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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은둔의 역사 -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평점 :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아픔을 나타내기 위해 생긴 표현이다.
또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의 영광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어휘를 만들었다.”
-신학자, 폴 틸리히 (281쪽)
흔히 목격하게 되는 사람들, 즉 이 시대의 상징적 인물을 “손에 쥔 기기 위로 조용히 어깨를 수그린 모습”이라고 저자 ‘데이비드 빈센트’는 인파 속에서 정신적으로 분리된 오늘의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무리나 군중 속에서도 철저히 개인화되어 ‘혼자 있기’를 주장하는 세계에 대한 적절한 설명처럼 보인다.
이러한 모습에서 집단 속에 있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고독과 외로움의 경계에 선 현대인의 모호한 심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을 고립적이고 기쁨 없는 쾌락주의에 내맡겨진 인간이라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와 달리 몰입과 자기 행복의 긍정적인 창의적 고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있기의 부정적 발현인가? 긍정적 실현인가? 집단과 혼자 있기의 절묘한 균형인가?
책은 이 같은 ‘혼자 있기’의 역사를 집어가며 고독의 다양한 형태들 - 산책, 등산, 낚시, 바다항해, 뜨개질, 책 읽기, 수도원과 수녀원의 삶, 교도소 독방 등 -에 투영된 삶의 조화로운 가치로서 은둔, 은거, 고독의 변화를 탐사한다. 도시와 노동의 답답함에서 풀려나와 시냇물 거품을 바라보며 들판 목초지를 한가로이 거니는 산책 속의 고독을 노래하는 1820년 자작시 <고독>의 시인 ‘존 클레어’의 “군중의 회오리에서 달아나는 달콤함”이라는 고독의 이상성으로 글을 연다. 이를 시작으로 당대 걷기의 유행과 도보 여행, 등반 여행에 이르는 혼자 있기의 갈망의 형태에 스며든 삶의 철학들을 소개한다.
이른 아침의 산보에서 다가오는 평화로운 고독의 울림을 노래하는 워즈워스의 시 <서곡>에서부터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자유의 충족과 열린 마음을 가져오는 도보 철학에 이르기까지 고독한 산책자는 공동체와 하는 삶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은밀함이 주는 고독의 절대 요구성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당대에 이러한 혼자 있기에 대한 찬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뚜렷한 목적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부랑자 단속법이란 것이 만들어지면서 산책이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당대의 귀족과 고위 관료들에게 평민들의 혼자 걷기는 유약하고 이기적이며 불온한 행동으로 보였기에, “단독 도보는 단체 보다 윤리적으로 훨씬 아래다.”라며 단체 행동, 공동의 추구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고 하니 고독을 즐기기 위한 산책마저 금지 당하던 인간 역사의 추레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다시 산책, 홀로 걷기의 찬양으로 되돌아가보자. 바이런의 잘 알려진 연작 시집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첫 2부에서 그는 집단의 부재와 미지 자연에 깃든 정기를 찬양한다.
“길 없는 산을 오르는 것,
홀로 비탈길을 거품 이는 폭포 위로 숙이는 것,
이것은 고독이 아니리.
이것은 자연의 매혹과 대화를 지속하고 펼쳐지지 않은
자연의 보고를 보는 일일지니.” -69쪽
혼자 있기의 수단이 여행, 등반, 산책, 그 무엇이 되었든 고독은 압박을 벗어난 해방감과 자연과 일체화되는 만족감을 준다. 직업, 공동체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는 자유야말로 고독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독이 마냥 축복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오염과 부패가 만연한 지하 감옥, 그리곤 참혹한 공개 사형 현장이 제도와 규율을 제대로 갖춘 교도소가 된 것은 19세기 들어서 비로소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당대 유럽 사회는 수감자들을 영적으로 교화시키겠다고 독방에 감금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모든 종류의 접촉을 차단한 채 독방에 가두어 놓았더니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고 죽이더라는 것이었다.
카톨릭은 “고독의 공포 속에서 생명의 유한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열릴 것이다.(164쪽)”고 주장했다니 이 인간에 대한 몰지각과 몰인정의 종교가 인간의 생명, 그 존엄성을 인정하기까지 다시 1세기가 흘러야 했으니 아무튼 인간 역사는 수치스러움의 연속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제된 고독은 ‘고립’이라는 타율적 차단의 형태이지 고독의 개념과는 그 범주가 다르다고 해야 할 것 같다.
18세기부터 21세기 오늘에 이르는 흥미로운 고독의 역사라 할 이 책을 모두 열거하려면 지면이 한 없이 길어질 듯 하지만 고독의 위험을 경고한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소설 《노스트로모》의 중심인물인 저널리스트 마르틴 데코는 섬에 남아 홀로 구조를 기다리다 고독사(孤獨死) 한다. 작자는 이 비극 원인을 작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고독해서 죽은 것이며, “고독은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적이고, 가장 둔한 자들만 고독을 견딘다.(229쪽)”고 썼다. 절대 고독, “종일 새 한 마리 못 봤네, 온종일 이 중얼거림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완전히 적막한 하루였다. 평생 이런 날은 처음이었다.” 고독이라는 광활하고 무심한 세계에서 내적 목적의식을 찾을 수 없을 때 인간은 쉽게 허물어질 위험 앞에 그저 삼켜지기 쉽다.
이러한 고독의 위험에 맞서 내적 고독의 승화를 말하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존 쿠퍼 포이스의 신비주의적 고독의 철학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하겠다. 비록 오늘날 개인이 사회에 의존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지닐지언정 “번잡한 생활 속에서 사회를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은 내적 고독을 가꾸는 일뿐”이라고 반박하는 그의 무형의 명상에 대한 강조는 내 고독의 추구에 강력한 지지가 되 주었기 때문일 것 같다.
“대화를 중단하고 영혼이 ‘장구한 세월의 중얼거림을 듣고,
우주의 신비를 느끼는’데 필요한 고요를 만들어야 한다.” -234쪽
그의 지적처럼 도시를 가득 채운 고층 빌딩의 막대한 괴물성과 장중한 공포가 발산하는 피로를 훌훌 떠나 자연의 유려하고 순수한, 오랜 차분함은 내 속을 흩뜨리는 욕망과 시기와 분노를 잠재워준다. 저자는 이것을 현대의 삶에서 인공적이지 않은 틈이 있다고 믿는 무모한 순진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고독의 소명이 무한한 위험을 안는 고뇌임을 모르지 않는다.
이제 외로움이 부상하는 오늘의 시대를 말하는 외로움의 치명성이라는 과장된 담론을 살펴보는 것으로 책의 소감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영국의 건강 및 사회연구소의 2003년 보고서는 노년의 외로움이 현저히 증가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우리 시대가 외로움을 상징적 실패로 규정지으려는 태도, 그리고 외로움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인 슬픔을 소외로 이해하려는 오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정신의학의 만연성은 외로움을 정신 질환화 함으로써 삶을 위협하는 요소로서 증폭시키는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외로움은 양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어떤 외로움은 달리 이해될 뿐이다. 사실 여기에는 현대성의 실패를 의식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부정적 경향이 한 몫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도 한다. 물론 오늘의 사회가 경쟁적 이기심과 극단적 개인주의로 견뎌낼 만한 친밀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고작 환상적 공간이 주는 쾌락의 세계에 맡겨 인간성의 본질인 연결성을 파괴하는 현실의 은폐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혼밥을 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앉는 것이 소외나 고립의 외로움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의 ‘혼자 살기는 현대성의 병폐가 아니라 삶의 전략’이라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강력하게 주장하는 혼자 있기는 사회 거부가 아니라 사회 참여를 배우는 필요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이 문제되는 것은 더 이상 도피할 여지가 없을 때이지, 고독과 집단으로의 참여를 언제라도 왕래하며 이를 조절 할 수 있는 상태는 삶의 건강성이며 균형이라 할 것이다. 점점 혼자인 것이 정상이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고독을 무한정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짧고 우연한 혼자인 순간들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을 뿐이다.
디지털 시대가 야기하는 소통 파괴와 인간관계의 진정함을 훼손하는 것도 사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제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여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에서 자아의 안정감과 공감능력을 강화하는 시선을 읽어야 하며, 함께 일 때 생산적 고독에 빠져드는 법을 익혀야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산책과 노동의 균형을 잡던 18세기의 사람들처럼 혼자 있기와 함께 있기의 슬기로운 지혜를 갖춰야 할 때다. 고독의 지혜가 풍부하게 묻힌 역사의 길을 거닐며 고독에 대한 빼어난 지식들을 무한하게 또한 매력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고독과 관계를 맺을지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마 이 책은 매혹적 즐거움을 선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