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 감정을 다스리는 심리 수업
황양밍.장린린 지음, 권소현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살이가 매양 안녕하지만은 않다. 한결같이 아무 탈 없이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이 안녕(安寧)하지 못한 감정의 표현을 아마 뭉뚱그려 불안(不安)이라 부르곤 한다. 편치 않고 조마조마하며 뒤숭숭한 감정에 휩싸이게 하여 삶의 정상성이 흔들리게 하는 감정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여러 형태의 감정적 충돌, 직업적 회의와 무기력이 불러오는 앞날의 불투명성, 어떤 학과를 전공해야 할지 또는 어떤 일을 진정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정체감의 혼란이 야기하는 불안감, 선택의 후회로 인한 상실감 등 우리들의 삶에서 안정감을 빼앗는 양상들로 세상이 꽉 차 있는 듯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 책은 이렇듯 삶에서 우리들의 내면을 괴롭히는 불안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감정, 선택, 성장, 직업, 관계’, 5개의 장(lesson)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조언한다.

 

이 세상에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불안해야 한다.” - 하이데거, 본문 20

 

그런데 하이데거의 말처럼 불안의 감정은 꼭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일 매일이 안녕한 안정 상태라면 이 지대로부터 뛰쳐나갈 기회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즉 성장의 기회가 없는 안일의 건조함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불안을 우리가 이해하는 내적 태도와 이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곧 삶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불안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내면, 감정적 태도이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못으로 보인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느낌으로 세상을 식별한다는 얘기다. 사실 감정의 발생이란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외부적 요인이 아니기에 자신이 관리할 여지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우선 감정 관리의 전제는 감정을 판별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57)”고 말한다. 판별, 표현 할 수 있으려면 감정의 언어(어휘)가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실제 감정 능력이 높은 사람은 감정 개념을 많이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제 어떤 개념을 사용해야 하는지도 안다고 한다. 감정을 표현할 다양한 어휘를 모르는데 어떻게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일례로 즐겁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어휘도 무궁무진하다. ‘미치도록 기쁘다’, ‘희열을 느낀다’, ‘고무적이다등등. 감정의 어휘를 더 많이 알수록 대뇌는 더 유연하게 행동을 예견하고 판단하여 삶의 문제에 더 잘 대처한다니 소홀히 취급할 조언이 아니다.

 

프랑스에는 라펠 두 비드(L'appelduvide)’라는 어휘가 있다고 한다. 갑자기 대뇌가 통제당하는 느낌,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충동에 휘청거릴 정도로 힘이 빠지는 기분을 표현한 단어라 한다. 이 감정을 명쾌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원인을 통제할 수 있지만 모르는 이에게는 관리 가능한 감정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이 감정 어휘 소유의 증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의심의 혼란스러움과 같이 다양한 원인이 있으며 이러한 다종의 요인들에 따른 감정 조절 능력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지만 내게 어휘의 문제는 감정관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

 

우리의 의지력에는 스스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들의 많은 계획이 금세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눈앞의 즐거움과 편함, 익숙함에 장기적 이익을 포기하곤 낙담하는 일이 반복되곤 한다. 또는 욕망을 유혹하는 두 갈래의 선택에서 이도 저도 선택지 못하다가 모두 놓치고 씁쓸한 후회에 휩싸이기도 한다. ‘뷔리당의 당나귀 이 같이 선택과 결정에 장애를 보이다 낭패를 보는 현상을 건초더미와 물통을 두고 오도 가도 못하다 죽은 당나귀의 우화를 빌린 심리 법칙의 이름이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우리 마음에는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자가 없(94)”다고 말한다. 때문에 혼자 꿍꿍 앓지 말라는 것이다. 친구, 선배, 전문가등 외부의 도움을 활용하여 결정 장애 등 자신의 감정 통제력을 높이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더불어 일종의 습관화 전략을 통해 자신의 실행의도를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도록 강제하는 방법도 실행 해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와 사회적 시계(Social clock)

 

무릇 삶이란 선택 과정의 연속이다. 때문에 선택을 후회하는 일로 지난 일에 대한 회한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때 그곳에 입학()지원서를 낼 것을, 또는 그(그녀)와 계속 만나서 결실을 이루었다면,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성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 등등 상실의 후회가 만만치 않다. 이처럼 발생 가능성은 있었거나 있지만, 사실 발생하지 않았던 사실에 대해 머릿속으로 가설의 상황을 만들고 현실과 비교하는 것을 반사실적 사고라 한다.

 

만일 이러한 사고를 하고 있다면 당장 그치라는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사실에 연연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구나 세상과 비교하기는 자존감을 훼손할 뿐 결코 상실감을 보상해주지 않는다.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면 이러한 느낌은 누구든 통제, 관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성장 감정을 해치는 것으로 사회적 시계라는 것이 있다. 문화 체제 안에서 사람들에게 관습이 된 인생의 주기에 따라, 나이 대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강요당함에 따라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이다. ‘네 나이면 이미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어. 대체 무슨 생각이냐?’, ‘도대체 그 나이에 연애도 못하고, 결혼은 할 거야?’, 이러한 사회적 시계에 맞춘 외부의 소음들이 우리를 불편하고 불안하게 한다. 다시 말해 시차의 발생을 마치 무슨 큰 문제라도 되는 양 구속하려 드는 것에 덩달아 초조해지고 울화가 치밀게 된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다음의 정보에 위안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간 저마다는 작은 시계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조금 늦거나 이를 수도 있는. 더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 보라는 것이다. 불혹이 되어 영국 유학을 하여 학위를 따내곤 대학교 교수가 되기도 하며, 육십 살 이순(耳順)이 되어서 불후의 소설을 써낸 문호로 각광받기도 하는 것이다. 대학 동기들 모두 취업 등 사회에 진출하여 작은 성취를 이뤘을 때 열패감을 안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이가 이 경험을 토대로 늦었지만 걸출한 사업을 일궈내기도 한다. 자기만의 적절한 시기를 가지면 된다. 사회적 시계에 맞추어 초조해 할 것 없다는 얘기다. 결코 나이가 심리적 관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만을 기억하자.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자기 정체감을 빨리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146쪽 부분 발췌

 

부딪쳐야 한다. 세상과 부딪치는 경험이라는 다양한 시도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싫어하는지, 무얼 잘하는지, 무엇에는 서툰지, 이것은 우리에게 변화나 갈등에 대처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고 재배치할 능력의 저변이 되어준다. 정체감의 혼미나 유예 상태를 벗어나 정체감의 성취를 확인하는 자아인지는 삶에서 아주 중대한 우리네 밑천이다.

 

낙인찍기((Effect of labelling), 그리고 생각의 게으름

 

요즘 부쩍 혐오의 언어가 난폭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여 이에 따라다니는 속성에 타자를 종속시켜 함부로 하려는 나쁜 의도이다. 사람을 대략적으로 판단하여 그에 걸 맞는 프레임을 씌워 범주(카테고리)화 하는 것을 꼬리표 붙이기, 일명 낙인찍기라 한다. 간혹 가까운 친구들끼리 친밀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긍정적 꼬리표라 할 수 있겠지만 꼬리표 붙이기는 대부분이 부정적 성향을 갖는다.

 

특히 MTBI라는 성격 규정짓기 놀음이 유행하며 타자를 마구 범주화하여 통제하려 든다. 혐오의 세상이 되다보니 너나할 것 없이 생각 없는 프레임 씌우기로 고통을 겪는 청년들이 발생한다. 결국 꼬리표는 대개 타인이 붙이기에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통제 밖에 있는 것은 심리적 결단을 내려야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단호히 거절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외쳐라. ‘It's not your business.(상관없어, 꺼져)'라고.

 

어쩌면 이렇게 일반화하면 항의의 목소리가 많겠지만 이렇듯 타인을 카테고리화 하려는 사람들, 꼬리표를 붙여 낙인을 찍으려는 자들은 대부분 생각의 게으름을 감추는 위선의 수단으로 이들을 활용하곤 한다. 타인을 진심으로 알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또한 알기 위해서는 많은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소용되는 데 이것을 하기가 싫은 것이고,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직장이나 조직 사회에서 가짜 부지런함으로 분주함을 보이곤 한다.


173쪽 부분 발췌


분주하지만 성과가 없는, 가짜의 부지런한 자신에 도취되어 스스로 노력하는 자라고 감동한다. 부자들, 기득권에 붙어 논리를 제공하는 말콤 그래드웰같은 이의 1만 시간 전문가 성공 법칙 같은 음모론적 허위의 말들은 거짓임이 판명되었듯이 늦은 시간 야근하며 마치 일 중독자처럼 보이려는 자들은 자신의 생각 게으름을 은폐하려는 교활함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의 게으름을 떨쳐내야 한다. 단지 오랜 시간 일을 한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도,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성실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사유가 따르는 성실, 부지런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 셔터만 누른다고 사진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번 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인간관계

 

꼭 직장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오랜 세월 매달려 있을 때, 불현듯 몰려오는 의미의 상실과 허탈감, 무기력과 피로감으로 낙망하게 되곤 한다.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직업적 탈진 상태인 번 아웃이라 부른다. 다가 올 미래의 삶이 온통 흐리멍덩하고 불안하게 여겨진다. 감정적 쇠진으로 동료들, 친구들, 가족들과 친화성이 상실되어 느닷없는 짜증에 온통 사로잡힌다. 이것은 하는 일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끝없이 삶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감정과 싸우지 말라고 한다. 소명과 가치의식을 찾지 못하면 이렇게 소진되는 감정적 에너지를 관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에 조금씩 변화를 주기 위한 작은 계획들을 세우고 변화를 주거나, 불가피하게 행하여야 할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는 경우, 이것과 좋아하는 것을 샌드위치 만들 듯 교대로 해보라는 것이다. 점진적인 탈출을 도모하며 궁극의 전환적 목표에 도전하라고 한다. 사실 말처럼 손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벗어나야 하지 않는가? 아주 조그마한 변화가 분명 우리를 다른 시선, 새로운 성장의 길로 이끌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삶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불안의 요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벗어나며, 건강하고 유쾌한 긍정적 삶의 세계로 이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어떤 진심의 목소리가 느껴지는 심리학적 도움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고 해야겠다. 우리들 관계의 갈등은 타인의 무시와 감정을 격화시키는 언어로 출발한다. 경청하지 않거나 마음대로 상대를 정의하는 덮어씌우기식 언어처럼 타인에 대한 존중의 결여이다. 세대 간 충돌이라고 다르지 않다.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부인이란 존중의 상실이다. 우리의 내부가 아닌 외부인 사회와 정치적 불쾌함이 야기하는 불안적 요소를 도외시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감정들이 내적 통제로 이겨낼 수 있음을 우리들은 또한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 인간의 사회적 성장에서부터 직업과 관계에 도사린 불안의 감정을 극복하고 대처 방법을 제시하는 이 진지한 심리적 조언서는 분명 삶의 길을 선택하는 데 귀중한 좌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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