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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 ㅣ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1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2년 3월
평점 :
날것의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불유쾌함, 마치 속내를 들킨 것 같은 혐오와 불안한 수용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삶의 그러함의 이야기들이란 느낌이다. 사람의 숨길 수 없는 본성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사실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타인들의 욕망, 혹은 내 것일 수도 있는 이것들을 보려는 유혹을 물리치는 것도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아마 이 소설집은 이러한 측면에서 그 소임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네 꼭지의 단편 소설로 구성된 이 선집은 유대계 우크라이나 출신의 프랑스 작가인 ‘이렌 네미롭스키(1903.2.11~1942.8.17)’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스윗 프랑세즈: Suite Francaise』에 앞서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전초전이 될 듯싶다. 표제작인 「무도회」는 그야말로 야생적 본능, 새로운 물질세계로 접어든 인간의 체 정비되지 않은 벌거숭이 욕망들의 충돌이 빚어내는 삶의 우발적이고 유희적인 모습의 적나라함일 것이다.
아마 수록된 네 작품에서 「무도회」는 단연 충동들의 격렬함이 도드라진다. 열네 살 사춘기에 들어 선 소녀 ‘앙투아네트’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 소설은 당대의 내면화된 사회적 욕망이 인간들을 얼마나 거칠게 휩쓸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난한 은행 직원 ‘캉프’와 결혼한 ‘로진’에게 좁아터진 싸구려 주택에서의 삶은 희망 없는 자기 연민의 고통만을 불러온다. 이런 찌든 삶에 어느 날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며 억눌렸던 욕망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목욕할 때 빼고는 빼는 법이 없는 다이아몬드 팔찌를 번쩍거리며...” - 17쪽
여자는 빈곤했던 과거를 지우고 상류 계층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부와 명예를 과시하고픈 욕망으로 가득 차있다. 타인의 욕망에 대한 이해가 들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여전히 전통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는 소시민의 의식에는 아이의 개성화를 위한 교육적 이해가 들어서지 못한다. 부모의 전통적 권위에 순응하지 못하는 앙투아네트는 로진의 욕망에 위협이 되는 존재에 불과하다. 두 욕망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성인들 세계에 대한 동경, 어린 여자아이의 성적 과시의 욕구는 엄마의 과시 욕구에 의해 거듭 좌절된다. 캉프와 로진 부부는 명망 있는 부자들과 귀족들을 초대하여 자신들이 상류 계층의 일원임을 승인받는 파티를 준비한다. 일면식도 없는 초대 손님들의 명단과 그 주소를 쓰는 장면은 이들의 속물근성과 천박한 욕망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은 앙투아네트의 전혀 우발적 행동에 의해 야기된 파티 당일의 정경에 맞추어진다. 독자는 썩은 미소를 지을 준비가 되었기에 로진의 발작적인 증오심, 자기 연민의 훌쩍거림과 앙투아네트가 짓는 회심의 미소를 보며 인간 삶의 비속함을 다시금 확인케 된다.
초기작인 「무도회」와 달리 작가의 시선이 조금은 넓어진 1940년 작인 「로즈 씨 이야기」는 내게 인상적으로 남은 작품이다. 자신의 이해(利害)에 의해서만 세상을 보는 데 익숙했던 한 남자의 믿음과 그 전환적 사건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전통적인 여성적 삶의 행복에서 인생 전반으로 확장되어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시선이 확장된 듯하다. 더는 자기 연민, 욕망의 좌절을 보듬고 핥아대는 나르시시즘에 머물지 않는다.
주인공은 오늘의 전형적인 인간 상(像)과 닮아 있다.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부를 축적하고 보존하는 데 일념(一念)하는, “나이가 쉰이 넘었지만 그의 아름다운 뺨에는 기름기가 흘렀고, 목소리는 날카롭고 권위적(89쪽)”인 그런 남자이다. 젊은 시절 분위기에 이끌려 결혼을 약속했지만 자기 삶에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의 번잡함이 끼어드는 것이 두려워 도주하기까지 한 독신자, 전쟁을 예견하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르웨이에 투자하고, 가장 안전할 것 같은 노르망디 지역으로 가치 있는 재산을 옮겨놓기까지 한다.
삶이란 우연의 연속이다. 전쟁은 노르웨이를 강타하고, 노르망디는 전쟁터가 된다. 평온함을 예견했던 노르망디의 삶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되고 동쪽을 향한 피난길에 오르지만, 피난 행렬에 막힌 차량은 더디게 움직인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음식과 물을 구하기 위해 기사에게 차량을 맡기고 인가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다. 차량은 그 사이 기사와 함께 사라지고 도보 행렬에 섞인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경계로 살아 온 그에게 한 청년이 무람없이 다가와 말을 건다. 모르는 이와 결코 대화하는 법이 없던 남자는 키 크고 건장한 청년이 고된 피난길의 ‘쓸모’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상대를 맞이한다. 이기심에서 시작된 이 동행은 군에 입대하겠다는 열여덟 살 청년과의 대화에서 그의 인생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청년은 피난길에서 약자들을 돕고, 먹을거리를 구해 나누어주기도 하며, 걷기 힘들어하는 그를 부축해 걷기도 한다. 그 와중에 청년은 손목시계를 잃어버린다.
“저런, (...) 잘 난체하는 늙은 여자를 돕는답시고..., 자전거도 그렇게 도둑맞았겠군. 자네는 살아가면서 늘 도둑맞을거야.” “오! 저만 그러지 않을 거예요.” -112쪽
폭탄이 떨어질 때 청년은 남자를 감싸 안아 그를 보호한다. 청년은 커다란 부상을 입고 행군은 이어지지만 두 사람은 더는 걷지 못할 만큼의 상처로 주저앉는다. 늙은 남자와 청년은 루아르 강(江)에 비추는 햇빛을 바라보며 “재산이나 목숨까지 초월하는 평온함과 무심함(114쪽)”을 느낀다. 루아르 강을 건너던 한 차량 안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자신과 청년의 탑승을 제안하지만 자리는 남자를 태울 공간에 불과하다. 청년과 동승할 수 없는 탑승을 거절한다. 다리를 건너지 못하면 기다리는 건 죽음, 생의 끝이었다. 그를 변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생이란 무엇일까? 생이란 정말 우연한 유희에 불과한 것인가?
삶을 꿰뚫는 인문학자 ‘고미숙’의 문장이 떠오른다. (1)‘생명 차원에서의 연대, 세상을 향해 나가도록 힘차게 응원해주는 관계, 길을 나서는 베이스캠프, 생명의 플랫폼으로 변환하는 길을 모색하라’는 제안이었다. 손가락이 타인, 세상을 향할 때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늙은 남자 로즈가 변했을 때 세계는 그를 응원하는 구원이 되어 줄지도.
이 작품과 같은 시기에 발표된 「다른 젊은 여자」는 제목처럼 두 여자가 등장한다. 주제는 다르지만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라는 구조는 마치 「로즈 씨 이야기」의 쌍둥이 작품 같다. 촌구석의 물건도 별반 없는 가게를 찾은 열여섯 살 ‘질베르트’는 자신이 찾는 물건이 없음을 이내 알아차리지만 밖에는 눈이 내리고 그녀는 주인 ‘마들렌’의 제안으로 가게에 머무르며 대화를 이어간다. 무언가 회상하기에 딱 그만인 배경 속에서 마들렌은 1차 대전 중 겪었던 강렬한 기억을 술회한다.
폭격으로 부상당한 한 프랑스군을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숨겨주고 간호하며, 그의 생명 연장을 위해 매 순간 기도하던, 어떤 한 마디의 문장으로 표현 할 수 없는 애틋함의 기억이다. 독일군 점령지역에서 프랑스군을 보호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행위이다. 아마도 마들렌에게 그 나흘이란 짧은 순간은 그녀에게 천국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홀로 살 수 있다는 것은 그 찰나의 시간이 한 인간에겐 영원한 삶을 의미했을 것이다. 질베르트가 이 얘기 속에서 느끼는 부드럽고 복잡한 자존감의 확인은 역시 어렴풋한 사랑의 불멸성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리라.
【Irene Nemirovsky (1903.2~1942.8】
작가 ‘이렌 네미롭스키’가 아우슈비츠에서 비참하게 살해되던 해인 1942년에 쓰인 작품인 「그날 밤」 또한 삶의 선택에 직면한 그 순간, 영겁(永劫)같은 찰나에 마주하는 환희, 「다른 젊은 여자」의 마들렌의 술회와 그 궤를 같이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다만 작가가 다가 올 운명을 예견했던 것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서 주인공 ‘카미유’에게 동생 ‘알베르트’가 외치는 마지막 문장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언니가 가엾다고? 오! 천만에! 가여운 건 언니가 아니야.” -141쪽
물론 이 문장은 사랑하던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어린 딸 니콜과 함께 외롭게 혼자 살며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여동생 ‘알베르트’의 집을 찾아 자신의 슬픈 처지의 한탄에 대한 반응이다. 카미유는 “왜 난 너처럼 남자 없이, 홀로, 조용히 지내지 못했을까?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하지 알기나 하니?(125쪽)” 라며 사랑은 끔찍한 거짓놀음에 불과함을 토로한다.
이때 동석한 알베르트의 친구인 ‘블랑슈’는 말한다. 모든 결혼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단지 삶이 끔찍한 것이라고. 그런데 또 다른 친구 ‘마르셀’이 말한다. 삶이란 “우연이 아니라 본능의 문제”라고. 우리는 늘 이 세상에서 가장 격렬하게 욕망하는 걸 얻게 되는 것일 뿐,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받는 가장 큰 벌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돌고 돌아 처음의 소설 「무도회」의 주제로 다시 회귀한다. 비록 역겹고 혐오스러운 욕망일지언정 우린 그 욕망의 사랑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감히 우리가 삶의 진면목을 어찌 알 수 있으리!
■(1)인용출처: 고미숙 著, 『기생충과 가족』, 북튜브 2020.9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