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와 버지니아 -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의 삶과 사랑
세라 그리스트우드 지음, 심혜경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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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색빌-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 두 사람의 사랑보다는 이들의 고뇌와 열정어린 삶의 이야기들이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저술이다. 책의 서술 또한 비타와 버지니아의 삶을 연대기 형식으로 교대로 비추며 그네들을 기다리는 운명의 마지막 순간으로 치닫고, 인간의 개별성이 빚어내는 단독성의 고귀한 형상들을 통해 독자를 격한 감동과 어떤 정화(淨化)된 감정으로 이끈다. 아마 두 사람의 생명력이 발산하는 그 지고한 숭엄함으로 육신의 일회성, 초월할 수 없는 그 한계가 더욱 선명하고 안타깝게 다가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감성적 울림이 이 저작의 배경을 이루며. 두 지성의 사적 삶을 형성하였던 성장과 결혼, 지적 교류관계의 영역들, 그들의 소설과 시, 에세이 등 저작물의 산실이 되었던 풍경과 장소들, 그리고 겪어야했던 당대의 사회적, 역사적 사건들이 유연하게 얽혀들며 문학인생의 의미를 풀어놓는다.

 

이 책의 발견은 버지니아와 그녀의 남편 레너드가 함께 했던 멍크스 하우스의 정원이야기를 펼쳐낸 캐럴라인 줍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 야기한 어떤 문학적 향기, 고귀한 영혼에 대한 향수(鄕愁) 때문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이 저작은 여전히 작동되고 있는 성정체성에 대한 이분법적 시선을 벗어나 그 부자연스러움에 종지부를 찍으며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애정의 다양한 관계성을 아름답게 펼쳐내고 있으며, 올랜도를 비롯한 등대로, 세월, 막간, 3기니에 이르는 버지니아 작품들의 집필 동기나 당대의 반응들, 비타의 다크 아일래드등 시와 소설 작품의 배경들을 만나는 즐거움까지 아울러 제공하고 있다.

 

결혼 전의 성장기

 

책의 첫 챕터는 비타와 버지니아의 가계(家系)와 성장기를 비교적 꼼꼼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아마 이것이 두 사람 인생의 영향에 어떤 근원을 형성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국 황실과의 오랜 유대관계를 지닌 명문 귀족가문의 여식으로 출생한 비타는 놀 하우스라는 조상의 위엄과 긍지가 어린 성채를 터전으로 성장한다. 그녀에게 놀 하우스는 단순히 거주지로서의 주택의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숨결이자 자긍심 그 자체이다. 그녀는 떠밀리듯 귀족계의 보이지 않는 위신의 압력에 의해 외교관인 해럴드 니컬슨과 결혼하지만 결코 니컬슨 부인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오직 비타 색빌-웨스트일 뿐이다. 결혼은 놀 하우스와의 불가피한 이별이며, 영혼의 터전이자 자신의 일부에 대한 상실감으로 남는다.

 

버지니아의 아버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문인인 레슬리 스티븐이다. 한편 어머니 줄리아는 개혁적 여성들로 이루어진 상류가문 출신으로 레슬리의 두 번째 부인으로서 버지니아 등 4남매를 출산했다. 그러나 때 이른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의 심한 억압과 어머니에 대한 겉치레식 애도는 분노로 이어지고 심각한 우울증으로 발현된다. 무분별하고 동물적인 흉포한 분노를 발산하던 아버지까지 사망하자 언니 바네사, 오빠 토비, 남동생 에이드리언, 4남매는 후일 블룸즈버리 그룹의 활동무대가 되는 퇴락한 고든 스퀘어5층짜리 집으로 이사한다. 이미 이때부터 버지니아의 정신발작은 빈번히 자신과 가족을 불안하게 하는 주요인이 되었던 듯싶다.

 

오빠 토비가 다니던 게임브리지 대학 인근에 자리잡고 있던 이들의 터전은 리턴 스트레이치’, ‘E.M.포스터’, ‘메이너드 케인즈등 문학, 정치, 경제, 문화 분야의 후일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인물들이 모이는 블룸즈버리그룹의 산실이다. 언니 바네사는 이 모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여성으로 버지니아에게 모성적 보살핌 역할을 수행한다. 버지니아는 자기 병을 치료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만 했고, 이즈음에서 에세이와 리뷰, 후일 출항으로 발표될 작품 등 치열한 글쓰기에 몰입한다. 결혼의 필요성에 대해, 더구나 남성에 대해 그 어떤 성적 매혹을 떠 올릴 수 없었던 버지니아는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었던 레너드 울프와 늦은 결혼을 올리고, 호가스 프레스라는 출판사를 차린다.




비타와 버지니아의 만남

 

두 사람의 만남은 언니의 남편인 클라이브 벨의 소개로 비타가 버지니아를 저녁식사에 초대함으로써 192212월 최초로 이루어졌던 듯하다. 이미 버지니아는 작가로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으며, 비타 또한 시와 소설 등을 발표하며 세간의 인기를 얻는 작가이자 명망 있는 귀족 여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버지니아의 비타에 대한 첫 인상은 멋지고 재능있는 색빌 웨스트였으며, 귀족계층의 안락함과 너그러움을 모두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의 위트는 없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한편 비타가 느낀 버지니아는 너무 수수해서 뭔가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으며, 전혀 가식이나 꾸밈이 없었고, 옷도 아주 형편없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지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네들의 일기로 비추어 비타의 버지니아에 대한 인상이 더 좋았던 듯하지만, 버지니아는 온갖 유력한 곳에 줄을 댈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비타에 대한 능력을 대단하게 평가했음을 쓰고 있다. 사실 오늘의 감각으로 이는 일견 속물적 인간관이라 할 수 있겠지만 당대의 실정에서는 귀족의 이러한 능력에 대한 경외는 그리 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호감은 이렇게 시작되어 우정을 키워나간다.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는데, 비타와 버지니아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의하는 대화다. 버지니아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모두에게 권태를 수반하지만, 삶의 자극은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다가가려는 작은 몸짓에 있다.”, 이에 대해 비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뜨거운 사랑을 한 번도 해 본적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라고 덧붙인다.

 

이 대화는 두 사람이 이후 발전시키는 애정의 방향을 가늠케 한다. 즉 버지니아는 가슴보다 머리를 통해서 사람을 좋아하며, 비타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한다. 이 이루어질 수 없어 보였던 사랑은 버지니아가 스스로 목숨을 던질 때까지 지속된다. 비타는 버지니아로부터 자신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 서자 남편 해럴드에게 편지를 쓴다. 그렇게 커다란 은빛 물고기를 잡은 것이 꽤나 자랑스러우며. 그녀의 우정이 나를 풍요롭게한다고.

 

완숙함과 한껏 부푼 가슴에 끌렸다....비타는 정말이지 해수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돛을 모두 올리고 항해하고 있는 것 같다.” -142

 

버지니아가 연인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 쓰고 있다. 비타는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사절 역할을 하고, 중국산 차우차우 개를 다루는 그녀의 능력과 그녀의 참된 모성애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요컨대 (나는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진정한 여성이다.”라고. 이는 언니는 내게 모성애를 아낌없이 베풀어줬는데, 무슨 영문인지 글쎄, 그게 내가 사람들에게 항상 원하던 것이었다.”는 그녀의 언니 바네사에 대한 글에서 나타나는 모성애와도 아주 유사한 감정이다. 버지니아는 바로 이걸 바네사와 레너드로부터 받았고, 비타로부터도 드디어 끌어낸 것이다.

 

비타의 여러 사진중 버지니아가 선택하여 표지에 실은 올랜도』 헌정본, 165쪽 전체인용



■ 『올랜도놀 하우스’, 그리고 시싱허스트

 

소설 올랜도는 사랑하는 연인 비타 색빌-웨스트를 향한 사랑의 찬가이며, 그녀를 위로하고 잃어버린 놀 하우스의 과거와 되찾을 수 있는 희망의 노래이다. 또한 문학적으로 가장 길고 매력적인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즉 아버지 라이어널 색빌-위스트남작이 논쟁의 여지도 남기지 않은 채 사망하자 여성의 상속이 부정되던 당시 제도로 인해 외동딸임에도 작위를 승계한 삼촌에게 넘어가버려 영영 자신의 것으로 돌릴 수 없게 된 비타의 고통을 위로하려는 것이었다. 올랜드는 비타를 찬양하며 그 사랑의 충족감으로 인해 고통을 제어하려는 고상한 지적 사랑의 노래를 쓴 것이다.

 

버지니아는 비타에게 올랜도자필 원고와 함께, 특별히 장정된 책을 주었다. 비타가 버지니아의 이 헌정에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놀은 올랜도에 대해 알고 기뻐하는 느낌이었다.”고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비타는 놀 자체였으며, 그 상실의 빈자리를 올랜도가 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랜도에는 버지니아의 묘한 질투도 스며있다. 비타가 한창 빠져들었던 귀족여성인 바이올렛에 대한 묘사다. 올랜도에서 유혹적이면 무모하고 위험한 기질을 가진 러시아 사샤 공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위험한 난초처럼 사악했다.”고 쓰고 있다.

 

비타의 공허한 정신은 버지니아로부터 이렇게 채워지고 있었지만, 물질적 실체에 대한 그리움까지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수세기 동안 포로수용소로, 농부들의 허드레 공간으로 방치되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대저택이 폐허가 된 채 매물로 나오자, 비타는 그것에서 놀 하우스의 환영을 본다. 그녀는 자신이 이 지저분하고 남루한 채 버려진 공간을 구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매입비 12000파운드, 추가보수비용 15000파운드를 들여 구입한 것이 오늘날 영국의 3대 정원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싱허스트.

 

비타는 성채의 탑 위에 비타의 가문 문장을 새기고, 정원 도구들에까지도 모두 V.S-W를 찍었다....그녀의 뿌리가 뻗을 수 있는 곳임을 선언한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투사된 공간, 그 집요함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비타와 버지니아의 사랑 전선에 항상 햇빛만 비추었던 것은 아니다. 연인의 사랑에는 그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1931년 비타가 침묵하기 위해 해자에 걸어 들어가 고여 있는 물 아래도 가라앉아 익사하는 자신을 그린 VW(버지니아 울프)에게 바치는 시() 시싱허스트(Sissinghurst)를 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그렇게 간단히 무너지겠는가.

 

시싱허스트에서 내려다 본 장미정원, 10~11쪽 부분인용




1931년 이후, 떠남의 세계

 

사실 버지니아의 세계에서 당대의 사회적 현실 세계를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가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대중의 목소리를 가져야겠다는 필요성의 인식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1년 여성의 경제 평등을 얻기 위해 설립한 포셋 소사이어티에서의 강연 모음집인 3기니는 아마도 자기만의 방을 넘어서는 강렬한 페미니스트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차 대전의 징후가 감지되던 유럽의 대공황과 무솔리니, 히틀러의 대두로 야기될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반전(反戰)의 목소리는 그녀가 사회를 외면한 은둔의 작가, 현실과 간극이 큰 작가라는 세간의 비난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버지니아가 1939년에 쓰기 시작한 지난날의 스케치는 다가오는 전쟁과, 언니 바네사의 아들인 줄리언 벨의 사망,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와 죽은 오빠 토비와의 정서적 관계에서 생긴 뒤얽힌 상처는 그녀의 정신적 고통을 짐작케 한다. 전쟁이 임박했을 때 영국으로 도피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의 만남에서 그의 이론으로 인한 감정의 혼란은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하는 뇌관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영국 남부에 위치한 멍크하우스는 독일 침략의 길목이었다.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공중전을 견뎌내야 하고, 전업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걱정은 대중의 완전한 침묵으로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돌아오기에 너무 멀리 갔다는 느낌이 들어...맞서 싸워보려 버둥쳤지만,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 (언니 바네사에게 남긴 쪽지에서), 234

 

1941328, 멍크스 하우스 인근의 우즈강에 투신하기 전에 그녀는 소설 막간을 발표한다. 올랜도의 동전의 뒷면 같은 소설이다. 이 소설에 대해 어느 비평가는 역사상 가장 긴 자살 유서이며, 또 누군가는 비타 앞으로 보낸 유서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가 자살할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신은 20일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비타는 버지니아의 죽음 이후 196262일 자기 삶에서 근심걱정과 자책감을 다 내려놓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시싱허스트의 정원에 매달렸다.

 

맺는 말

 

20세기 초 위대한 문학 세계와 새로운 여성의 세계를 열었던 두 여성의 사랑을 그네들의 저작과 삶의 배경과 함께 우아한 필치로 그려낸 이 저작의 지적, 문학사적 품격과 그 수려함, 지적 공감의 문장들은 깊은 여운과 함께 그들의 세계로 독자를 몰입케 한다.

 

언니 바네사에 헌정했던, 사랑과 결혼이 실제로 여성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에드워드 7세 시대를 배경으로 몇 사람의 회상을 통해 숙고하는밤과 낮에서부터, 그녀가 최초로 의식의 변화를 추구했던 오빠 토비와의 기억이 배어있는 제이콥의 방, 여섯 명의 독백으로 구성하여 하나의 버지니아로 모으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한 파도, 50년에 걸친 중산층의 연대기인 세월에 이르는 그 독보적인 작품들의 배경과 동기들까지 이 책으로 독자는 버지니아의 세계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문학적 접근과 아울러 이 책의 탁월함은 인간 생의 단독성에 대한 뛰어난 통찰이랄 수 있을 것 같다. 원숙함, 뽐내지 않는 위엄의 기운, 그들이 성취하고자 했던 것이며, 또한 우연히 성취된 무엇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이야말로 방대한 애정물에 대한 독보적 기록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을 읽는 이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책이 되어 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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