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가족, 핵가족의 붕괴에 대한 유쾌한 묵시록 가족특강 시리즈 1
고미숙 지음 / 북튜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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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거 자체가 길 위에 나서는 거고, 길 자체가 삶이에요.” P 120

 

 

유튜브의 한 채널에서 강연된 내용이가족 특강이라는 시리즈의 제 1권으로 출간된 저작이다. 책의 제목 중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그것이다. 물론 이 어휘가 의미하는 것은 생물학명이라기 보다는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고 있는 일. 또는 그런 생활 형태.’라고 하는 사전적 의미로 사용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란 오늘의 전형적 가족 구성형태인 혼인한 성인남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핵가족이다.

 

기생충을 관람한 이들은 영화 속 가족이 모두 핵가족임을 상기할 수 있다. 게다가 송강호가 분()한 김기사 가족의 생활형태가 사전적 주석과 일치하는 기생, 바로 그것이니 이 책은 영화 기생충을 통해 핵가족에 내재된 섬뜩한 반생명적, 반사회적, 병리학적 현상을 발견 규명하여 그 음침하고 교활하며 야비한 위악의 리얼리즘을 벗어나고자하는 변화의 모색이라 할 수 있다.

 


WARMING-UP (준비 운동; 데우기)

 


본론에 돌입하기 전에 저자 고미숙은 봉준호의 기 발표 작품들인 괴물,설국열차,옥자를 통해 문명의 폭력성, 기술의 오만, 욕망의 무한 증식을 향한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세 영화의 가족에는 엄마가 없다. 소위 결손 가정이거나 기이한 가족 구성을 하고 있다. 엄마가 있는 스위트홈의 핵가족이 아니기에 오히려 이들은 결코 외부와 단절된, 타자와 경계를 둔 그런 사람들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모두 가느다란 하나의 탈출구를 제시하며 막을 내린다.

 

미군이 한강에 버린 독성 폐기물로 인해 출현한 괴생명체인 괴물을 고미숙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큰 몸집, 거대한 입, 입안에 입, 그리고 또 입...”, 무한 탐욕의 상징물임을 알려준다. 생태계 오염이라는 거대한 재앙과 이에 대한 국가 시스템의 부조리함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테다. 설국열차또한 지구 온난화에 대한 기술문명의 오만, 사건을 대하는 인간 태도의 어리석음, 그리고 멸망한 인간종족의 유일한 생존집단인 열차에서 조차 계급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종자임을 확인하게 한다.

 

그런데 모두 지배 계급이 있는 앞 칸으로의 전진만 생각한다. 여기서 저자의 시니컬한 변은 걸작이다. 앞으로 가는 건 기차 바깥의 세상을 일체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 끝에 가봤자 뻔한 것, 자본주의 생태계란 것이 정점에 오른들 우월감 이외에 대체 뭐가 있다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앞이 아니라 옆 칸으로 뛰쳐나가는 것, 그래야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기생충」 – 핵가족의 묵시록

 


Game over를 쓴 독일 슈피겔지()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한스 페터 마르틴오늘의 세계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던 안정적인 발전같은 것은 이제 없다. ‘극단적인 불확실성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진단처럼 신분과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정상적인 수단은 사라져버렸기 때문일까? 영화의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는 김기사(송강호)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대사는 망가진 혼돈의 이 세계에서 소위 성취라는 걸 어떻게 하는 지에 대한 전형의 제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중요한 것은 꿈이 아니라계획이란 것이다. 누군가를 밀어내고 내 자리를 확보하는 것, 내년에 갈 대학이기에 미리 당겨쓰는 것, 이게 계획이 되는 거다. 사기꾼의 방식인가? 아니,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가? 대출 받아서 쓰고, 투자 받아 쓰고..., 그러니 이들에게 죄의식이 없다거나, 미안함과 같은 양심도 없는 인간이라 매도하는 것도 자기 얼굴 침 뱉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인간 생태계에 지독하게 적응한 인간들이라 해야 하지 않겠나?

 

()이 다른 을()을 어떻게 대하는지 박사장네 가정부 문광이 지하에서 올라 올 때 발로 차 죽게 하는 것으로 설명이 족할 것이다. 소통, 연대가 아닌 그냥 밟아서 치워 버려야 하는 존재라고 사회가 가르쳐 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지상에 작은 창이 간신이 걸린 반지하의 창도 없는 지하의 삶이 등장 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 어떤 당혹감을 기억해 내게 한다.

 

김기사의 아들 기우와  딸 기정이 박사장네 저택에 진입하는 과정의 수단들과 그것이 성공하는 장면들에는 날카로운 이 사회의 일상적 삶의 모습들이 꼼꼼하게 투영되고 있다. 디지털 문명이 초래한, 이를테면 인스타그램에 노출된 상위 계층의 태도와 경험까지 배워 동일해진 욕망의 내재화는 이들의 현실과 이상의 구별을 지워버린다. 사실 핵심은 이제 부터다. 김기사네가 박사장네에 자연스레 기생이 가능토록 하는 근원적 배경, 환경적 토대라 해야 할까?

 

핵가족이 지닌 폐쇄성인데, 등장하는 세 가족 모두 타자와의 연결 고리가 한없이 취약하다는 데 있다. 광현 부부, 김기사 가족, 박사장 가족, 이들 모두 우리는 가족이야.’를 내면화한 채 외부 세계는 그저 정보를 주고받거나, 밟아 뭉개야 하는 존재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외부가 없다. 부자는 부자이기에 타자와의 접촉을 경계하고, 가난한 자는 올라서기 위해 타자를 혐오한다. 여기에 그 폐쇄성의 장막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박사장 부인의 영앤심플(Young & Simple)이라는 맹함은 오히려 양념에 불과하달 것이다. 타자에 대한 불신과 경계가 기우와 기정이라는 터무니없는 인간들의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니 핵가족, 즉 가족 이기주의가 자기 파멸적 구조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니들과 우리로 구별하면서 인간 감각의 가장 원초적인 후각, 냄새 타령을 하는 박사장, 그가 얼마나 타자를 견디지 못하는 지에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아무런 공감도 잣대도 없음을 목격하게 된다. 냄새라는 어휘에 민감한 것은 김기사 또한 그 대척점에 있다. 가난의 냄새, 그 콤플렉스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은 서로를 인정할 외부가 없는 이들의 불가피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저자 고미숙이 지적하듯이 핵가족, 스위트홈이라는 환상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정작 그 속에 사랑도, 삶이라는 인생행로에 대한 서로의 응원이란 것도 부재하다는 것이다. 어린이날, 생일, 이런 범주의 특정일에 핵가족들이 하는 행동이란 아마 상품과 이벤트 이외에 무엇이 아닐 것이다. 그저 마시고 먹고 쇼핑하는 소비, 그리고 화폐로만 이루어진 관계가 스위트홈의 정형화된 묘사라는 데 이의를 달기에는 변명거리가 너무 없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정말 무서운 것은 살인과 죽음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기우가 아버지 김기사에게 하는 자기성찰이란 아예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던지는 말이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세요.”,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한 치의 변화도 없는 욕망, 보편적 윤리란 것이 싹 거둬진 탐욕만이 여전히 넘실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당하는 모멸감에만 반응하며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란 아예 존재치 않는 인간들이 바로 오늘 이 사회 우리들의 초상임을 발견해내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결론 핵가족 폐쇄회로 탈출하기


 

겉보기에 안정적이고 화목하며 단란한 우리 가족이라는 스위트홈, 핵가족에 담겨있는 진실이란 이처럼 음울하고 반생명적이며 위악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정작 핵가족을 해부하고 보니 거기엔 공감의 세계도, 윤리도,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이다. 오직 소비와 화폐의 욕망만 있더라는 것이다. 괴물」「설국열차」「옥자에 엄마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한 가닥의 통로가 기생충에 와서는 막혀버린, 사방이 완전 봉쇄되어버린 것이다. 어디에도 길이 없는 데 이제 어쩔거야!”라고 묻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끔찍한 계획을 버려!”라고 말한다. 명문대를 가야해, 공무원이 되어야 해, 30평 이상 아파트를 사야해,...(...) 핵가족을 꽁꽁 묶어 놓는 우라질 계획’”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계획의 삶을 살아내는 것, 즉 생명 차원에서의 연대, 세상을 향해 나가도록 힘차게 응원해주는 관계, 길을 나서는 베이스캠프, 생명의 플랫폼으로 변환하는 길을 모색하라고 제안한다. 오늘 우리네 사회의 이 무수한 혐오와 적대가 빚어내는 갈등들의 밑바닥에는 이처럼 타자에 대한 경계와 단절, 개인들의 무한 탐욕을 근본으로 하는 핵가족, 그 구성원인 우리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변해야 하고, 내 가족이 변해야 한다. 너와 너희들에게 변하라고 말하기 전에. 비난의 손가락이 타자를 향하기 전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먼저 향해야 세계는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팸플릿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그 압축되고 정리된 문장들은 감당할 수 없는 불균형과 불안의 시대인 오늘, 그 꽉 막힌 듯한 모두가 원치 않는 세계에서의 탈출구를 찾기 위한 예리하지만 연민 넘치는 통찰의 혜안이 넘친다. 세계인이 공감한 문제작과 냉정하고 비범한 분석과 함께 하는 놀라운 각성의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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