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 에디션)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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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There’s nothing that cannot happen today).’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 -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떠나간 애인이 “내가 잘못했어” 하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드디어 한반도가 통일되었다는 저녁 뉴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무심히 길을 걸어 가다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벽돌에 맞을 수도 있고, 아무리 믿기지 않아도 눈앞에서 110층짜리 고층 건물이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암’은 남의 이야기라는 듯, 잘난 척하며 살던 장영희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p.60)

 

 

나도 어렸을 때 주위 어른들이 겉모습, 그러니까 어떻게 생기고 어떤 옷을 입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때 코웃음을 쳤다. 자기들이 돈 없고 못생기고 능력이 없으니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 그렇다.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p.122)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p.130)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그래서 세상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느낄 때, 죽을 듯이 노력해도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내 마음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듣는다. 오래전 내 따뜻한 추억 속 골목길 안에서 들은 말 - ‘괜찮아! 조금만 참아,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아, 그래서 ‘괜찮아’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이다. (p.134)

 

 

이 책은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의 유고 산문집으로 책에 수록된 글들은 2000년 <내 생애 단 한번> 출간 이후 월간 <샘터>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다. 연재된 원고 57편 중에서 단행본에 수록할 것들을 가려내고, 중복되는 내용들을 정리했으며, 한 편 한 편 글을 다듬었다. 1년은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면서 한 경험이고, 나머지는 투병 중에 쉬었다가 일상생활로 복귀하면서 연재를 재개했을 때, 그리고 다시 연구년을 맞아 미국행을 포기하고 한국에 머물게 되었을 때의 일들이다. 그리고 또다시 투병 중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저자는 2001년 처음 암에 걸렸고, 방사선 치료로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2004년 척추로 전이, 2년간 어렵사리 항암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치료가 끝난 후 다시 1년 만에 간으로 암이 전이되었고 2009년 5월 9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원고는 이제 그녀의 마지막 글이 되고 말았다. 책에는 그녀의 평소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자칫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치우쳐질 수도 있는데 그보다 밝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해 암투병 중에 완성한 원고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그녀의 말마따나 희망이 가득하다.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해 견디기 힘든 아픔을 자신이 가진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킨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그녀는 없지만 그녀가 전하고자 했던 희망은 지금 이곳에 남았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용기와 희망으로 각자 삶의 기적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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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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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요시는 넋이 나갔다. 자기가 한 짓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할머니가 죽은 것은 분명했다. 피가 묻은 드라이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여기서 얼른 도망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만도 몇 초가 걸렸다. 허리 통증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츠요시는 드라이버를 다시 벨트에 차고 일어섰다.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보았다. 발의 중심이 바뀔 때마다 허리에서 등줄기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거의 기다시피 간신히 현관을 지나 양발만 신은 채 밖으로 나왔다. 해는 아직 높이 솟아 있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금목서 향기가 났다. (p.24)

 

츠요시의 범행 내용은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혼자 사는 노파의 집에 들어가 현금 백만 엔을 빼앗았지만 도주하려다 집주인에게 들켰다.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갖고 있던 드라이버로 찔러 죽였다. 하지만 허리에 지병이 있어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파출소 경찰관에게 발각되었다. 용의자가 오가타 씨 집을 노린 것은 예전 이삿짐센터에 근무할 때 그 집에 들어가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의자는 그 집에 부자 노파가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뉴스 캐스터의 말투나 신문 기사의 뉘앙스는 다케시마 츠요시를 냉혹한 살인마처럼 표현하고 있었다. 나오키가 보기엔 형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런 보도에 잘못된 애용은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정확하지 않았던 점이라면 범행 동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p.35)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기에, 나오키는 현재 상태로는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는 뭔가 힘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어떤 힘이건 상관없다. 뛰어난 재능이건 재력이건. 나카조 가문에는 그런 재력이 있다. 그걸 포기하는 것은 아사미에게 자기와 똑같은 고통을 강요하는 셈이다. 만약 츠요시 얘기를 숨긴다면. 나오키는 아사미에게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사미에게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사미를 공범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이전에 아사미는 그런 짓에 동의하지도 않을 것이다. 풍족하게 살아온 삶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사미는 모른다. 형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평생 숨겨야 한다. 마음속에서 그런 생각이 서서히 굳어지고 있었다. (p.233)

 

 

츠요시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동생 나오키가 걱정 없이 대학에 진학할 마음을 먹게 할 수 있는 돈이었다. 츠요시는 나오키가 대학 진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몰래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직장을 구하러 돌아다니면 형이 화를 낼 테니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하면서 몰래 직원 모집 공고를 모으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정기예금을 넣을 돈이 없다. 돈을 벌 일자리도 잃고 말았다. 이삿짐센터는 두 달 전에 그만두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재주도 없고,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자신 있는 거라곤 체력뿐이다. 그래서 그걸 살릴 수 있는 직장을 골랐는데 그게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몸이 망가지자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가난하다고 해서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탄식하고 기도를 해봐야 돈이 솟아 나올 리 없다. 그렇다면 내 손으로 뭔가 할 수밖에 없다.

 

형이 사람을 죽이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런 혐의를 받고 있을 뿐이지, 뭔가 오해가 생긴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실제로 전화를 건 사람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형이 모든 걸 자백했다고 천천히 말했다. 그 목소리가 나오키에게는 침착하다기보다 냉혹하게 들렸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오키는 전화를 건 사람에게 물었다. 형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죽였는지. 하지만 상대방은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은 다케시마 츠요시가 살인강도 용의자로 체포되었다는 사실과 그 동생에게도 묻고 싶은 게 있으니 경찰서까지 와달라는 이야기뿐 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몇 번째인가 경찰서에 나가 조사를 받을 때 수사관에게서 들은 ‘진짜 동기’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나오키의 심장을 꿰뚫었다. 동생의 대학 진학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였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형이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정신이 나갔다면 그 원인은 하나뿐일 것이다. 동생을 위해서.

 

국내에서 출간된 지 약 10년 만에 리커버 에디션으로 우리들을 다시 찾아온 <편지>. 도대체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 책은 그 흔한 반전이나 트릭 장치 하나 없이 그저 잔잔히 이어지는 이야기 하나만으로 대책없이 사람들을 책속으로 끌어당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살인 그 이후의 이야기. 죄를 지어 끊임없이 편지로 속죄하는 살인자, 죄는 없지만 끊임없는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살인자의 동생과 그런 동생을 불편해하는 사람들. 책은 한마디로 차별과 속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살인자를 가족으로 두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사회에서 가해자의 가족이 겪는 유무형의 차별과 편견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속죄의 범위에 대해 독자들에게 넌지시 물어온다. 살인자인 가족을 미워해도 될까. 차별이란 정말 나쁜 것일까. 속죄는 언제까지, 어디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일까. 결코 어느 것 하나 쉽게 답할 수 없다. 죗값을 치르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마 이 문제는 영원히 풀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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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국
정호승 지음 / 책읽는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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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러지 마. 세상은 서로 돕고 사는 거야.

손은 잡으면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줄 수 있지만,

자기 혼자 꽉 쥐고 있으면 남을 해치는 주먹이 되고 말아. (p.18)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외롭게 버려져 더 이상 아무 데도 쓸모없을 줄 알았으나 나는 곧 대웅전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 나는 주춧돌이 된 지 벌써 몇 백 년이 되었다. 몇 백 년 동안이나 산사의 지붕을 받치고 있어도 조금도 무겁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내 존재의 기쁨이다. (p.29)

 

“두려워하면 안 돼!”

나는 뒤집히려고 할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위험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곳은 없어.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가 하는 용기만이 필요한거야.”

나는 파도에 몸과 마음을 다 맡겼습니다. 그러자 가라앉지 않고 망망대해로 고요히 흘러갔습니다. 수평선 위를 날던 갈매기 한 마리가 나를 보고 빙긋 웃었습니다. 나도 그만 빙그레 웃고 말았습니다. (p.92)

 

송사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랫동안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멀리 있는 별들이 꼭 실개천에서 함께 살던 송사리와 피라미와 버들붕어와 모래무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내 소임이 무엇인지 알고 죽는 것만 해도 척 감사한 일이야. 세상에는 자신의 소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죽는 이들도 참 많지.’

송사리는 밤이 깊어질수록, 별빛이 빛나면 빛날수록 자신의 삶의 소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비록 맑은 실개천을 떠나 소 발자국에 고인 웅덩이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하더라도,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뜻있는 죽음이라면 그리 섭섭할 것도 없다 싶었습니다. (p.114)

 

 

 

“저는 사랑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를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쉽게 용서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가슴에 총알이 날아와 박혀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용서가 고통인 것은 사랑이 고통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사랑이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이 없는 사랑은 없다고 합니다. 사랑은 결국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은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사랑은 인간 삶의 절대조건입니다.” 정호승 시인이 그린 24편의 맑은 이야기는 사랑과 용서가 무엇인지 들려준다. 길가의 돌, 화분의 풀, 한겨울의 함박눈, 버려진 망아지, 숲속에 떨어진 한 조각 똥, 처마 끝의 풍경 등 비루하고 못나 보이는 것들의 시간 속에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곱게 끄집어낸다. 사랑은 참으로 슬픈 기쁨이라고 말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며 용서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동화의 방법으로 사랑을 이해하고 용서를 실천하기 위해 쓴 책이다. 이야기의 소재는 손, 풀꽃, 명태, 어린 대나무, 의자 등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 정말 별거 아닌데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제법 깊고 또 묵직하다. 상처와 사랑, 용서의 순환 과정을 상징적이고도 간결한 이야기를 통해 뚜렷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돌이 묵묵히 세월을 이겨내면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운 조약돌이 되듯이 이리저리 치이더라도 또 다시 사랑을 하면 아픈 마음이 치유되고 상처난 부위에 새 살이 차오른다. 슬픔 위로 사랑이 내려앉아 상처를 보듬어 앉는다. 사랑은 많은 것을 용서하게 만든다. 타인을 용서하고 과거를 용서하며 나를 사랑할 줄 몰랐던 어리석은 나를 용서하게 한다. 그래서 시인은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반드시 고통을 동반하는 사랑. 힘들고 아프기에 사랑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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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국
정호승 지음 / 책읽는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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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러지 마. 세상은 서로 돕고 사는 거야.

손은 잡으면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줄 수 있지만,

자기 혼자 꽉 쥐고 있으면 남을 해치는 주먹이 되고 말아. (p.18)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외롭게 버려져 더 이상 아무 데도 쓸모없을 줄 알았으나 나는 곧 대웅전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 나는 주춧돌이 된 지 벌써 몇 백 년이 되었다. 몇 백 년 동안이나 산사의 지붕을 받치고 있어도 조금도 무겁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내 존재의 기쁨이다. (p.29)

 

“두려워하면 안 돼!”

나는 뒤집히려고 할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위험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곳은 없어.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가 하는 용기만이 필요한거야.”

나는 파도에 몸과 마음을 다 맡겼습니다. 그러자 가라앉지 않고 망망대해로 고요히 흘러갔습니다. 수평선 위를 날던 갈매기 한 마리가 나를 보고 빙긋 웃었습니다. 나도 그만 빙그레 웃고 말았습니다. (p.92)

 

송사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랫동안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멀리 있는 별들이 꼭 실개천에서 함께 살던 송사리와 피라미와 버들붕어와 모래무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내 소임이 무엇인지 알고 죽는 것만 해도 척 감사한 일이야. 세상에는 자신의 소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죽는 이들도 참 많지.’

송사리는 밤이 깊어질수록, 별빛이 빛나면 빛날수록 자신의 삶의 소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비록 맑은 실개천을 떠나 소 발자국에 고인 웅덩이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하더라도,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뜻있는 죽음이라면 그리 섭섭할 것도 없다 싶었습니다. (p.114)

 

 

 

“저는 사랑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를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쉽게 용서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가슴에 총알이 날아와 박혀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용서가 고통인 것은 사랑이 고통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사랑이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이 없는 사랑은 없다고 합니다. 사랑은 결국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은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사랑은 인간 삶의 절대조건입니다.” 정호승 시인이 그린 24편의 맑은 이야기는 사랑과 용서가 무엇인지 들려준다. 길가의 돌, 화분의 풀, 한겨울의 함박눈, 버려진 망아지, 숲속에 떨어진 한 조각 똥, 처마 끝의 풍경 등 비루하고 못나 보이는 것들의 시간 속에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곱게 끄집어낸다. 사랑은 참으로 슬픈 기쁨이라고 말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며 용서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동화의 방법으로 사랑을 이해하고 용서를 실천하기 위해 쓴 책이다. 이야기의 소재는 손, 풀꽃, 명태, 어린 대나무, 의자 등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 정말 별거 아닌데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제법 깊고 또 묵직하다. 상처와 사랑, 용서의 순환 과정을 상징적이고도 간결한 이야기를 통해 뚜렷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돌이 묵묵히 세월을 이겨내면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운 조약돌이 되듯이 이리저리 치이더라도 또 다시 사랑을 하면 아픈 마음이 치유되고 상처난 부위에 새 살이 차오른다. 슬픔 위로 사랑이 내려앉아 상처를 보듬어 앉는다. 사랑은 많은 것을 용서하게 만든다. 타인을 용서하고 과거를 용서하며 나를 사랑할 줄 몰랐던 어리석은 나를 용서하게 한다. 그래서 시인은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반드시 고통을 동반하는 사랑. 힘들고 아프기에 사랑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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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
도상희 지음 / 뜻밖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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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발견의 눈’이 떠진 날. 평소 잘 다니지 않던 골목길을 걷다가 비에 젖은 아름다운 능소화를 봤다. 그것 하나로 이번 주말은 좋은 주말이 되었다. 장마에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는 의지를 보송보송하게 지켜낸 것, 땅만 보고 걷지 않고 두리번거릴 여백이 내게 남아 있는 것, 건강하게 두 다리를 딛고 서 두 눈으로 능소화를 본 것. 그 모든 게 고마웠다. (p.20)

 

삶은 노동, 작업,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스피노자가 말했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노동, 그 노동을 하기 전후로 씻고 챙기고 먹고 지하철에 타고 목적지에 가고, 내 방을 청소하고 이런 게 작업인데, 우리는 작업의 순간은 삶에서 없는 거고 그냥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고 목적을 위해 해치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순간들도 다 소중한 내 일상이에요. 나를 아름답게 천천히 씻기고, 느긋하게 콩나물 한 시간 다듬어 요리해 먹이고, 지하철에선 책도 노래도 없이 멍하니 나 자신과 있어보고, 이리저리 나와 놀아보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작업도 ‘활동’이 되죠. 즐거워서 하는 모든 것, 하고 싶어서 하는 창조 같은 게 활동이에요. (p.47)

 

거리에서 수십 명을 만났지만, 두려운 게 없다는 사람은 없었다. ‘두려움’을 ‘사랑을 잃는 것’으로 다시 정의한다면, 그건 곧 삶을 지탱해나가는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것을 꼭 하나씩은 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자세히 들여다볼 순 없어도 비슷하게 모진 하루를 보냈을 당신이, 완전한 타인인 당신도 나처럼 ‘사랑’ 하나로 산다는 이야기는 내겐 그 어떤 동화보다 아름다운 동화이자 위로였다. (p.71)

 

사람은 비슷한 부분에 이끌린다. 유난히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부는 사람, 뒷모습이 슬픈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이끌리는 건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결국 그들과 함께 있는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헤쳐 나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의 빈 곳을 메우려는 노력일 것이다. 내게 ‘구원자병’이라는 적확한 단어로 나를 도왔던 그 언니처럼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구원은 셀프다. (p.117)

 

 

 

스물하나에 고향을 떠나 혼자 올라온 서울.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도 오늘 하루 어땠는지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바다로, 독서 모임으로, 영화제 자원 활동 같은 이런저런 대외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만났다. 서울살이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워커홀릭, 금사빠로 불렸지만 그래도 외로움은 가시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와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엔 책을 펴들었다. 수많은 타인의 문장이 이불이 되어 저를 덮어올 때,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외로움과 맞서 싸우며 제 안에 쌓인 문장들은 가끔 일기로 터져 나오곤 했다. 대부분의 날들에 자신만을 위해 썼다. 일기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일기들이 블로그에 하나씩 쌓일 때마다, 그런 그녀의 글이 좋다는, 그녀의 글에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혼자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끄적였는데, 타인을 위로할 수도 있다니. 그렇다면 내 글쓰기는 이 불안한 생에서 겨우 완전해지는 일이겠다.’ 이 책은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한 사람의 완전해지려는 버둥거림이다.

 

 

‘입고 싶은 거 입으면 되지. 추고 싶으면 춤추면 되지.’ 자기 자신과 잘 노는 사람, 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인 사람은 바로 이 책의 저자 도상희. 이 책은 그녀가 홀로 살아온 세월의 기록이다. 대단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솔직하고 다정한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세상에 상처 받아도 기어이 세상과 또다시 사랑에 빠지고, 두 눈을 빛내며 자신이 반한 존재들에 대해 얘기하는 그녀는 일명 금사빠.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녀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게 좋다. 자신이 쉬이 반하는 사람인 게 좋다. 그래서 내일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사는 동안 이렇게 계속 반하고 싶다. 계속 반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면 좋겠단다. 그녀는 애써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두런두런 담아낼 뿐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런 모습들이 묘하게 눈길을 잡아끌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아낸 소중함이랄까. 어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이 소소하게 위로가 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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