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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평점 :





내 인생의 필수품 두 개를 고른다면 여행과 책이다. 근사한 집이 없어도, 든든한 통장이 없어도, 다정한 연인이 없어도, 독서와 여행이 가능한 삶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여행과 독서는 다르지 않다.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기에. 책도, 여행도 더 넓은 세계를 열어주는 문이다. 문 너머에 어떤 만남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어 책을 펼 때도, 여행을 떠날 때도 매번 심장이 쫄깃해진다. 책과 여행을 통해 나는 타인의 마음에 가 닿고, 지구라는 행성의 신비 속으로 뛰어들고, 인류가 건설하거나 파괴한 것들에 경탄하고 분노한다. 그럼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p.11)
인간이 장소에 기대어 삶을 이어가는 한 세상 어디에도 슬픔이 배이지 않은 도시는 없을 것이다. 삶이 있는 한 어떤 공간에서나 고통스러운 일들은 생겨난다. 다만 시간이라는 열차의 바퀴 자국이 그 상처를 희미하게 만들 뿐. 냉정한 시간이 이제는 치유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우리의 삶이다. 길고 고통스러운 치유의 과정이 고스란히 쌓여온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간다. 지나가버린 시간을 그리워하면서도 공간을 바꾸어 삶 또한 변화시키고 싶다는 모순되는 욕망을 안은 채로. (p.70)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약자이자 주변인이기도 하다. 테헤란을 낯설게 느끼는 마르잔처럼, 서울을 낯설게 느끼는 나처럼, 제네바를 낯설게 느끼는 요하나처럼,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들. 다수가 옳다고 믿는 문제에 대해서 의심하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사고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 자신에게도, 세계에도 진실하고자 하는 열렬한 갈망은,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다는 위로를 준다.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결국 그런 사소한 위안이다. (p.102)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제 삶의 무게를 껴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찰나의 희열에 젖기도 하지만, 일상의 대부분을 우리는 외로워하거나 상처를 주고받으며 흘려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자매들처럼 누구의 탓도 하지 않으며 매 순간을 충실히.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타인의 온기에 기대어, 그렇게. 네 자매의 아버지처럼 우리 또한 어떤 순간에도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를. 그 마음 하나만은 끝내 지켜낼 수 있기를. (p.130)
“당연하게도 내 여행은 배낭에 넣어갈 책을 고르는 일로 시작된다.” 매사에 산만한 그녀가 힘껏 집중력을 발휘하며 신중해지는 시간이다. 다른 나를 찾고 싶다는 갈망, 더 많이 감사하고, 좀 더 겸손하고, 더 자주 웃는 자신을 보고 싶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멀리 갈 수 없을 때도 책을 읽고, 멀리 떠나가서도 책을 읽는 그녀는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 말한다. 너무도 매혹적이라 책을 읽다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 책, 삶을 바꾸는 한 번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 오롯이 책을 위해 떠나는 여행. 이 책은 그렇게 여행지와 그녀를 연결해준 책에 관한 이야기다. 조금 더 선한 존재로 남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전하는 여행, 그리고 책.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여행할 땐?! 무조건 책이다! 여행과 책이 만나면 시너지가 점점 더 커지는 듯하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는 증거. 사람을 들었다 놨다, 읽다 보면 떠나고 싶고, 읽다 보면 또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진다.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하다. 사실 나는 매일 이 모습 그대로 단출하게 여행을 떠난다. 어디로? 책 속으로! 여기에도 들렸다가, 저기에도 들렸다가, 수시로 들락날락! 방구석에서 떠나는 나만의 여행! 어느 순간부턴가 내 삶에서 책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제2의 가족 같다고나 할까. 집을 나설 때도, 여행을 떠날 때도, 마음이 울적할 때도, 슬플 때도, 책은 언제나 내 곁에 서서 든든하게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말에 전폭적으로 공감했다. 솔직히 어느 책보다도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독서? 독서라는 행위가 주는 매력은 준비 없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이토록 쉬운 일탈이 없다. 책을 집어 들기만 하면 된다. 숨 막히게 답답한 이 세계를 잠시나마 벗어나 책 안의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삶이든 선택할 수 있다. 책을 만나면서 내가 가진 세계가 한층 더 넓어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도저히 못 본 척 지나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