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장편소설 가면의 고백을 다시금 읽게 된 동기가 있다. 철봉에 매달린 동급생 오미(omi)의 상체에 대한 매혹을 바라보면서 화자인 가 떠 올리는 인상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귀도 레니(Guido Reni)’의 그림, 성 세바스찬(St. Sebastian)으로 비롯된 일종의 모방작인,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를 피사체로 하여 사진작가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이 촬영한 동명의 사진에 가해지는 논의들에 대한 어떤 확인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분히 키치(kitsch)적인 이 사진작품과 함께 사진작가 호소에 에이코(細江英公)’가 미시마 유키오를 피사체로 촬영, 1963년 간행된 나체 사진집 장미형(薔薇刑)은 여성의 나체와 달리 대상화를 거부하고 스스로가 주체화되며 우상화되려는 미시마의 의식을 해독하는 증거로 제시되곤 한다. 사진집의 표지는 피사체를 객체화하려는 사람의 시선을 제압하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미시마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는데, 바로 이 미시마의 시선에 내재된 의미의 독해가 그의 첫 장편소설인 가면의 고백이 진정 무엇을 말하려했는가에 대한 상보적(相補的) 재료가 되어 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사진: 細江英公(호소에 이이코)撮影三島由紀夫를 피사체로 한 裸体 写真集 表紙

      

미시마 유키오의 반()자전적 작품으로 읽히는 이 소설은 화자인 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불안, 이에 대한 자의식의 끝없는 정상화라는 자기기만과의 투쟁, 그리고 성적 자기실현에 이르는 시련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나의 모든 존재는 모종의 이교도적인 환희로 뒤흔들렸다. 내 피는 끓어오르고 내 육체의 기관은 분노의 빛으로 넘실거렸다. ...(중략)... 나의 내부로부터 어둡고 번쩍거리는 것이 빠른 걸음으로 공격해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중략)... 아득한 도취와 함께 튀어올랐다.” (출처: 문학동네 가면의 고백P 48 에서)

 

화자의 아버지가 사온 화보집에 실린 귀도 레니의 그림, <성 세바스찬>을 보고 최초의 ejaculatio(射精)를 경험하는 묘사이다. 이것은 탄탄한 근육질의 어깨와 가슴을 지닌, 또한 금지의 반역자이기도 한 동급생 오미의 육체에 대한 성적 갈망과 분출에 연결되어 혼란스러운 그의 성적 정체성을 묘사한다. 자신과 같은 또래의 소년들과는 다른 자신의 발견인데, 결코 친구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기에, 그들의 호기심에 동참하지 못하는 자신을 은폐하기 위해, 남자아이가 혼자일 때 느끼는 것을 추리하기위해 수많은 소설들에 이야기되는 인생의 모습들을 세심하게 읽기까지 한다.

    

 좌측: Guido Reni , St. Sebastian, 우측: 三島由紀夫 St. Sebastian

 

결국 내 관심사는 일견 미시마 유키오의 자전적 상()이기도 한 소설의 화자가 동성의 남자에게만 육체적 욕망을 지니는 자기이해로부터 시작된 외견적 연기와 내면의 기만과 저항, 그리고 수용의 반복을 거듭하며 세상의 윤리적 시선을 어떻게 포섭해 나가느냐는 문제이다. 아마 다음의 문장은 화자의 정체성 성숙의 중간 기착지, 그 경유의 지대로 적절할 것 같다.

 

“....(전략)...남의 눈에 나의 연기로 비치는 것이 나로서는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었고, 남의 눈에 자연스러운 나로 비치는 것이 곧 나의 연기라는 메커니즘을 그 무렵부터 나는 희미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육체적 감각에 대한 불안, 완벽하게 자신의 천성을 배반하기 위한 의식적인 연기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여동생인 소노코거짓된 육감의 인공적인 합금으로만 이루어진 감정으로만 바라보던 여자”, 즉 위장된 연기가 아니라 존재의 밑바닥이 뒤흔들리는 듯한 슬픔의 감정으로 느끼게 됨으로써 전환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것조차 남성 고유의 정체성으로 향하려는 의지의 시작이라는 자기의식의 강요에 불과하다. 그의 침잠한 내면의 소리는 어떤 여자에게서도 비열한 욕망이라는 것을 품어 본적 없는 너 자신을 잊어버릴 셈인가? 소노코의 벗은 몸을 상상해 본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어?” 하고 묻는다. “애초에 육체적 욕망에 전혀 뿌리를 두지 않는 사랑 따위가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명백한 배리(背理)가 아닌가?” 가 답변일 것이다. 이제 소설의 서사적 진전은 잠시 미루고, 욕망과 금욕, 수난과 속죄, 고통과 황홀, 남성의 동일화와 여성의 동일화 사이에 존재하는 귀도 레니<성 세바스찬>이 지닌 성을 넘어선 도상학적 양의성에 반발, 강력하게 반시대적 남성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미시마 유키오<성 세바스찬>을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미시마 유키오가 표현한 이 그림이 페미니즘으로부터의 이의신청을 받아야 하는 그야말로 순전한 마초이즘의 발산에 불과하며, 성적인 시각의 한 가지 편향을 뒷받침하는 그런 것이기만 할까하는 의문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할 충분한 요소들과 증거가 있다. “성 세바스찬의 그림에 매혹당한 이래로 나는 벌거숭이가 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머리위에서 교차시켜보는 버릇이 생겼다. ...(중략)... 그러자 내 시선이 겨드랑이로 향했다. 불가해한 정욕이 솟구쳐 올랐다.” 가면의 고백에 등장하는 몽상의 문장이다. 평자들은 이 몽상을 몰래 엮어 넣은 것이 미시마가 표현하고 있는 <성 세바스찬>이며, 이것은 찍히는 대상이 우위를 확보한 대상화의 전도(顚倒)라고까지 한 장미형의 미시마와 함께 남근중심적 성의 문화사회적 왜곡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의 화자가 하는 내적 의식과 행위는 생물학적이 아닌 사회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성()에 순응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노코의 청혼을 비겁하게 거절하고 나서 타인의 아내가 된 소노코와의 재회이후 재개되는 만남의 마지막 장면인 댄스장에서의 한 묘사를 보자. 앞에 앉아있는 소노코를 잊고 울룩불룩한 팔 근육의 젊은 남자에 시선이 빼앗겼던 화자가 마침내 두 사람의 재회가 끝나는 시간, 젊은 남자가 있었던 해가 들이치는 의자 쪽을 훔쳐보는 시선이다. 그는 최종적으로 젠더, 사회적 규정을 배반하는 것이다.

 

성적 시각의 편향을 고착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성의 대상화를 남성인 자신의 나체를 통해 부인하려는 역설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자신의 인공적 정상성이라는 인위적 연출이라는 위험한 작업에 소노코를 끌어들인 것을 자각, 성찰하는 것에서도 화자의 최후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을 무익하고 정교한 하나의 역설이라고 인식했던 미시마의 시적 이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지 않을까? 다름의 자기 인정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이른다. 타자의 피부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낸 배리(背理:역설)의 미학, 혹은 의지의 미학이라 부름이 타당치 않을까? 아니 육체와 인간의지의 치열한 투쟁의 그 공존과 균형을 향한 미학이라 하고 싶다. 오늘 우리들은 이해의 다름에 더욱 넓은 시선을 갖도록 요구되는 환경에 있다. 시간의 변화, 시대의 감각적, 지적 수용의 변화는 인식의 확장을 또한 요구한다동성애등 퀴어가 시대의 어휘가 된 요즘 다시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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