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 글은 푸른숲 출판사에서 제공한 중국 중견 작가 위화의 소설 원청가제본 도서의 지원에 의해 작성된 것임을 밝혀둡니다또한 소설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니 

이 점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소설은 청나라의 쇠망(衰亡)과 더불어 그치지 않는 전란(戰亂), 토비(土匪)와 패잔병들의 민초를 향한 살인과 방화, 약탈, 강간이 기승을 부리던 20세기 초엽을 배경으로 하여, 명멸하는 인간들의 시린 삶을 쫓으며, 그네들을 살아가게 하는, 또는 목숨까지 바치게 하는 의미란 무엇인지를 한 인간의 온전한 한 세대를 관통하며 인생을 풀어 놓는다.

 

이 작품 역시 국내에 많은 작품들로 친근해진 작가 위화(余華)만의 고유한 분위기, 소설의 주제와 드러내려하는 의미가 어떠하든 고즈넉한 가을 길을 걷는 듯 고독이라는 단독성의 인간에 대한 깊숙한 연민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한 인간의 삶의 여정이라는 줄기 속에 시대라는 소용돌이의 시간에 새겨진 인간들의 잔인함, 우매함, 교활함, 비루함의 면면이 자연스럽게 융해되어 인물의 삶에 오롯이 집중케 한다. 아마 위화만의 재주일 것이다.

 

이야기는 린샹푸(林祥福)’라는 인물의 묘사로 시작된다. 그가 소유한 1,000여무에 이르는 비옥한 땅, 명성이 자자한 사업(목공소), 중국 남부 소도시 시진 근방 100여리에 미치는 선명한 존재감, 그러나 그의 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단지 북쪽에서 내려왔다고만 확신한다고. 소설은 이 인물의 삶의 행적(行跡)을 따라가며 시대의 음울(陰鬱)에 넋 놓고 빠져들게 될 정도로 서사적 수려함에 침잠케 한다.

 

훌륭한 교육과 지혜로운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 황허강 북부지역 마을의 성년으로 성장한 린샹푸를 우연이라는 필연적 사건으로 밀어 넣는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저택, 자신의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두 남녀를 집안으로 맞이하고 그네들에게 하루 밤의 거처를 제공하면서 매파(媒婆)의 수많은 선 자리에서 닿지 않았던 인연의 여인을 맞이하게 되는 인생의 사건이다. 남매라고 자신들의 관계를 설명했던 두 남녀는 다음 날 남자는 경성(북경)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홀로 떠나야하니 잠시만 여동생 샤오메이(小美)’가 머물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린샹푸는 이를 관대하게 수용한다.

 

남자는 돌아오지 않고 린샹푸는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닌 샤오메이와 같이하게 되며, 이윽고 그녀가 자신의 아내라는 믿음이 된다. 부모로 물려받고 성실하게 전답을 일군 보상으로 축적한 금괴와 집과 전답의 문서가 있는 은닉한 상자를 보여주며 부부의 미래를 꿈꾸지만, 어느 날 여자는 금괴의 절반을 가지고 사라져버린 후 돌아오지 않는다. 한 계절이 지나고 농사일과 목공의 배움을 마치고 귀가한 날 집 안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베틀 소리에 샤오메이가 돌아 왔음을 직감한다. 여자는 배가 불어 그의 아이를 잉태했음을 알린다. 남자는 여자의 허물을 용서하고 정식 혼례를 치루며 여자와 자신의 아이와 함께하는 단란한 가정을 꿈꾼다.

 

그러나 여자는 딸아이를 출산하고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 아이만 남겨둔 채 다시금 사라지고 만다. 남자는 여자를 찾기 위해, 아이의 엄마를 찾기 위해, 예전 자신의 집 앞에서 들려오던 그네들의 고향이라는 원청’, 남쪽 지방의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떠난다. 원청!, 어딘가에 있을 장소, 그곳을 향한 여정, 그리고 그 부재하는 장소와 현실의 시진이라는 장소는 지명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과 정신을 이끄는 공간이 된다.

 

소설 초입의 이 서사는 끝 장에 이르러 그도 알지 못했던 머묾의 장소가 된 시진의 의미를 샤오메이의 시선으로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여인의 아린 마음, 폭설 속의 차디찬 대지에 꿇어앉아 머리를 숙인 채 기도하는 여인의 속죄의 형상,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닿지 않는 두 사람의 교차로 인생의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다. 우연과 필연의 상호 인과성의 그 미세한 어긋남, 인생이란 이런 것들의 연속이란 듯이.

 

긴 여정은 시작만 있고 끝이 없었다. 린샹푸는 걷다가 멈추고 멈췄다가 걷기를 반복하며 가을을 보내고 겨울로 들어섰다.  그는 툭하면 생각에 빠졌다.  앞으로 나아가는 몸과 달리 생각은 자꾸 뒤로 돌아가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시진은 오히려 선명하게 떠올랐다.”   -558

 

딸아이의 엄마를 찾겠다는 남자의 이정표 없는 발걸음이 시진이라는 마을에 닿았을 때 들려오는 샤오메이와 같은 빠른 말과 억양의 낯익음은 목적지인 원청이 아니지만 그의 걸음을 돌려 세워 발을 묶는다. 가슴에 품은 돌도 안 된 어린 딸의 젖동냥을 위해 한 손에 든 한 냥의 엽전을 내밀며 제발 불쌍한 제 딸에게 젖 좀 먹여주십시오.”라며 지독한 한파가 몰아치는 눈 속에서 집집을 돌며 젖을 구걸하는 남자의 모습은 먹먹하다 못해 울음이 비어져 나오게 하는 정경이다.


남자는 시진에 정착하기로 한다. 이때 그에게 내민 따뜻한 인간애, 2년 전에 그곳에 정착했다는 천융량과 리메이롄 부부가 그의 딸아이에게 물려 준 젖과 폭설로 단절된 엄동설한에 자신들의 목숨 일부와 같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 한 그릇은 또 하나의 인연으로 인생의 중대한 토대가 된다. 린샹푸는 천용량의 함께 자신의 목공 기술로 폭설과 돌풍으로 망가진 시진의 망가진 집들의 창호와 문을 수리해주며 목재와 가구 판매 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지역의 부자로 일어선다. 린샹푸는 100여 집 넘는 곳에서 젖동냥을 받았다는 의미로서 딸의 이름을 린바이자(林百家)’로 짓는다. 린바이자는 리메이롄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한다.

 

그러나 시대는 토비들의 창궐과 국민혁명군, 북양군 관병 등 지역 토호 세력들의 그칠 줄 모르는 전쟁으로 인민의 삶이란 피난과 도주, 살인과 강간, 약탈의 희생을 피할 수 없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린샹푸와 천용량, 시진의 상업세력 대표이자 지역 인민의 존경받는 리더인 구이민 등의 생활 기반에도 이러한 위태로운 현실의 암운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토비의 인질로 납치되는 린바이자, 린바이자를 구해내기 위해 천씨 가문의 장자인 자신의 몸값이 더 비싸니 대신 끌어가라는 천야오우의 희생,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인질들을 휘갈기는 채찍질과 히죽거리는 토비들의 잔혹하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폭력과 살상의 장면들, 토비를 소탕한다는 명목 하에 출정하는 관군의 부패상, 패전한 북양군 관병들의 시진에서의 후안무치한 패덕(悖德)의 행위들은 무능력하고 부패한 국가의 인민에게 닥쳐오는 실체를 날것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은 인민들의 자구책으로 이어지지만, 혼돈의 시기에 인간을 사로잡는 유언비어와 이에 망동하는 인간들의 그 이기심이 빚어내는 어리석음의 자멸적 행동까지 소설은 부각하지 않으면서 너무도 천연(天然)하게 인간의 생애에 풀어 놓는다. 이러한 시대의 혼돈 상은 시진과 강을 사이에 둔 완무당 지역을 배경으로 수로를 활용해 활동하는 토비의 극악한 살인과 파괴 행위로 많은 지면에 걸쳐 펄쳐지고 있는데, 한 마을 600명의 주민 중 246명이 살해되고 수많은 여성들의 강간과 잿더미가 된 마을의 형상으로 표상되고 있다.

 

“200여명의 피가 허공으로 솟구쳐 타작마당 사방의 나뭇잎을 적셨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선혈은 타작마당의 흙을 붉게 물들이고 노인의 백발과 아이의 동공, 여인의 창백한 얼굴도 붉게 물들였다.”   -355

 

아마 이 소설의 궁극적 백미(白眉)는 소설의 후반부에 다시금 소환되는 린샹푸가 폭설이 내리는 시진에 도달하여 딸아이의 젖동냥을 하던 17년 전의 시점에 놓인 샤오메이의 시선으로 술회되는 또 하나의 일생에 대한 쌉싸름하고 애달픈 사랑의 기록이다. 린샹푸의 집 앞을 서성거리던 두 남녀 아창과 샤오메이의 관계와 그들의 사랑, 그리고 린샹푸와 샤오메이 자신과의 관계성이 지녔던 감정들, 그리고 출산과 도주, 시진에서의 삶과 자신을 찾아 존재하지 않는 원청을 찾아 시진에 도달한 남자와 딸에 대한 아픔과 연민, 그리고 씻기지 않는 죄의식이 의식의 수면 아래에 끊임없이 흐르는 물줄기처럼 우리네 감정을 적셔댄다.

 

여기서 원청은 샤오메이의 목소리로 다시금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것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이며, 아픔의 언어이다. 소설은 역사와 같은 거대한 담론을 끌어들이지 않으며, 시대의 인민의 삶을 말하며, 인간 삶의 행로의 분기점마다 다가오는 그 우연과 필연의 인과성, 이에 깃든 생의 기쁨과 슬픔, 갈망과 기만에 도사린 불가피성, 베풂과 환대, 용기와 복수, 희생과 죄의 구원을 향한 성스러운 참회의 이야기들이 우아하게 어우러져 가히 마법적인 인간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선사한다.

 

사랑하는 이가 있는 곳, 그러나 어딘지 알지 못하는 곳, 부재하는 장소이자 유랑과 방황의 공간이며 아픔인 곳,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그 실재하는 장소를 표상하는 대명사 원청은 오랜 동안 기억 될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이 책의 첫 장을 읽기 시작했다면 결코 책장을 덮지 못할 것 같다. 명멸하는 인간들의 운명을 쫓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 무엇의 견고한 유혹을 떨쳐 낼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화의 대표작 인생(活着)을 잇는 그의 문학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걸작이라 하면 지나친 수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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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토비(土匪) '장도끼'의 운명이 시사하는 것


소설에는 시진 지역의 강 건너 완무당을 무대로활동하는  극악한 토비의 우두머리인  '장도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자신의 쾌락과 잇속을 위해 한 마을의 인민을 무참히 도륙하는 데 거리낌 없는 인간이다.  이 자가 천융량의 무장한 마을 사람들과 혈전에서 칼날에 의해 눈이 다치며 패퇴하는 장면과 함께 자신의 부하들에 의해 결박되어 버려지고, 자신의 본업이었던 점장이로 길거리에 앉아 인민을 현혹하는 교활한 모습이 있다. 


고작 인간의 사주팔자와 이에 은닉된 지중간을 자유로이 해석하는 반복된 행위로 인간 운명의 예언자처럼 행세하는 정경이다.  마치 작금의 천O 이라는 인간이 한 국가를 쥐락펴락하는 혹세무민의 한심한 작태와 오버랩되며 갈등과 혼돈으로 내모는 그 비열함과 우둔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 자의 행적을 작가 위화는 상당한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운명의 끝,  꽂은 칼날이 궁극에 어디에 다시 꽂히는지를 살필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마도 필연임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제아무리 운명을 살핀다고 해봤자 자기 운명에 다가오는 칼을 빗겨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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