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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 에디션)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19년 4월
평점 :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There’s nothing that cannot happen today).’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 -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떠나간 애인이 “내가 잘못했어” 하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드디어 한반도가 통일되었다는 저녁 뉴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무심히 길을 걸어 가다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벽돌에 맞을 수도 있고, 아무리 믿기지 않아도 눈앞에서 110층짜리 고층 건물이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암’은 남의 이야기라는 듯, 잘난 척하며 살던 장영희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p.60)
나도 어렸을 때 주위 어른들이 겉모습, 그러니까 어떻게 생기고 어떤 옷을 입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때 코웃음을 쳤다. 자기들이 돈 없고 못생기고 능력이 없으니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 그렇다.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p.122)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p.130)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그래서 세상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느낄 때, 죽을 듯이 노력해도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내 마음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듣는다. 오래전 내 따뜻한 추억 속 골목길 안에서 들은 말 - ‘괜찮아! 조금만 참아,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아, 그래서 ‘괜찮아’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이다. (p.134)
이 책은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의 유고 산문집으로 책에 수록된 글들은 2000년 <내 생애 단 한번> 출간 이후 월간 <샘터>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다. 연재된 원고 57편 중에서 단행본에 수록할 것들을 가려내고, 중복되는 내용들을 정리했으며, 한 편 한 편 글을 다듬었다. 1년은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면서 한 경험이고, 나머지는 투병 중에 쉬었다가 일상생활로 복귀하면서 연재를 재개했을 때, 그리고 다시 연구년을 맞아 미국행을 포기하고 한국에 머물게 되었을 때의 일들이다. 그리고 또다시 투병 중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저자는 2001년 처음 암에 걸렸고, 방사선 치료로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2004년 척추로 전이, 2년간 어렵사리 항암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치료가 끝난 후 다시 1년 만에 간으로 암이 전이되었고 2009년 5월 9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원고는 이제 그녀의 마지막 글이 되고 말았다. 책에는 그녀의 평소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자칫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치우쳐질 수도 있는데 그보다 밝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해 암투병 중에 완성한 원고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그녀의 말마따나 희망이 가득하다.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해 견디기 힘든 아픔을 자신이 가진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킨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그녀는 없지만 그녀가 전하고자 했던 희망은 지금 이곳에 남았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용기와 희망으로 각자 삶의 기적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