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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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기근, 혁명? 연기와 궁핍의 얼룩은 지구 표면의 완만한 곡선에 감추어져 있었다. 모두가 깊고 깊은 잠을 자고 있다....폭탄의 굉음으로 화들짝 놀라기 전에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 327

 

19377월에 쓰기 시작해서 1938년에 출간되었으니 이 책이 기록하고 있는 스페인 내전(1936~1939)이 종료되기 전이다. 따라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발표되었다는 것은 이 전쟁에 어떤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저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 자신도 이 책은 정치적 책이라 발언하기도 했으며, 본문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없으면몇 장은 읽지 말고 건너뛰라고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록을 읽으며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인민들의 무관심, 권력을 차지하려는 야심가들의 명분에 불과할 만큼 부패한 이념 뒤에 숨은 그네들의 추악한 이기심을 분별 하려는 앎의 의지 없음에 주목하게 된다. 어쩌면 인간 역사의 행방을 결정하는 것은 이처럼 인간의 안주하려는 게으름의 속성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冒頭)의 인용문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완만한 곡선에 감추어 진 것, 우아하고 세련된 표면 속에 은폐된 것, 이것에 눈을 가리고 잠든 의식이야말로 가장 경계하여야 할 공포임을 전하고 있다. 전체주의, 파시즘은 무관심, 무지를 먹고 자라남의 경고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오웰은 이러한 실제를 적나라한 이미지로 클로즈업 된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중무장한 경찰 집단이 노동자들이 운영하고 있던 전환교환소를 급습하여 체포, 점령함으로써 촉발된 바르셀로나 시가전(市街戰)이 이뤄지고 있던, 람블라스 거리를 유유하게 걸어가는 여인의 묘사이다. 그는 소총을 든 채 내려다 본 거리에서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고 하얀 푸들을 끌고가는 이 민간인의 모습에서 그 무관심과 의미없음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권력에 의해 주변 노동자들의 감금과 살해가 만연하는 것에 대한 불감증, 공감 능력의 부재임을 보여주는 대중의 끈질긴 무지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

 

영국인 조지 오웰은 왜 남의 나라인 스페인 전쟁에 참여했냐는 물음에 답변한다.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 “문명을 방어하기 위해서, 인류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 히틀러와 프랑코 군대가 일으킨 광적 폭동을 저지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당파적인 정치적 측면에서 결코 참전한 것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그는 전선 뒤에서 벌어지고 있던 정당간의 권력 투쟁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며, 당시 자신의 순진함을 되돌아보고 있기도 하다. 그가 스페인 통일 노동자당(P.O.U.M)’ 의용군으로 입대한 것은 지인이 있는 영국 독립노동자당의 신분증의 인연에 의한 것이었을 뿐, 그는 스페인의 통일 사회당(P.S.U.C)’이나 노동자-무정부주의 연맹등의 정치적, 이념적 차이를 알지 못했다. 참전 동료와 나눈 대담에서 그가 놀라는 장면은 당시 그의 열정에 비해 스페인 정국에 대한 이해에 얼마나 순진할 정도로 무지했는가를 보여준다.

 

참전 동료 : 저쪽(통일 사회당)은 사회주의자들이야!

조지 오웰 :  ...우리 모두 사회주의자들 아니야?

 

193612월에 시작된 내전은 온건한 좌익정부를 전복하기위해 귀족과 교회 지원을 받아 파시스트인 프랑코가 군사적 폭동을 일으키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민중이 일어선 전쟁이다. 당시 집권의 주축 세력인 통일 사회당은 정당의 의용군에 무기 지급을 미적대다가 민중의 거친 요구가 있자 마지못해 40년 전에 사용하던 독일제 모제르 소총을 소량 지급하는 것으로 눈가림을 했다. 소련 스탈린의 사주를 받는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권력 존속에 관심이 있었지 노동자 혁명이나 민주주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책은 전선에 배치된 오웰의 개인적인 경험의 이야기들과 당시 정치 권력의 흉측스럽고 비열한 양상들에 대한 비평이 교차하며 파시스트 군과 대치하는 의용군의 정치적 고립, 즉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병사로 노동자를 이용하여 전선에 앞세우고는 후방에서는 자신들의 정략적 이익을 계산하는 비열하고 더러운 공작정치에 몰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선에서는 정치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다....나는 평등의 공기를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기가 스페인 전역에 퍼져 있다고 상상할 정도로 순진했다....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100

 

이러한 믿음에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은폐된 혁명적 측면과, 거짓과 기만에 의해 오도된 언론의 역할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력의 확대, 권력의 존속에만 관심 있었던 공산주의자들(통일 사회당)은 반()혁명적 정책을 선포하며, 노동계급의 계급철폐 등 평등과 자유의 구호에 놀란 대중을 규합하여 부르주아들을 자기 세력화 하고, 나아가 파시스트들과 손잡기까지 한다.


책의 많은 지면이 공산주의자 정권이 첫 번째 목표로 통일 노동당을 추출하기 위해 벌인 선전 공작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기록들이다. 신문, 팸플릿, 포스터, 책 등 모든 곳에서 극악무도한 정당간 분쟁을 진행함으로써 진지한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여, 통일 노동자당의 반대를 무자비하게 사냥하는 것이다. 날조된 비방으로 정적을 살해, 제거하는 전술로서 혁명 세력을 모두 파시스트로 매도하는 것이다. 인용되는 매체인 신문데일리 워커는 악의적 거짓과 날조, 인신공격으로 권력에 봉사함으로써,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겨냥, 편견을 심어주어 자신들의 몰상식한 마녀 사냥을 정당화한다.

 

이렇게 대중의 시선을 왜곡함으로써 반대 세력을 무차별 살해하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중적 시선이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에 묘사한 푸들을 끌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다. 이러한 프레임 씌우기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퇴행적 수구 권력에서 즐겨 활용하는 전술이며, 또한 바로 지금에도 세차게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극우 매체와 검찰 권력의 결탁을 활용하여 반대 세력을 망령처럼 소환한 빨갱이타령이 그것이다.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적화(敵化)하여 절멸의 상대,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반대세력 없는 전체주의적 독재 권력을 휘두르려는 것이 그것이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권(통일 사회당 주축)은 통일노동당을 히틀러와 프랑코에 매수된 파시스트 무리이며 사이비 혁명으로 파시스트를 돕는 프랑코의 제 5열이라고 스페인 전역에 퍼뜨린다. 이에 비판적인 언론은 검열을 통해 폐간되거나 해당 기사는 삭제를 강요한다. 저항하면 비밀감옥에 갇히고 어느 날 살해되어 사라진다. 오웰은 당시 신문기사와 포스터, 자신의 실제 체험의 증언으로 악다구니와 거짓 날조의 실상을 증거하고 있다. 전선에서는 이러한 후방의 왜곡을 모른 채 파시스트 군대와 싸우고 있는 통일노동당 의용군을 이용하면서, 그들을 감금 살해하는 권력의 기만은 진정한 반동의 표본이라 할 것이다.

 

아마 오늘의 한국인들은 권력 자본가 계급들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다고 공언하는 극우화된 공산주의자들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역사는 극우화된 공산주의의 실체를 이렇게 보여준다. 결국 이념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허위의 개념을 뒤집어 쓴 부패한 개념인가 를 다시금 환기토록 한다. 오웰은 책에서 예언을 하는데, 다시한번 내 의견을 밝혀둔다고 하면서, 나는 전후戰後 (스페인)정부의 경향은 파시스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259)”고 확인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말이 들어맞을지 두고 볼일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실제 1939년 혁명이 되지 못하고 내전으로 기록된 이 전쟁이 종료되면서, 스페인에는 시대착오적인 봉건적 대지주와 연결된 케케묵은 교권주의적이며 군국주의적인 반동의 표본인 프랑코의 독재정부가 들어섰음은 오늘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웰의 예견이 옳았음을 역사는 입증해준다. 프랑코는 1975년 사망하기까지 무려 36년간 일인 독재 정치로 인민을 신음하게 하였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스페인 인민, 자신들의 지적 게으름이 만들어낸 괴물이었으니 대가치고는 혹독한 것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옛 흘러간 역사적 사건의 이야기도 아니요, 남의 나라 인민의 얘기도 아니다. 바로 한국 사회에세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의 유사 판본이기도 할 것이다.

 

오웰은 목에 관통상을 입었으나 동맥을 살짝 빗겨간 총알 덕택에 살아 스페인을 아내와 함께 탈출한다. 통일노동당 신분의 의용군이었던 오웰은 체포 살해 대상이었으니, 그 아슬아슬한 위험의 장면들도 당시 권력에 반대하는 세력이 자행하던 쉼없는 무차별 체포, 급습, 감금, 살해의 잔혹한 현실을 전해준다. 우리 인간의 정신 습관이나 언론의 기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 신뢰를 지닌 그 게으름과 어리석음은 쉽사리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당시 영국의 부르주아지의 대변격인 데일리 메일은 프랑코를 악마같은 빨갱이 무리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자로 묘사했다.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두려워하던 당대 유럽 자본주의 사회는 파시즘을 옹호하는 데 전력이었다. 히틀러의 나치즘, 무솔리니의 파시즘, 프랑코의 전체주의 독재는 모두 이렇게 터무니없이 날조된 거짓 언어, 왜곡하여 의미를 퇴색시킨 개념어에 의해 출현했다. 아마 오웰은 이 책을 쓰면서 1984에 등장하는 이중어와 약어, 세뇌된 인간들이 무엇인지 이미 계획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기록은 후속 독서를 현혹한다. 이 내전에 대한 어떤 감응이 갈증을 더하기 때문이다.

 

오웰과는 다른 관점에서 쓰여지긴 했으나 여운 많고 의미심장한 제목을 가진 어니스트 헤밍웨이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종군기자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인상이 깊게 배어있는 반파시스트적 장대한 소설이다. 한편 물론 당대의 경험이 없는 후대의 작가이긴 하지만, 당사자인 스페인 작가로서 하비에르 세르카스가 쓴 살라미나의 병사들도 후속 독서 작품으로 꼽아놓는다. 내전을 실패케 한 역사적 책임이라는 험난하고 불가능하기도 한 물음을 하는 작가의 노력을 따라가다 보면 오웰이나 헤밍웨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관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로부터 시작된 꼬리잡기 독서는 당분간 계속되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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