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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는 정원 -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가 정원에서 살아가는 법
오경아 지음 / 샘터사 / 2019년 6월
평점 :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모양대로 사는 것처럼 시골의 삶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꼭 도시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있다. 인구의 절반이 서울 수도권에서 모여 살고 그 가운데 80% 이상은 공동주택에서 생활한다. 굳이, 인구가 몰려서 생기는 단점을 구구절절 읊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시골 삶에 막연히 겁이 난다면 살다 보면 살아질 일이라고, 불편하고 힘들어서라면 가치 판단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으로 내가 추구하는 삶의 질은 어디에 있는지, 흐린 하늘 밑에서 내가 보는 하늘색이 정말 이러할지, 한 번쯤은 꼭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P.25)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속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폭언과 충고를 서슴지 않고, 상대방이 받을 상처나 고통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동료와 경쟁해야 하고, 가까운 친구에 비해 뒤처지는 건 아닌지 초조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식물은 조용하고 단순하게 산다. 경쟁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지향하지 않는다. 식물의 삶을 들여다보면 관계에서 생기는 상처와 불안, 집착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P.34)
가끔은 나 자신에게도 물을 때가 있다. ‘정원이 뭐길래, 이렇게 좋은 걸까?’ 어쩌면 그 질문의 대답을 ‘무용’한 아름다움을 말했던 다윈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거창하게 다윈의 이론까지 빌려와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색의 꽃이 피어나고, 잘 정리된 정원을 보는 것 자체가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그리고 아무 조건 없는 이 행복을 다른 이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 (p.52)
먹고살기도 힘든데 정원은 무슨 정원이냐고, 하면 그 말도 맞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먹고살기 힘들어 정원을 못 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본 동유럽의 주부들은, 고등어 한 마리를 사면서도 식탁에 놓을 꽃다발을 잊지 않는다. 정원을 만들고 식물을 가꿔야만 반드시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들여다보며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의 굴곡 앞에서도 좀 더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 역시 아직도 정원 만들 땅이 없어 공중에 매달려 살고 있지만, 계속 꿈을 꾼다. 식물과 곤충 그리고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초라하지 않을 행복한 나의 모습을. (p.106)
“내가 바라고 꿈꾸는 삶은 정원 그 자체가 아니다. 정원이 우리 삶에 스며들면 삶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나는 정원이 우리 삶을 좀 더 건강하고 품위 있게 만든다고 믿기에 그 소중한 변화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이 책은 한때 방송 작가로 일하던 저자가 방송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떠나 8년간의 긴 유학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속초 생활을 시작한 2014년부터 쓰기 시작한 글을 모은 것으로, 150년이라는 시간을 간직한 한옥집을 수리하고, 소 키우던 축사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마당을 정원으로 바꾸며 고향도 아닌 이곳에 뿌리내린 가족의 시골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속초에서 정원을 가꾸며 식물로부터 얻은 위로와 치유의 순간들, 식물의 생존 전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우리 삶의 지혜와 태도, 그리고 가드닝의 다양한 정보까지 식물의 삶의 태도를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깊어진 삶의 변화가 곳곳에서 배어난다.
시골 생활은 아무래도 일이 많다. 단열이 잘 안 돼 춥고, 청소하기에도 불편하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시골 생활의 불편함이 도시에서 겪는 일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도시에 살았던 16년 동안 매일 출퇴근길에서 차들이 내뿜는 매연 탓에 창문도 열지 못하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져대고 어쩌다 퇴근이 늦어지면 아파트 주차장은 이미 빈틈이 없었다. 대체 차를 어디에 대고 들어가야 하는 건지 주차장을 서너 바퀴씩 돌 때면 한숨이 폭폭 나왔다. 간단하게 파 한 뿌리 사 오면 될 일인데, 차를 몰고 대형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넓은 매장 안에서 파를 고르고 줄 서서 계산을 마칠 때면 동네 슈퍼가 사라진 게 가슴 아플 지경이었다. 이런 저자에게 시골에서의 생활은 두말할 것도 없이 힐링 그 자체였다. 처음엔 괜한 결정을 했나 후회하기도 했지만 이내 즐거움이 생겼다.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
초록이들이 내뿜어대는 피톤치드는 신경을 안정시킨다. 그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분노가 가라앉는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반복하며 땅에서 자라나길 여러 번 질고 질긴 생명들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그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여유를 갖는다. 식물과의 소통, 별거 아닌듯 하지만 그 작은 몸에서 뿜어대는 에너지는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주기도 하면서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들에게 스며든다. 자연에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언제나 순수하게 날 것 그대로 우리와 마주한다. 이게 바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도시 생활이 힘들었던 저자는 시골에서 삶의 답을 찾았다. 그녀는 말한다. “자연은 우리 곳곳에 삶의 힌트를 숨겨놓았다”고. 그러니 “지금 당신의 몸이, 마음이 아프다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되돌아볼 때”다. 태풍에, 가뭄에, 강풍에, 사람에 의해 쓰러지고 갈라지고 부서지고 모든 나무는 저마다의 시련을 끌어안고 산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저자가 정원을 돌보며 깨달은 진실 하나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필터’로 자기 삶을 통과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거치며 노화된다는 것이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고 우리는 그것을 딛고 성장한다. 오늘 하루 잠깐 자연속에서 몸과 마음을 힐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꽃, 나무, 바람, 구름, 물 등 가만히 자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