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 글읽는 사람 - 과학적으로 읽고 논리적으로 쓴다, 텍스트 메커니즘
구자련 지음 / 다섯번째사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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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구조를 영문에 비교해 이해를 돕는 부분이 신선했다. 한글이나 외국어나 구조는 있기 마련이다. 문법이 있어야 글의 논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 뇌에 입력되는 형태를 띤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말마따나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도 모두 구조 중심으로 글을 파악해야 직접 글을 쓸 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텍스트란 결국 이해를 얼마다 쉽게 돕느냐, 그러나 그 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느냐를 다룬다.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어휘를 깃들인다면 어떻게든 이해시키는 데 성공할 수는 있다. 물론 지루해서 그걸 그만 두는 최악의 경우도 있겠지만, 하고자 한다면 융단 폭격급으로 어휘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이해의 틈을 지속적으로 메울 수 있다. 하지만, 텍스트란 효율을 지향한다. 간단하면서 한 번에 이해하는 방향이 텍스트가 있는 이유다. 몸짓, 그림으로 설명한다고 가정한다면, 어지간한 내용은 이해시킬 수 있어도 시간이 엄청 많이 소요된다. 그런 점에서 효율을 배제할 수 없는 텍스트는 글쓰는 사람과 글읽는 사람 간의 약속을 전제 하에 움직인다. 작문만이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읽고나서 바로 이해하는 역량이 어쩔 때는 더욱 중요하다. 상대가 엉망진창으로 쓴 글, 대부분 기술서라든가 멋있어 보이려고 엉뚱한 어휘를 다량으로 나열한 글을 대할 때는 그 사람의 글쓰는 방법과 의도를 꿰뚫어야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 생각보다 그런 글이 세상에는 많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어휘를 잘못 쓰거나 쉼표를 잘못 찍으면 이해가 전혀 안되는 글이 그렇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사례는 저자가 앞부분에서 설명한 글의 구조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분석하고 있어 함축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어서 의미가 깊다. 논리적인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글읽기와 상당히, 어쩌면 근본적으로 다른 뇌 기능을 요하는지 모른다. 인식과 응용이라고 해야 옳을까. 안다고 다 아는게 아닌 게 바로 글읽기와 글쓰기의 연결이다. 많은 책을 읽을 수록 소재와 어휘가 풍부해져 유리한 점은 있지만, 역시나 직접 써보지 않고는 그 지식은 읽기에만 유용한 지식으로 남는다. 빠르게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유리한 이점을 지닌다. 이 책을 통해 글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글의 구조를 알고 다시 글을 써보며 변화된 기술과 이해력을 체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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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 순수 저항 비판
조지 A. 던 외 지음, 윌리엄 어윈 엮음, 이석연 옮김 / 한문화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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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을 철학으로 풀어내는 과정, 19명의 저자는 즐거움과 비통함의 연속이었으리라 예상한다. 영화는 극단적 상황 속에 24명의 소년소녀가 서로를 죽여가는 과정을 잔인하게 담아내고 있다. 책과 영화 모두 비정한 연출에 관객 유입력을 한껏 발휘하고 있지만, 어지간한 종말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정경을 우리가 맞이하리라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현재 아프리카, 북한, 각종 정신나간 수준의 독재국가(어떠한 국가적 이점 없이 오로지 본인들 편의와 부 축적을 바라마지 않는)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아동 혈투는 없으니 말이다. 책은 일단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요, 상황에 따른 이성마비로 감정에 휘둘리는 짐승, 그리고 우매한 대중으로 살아가는 부정적이지만 그렇다고 틀렸다라며 지적할 수 있는 그림을 제시하진 않고 있어 슬프리고 했다. 책의 논리보다 이 영화를 다시 풀어나가는 과정은 사실 독자의 몫이지만, 이미 이러한 과정을 19명의 저자가 해놓은 탓에 그냥 끄떡이며 읽을 수 있었다. 헝거 게임은 파리대왕의 사회 구조화 버전이 아닐까 싶다. 파리대왕은 섬이라는 제한적 상황에서 어른의 통제 없이 자발적으로 자행되는 살인 게임이다. 아마 모티브는 이 책에서 얻지 않았을까. 책의 결론 부분에서 어른을 맞이하는 아이들이 다시금 순박한 모습으로 울어대며 천연덕스럽게 아무일 없었던 듯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정도로 어리진 않지만, 아이들도 충분히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 수는 있다. 역사적으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중국의 홍위병은 피세뇌 대상이 아이들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부터 심지어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자신의 부모를 고발하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총과 칼로 부모를 공개 처형했던 게 역사적 기록이다. 아이들은 이성을 마비하면, 어른 못지 않게 무서운 무기로 변한다. 어찌보면 어른보다 더욱 무섭다. 세뇌를 씻어내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칠 수 없기 때문이다. 헝거 게임을 보며, 아프리카에서 마약을 먹고 부모를 죽이라고 시켜대는 반군 세력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총으로 아무에게나 난사하고 영혼없는 눈으로 삶을 산다. 그리고 똑깥은 패턴으로 삶을 마감한다.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이 바로 이 책이, 그리고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던지려한 물음이 아닐까. 흥미로운 책이었다. 철학은 어디서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우리는 반드시 이성적인 존재여야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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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겹으로 만나다 - 왜 쓰는가
한국작가회의 40주년 기념 행사준비위원회 엮음 / 삼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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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지하철 곳곳에 시가 등재되고 있다. 일반인의 참여로 문단이 점차 풍성해지는 인상이 들어 굉장히 흡족하다. 그런 식으로 시를 접하다가 하나둘 시를 외우게 되었고, 시의 운율에 관심이 생겼다. 영문 시는 읽다보면 어휘 감각이 현지인급이 안되다보니 와닿는 감이 너무 낮았다. 반면 일본 시는 우리 나라처럼 읽기는 쉽지만, 후렴구라든가 단어 속에 담긴 중의적 표현을 완벽히 알아채기 어려웠고, 결국 한국 시를 뒤늦게 만났다. 이 책은 시를 쓰는 사람의 만남이 만들어낸 작품집이다. 한국 시가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 내게는 이러한 시가 모두 새롭고 신비롭다. 학창 시절에 배운 시는 잊은지 오래라 보면 알겠지만, 머리 속에 남은 게 많지 않다. 시를 읽다보면, 정서가 다채로워지는 풍성한 감각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정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조금 지루할 때도 솔직히 있지만, 읽으면서 음미하다보면, 왜 시인이 그런 어휘를 썼는지 추적해내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같은 내용이라도 시는 행을 바꾸기만 해도 다른 느낌이 나온다. 추상적이면서 리듬미컬한 시가 왜 창의력을 자극하고 창의력을 확대하는지는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것 같다. 만약 시를 한국인이 아닌 다른 국가의 사람이 읽는다면, 내가 일본과 영어 시를 읽었을 때 느꼈던 감각과 동일할 듯하다. 그런 점이 내가 여지껏 시를 읽는 걸 가로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는 넓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작은 국가이고 언어 용적도 크지 않다. 시를 음미하고 갖고 놀기에는 글로벌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오판을 했기 때문에 이제서야 시를 만났다. 크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유는 시는 짧아 익히려면 큰 시간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를 음미할 정도로 감각이 풍성해져야 어휘가 아닌 감정으로 시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읊으며 삶을 마감하는 영화 속 장면을 보자면, 시의 에너지는 상당한 듯하다. 그 사람의 인생을 한 번에 정리하는 함축력이 있어서 그렇다. 이번 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를 읽고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동기를 얻었다. 스티브잡스가 시를 읽으며 창의력을 다듬었듯, 시를 환기 차원에서 활용하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시각의 자유를 더욱 고양하고자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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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진짜 내 편을 찾는 우정의 심리학
칼린 플로라 지음, 강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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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항상 우리를 기쁘게도 아프게도 만든다. 관계라는 건 단속적이지 않다. 네트워크의 각 점이 고립되어 있는 상태도 종종 있지만, 대개는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태생적으로 적어도 몇 개 이상의 연결 고리는 갖고 태어나며, 깊이 있는 관계는 태생적 연결 고리 외에 스스로 만든 관계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우연과 필연을 넘나들며 만들어진 네트워크 속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국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개인은 다른 개인과 소통하고 연결된 채로 삶을 살아간다. 깊이 있는 관계는 우리 인생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경험이자 연속적 성장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그 관계는 그 사람에게 그치지 않고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경계하는 데까지 뻗어나간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 고민되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라는 대목에서 무릎을 탁 지는 명쾌함을 얻을 수 있었다. 만나서 고민할 바에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는 결론으로 한 친구를 만나지 않기로 어렵게 결정했다. 이 점을 뒷받침해주는 저자의 의견에 고마움을 느낄 정도로 만족스럽다. 적어도 깊은 관계로 신뢰가 가능한 친구가 있다면 그는 부자라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내가 과연 존재했을까 싶을 정도로 임팩트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상당히 높은 기준을 제시하는 친구가 불편할 때도 있겠지만, 저자는 반드시 그런 친구가 주변에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며 불편을 불편으로 느끼지 말 것을 권한다. 동의한다. 그저 편안한 친구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이처럼 건전한 자극을 주는 친구도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 기준점은 잘난 척이 아니라 나도 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어일으키는 친구라고 보면 되겠다. 날씬해지고 싶으면 날씬한 친구를 만나는 게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접근법 아닌가.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면 공부에 의욕적인 친구를 만나는 게 옳다는 방증이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친한 사이일수록 더욱 신뢰에 신중을 기하라고 한다. 친하다고 함부로 대하다가는 어느 순간 감정의 골에 빠져들고 만다. 이런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체험한 바다. 친할수록 더욱 공손히, 그리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그 관계가 더욱 발전한다. 저자의 인간 관계론에 힘입어 보다 넓은 마음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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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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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심에 대한 극한적 실천을 추구하는 저자의 결연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길들여지지 말라고 당부 이상의 강한 어조로 충고한다. 일본 가정이 한국 가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수동적 역할 수용이 드라마에서 자주 드러난다. 아마 이런 배경 하에 자신의 태생적 배경과 한계에 길들여지지 말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가 싶다. 물론 의견 전달은 확실히 되었지만, 한국 정서에는 다소 오해를 낳기 쉬운 면도 없지는 않다. 직장에서도 길들여지지 말라는 건 정말 크게 동감하는 바다. 안정의 맛을 한 번 보고 나면, 결코 도전하기가 녹록지 않은 상태에 빠져든다. 자립은 도전에서 비롯되며 자립을 유지하고 순수한 자립에 성공한 자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또한 엄청나게 고개를 수직으로 흔들게 만드는 옳은 이야기다. 나이를 탓하기 이전에 자신이 얼마나 안일한 일상에 젖어버렸나 깊이 있게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유한한 삶을 방탕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짚어보는 계기가 이 책의 저자로 말미암아 가능해졌다. 젊을을 죽이지 않는 방법은 역시 자립심이 아닐 수 없다. 투쟁은 사실 도처에 깔려있다. 도박, 술, 유흥 등으로 비생산적 시간 손실이 발생하고, 여기서 목표로부터 멀어지는 좋지 않은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터넷 세계에 빠져 있는 젊은이에게 경종을 울리는 저자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방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한 채 인터넷 세상의 가상적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일본에도 적지 않지만, 한국에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PC방에 콕 박혀서 6개월이고 1년을 게임만 하는 연예인도 여럿 있어왔다. 살아 있는 우리가 가장 아껴야 할 건 생체적 젊음이 아니다. 유혹과 정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립을 유지하려는 극기, 이것이 언제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하다가 그만 세파에 밀려 잊고 했던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일찍이 작가로서 성공을 맛본 마루야마 겐지의 이야기는 비록 지나치게 강한 어조가 약간 단점으로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머리와 가슴에 각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의 어조를 받아들이면서 그의 자립심에 대한 열의를 느껴볼 수 있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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