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자국
정호승 지음 / 책읽는섬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제발 그러지 마. 세상은 서로 돕고 사는 거야.

손은 잡으면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줄 수 있지만,

자기 혼자 꽉 쥐고 있으면 남을 해치는 주먹이 되고 말아. (p.18)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외롭게 버려져 더 이상 아무 데도 쓸모없을 줄 알았으나 나는 곧 대웅전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 나는 주춧돌이 된 지 벌써 몇 백 년이 되었다. 몇 백 년 동안이나 산사의 지붕을 받치고 있어도 조금도 무겁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내 존재의 기쁨이다. (p.29)

 

“두려워하면 안 돼!”

나는 뒤집히려고 할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위험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곳은 없어.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가 하는 용기만이 필요한거야.”

나는 파도에 몸과 마음을 다 맡겼습니다. 그러자 가라앉지 않고 망망대해로 고요히 흘러갔습니다. 수평선 위를 날던 갈매기 한 마리가 나를 보고 빙긋 웃었습니다. 나도 그만 빙그레 웃고 말았습니다. (p.92)

 

송사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랫동안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멀리 있는 별들이 꼭 실개천에서 함께 살던 송사리와 피라미와 버들붕어와 모래무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내 소임이 무엇인지 알고 죽는 것만 해도 척 감사한 일이야. 세상에는 자신의 소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죽는 이들도 참 많지.’

송사리는 밤이 깊어질수록, 별빛이 빛나면 빛날수록 자신의 삶의 소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비록 맑은 실개천을 떠나 소 발자국에 고인 웅덩이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하더라도,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뜻있는 죽음이라면 그리 섭섭할 것도 없다 싶었습니다. (p.114)

 

 

 

“저는 사랑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를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쉽게 용서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가슴에 총알이 날아와 박혀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용서가 고통인 것은 사랑이 고통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사랑이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이 없는 사랑은 없다고 합니다. 사랑은 결국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은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사랑은 인간 삶의 절대조건입니다.” 정호승 시인이 그린 24편의 맑은 이야기는 사랑과 용서가 무엇인지 들려준다. 길가의 돌, 화분의 풀, 한겨울의 함박눈, 버려진 망아지, 숲속에 떨어진 한 조각 똥, 처마 끝의 풍경 등 비루하고 못나 보이는 것들의 시간 속에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곱게 끄집어낸다. 사랑은 참으로 슬픈 기쁨이라고 말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며 용서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동화의 방법으로 사랑을 이해하고 용서를 실천하기 위해 쓴 책이다. 이야기의 소재는 손, 풀꽃, 명태, 어린 대나무, 의자 등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 정말 별거 아닌데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제법 깊고 또 묵직하다. 상처와 사랑, 용서의 순환 과정을 상징적이고도 간결한 이야기를 통해 뚜렷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돌이 묵묵히 세월을 이겨내면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운 조약돌이 되듯이 이리저리 치이더라도 또 다시 사랑을 하면 아픈 마음이 치유되고 상처난 부위에 새 살이 차오른다. 슬픔 위로 사랑이 내려앉아 상처를 보듬어 앉는다. 사랑은 많은 것을 용서하게 만든다. 타인을 용서하고 과거를 용서하며 나를 사랑할 줄 몰랐던 어리석은 나를 용서하게 한다. 그래서 시인은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반드시 고통을 동반하는 사랑. 힘들고 아프기에 사랑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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