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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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리뷰는 '5회 한국과학문학상우수상 수상작인 김혜윤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에 대한 것입니다.


누군가 듣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죠. 존재하지 않았던 진실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109

 

자본가에게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편하듯, 정상성의 통념이라는 범주에서 작은 다름이 발견되면 그 낯섦에 비하, 불편, 억압, 그리고 불온함을 씌워 배제하고 지워버리는 작업을 한다, 그리곤 그 대상들에 존재론적 서열을 매겨 구별, 분리하고, 급기야는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까지 한다.

 

사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존재론적 현상, 내부와 외부를 가르고 배제하는 메커니즘의 부당성, 비도덕성을 기술하며 장애자. 성소수자, 사이보그, 프레카리아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덕적 당위를 논하기는 쉽다. 그러나 막상 이들과 맞닥뜨렸을 때,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올 때면 불편한 감정과 동정심이란 양가감정을 오가는 당혹감과 낯선 거부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우리들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소설은 바로 이 지점, 우리들이 부인하지 못하는 도덕적 감정의 결함을 관통하며, 보지 않으려하고 듣지 않기 위해 지워버리고 배제하려 했던 유령이 된 존재들의 실체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그 존재성을 부각하고, 그것에 잠재된 진실의 의미를 확인함으로써 우리들의 잃어버린 감각을 깨운다. 작품의 배경은 오염으로 망가진 지구를 대체하는 인공 중력장치에 의해 생태 공간을 유지하는 계획 콜로니라는 우주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구술사(oral-history) 수업을 처음 들었던 때, 나는 성립 콜로니대학의 바이오데이터학과 학부생이었다.” 전공 필수 과목도 아닌 강의, 수강하는 학생도 거의 없는 개인적이고 혼란스러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일을 배우는 강의에 사로잡혔던 자신을 소개한다.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제출하는 수업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던 라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침묵하는 교수에게 자신을 길러준 보호자였던 로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삶의 바깥에 위치함으로써 목소리가 기록되지도 않으며, 경험을 말할 기회도, 그것을 서사화할 수 도 없었던 존재자들의 이야기다. 이 구술은 단지 값싼 연민이나 동정심을 자극하는 감상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이 비()존재가 불쑥 다가오는 감정의 불편함, 당혹스러움이 유발하는 불온함에 대한 지각의 자기 인식이다. 사고로 전뇌화 사이보그가 되어 몸체를 블랙박스에 담은 로티의 불완전한 표현과 소통의 불완전성이 갑갑함과 피로의 부담으로 느껴졌을 때 로티(블랙박스)를 탁탁치거나 전원을 영영 꺼버리는 상상으로 고백되듯이,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의식을 지닌 존재를 향해 내뿜는 자기 안의 잔인함과 비겁한 감정의 직시이며 반성적 깨달음이기도 하다.

 

사회 가장 자리에 있는 자들의 동료 인간에 대한 연민은 결코 자연스런 것이 아니다. 라나는 로티와의 삶에서 오는 피로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지긋지긋한 날들이 뚝 분질러질 수만 있다면, 내 몸의 한 구석을 찢어 이 몸을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하고 말이다. 이때 같이 청소를 하며 공감과 우정을 나누어 오던 엘리는 라나에게 떠나라고, 자신의 일당 전부를 쥐어주며 정상성의 광채가 빛나는 곳, 갈망을 채워 줄 새로운 콜로니를 선택할 기회를 잡으라고 자신의 외로움과 박탈감이라는 희생을 무릅쓴 위로어린 용기를 준다.

 

라나는 이 선택이 지닌 의미를 아마 알았을 것이다. 비록 슬픔과 죄책감, 수치심을 꿰뚫고 올라오는 갈망이라고 용서받을 수 없는 자기욕망을 얘기하지만, 두 번 다시 주어지질 않을 기회임을, 또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세계에 들려주기를 바라는 요청임을. 라나는 새로운 콜로니의 이민자 정책프로그램의 지원으로 대학을 마치고 리서치 전문 회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콜로니 거주민의 인공 중력에 대한 체감 정도를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지만 보고서제출을 준비하던 중 바이오데이터(BD)가 없는 존재들에 대한 리서치가 없음을 발견한다.

 

라나는 생체데이터가 없는 존재에 대한 인터뷰 항목을 만들어야 됨을 주장하지만 팀장은 그런 경우가 몇 명이나 되냐며, 불필요한 황당한 발상임이라며 힐난한다. 콜로니 1만 명당 200명으로 추정되는 사이보그, 2%는 무시해도 된다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만일 한국 사회의 경우 2020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등록장애인 2633,000명인 전인구 대비 5.1%의 의견을 소수의 목소리라 정책에서 배제한다면 이것이 정당하다 할 수 있겠는가?

 

 

김혜윤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본문 87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를 비문명적 불법시위라며 정상과 비정상으로 갈라치기하며, 약자의 지위를 묵살하는 무지에 터 잡은 오만이 버젓이 행해지는 정치배의 작태와 동일한 시선이다. 이는 자신의 못나고 비루한 신체의 정상성과 다른 장애인의 신체는 결함이며, 그 하찮은 정상성을 잠식하는 결여된 신체에 대한 거부와 배제의 시선이다. 이동권 보장이라는 사회적 제도와 장치의 요구, 의지의 요구에 대한 혐오인데, 과연 타인에 대한 의존 없이 그 어느 인간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인간 모두는 누군가가 생존에 필요한 일들을 기꺼이 해주고 있기에 살아 갈 수 있음을 망각하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이 단순한 이치조차 깨닫지 못하는 만연한 지적 게으름 탓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운명적으로 장애자인 것을.

 

라나는 사이보그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다. 특정 직군에 할당되어 저마다의 일을 수행하는 사이보그의 상황과 적절한 질문과 태도를 연습하고 겸허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한다. 이들과의 인터뷰에서 라나는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된다. 콜로니의 회전 속도를 조정하여 최적의 중력을 발생시키려 할 때 미세한 차이가 발생하고, 거주민들은 느끼지 못하는 그 사소한 차이가 인간들에게 사고로 이어지고 있음을, 인간의 추락사고 3분의 1 이상이 과중력과 관련된 사고임을 듣게 된다. 배제되었던 존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서, 즉 상호 동등함과 존중의 태도가 일체감, 신뢰를 형성하는 기반임을 라나는 느끼고 확신한다.

 

내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서 고맙습니다. 라나.”, 고마워해야할 사람은 진정 누구인가? 정상성의 세계에서 바깥으로 내쳐진 인간의 몫인가? 배제되고 지워진 존재가, 목소리를 낼 아무런 매체도 없는 존재가 하여야 하는 것이겠는가? 정상인이라 자처하는 자들, 사회적 약자를 배재한 주체가 해야 하는 것일 테다. 결국 과중력의 문제점을 다룬 보고서는 제출되지만 그 반응은 사이보그 진술 신빙성의 의심, 인터뷰 방법론의 문제제기, 보고서 작성자에 대한 인신 공격성 비난이고, 산업 스파이라는 날조 씌우기다. 구술사 교수에게 들려주는 라나의 구술 과제는 이렇게 맺는다. 이때 교수는 답한다. 세상을 뒤흔들만한 이야기들에도 세상은 그렇게 생각만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이야기를 요청받은 사람의 안에 얼마나 깊이 고여 있는지를, 자신도 몰랐던 사실이 분명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유기체와 기계의 결합, 인간의 외연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경계를 부수어 버리는 자기 소멸의 존재자인 사이보그를 소재로 하여 우리 사회의 유령처럼 지워져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은 자들에 보내는 미친 감각을 일깨워, 잃어버린 보편적 진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린다. 아마 화자인 라나의 반복되는 다짐의 언어, 아주 단단한 무언가를 부수고 있다.”는 문장처럼, 쉽사리 깨지지 않는 인간 정신의 무능력의 지대, 굳어버린 구별짓기라는 저항의 지대를 깨부수는 작업을 그칠 수 없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진실이 존재함을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하는 마지막 물음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감히 우리라는 말로 이 문장에 편승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결코 들으려하는 자세를 멈추지 않으리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써져야 한다. 거북함으로 외면한 존재들, 그들의 목소리 있음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만남을 기꺼이 함으로써 새로운 세상, 삶의 기회로 긍정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것임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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