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과학의 대중적 저술가이자 유튜브 최대 과학채널 쿠르츠게작트의 설립자인
'필리프 데트머'가 저술한 『Immune(면역)』의 리뷰로서, 도서출판 사이언스북스에서
제공한 가제본 도서를 기초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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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이 되어 5억년 이상 시간을 누적하며 진화시켜온 대략 40조 개의 세포가 유기적 상호작용으로 축조된 인간 신체의 생존 유지 장치인 ‘면역계’의 정교하고 기발한 시스템을 대중적 언어로 지펴낸, 자기 앎에 대한 탁월한 저술임을 어떤 언어로도 부정하기 어려운 역작이다. 어쩌면 인간 신체에 대한 이 새로운 앎, 무지로부터의 작은 해방이 가져오는 흥분 탓이겠지만 내 의식이 무수한 나래를 펴며 자꾸만 다른 사유의 영역으로 날아가게 한다.
면역체란 생명체의 보호와 유지 존속을 위해 진화과정에서 부딪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시켜온 엄청난 복잡성 시스템이다. 이 문제란 인간 몸을 자기 생존의 생태계로 인식하는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이들을 통틀어 ‘병원체’라 한다), 세계에 온통 퍼져있는 외부 적으로부터 인간 신체를 지키는 것이다. 즉 자신을 보호하고 계속 살 수 있게 해주는 생물학적 원리를 어떻게 표출하는 가의 문제는 자기 생존에 직결되는 것인 까닭이다.
병원체에게 인간의 신체는 위험을 줄이면서 영양을 섭취하고 생존과 번식을 위한 멋진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 빌붙으려는 존재들로부터 방어하는 것이 곧 생존의 중요한 과제라는 점이다. 면역계는 바로 이러한 오랜 투쟁 속에서 살아남은 진화의 산물이며, 그만큼 정교해지고 치밀해졌다. 그 결과는 “신체 속으로 침입하는 적을 특이적으로 인식하고 그 적에게만 효과적인 무기를 신속하게 대량 생산하는 능력과 한 번 침입했던 적의 모습을 항구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21쪽)”이다. 타자가 해를 끼칠지 말지와 무관하게 일단은 타자로 식별되면 무차별 공격을 하여 파괴하는 것이다. 타자는 죽음이다. 이를 부정하는 순간 생명체는 며칠도 못가 죽고 만다.
건강의 유지란 바로 이러한 면역계의 안정적 작동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40조 개에 이르는 인간 몸을 한군데도 빠짐없이 방어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면역계는 이 엄청난 세포 구조물의 방어체계로서 한 순간도 그 작동(경계)을 멈출 수가 없다. 멈춤은 곧 죽음이다. 사실 살아있다는 것은 적대 세력이 득실대는 곳에서의 쉴 새 없는 전쟁에서의 승리이다. 굴복은 멈춤이요 생명 작동의 중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체에 공급되는 에너지 모두를 면역계를 위해 사용할 수는 없다. 40조 개에 이르는 세포의 정상적이고 평온한 작동을 위한 영양 공급과 신체를 구성하는 각 조직과 기관의 일관된 작동 시스템을 감시, 운영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소요되기에, 면역계는 빠듯한 예산으로 방어 전략을 구축했다. 그것은 선천 면역계와 후천 면역계로 기본 방어 전략과 특화된 방어 전략으로 이원화하여 침입자에 따른 각기 다른 방어 전략을 구사하여 낭비 요인을 제거한 것이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용어를 피하고 난이도를 조절하여 독자가 재미와 지적 이해를 함께 쌓아갈 수 있도록 집필된 이 저술은 그 지식의 친밀하고 세밀한 안내로 거의 저절로 체화될 만큼 직관적이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아마 인간의 지식 습득에 대한 어떤 앎의 경로를 알고 있는 듯, 이해를 위해 동원되는 ‘침입자, 적, 전쟁, 무기, 생물학적 로봇’과 같은 상징을 동원한 비유법은 복잡하고 난해한 생물학적 지식을 그야말로 천재적 서술능력을 통해 명료하게 전달해준다.
인간 신체와 외부세계의 접점인 피부와 점막(기관지와 허파, 눈꺼풀, 입속, 콧속, 위장, 생식기관)을 비롯해 콧구멍, 귓구멍 등등은 침입자가 몸속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장소다. 다시 말해 적대세력과의 경계인 피부와 이들 점막에는 천연 항생물질을 비롯한 염도, 약산성 등 미생물이 서식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뿐 아니라 매순간 100만개의 세포가 ‘통제된 자살’을 감행함으로써 침입 세균의 서식터전을 제거하기까지 한다.
아마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것은 하나의 ‘상처’로 시작되는 예화(例話)를 통해 면역계와 면역 세포들의 활동을 가히 숙련된 솜씨로,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도록 전달하는 점진적 세밀성을 지닌 강렬한 지식들 때문이다. 우리 신체의 선천 면역계는 외부 침입자(병원체)를 발견하면 즉시 행동에 돌입하는 체계이다. 적과 죽은 세포를 먹어치우며, 방어전략을 지휘하는 ‘큰 포식 세포’로부터 상처가 너무 깊을 경우 혈액 속에 떠돌던 ‘중성구’가 활성화되어 살인 병기로 둔갑, 자폭까지 마다치 않으며 병원체를 맹공하는 경로는 실감나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을 정도로 흥미와 지식을 동시에 흡수케 한다.
이 면역 세포들 및 단백질 덩어리들이 활성화되고, 세균과의 전쟁터가 된 상처 부위로 어떻게 중성구가 경로를 찾아 도달하게 되는지, 360도 면역 감지 체계를 갖는 세포막과 일종의 면역계 언어인 아주 작은 단백질인 사이토카인을 생성 발산하는 큰 포식세포의 행위 등은 가히 경이로움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 몸에 발생하는 염증의 목적은 물론, ‘사이토카인 폭풍’이라 불리는 면역계 통제 상실 증상 등 단백질 사이에 발생하는 일련의 생화학 반응에 이르는 해설은 인간 신체의 면역계를 실체적 이해로 견인한다.
나아가 단백질과 물 분자로 구성된 세포의 특징과 3D 퍼즐 조각처럼 존재하는 단백질의 특정화된 형태가 침입하는 세군과의 형태 차이를 인식함으로써 적대자를 멸실(滅失)시키는 작동 시스템은 진화적 신비에 어떤 경외감마저 일으킨다. 단백질 인식기 역할을 하는 선천 면역계의 수용체에서부터 우리 몸의 모든 체액에 가득 차 있는 약 1,500경에 이르는 ‘보체계’가 발휘하는 면역 기능들 또한 경이로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겹겹이 감시되고 활성화되는 면역계의 경로들을 따라가며 적의 존재 성격(바이러스인지, 세균인지, 기생충인지)을 알아내고, 후천적 면역계의 도움을 받을지 여부를 결정하는가 하면, 전쟁터 상황과 적의 존재를 알리는 전령인 ‘가지세포’의 비상한 이동, 면역 세포의 정보센터 역할을 하는 우리 몸에 존재하는 약 600개의 림프샘과 ‘면역 슈퍼하이웨이’라 할 수 있는 ‘림프계(몸속 배관)’를 떠돌던 ‘T세포’의 활성화와 항체 형성 세포의 변이 등은 우리 몸의 구성 기관은 물론 신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는다.
【면역 세포의 필수 검정기관, 가슴샘 - 130쪽】
내겐 뜻밖의 새로운 앎이 된 ‘가슴샘(흉선)’의 역할에 대한 지식은 면역계의 경이성과 함께 생명의 한계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후천 면역계인 T세포는 선천 면역 세포들의 활성화 및 전략 지휘자 역할과 특정 침입자인 항원에 맞서는 항체를 만들어 적을 무력화시킨다. 이 세포는 한 가지 특이한 항원만을 인식하는 특이적 수용체를 갖도록 만들어져 적을 섬멸한다. 그런데 자기를 타자로 인식하는 경우를 제거하기 위해 이들 T세포를 검사, 훈련하는 곳이 바로 ‘가슴샘’이다. 여기서 졸업하는, 즉 특이적 수용체를 생성할 수 있으며, 다른 수용체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자기를 타자로 인식하는 지 여부를 통과한 것은 2,000만개에 달하는 것 중 2%인 20만~40만개에 불과하다. 항체로 변이하는 이 세포의 특징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슴샘의 메커니즘은 절로 그 진화적 능력에 머리를 떨구게 한다.
가슴샘은 대략 85세 전후에 이르면 기능을 멈춘다고 한다.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인 장기로서 언제 죽을지 결정하는 장기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기능이 멈추면 이미 양성되어 배출된 T세포만으로 병원체에 저항하여야 하기에 감염성 질환이나 암에 지극히 취약해진다. 결국 생존을 위한 방어 체계가 사라지기에 인간의 신체는 죽음의 도래에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이 짧은 리뷰를 쓰는 순간에도 내 몸의 면역 체계는 끊임없이 침입하는 세균을 감시하고, 발견된 병원체들과 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매혹적이고 역동적인 면역계의 활성화 및 작동 기작(機作)을 알아가며 내 호기심은 선천 면역계 역할의 목적인 ‘자기와 타자의 철저한 구별’과 ‘단백질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생화학적 물질로서 세포를 생물학적 로봇기계’로 정의하는 곳으로 향한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란, 아니 동물이란 본질적으로 타자를 공격, 파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과 동물이란 한낱 생물학적 로봇인 단백질 형태의 끊임없는 변형과 조작에 불과한가라는 수없이 반복되는 논쟁적 물음의 제기이다. 단지 단백질의 생화학적 기작에 의한 흐름에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존재임에 쉽사리 굴복되지 않는 저항이 머리를 치켜든다. 타자에 대한 연민, 이성과 감성의 융합으로서의 정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나는 이러한 과학적 실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여야 하는지 지향할 곳 없는 심연에 빠져든다.
이러한 자가당착(自家撞着)적인 어리석은 물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평온과 안정성이라는 건강한 생(生)의 진작을 위한 자기 앎의 회복을 위해 쓰여진 이 책은 가히 독보적인 역작이라 할 정도의 생명(면역)의학에 대한 대중적 걸작이다. 오늘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욱 과학과 자본이 견고하게 유착된 의학이, 무지해진 인간 위에 더 한층 군림하며 앎의 주권 박탈을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자기 신체에 무지해진 대중은 각종 음모론과 당파적 이익을 위해 동원된 뒤틀린 의학 정보에 쉽사리 현혹되어 정작 필요한 삶의 건강을 위한 지혜를 상실하고, 진정한 자기 운명의 주인임을 망각한다. 인간의 신체 내에서 병원체인 COVID19가 행운을 누릴 때, 인간들은 자신들의 면역체계에 대한 앎 대신에 엉뚱하게도 정치적 패거리 놀이에 심취했다. 자신들의 몸을 잃어버린 줄 모르게 되면서 자기 탐구, 그 생리적 활성화를 위한 중요성을 알려고 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오늘의 사회가 얼마나 반(反)생명성을 가속화시키고 있는가의 반증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삶의 질에 결정적 역할을 미치는 ‘면역계’에 대한 앎을 말하는 이 저술은 시의적절하고 또한 중대하다. 면역계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존재이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되는 결정적 생명장치이다. 정말 쾌락적 향연을 즐긴 듯한 충족감을 풍성히 안기는 기념비적 과학 저작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