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코스모스 - 40억 년에 걸친 미생물의 진화사 김영사 모던&클래식
린 마굴리스 & 도리언 세이건 지음, 홍욱희 옮김 / 김영사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개의 생물체들이 한데 합쳐져서 양쪽의 합보다 훨씬 진보된

새로운 한 생물체를 창조했다.” - 158

 

린 마굴리스세포 공생 이론을 알게 된 것은 대략 2년 남짓한 비교적 최근이다. 그것은 이진경과 함께 펴낸 감응의 유물론과 예술<수유너머 104>에서 연구, 강의 중인 최유미박사의 평설 공생의 생물학, 감응의 생태학에 인용된 생명은 개체가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의 복합체라는 세포의 공생, 이종간의 우발적 엮임, 즉 세포 융합이 지구 생물 변화의 주요 원동력이었다는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생명의 운명과 진화의 토대는 경쟁과 적대가 아니라 화합과 공생이라는 의미이다. 이 책은 이렇게 내게 미생물의 우주, 인간을 비롯한 생태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시야를 지니도록 다가왔다.

 

진화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살벌한 투쟁이라고 주장하는 몰염치하게 왜곡 사용된 적자생존이란 용어의 남용과 더불어, 진화는 언제나 개체의 이익을 위해 진행된다는 신다윈주의자들의 신앙이 된 믿음의 오류를 입증하였다는 점이다. 언제나도 아니요, 독립된 개체의 이기적 이익도 아니다. 진실은 진화는 서로 다른 개체의 공생적 이익을 위해 진행된다! 생물학의 현대고전이 된 이 책, 마이크로 코스모스가 발표된 1986년부터 수년간 다윈을 교조로 받드는 자들에 의한 무차별적 비난과 조롱이 쇄도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린 마굴리스의 세포 공생, 세포 융합이론은 생물학 교과서의 유전자 교환 이론은 물론 미생물학 세계, 나아가 지구 생태계를 이해하는 주요 이론으로 정착되었다.

 

이 저술은 생물학 교과서의 내용을 바꾸게 하였으며, 진화론의 새로운 장을 연 지난한 연구노력의 직접적 결과물이라는 생물학 부문의 위대한 성과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책에 더욱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것은 인간 중심주의 사고에 대해 다른 관점을 지니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관계의 사유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위계적으로 대단히 견고한 철학적 이론이나 과학 이론을 비판하는 길은 전도와 제거를 동원한 방법뿐이다. 전통적 견해의 역전과 해체!, 그것은 인간을 진화의 사다리 가장 위에 둔 망상적 이해를 뒤집는 것이고, 가장 아래 자리잡고 있는 미소한 생물, 박테리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소위 발달기원설을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은 마치 세포가 필요해서 어떤 기능을 갖도록 진화한 것처럼 말한다. 이러한 망상은 인간을 진화의 가장 꼭대기에 선 최고의 진화물이라는 사이비 결과를 만들어낸다. 박테리아와 같은 원핵세포 등 미생물의 진화는 인간의 출현에 수십억 년 앞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진화는 결코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던 적이 없으며, 계획이란 것이 없다.” 인간의 몸은 10,000 ()개의 동물세포와 10만 조의 박테리아 세포를 지니고 있다. 동물세포인 개개의 진핵세포는 박테리아와 같은 원핵세포들의 융합체일 뿐이며, 바로 이것들의 유기적 연결체의 한 형태가 인간이다. 여전히 이 세계의 생물체들은 박테리아에 기초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즉 린 마굴리스의 이 책은 공생기원설을 선언한다.

 

박테리아에서부터 포유동물로 불리는 생물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의 화학적 유사성은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책은 원시지구의 분자들에서부터 핵산과 세포막이라 부를 만한 것을 통해 원핵세포인 박테리아의 출현, 이들의 공생, 융합을 통한 자가조직화 등 자기보존능력의 보유와 다세포로 발전, 한 개 이상의 출처로부터 유전자를 받아 이를 재조합하는 과정인 성(sex)의 형태 변화들과 번식, 치아와 눈, 근육조직과 뼈의 형성들에 이르는 수십 억 년의 적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세포 공생 이론은 별개의 생물체들이 한데 합쳐져서 양쪽의 합보다 훨씬 진보된 새로운 생물체가 창조되었다는 진화 이론이다. 소위 양육강식이라는 계산된 드라마에 의한 진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허위의 주장들은 린 마굴리스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고고학적 발견과 실험실 연구들로 입증되어 오랜 동안 인간의 도덕과 종교를 장식했던 오만과 오류를 해체시키고 있다.

 

개체 이익 진화라는 전통적 다윈주의를 시정하게 하는 테네시대학 동물학 교수인 전광훈박사의 15년에 걸친 아메바 배양 실험은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가 함께 생존하기 위해 협력의 기작을 작동하고, 둘의 공존 공생적 습관의 형성으로 상호 필수불가결의 존재가 됨을 입증한 전기적인 공생실험으로 인용되고 있다. 결국 진화에는 경쟁과 협동 사이의 뚜렷한 경계가 없으며, 미생물우주인 자연은 개체와 같은 추상적 개념의 범주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이를 넘어서는 진화를 진행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생물의 생활은 어떤 한 생물체가 다른 생물체를 압도해서 승리를 얻는다는 그런 운동 시합같은 것이 아닌 복잡한 넌(non)제로섬(zero-sum) 게임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박테리아는 자신의 유전 물질을 복사하는 대신에 다른 박테리아에게서 빌려오기도 하고 조각난 DNA를 전달하기도 하며 유전자를 혼합, 결합한다. 박테리아에게 성이란 이렇듯 수평적(자기 이웃과 유전자를 나눔)인 아주 유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박테리아는 타자에 대한 관용과 수용의 세계이다. 박테리아에게 바이러스와 DNA의 침입은 일상적이며 이에 적응한다. 진핵세포가 됨으로써 이러한 유동적 융통성을 상실했다. 진핵 생물은 유전자를 수직적(세대를 통해) 전달을 통해서만 생명을 이어간다. 융통성 있는 불멸의 존재에서 죽음과 연결된 것은 이러한 변화, 즉 격리된 막 속에 들어앉은 핵을 지닌 진핵 세포가 됨으로써 비롯되었다고 해도 될 것 이다.

 


이것을 극적인 드라마로 보여줄 수도 있다. 조금 큰 원핵세포가 작은 원핵세포를 먹이로 취했다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불상사는 아마 10억 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무수히 일어났을 것이다. 이 우연한 실패가 예상치 못한 관계를, 뜻밖의 존재를 만들어낸다. 둘은 서로의 기능을 조화롭게 이용한다. 이를테면 태양 빛을 회피하는 이동 능력 없는 원핵세포의 경우 편모를 모터처럼 추진력으로 이용하는 원핵세포(스피로헤타;spirohetes)와 협동하여 자기 생존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이렇게 합체함으로써 둘은 훨씬 뛰어난 생존과 번식의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소화불량의 메타포는 타산적 교환, 적자생존이라는 오늘의 자본주의 경제논리를 여지없이 허물어버린다. 사실 자연은 무자비한 생존 경쟁 장이었던 적이 없다. 물신화된 인간사에 투사하여 왜곡의 도구가 된 발생기원의 진화론이 지닌 그 환상을 부숴버린다.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등 독립된 원핵세포가 세포내 기관으로 정착하여 생명의 주요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공생, 융합의 여실한 증거들이다. 원핵세포인 스피로헤타가 지닌 구조와 기능은 세포분비, 세포분열, 신경세포 형성에 관여한다. 발달기원주의자들은 인간의 두뇌와 생식세포에 있는 미세소관과 파상족이 필요했기에 스스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스피로헤타는 이러한 구조를 지닌 원핵생물이다. 이것이 여타 세포와 융합하여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는 것이 오히려 타당한 가정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뇌세포 속에는 미세소관이 풍부하다. 인간의 각종 신경 세포와 뉴런은 스피로헤타성 구조물이다. 그렇다면 뇌세포의 실체는 이러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던 세포가 목적을 가지고 진화하여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 타당할 수 있겠는가? 이것의 입증은 불가능한데, 완전 동화하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사건이다. 다만 그 구조의 동일성, '9X2'의 미세소관의 동일성을 원시세포의 융합의 증거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일까?

 

성의 수평적 교환에서 수직적 형태로의 변화에서부터 유전물질이 옮겨지는 현상인 성의 개념은 물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염도 성이 된다. 또한 공생도 성이 된다. 성이라는 유전자의 이전과 생식의 개념화로의 변화를 낳게 된 자연의 과정, 성 선택 요소와 배우자 선택 전략의 변경을 가져온 인간의 생활사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우주의 수십 억 년에 이르는 누적된 적응의 과정이 있다. 이러한 미생물우주의 역사를 추적하며 공생의 이론을 확립한 이 저술의 궁극의 취지는 이 세계와 우주는 이질적인 것들, 이종간의 우발적인 엮임이 빚어낸 비()지적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생태적 지성, 타자와의 화합과 공생의 관점에서 보아야만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인간 존재의 생태계 내 위치에 대한 각성이다.

 

박테리아는 인류의 진화 훨씬 이전에 이미 양자 회전 모터의 원반 모양을 갖추었고, 발효, 황 호흡, 광합성, 질소 고정의 기능을 발전 시켰다.

그들은 고도로 사회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종의 지방분권적 민주주의를 수행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125

 

지구의 대기 기체 중 산소의 농도는 21%가 줄곧 유지되고 있다. 인간이 대기의 산소 비율을 통제 관리하고 있다는 망상처럼 터무니없는 발상도 없을 것이다. 박테리아 등 원핵생물은 그네들의 유전자 교환의 난삽(難澁), 즉 타자에 대한 자유로운 일상적 수용이 만들어 낸 전()지구적 네트워크로 인한 자동 조절이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린 마굴리스의 미생물우주에 대한 이 글들은 결국 지구라는 한정된 생태계의 진정한 점유자는 누구인가를 규명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사(NASA)의 대기(大氣)화학자인 제임스 러브록가이아 이론은 대기권의 온도와 기체 조성이 미생물들에 의해 능동적으로 조절되고 있다는 이해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는 화성 탐사에 앞서 자신의 가이아 이론을 토대로 한 실험에서 화성에는 생명체가 없다고 단언했다. 즉 미생물에 의한 대기의 통제 흔적이 없다는 확신이었다. NASA는 이 말을 신뢰하지 않았으나 이제 모든 지구인이 알고 있듯 화성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없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오직 변화와 번성하는 존재만 있을 뿐이다.

 

계통파충류로부터 적응방사라는 진화학적 발전을 이룬 현존 생물의 하나인 우리 인간은 미생물에서 기원한, 미생물의 물질대사 변혁물의 하나일 뿐이다. 이 공생 세포 이론을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이론이라며 폄훼하였던 발생론자 리처드 도킨스의 조롱이 지금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몸체란  유전자의 운반체라는 개념만큼은 린 마굴리스의 진핵세포들로 연결된 하나의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몸체와 상통한다. 오늘날 공생 세포 이론은 주류 이론이 되었다.

 

이 사려깊고 철학적인 자연과학의 역작을 이제라도 읽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고등 기술을 독점하고 자신의 생존권을 확대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자인 우리 인간은 기어코 미생물우주의 신비를 벗겨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분명 새로운 생물의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 DNA와 인간과 기계를 기본으로 하는 실체가 됨으로써 진화의 가속화를 연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능을 지닌 기계는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으며, 다가 올 초우주 시대의 생명의 미래를 가정하는 책의 마지막 장 미래의 초우주는 생명과 새로운 행성 세계의 창조를 위한 탁월한 지적 상상력을 북돋아 준다.

 

진화생물학의 위대한 업적이자 생명의 진실, 인간의 위상을 숙고하게 해주는 고귀한 열정에 진심으로 머리 숙이게 된다. 이 자연과학의 엄청난 성취는 여느 철학적 사유를 훌쩍 넘어선다. 그야말로 지구라는 생명의 대서사시이며, 최유미 박사의 말처럼 감흥의 생태학이고, 마주침의 유물론이다. 서로 밀려들어가고 융합, 응결되어 새로운 감응을 촉발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의 존재조건임을 이 책을 통해 나는 더욱 확신하게 된다. 고귀한 지성을 만나 아름답다는 말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지성 바로 그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