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
조제프 인카르도나 지음, 장소미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몸과 정신과 고기, 그야말로 모든 것이 태양과 열기와 숯불에 타고 있다.” - P 156 에서

 

 

왠지 지옥 같은, 하지만 우리 사는 현실과 닮은 이 문장이 왜 내게 유독 꽂혔는지 모를 일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헤이놀라. 언뜻 스칸디나비아 대안 포르노의 여배우 이름처럼 들린다.”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처럼 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다. 소설의 한 축이 유명 포르노 배우인 니코라는 인물이고, 반수신(半獸神)으로 불리기까지 하니, ‘세계사우나대회가 열리는 핀란드의 소도시 헤이놀라는 맞춤의 지명이다.

 

심장마비, 화상, 페궤양을 일으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지정온도 섭씨 110도라는 극한의 공간에 펼쳐지는 이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경기, 그야말로 허망함이 예견된 세계에 참가 선수, 각종 언론매체, 기업 마케터들, 나체와 사우나의 열기에 도취되어 쾌락을 만끽하려는 관광객까지 저들마다의 욕망이 끓어오른다. 주체할 수 없는 무료함, 시간을 처리하기 위해 기획된 고도로 상업화된 이 이벤트에서 기괴한, 그리고 낯선 공포의 냄새를 맡게 된다.

 

치명적인 열기를 버텨내고 사우나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는 마지막 최후의 인간이 챔피언이 되는 미련하고 해롭기만한 야만적인 경기, 여기에서 누군가들은 이익과 쾌락을 얻고, 누군가들은 소비의 대상이 되어 전시되고 추락한다. 소설의 묘사들은 유머와 풍자, 해학 그 자체이지만 열연하는 3년 연속 준우승자인 옛 소련의 잠수함 선장이자 해군 장군이었던 왜소한 체구의 러시아인 이고리, 중년에 이른 섹스 심볼인 포르노 배우이자 챔피언 자리를 지켜온 거구의 핀란드인 니코의 정신세계가 빚어내는 삶의 비극적 요소는 희비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탈리아 작가 피란델로였던가? 유머와 공포는 상상력이 낳은 쌍둥이라 했던 말이 떠오른다. 소위 기묘한, 엽기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질서가 파괴되는 세계와 대면 할 때의 긴장감과 섬뜩함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로테스크하다는 미학적 용어가 어울리는 그런 이야기로 다가온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결승전에 오른 5명 중 하나인 신부를 묘사하는 니코의 표현이 있다. “호리호리하고 비리비리한 몸에 달린 신부의 굵은 페니스의 왜곡된 듯한 조합은 오싹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참가자들을 향해 주절거리는 신부의 기도 소리는 부조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수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아름다운 선물, 고통, 아멘

비극을 향해 치닫는 공간에서 뱉어지는 이 희극적인 장면은 정말 그로테스크하다. 그로테스크 해!

어쩌면 이 그로테스크함은 불가해하고 모호하며, 우스꽝스럽고 경악스러우며 소름끼치기조차 한 인간 세계를 그려내려 한 작가적 의지의 소산이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이것이 심연을 마주할 때의 공포가 아니라면 무엇이 공포이겠는가!

 

공산당에 배신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삶의 희망이 없는 치명적 매독에 걸린 이고리의 생사를 초월한 마지막 결전으로서의 도전, 포르노 배우로서 점차 수명을 다해가는 불안에 휩싸인 장년에 이른 니코의 멸망하는 세계의 마지막 기회로서의 결승전은 가히 점점 괴벽스러워지는 오늘의 세계, 상업적 착취와 관음증적 소비의 극한을 향한 무모함으로 그득한 맹렬한 질주, 바로 그것인 것만 같다. 110도 불가마 옆에서 1초의 버티기는 영혼마저 탈탈 털어내야 하는 혹독함이다. ‘선더 스트럭(thunder struck)’,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이 그들을 급습한다. 체온 상승의 충격으로 덜덜 떨기 시작한다. 신체 조직의 열 발산이 정지하고 열전도효과가 제로가 된다. “613, 최후 2인인 니코와 이고리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안전 요원들에 의해 끌려가는 그들의 피부가 벗겨지고 흘러내리며, 분사된 찬 물에 의해 피어오르는 연기의 묘사는 역겨움, 혐오, 괴이함이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던 이 세계가 별안간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때 느껴지는 갑작스러움과 당혹감은 그로테스크의 본질 아니던가?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의 희극적인 이 이야기는 점차 생경해져가는 오늘의 세계에 대한 반성적 자기 응시인 것 같다. 나는 이 소설을 독일의 문학비평가 볼프강 카이저의 말을 빌려 마무리하련다.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그윈 플렌의 의도되지 않는 웃음, 의지에 상응하지 못하는 미소를 닮아가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발견케 될지도 모르는 그런 작품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소설의 제재인 세계사우나대회는 2010년 폐지되었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