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 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 주제들(THEMEN) 시리즈 2
게르하르트 노이만 지음, 신동화 옮김 / 에디투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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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도 알 수 없고 사건을 일으키는 특별한 계기도 없는 소설, 독자들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접하면 허둥거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왜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 것일까? 독해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카프카의 이야기에 매양 빠져드는 이유는 이 실패가 무의식에 침전된 찌꺼기를 건드려 삶의 무엇인가를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인지 모르는데도 이 실패의 충격에 동화되는 알 수 없는 감응의 매혹일 것이다.

 

"인류사의 기원은 이야기기할 수 없습니다. 사실과 목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학의 이러한 본질적 아포리아(Aporia)는 카프카에게도 해당합니다." -26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이라는 긴 제목을 한 이 책은 해독에 지극히 곤란을 겪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사실과 목격자도 없는 인류사 기원"에 대한 저항이라는 단서와 "현대의 근본적 방향 설정의 위기에 대한 표현"이란 두 개의 커다란 관점으로 이해하려 하고 있다. 칸트는 증거도 기록도 없는 인류사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원죄를 안고 시작했던 아담과 이브의 사건이라는 '성서'의 서사적 기록으로 시작했다. , 칸트는 "인류학을 인간의 타락과 죄"의 대물림이라는 저주를 이성이라는 계몽의 기회로 바꾸는 시도로 삼았다는 말이다. 결국 원죄란 이성을 잘못 사용한 인간의 책임이므로 스스로의 계발을 통해 점차 좋은 쪽으로 향할 것이라는 낙관적 인류학을 펼쳤다.

 

한편 이러한 칸트의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발터 벤야민' "제도의 세계, 몸을 규율하는 건축의 세계, 이유없는 죄의 세계"로서 인류학을 전개한다. 그런데 바로 이 원죄, '이유 없는 죄'는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카프카는 이 죄의 문화, 일종의 수치의 문화를 쓰기위해 글을 썼다는 관점이다. 기원은 같지만 칸트의 출발지점과는 반대되는 지점, 좋은 쪽에서 나쁜 쪽으로, 다시 말해 근원적 불안(이유 없는 죄)에 시달리는 시지포스적 고통스런 인식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카프카의 작품을 해명하는 과정이랄 수 있다.



1. 미완성 교양소설 3부작

 

"카프카가 자신의 실패를 강조하며 보인 열성보다 더한 열성은 상상할 수 없네," -게르숌 솔렘(Gershom Scholem), 49

 

실패는 카프카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에는 인생 경력에서 전형적으로 실패하는 주인공들이 즐비하며, 한편으론 이러한 망가진 경력을 표현하는 문학적 형식에 실패하고 있다고 벤야민은 지적한다. 미완의 장편 소설 실종자』 『소송』 『 세 편은 인생 경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교양 소설 삼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자연으로서의 유기적 성장 모델과 제도적, 규율적인 건축적 구성 모델과의 충돌에 좌초하고 만다. 세 작품의 주인공인 'K'기호가 붙은 동일한 인물인 '카를 로스만',"요제프 K', 그리고 'K'는 모두 "성적, 경제적, 가정적 경력을 계속 이어가려"하지만 카프카는 "수치스럽고 비루한 글쓰기 상황에 처했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미완에 그치고 만다. 삶의 위기를 순간적으로 압축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그는 '비유담(전설 혹은 설화)'의 문학형식을 빈 단편에 집중하게 된다.

 

벤야민은 이 "실패의 근저에는 세계 인식의 패러다임 변화가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상보(相補)적 세계에 살고 있었다"고 추정한다. 통합 할 수 없는 두 세계, 과학과 신비주의가 현대세계를 규정한다고 이해한 카프카는 이 통일 불가능성의 세계, 분열된 세계가 유발하는 충격속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있었기에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일로서의 쓰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삶을 통합적으로 표현하는 데 실패한 이는 전통적인 문학형식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고 이러한 실패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형식으로서 비유담으로서의 단편을 썼다는 것이다.

 

실패를 초래하는 충격이란 (1)이유 없는 죄의 세계에서 깨어나는 당혹감, (2)인간 자기 내부에서 동물을 발견하는 다윈주의가 유발한 모욕감, (3)낯설어진 관료주의와 제도, 그리고 (4)유기체와 기술코드의 비정상적 마주침의 경험이다. 아마 소송의 도입부에서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요제프 K'가 듣게 되는 체포의 소식이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원숭이 '빨간 페터', 황제의 메시지에 등장하는 무수한 궁궐의 문, 가장의 근심에 등장하는 오드라덱이나 유형지에서의 처형기계를 떠올리면 이러한 해석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2. 실패를 확신한 성공

 

카프카에 대한 독보적 권위자인 이 책의 저술자 '게르하르트 노이만'은 바로 이 실패의 과정이 곧 성공의 도구였다고 주장한다. 문학 형식과 삶의 성장 모델 건축의 실패, 카프카의 아무런 구원도 없고 메시지도 없는 소설이야말로 "인류사와 인류 문화 기원을 표현할 수 없다는" 충격의 표현 그 자체이며, "해명할 수 없는 아포리아(*전복적 혹은 내재하는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나 역설)"라는 것이다.

 

소설 실종자의 첫 챕터인 화부에는 주인공 '카를 로스만'의 아버지로부터의 추방과 미국향 선박에서의 시초가 된 이야기의 억압과 원()장면을 서술하는 데 거듭 실패하는 장면이 있다. 이는 "현대 주체의 이야기를 과연 서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거듭되는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 개인의 고유성이란 양도 될 수 없는 내밀성의 코드로서 서술이란 해결 할 수 없는 과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것이 카프카 문학의 핵심 전략이란 것이다.

 

실패의 싹이 처음부터 내재하는 소송'요제프 K'가 일어나는 장면부터 마지막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점점 자라난다. 이 소설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면 정말 그로테스크한 희극성에 의해 일상적 삶의 소소한 모든 의식들이 마비되어 가는 것의 기이함에 사로잡혔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첫 챕터는 주인공의 자아의식을 붕괴시키는, 이른바 실패 장면들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제프 K'의 정체성 의식을 제공하던 아침식사를 체포하러 온 두 남자가 먹어치움으로써 아예 난국 타개의 논거를 없애버리는 정체성 위협에 대항해 K가 침대에서 사과를 먹기 시작하는 장면은 신의 금지에 대항하는 멋진 해방극으로 기억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의식의 안정화 기능을 파괴하기 위한 공간에 대한 글쓰기라는 해석에 부합한다고 할 수도 있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은 질서의 틀이 실패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마치 유효한 것처럼 취급합니다." -151

 

인간 주체와 자의식의 세 가지 모욕이자 자아 무력화의 학설로 코페르니쿠스 혁명, 다윈주의, 프로이트 정식분석을 들곤 한다. 책의 저자는 여기에 카프카적 변신을 추가한다. 가장 급진적인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문화의 두 가지 방향 설정 위기에 대한 촛점 맞추기라 한다. 즉 진화 패러다임과 건축 패러다임의 마찰, 다윈주의 논리와 삶의 교육학적 논리의 마찰, 자연적 흐름과 인위적 시스템의 충돌에 대한 통찰로서 카프카는 인간을 경계적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변신'이나 '동물'은 문학적 모티프가 아니라 성장과 구성의 경계를 매개하는 앎의 매개체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정체성에 동물의 타자성을 통합함으로써 인간을 정의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란 자기 안의 동물 없이는 스스로를 이해 할 수 없다는 경험의 연출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카프카의 소설들은 서사의 일관된 요약이나 해석을 불가능하게 하는 무수한 방해 장치들로 겹겹이 쌓여있다. 벤야민은 이를 "자신(카프카)이 겪은 실패의 어려움, 필요성을 독자들이 체험"하게끔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저자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논리와 해석, 그리고 인용된 작품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금 카프카의 소설들을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민감한 감각과 깊은 안목을 지닌 이 독보적인 카프카 문학의 비평서는 무지의 영역에서 상당부분을 앎의 영역으로 이끌어 준다. 문학적 미덕으로 넘쳐나는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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