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덕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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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시작하며 '죽음의 집'이라는 이 어두운 제목을 한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죽음이 아니고서는 산 자들 삶의 성찰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각성이 야기한 요청 때문이었다고 해야겠다. 다만 이 작품의 배경인 서(西) 시베리아 유형지라는 특수한 공간에 갇힌 인간의 기록이기에 여느 산 자들의 언어와는 다른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발에 찬 족쇄처럼 인간의 행위가 엄격하게 강제된 곳이기에 '인간의 삶'이란 것을 보다 절실하고 넓게 사유할 수 있는 장치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 이 소설은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 삶을 향한 지독한 향수를 지닌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이 발표된 후 17년이 지난 41세에 출간한 소설이다. 농노제와 검열제 폐지를 주장하던 사회주의 그룹에 가담한 죄로 시베리아 옴스끄지방에서 1850년부터 4년간의 유형생활이 그에게 선사한 운명의 산물이랄 수도 있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것으로 짐작되는 작중 화자인 '알렉산드르 빼뜨로비치 고란치꼬프'의 입을 빌어 "견딜 수 없는 우수, 극도의 정신적 고독이 없었다면 (...) 자신에 대한 반성도 지난 생애에 대한 엄격한 비판도(435)"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하듯이, 보다 깊은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부활을 예비한 죽음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250명 남짓한 절도, 사기 등 잡범들, 살인범, 정치범 등 온갖 기결수들과 미결수들을 감금하고 있는 옥사는 '죽음의 집'이다. 잔혹한 신체적 형벌과 고된 노역뿐 아니라 질병과 폭력이 지배하는 시베리아 허허벌판에 격리되어 수용된 죄수들에게 이것보다 적절한 이름도 없겠지만, 이러한 실재하는 죽음의 근접성뿐만 아니라 감옥 바깥의 세상, 인간의 자유가 거니는 세상이라는 간절한 희구의 도래를 위한 불가피한 고통에 종속된 유예된 시공간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1. 인간 관찰기

 

소설은 죄수에 행해지는 형벌들이 인간의 영혼에 끼치는 해악과 제도적 역기능에 대한 고찰이며, 격리 폐쇄된 공간 속에 있는 인간들의 생존적 행태로 발현되는 심리 분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증오와 금지된 향락에 대한 욕망과 무서운 경솔함을 부추기기"만 하는 강제 노역,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며 표면적 목적만 달성할 뿐"인 독방제도, 억제된 사생활 위반에 가해지는 각종 체형과 태형에 도사린 신체의 자본화라는 인격 말살 등이 죄수들의 감방 내 생존을 위한 각양의 은밀한 거래와 축적의 행태와 조응하며 고독과 공허감, 무력감이라는 박탈된 삶을 통과해내는 인간들을 그려낸다.

 

아마 이 작품은 수많은 인간 개체들의 다종다양의 심리적, 행태적 관찰기라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인간의 양면성 혹은 복합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이를테면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타인의 목을 베어버리는 자가 자신의 태형을 앞두고는 공포로 몸을 떨며 기가 죽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복수의 욕망과 예정된 단일한 목적 달성이외의 욕망은 사라져 어떤 종류의 고통과 형벌조차도 무시하는 인간을 보기도 한다. 타자에 무심한 인간일수록 자기 연민에 극성을 떨곤 한다. 자신에게 닥치면 더없이 큰 문제로 인식되어 증오를 뿜어대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편 감방 내 은밀한 술 거래로 부자가 되어 수하에 죄수들을 거느리는 자와 조수가 되어 이들의 명령을 오로지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자들의 행태적 거래의 모습에서 고용과 피고용자 사이의 가혹함과 무자비함, 착취하고 가능하면 여분의 것까지도 갈취하는 구조의 형성에 도사린 힘의 불모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죄수들이 동료들 앞에서 뽐내고 우쭐대는 것, 그 허세의 이면에 있는 심리이다. 이 거드름과 오만과 헛된 망상은 자신들이 타인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유와 힘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확신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라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유와 인생의 요원하기만 한 환영의 표출로서 단지 억눌린 개성의 드러냄일 뿐이라고 관대하게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그 부정성의 근원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모름지기 피와 권세는 인간을 눈 멀게 하는 법이다. 거만과 방종이 심해지고 급기야 (...) 비정상적인 현상도 달콤하게 받아들이고 (....) 이런 현상에 무관심한 사회는 이미 그 기초가 위협 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11

 

소설의 화자인 귀족 출신의 죄수가 겪는 자기 성찰은 이 같은 동료 죄수들과 이들의 감시자인 소령과 형리의 심리와 행태의 관찰과 분석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을 억누르고 빼앗으려하며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하면서 오직 규칙과 법을 들이미는 자들에게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이해의 능력도 부재함을 발견하고, 급기야는 채찍으로 때리는 권세에 맛들여 인간의 육체와 피, 영혼을 지배하고, 더 할 수 없는 모욕으로 죄수들을 멸시할 수 있는 권력에 도취된 자들의 병적 포악함에서 또 다른 인간 본성을 보기도 한다. 죄수를 때리기 전에 느껴지는 묘한 흥분 상태, 그 쾌락적 즐거움이 권력자라는 자기 인식을 강화하는 왜곡된 인간 본성에 전율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화자의 시선에서 줄곧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마 연례 행사처럼 베풀어지는 비좁은 목욕탕에 아래위로 포개져 한 바가지의 물에 몸을 씻는 죄수들의 벗은 몸에 드러난 매 맞은 등허리와, 빡빡 깍은 머리가 어른거리는 지옥 같은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한 죄수의 광기어린 아리아의 울림이다. 이 묘사는 동료 인간에 대한 쓰라린 연민이며, 상실된 인간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공감이며, 타인의 절대 고독과 고통에 대한 연대감이다. 화자는 귀족으로서 체형의 경험이 없다. 그는 동료들에게 감히 묻는다. <아픈가?>, <아프지요, 타는 느낌이 들어요, 불처럼. 마치 뜨거운 불로 등을 지지는 것 같습니다.> 4백대 5백대로도 사람을 죽이는 채찍 체형은 3천대로 동료 죄수들을 기어이 죽이기까지 한다.

 

2. 민중의 숭고한 갈망, 정의, 자유...

 

유일하게 감옥 외부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성탄절을 맞이하는 죄수들, 증오와 적대감으로, 억압과 유폐(幽閉)된 장소로부터의 고립감, 사라져버린 희망에서 오는 우울감을 떨쳐내고 성스러울 정도로 공손함과 세심함으로 구원을 향한 경건함에 젖어든다. 욕설과 조롱, 혐오를 일삼던 죄수들이 먼저 기꺼이 공손하게 성탄절 축하 인사를 하며 타자를 맞는다. 가난한 자들이 마지막 남은 한 푼을 털어 가난한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은 그 어떤 화사한 선물보다 진심을 표현한다. 불평도 시기심도 사라진 그들에게서 숭고한 정신을 향한 인간의 내적 본질을 발견한다.

 

성탄절 행사의 일환으로 죄수들의 행위에 사사로운 트집으로 방해하던 소령이 그들의 연극을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이들이 감옥에서 펼치는 민중 연극에 모여든 지역의 시민들이 빽빽이 들어 찬 공간의 장면은 사람들이 목말라하던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살피게 한다. 죄수들이 뒤집어쓰고 있던 껍질을 벗어던지고 눌려졌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때 놀라운 그들의 정신세계와 숭고한 갈망, 절로 표출되는 정의감은 활기와 존경의 감응으로 비좁은 감옥을 채운다. 빈약한 무대장치지만 관객은 상상력으로 결여를 채우는 것에 동의하며, 부자유와 힘겨운 운명 속에 쓸모없이 파멸해가는 배우 죄수들에 대한 동류 인간으로서의 경의가 흐른다.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도 자기 식대로 인위적인 순교 속에서 출구를 찾아냈다. (...) 단지 고난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으로 악의 없이 소령에게 덤벼들었다는 것이다." -389

 

인간은 어떤 목적과 그 목적을 향한 지향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다. 절망에 빠지게 하는 희망 없는 불가능에 휩싸인 공간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들은 저마다의 구원을 향한 출구의 모색일 뿐이라고 화자는 해석한다. 인간 정신에 대한 섬세한 화자의 이해는 이처럼 개체들의 고유한 삶에 대한 존중의 시선, 인간에 대한 집요하고 너그러운 정신에 기초한다.

 

그것은 삶의 자유로운 구현을 향한 너무도 본질적인 추구라는 점에서, 또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원죄의 업보라는 측면에서 "정말로 누구의 죄인가?"라 묻는 것은 죄와 벌의 상보성에 대한 도덕적 물음을 낳는다. 자유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본질적 표현, 삶을 절망시키는 것에 대한 인간적 행위에 대한 '입장(환경+운명)' 바꿔 생각해봐!'라는 윤리적 질문이기도 할 것 같다. 출옥, 화자의 발목에서 족쇄가 떨어져 나갈 때 "죽음으로부터의 부활(457)"을 외치는 장면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깊이로 다가온다. 인간 심리와 도덕적 성찰로 그득한 이 소설은 인간 나에 관한 자성을 넘어 타인을 그것이 아닌 동류 인간으로, 차별 없는 윤리적 동등성의 인간으로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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