특히 미혹되기에 가장 유리한 자리에 있는 것이 인간 이성의 응결체라 여겨지는 과학이라는 외피를 걸치고 출현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적 연구 결과라고 주장하는 지식들이 실제로 과학적이지 않은 전제를 가정하기 일쑤며, 더구나 학문적 또는 사회문화적 권위를 배경으로 실행된다는 점에서 그 기만이나, 거짓, 위선, 오류가 은폐되고 진실이라며 세상을 호도하곤 한다.

 

스켑틱(Skeptic) 33(2023.3.10.출간)호는 자기계발 심리학의 명과 암이라는 커버 스토리를 담고, 미국 모방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 사회의 자기계발열풍에 문제의식을 지니고 살펴보게 한다. 그리고 낙태 반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요즘 제기되고 있는 선거제도의 중대선거구제로의 변환을 통한 정치개혁 탐색, 침술, 즉 한의학에 대한 양학의 오리엔탈리즘 비판, 민족주의에 대한 제고 등, 논쟁적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사회를 장악하다시피하고 있는 자기계발 심리학에 대한 양상부터 시작해보자.

 

서점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는 자기계발서들은 저마다의 심리학 분야의 권위로서 자신들의 명성이나 물질적 성공을 내세우며 개인과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과장한다. 하버드나 예일대 심리학 교수라는 신분표지나, 산업부문을 대표하는 유명기업 인사, 또는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이 말하는 것, 특히 테드(TED)강연이나 대중 매체에 출연하여 떠들어대지만, 실제 유의미성도 없거나 입증 불가능하며, 심리적 변화의 효과도 없을뿐더러 행동변화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이들 자기계발의 성공 경로를 얘기하는 것들은 사유하지 않는 직관적인 인간들을 용이하게 파고든다.

 

어느 누가 보아도 실소가 터져 나오는 자기계발서의 주장들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는 것을 그 소비자의 우둔함을 탓하기에 앞서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그릇된 재화욕, 권력욕, 명예욕부터 비난해야 할 것 같다. 페미니즘에 결탁하여 파워포징(power posing)'이라는 주체성 강화법이 한 때 유행했다. 등을 꼿꼿이 펴고 몸을 반듯이 세우라, 이 자세를 하면 주변 공간을 장악하게 되고 자신감이 증가하며,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높아져 부의 축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캠퍼스의 심리학 교수인 데이나 카니의 이 주장은 실험 통계조작을 통한 거짓이었음이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아무런 상관성도 유의미성도 지니지 못하는 허튼소리였다는 것이다. 비판이 계속되자 카니는 재직하는 학교의 웹페이지에 나는 파워포즈효과가 진짜라고 믿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사회에 유행하는 긍정의 심리학의 양상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다.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인 펜실베이니아대 마틴 샐리그먼이 개발한 개입 프로그램들은 실제 증거보다 과장된 주장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 감정을 늘리면...성격의 강점, 관계, 의미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 교수들로 구성된 평가회의에서는 이실직고했다. 긍정 심리학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우울감과 불안증세, 성격의 강점을 강화하지 못했고...”, 더구나 미국심리학회 회장이라는 명예까지 두른 사람이니 그 권위에 편승한 재화에 대한 욕심이외에는 아무런 진실도 없는 기만이었다. 여기에 휘말려 든 선의의 독자들이나 소비자들은 헛 돈을 쓴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 샐리그먼은 300만 달러의 연구비를 받아 챙겼다는 것이다. 그리곤 완결된 보고서로 발표된 적도 없다고 한다. 이것이 자기계발 심리학의 현실이다.

 

아마 한국에서도 대유행한 그릿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끈질긴 근성을 지닌 사람들의 성공담으로 가득한 앤절라 더크워스의 이 책은 입맛에 맞는 사례만 수집하고”, “그릿을 지니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례는 제외하는 식으로 정리된 책이었음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성공을 증진시키는 효율적이고 근거 있는 방법들은 이미 존재한다. 그것의 실천이 결코 쉽지 않기에 모든 사람들이 시행하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다. 시간관리와 집중하고 훌륭한 학습방법의 습관을 익히는 것인데, 이 습관화야말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름길이란 없다. 쉽고 빠른 길을 찾는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자기계발서는 대개가 부질없는 사실 뿐임을 증명한다. 넛지는 다를까? 바람직한 행동을 위한 환경 조성이라는 행동 전환 전략을 말하는데, 넛지에 주력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이 인식은 넛지를 실행해도 성취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결과적으로 실망감과 적개심을 낳기까지 한다고 한다. 더구나 개인이 변화시킬 수 없는 제도적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으며, 이를 간과함으로써 실패를 더욱 크게 확장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과대학 신경학 교수이자, 뉴욕 페이스대 심리학 교수인 테런스 하인스자기계발 심리학 다시보기의 이 비판적 논문도 회의적 시각으로 읽어야겠지만, 오늘 우리사회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자기계발의 유행은 분명 반성적 관점을 필요로 하는 현상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흥미롭게 읽은 글은 한의사 김나희 박사가 가정의학의()인 해리엇 홀이 침술의 신화에 침을 놓다라는 논제(論題)하에 한의학을 비판한 글에 대해 다시 비판한 침술의 신화에 침을 놓다에 대한 잠언이다. 특히 이 글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번 호에 해리엇 홀의 낙태 반대론자들을 비판하는 글이 게재되었기 때문인데, 그의 논문을 읽을 때 비판적 시선을 놓쳤음을 깨달은 까닭이다. 이 잡지가 스켑틱(skeptic; 회의적 비판)인 이유를 스스로 실천하는 글인 것 같아 더욱 흡족하게 읽었다.

 

김나희 한의사는 해리엇 홀의 글은 여러 겹의 잘못된 전제위에 쌓아올린 복합질문의 오류에 해당한다, 조목조목 진실을 전개하고 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전제하고 비난하는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에서부터, 알지도 못하는 것을 마치 아는 양 사실을 호도하는 무지에의 호소 오류’, 성급한 일반화, 개념 혼합의 오류로 점철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동양 폄훼로 꽉 들어찬 편향된 글임을 논박하고 있다. 서로 다른 관점과 무지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양상은 비단 동서 의학의 논의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권위에 서서 비전문 분야도 자신이 모두 아는 양 떠들어대는 것이 오늘 한국 사회의 작태인 것도 아마 이러한 현상과 동일한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이러한 실체에 대한 심리학적 개념어도 있다. 자신의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라는 것인데, 이것은 어떤 정책이나 프로그램의 결과를 커다란 실패로 이끌어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낳는 주범이 된다. 의사결정자가 자신이 내리는 결정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이 없음에도 자신이 모두 알고 있다고 하는 자기과신에서 비롯되는 '비숙련 직관(unskilled intuition)'이 우리 사회에 너무 심하게 부착되어 있는 듯하다

 

아무튼 세계화와 프로토피아(protopia)에 대한 사유에서부터 동물의 마음, 성 불평등의 편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주제의 논의가 풍성하게 시의성을 띠고 독자의 비판적 지성을 자극한다.   오믈렛을 만들려면 달걀을 깨야한다.”는 레닌의 말처럼 당위적 진실 같은 말도 과연 그럴까하고 우리는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사는 현실의 세계에는 이 말이 결코 진실이 아님이 곧 드러나기 때문이다.

 

4,500만 명의 인민을 죽이며 대약진의 개혁정책을 펼쳤던 마오쩌둥은 인간을 달걀처럼 엄청나게 깨뜨렸지만 그것은 오믈렛이라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대재앙이었음을 오늘의 우리들은 안다. 달걀을 함부로 깨부순다고 오믈렛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 역사적 진실은 사람들에게 왜 회의적 비판의 시선, 비판 능력이 요구되는 것인지를 입증하는 귀중한 사례가 될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에 펼쳐지고 있는 극단적인 이념적 양극화는 실로 마음을 어둡게 한다


이러한 현실 때문인지,   좌파와 우파의 뇌는 공명하지 않는다는 신경과학자 나타샤 모드의 짧은 연구 결과는 내게 직관에 의존하는 인간과 사유를 하는 인간의 그 철저한 양극성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물론 이조차도 비판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3월도 이렇게 작은 앎의 조각을 거두며 세상의 이해에 미미한 한 걸음을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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