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김성중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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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낭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이 떠들어대는 허황된 꿈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낭만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낭만은 우리 삶 가까이에 늘 존재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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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김성중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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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는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빅데이터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감성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디지털 시대에 "19세기 아날로그 감성이 웬말이냐"고 비난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지금은 사회 주도 세력이 아날로그 세대가 아닌 디지털 세대인 점을 감안할 때 더 세찬 비난의 화살이 날아와 꽂힐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대 사회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낭만이란 주로 우리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지극히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사랑이나 연애, 온전히 자연 상태를 유지하는 곳에서나 어울리는 단어로서 지금은 어쩌면 '꼰대'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을 것들에 대한 향수를 의미하는 단어로서 조금 더 지나면 언어박물관에 고어(古語)로 틀어박힐지도 모른다.

디지털 혁명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게 진전된다는 것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지금의 아날로그 세대가 생을 마칠 즈음엔 낭만의 의미도 바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지금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 불린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이 차세대 산업혁명에는 기술의 발전이 장밋빛 미래를 선사할 거라는 인류의 낙관적인 기대와 전망이 담겨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물질의 풍요가 인간적인 삶, 정서적인 풍요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쩌면 MZ세대마저도 정서적인 풍요와 디지털은 대조적 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의 혜택으로 누리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그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걱정이 존재하고(특히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스마트폰의 유용함은 인간 대 인간 사이의 진정한 만남에 장벽이 되기도 한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간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들의 마음은 팍팍하고 메마르고 불안함으로 가득하다. 물질적인 욕망을 가득 채워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며, 유행과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뒤처진 듯 느껴지는 삶은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정서적 빈곤을 겪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낭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영문학자 김성중 교수는 이 책에서 산업혁명을 계기로 대영제국이 확장일로를 겪었던 19세기의 상황과 4차 산업혁명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점을 찍은 21세기의 상황을 오버랩한다. 인간 본연의 감성에 충만한 삶, 자연 속에서 인간성 회복의 실마리를 찾았던 ‘낭만주의’는 19세기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인간 정서의 메마름에 대항하고자 등장한 문예사조다. 그때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오늘날에도 당시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이 부르짖었던 ‘낭만과 감수성’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잊고 있던 낭만적 마음이 다시 삶에 가득해질 때, 비로소 일상은 조금 더 평안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정보 검색에서부터 영화 예매, 주문 배달, 은행 업무까지 모든 것이 자리에 앉아 상대의 얼굴을 맞대지도 않고 처리한다. 또한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의 상용화, 반려 로봇 등 발전한 과학 기술의 혜택을 일상 곳곳에서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엔 그 눈부신 아름다움만큼 깊고 짙은 그림자도 함께하는 법이다. 눈부신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편리함과 속도감에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배송 배달이 조금만 늦어져도 답답해한다. 대면 만남은 물론이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와 소통하는 것마저 이제는 왠지 낯설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시공간의 제약 없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지만, 반면 내 삶을 다른 누군가의 삶과 비교하며 한없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다움을 드러내기보다 과시적 소비를 하게 되거나 대세나 유행을 쫓게 된다. 이 때문에 가끔은 그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요와 발전의 시대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팍팍하고 메마르고, 불안으로 가득하다. 이는 사실 아날로그 세대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사회 구조가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이 일상처럼 바뀌자 이른바,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다.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 재택공부, 비대면 일상 시스템으로 변경되자 갑자기 나타난 병리 현상이다. 아날로그 세대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세대에게 이 코로나 블루는 더 심하다는 게 의학계 중론이다. 아마 아직은 우리 사회가 완전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지 못하고 길목에 들어서 있는 상태라서 감정적 빈곤으로 오는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첨단기술은 우리에게 편리와 속도를 가져다준 대신, 따스한 감성과 친밀감을 앗아갔다는 말이다.

 


 

이 책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의 저자 김성중은 이처럼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서적 빈곤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낭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프롤로그 「낭만이 필요합니다」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중심의 세계관을 둘러싼 낙관과 절망이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낭만’을 우리들 삶 가운데로 다시 불러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산업이 발전한다고 해서 인간의 정신과 정서가 그에 비례해 더불어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정신과 정서는 산업의 발전에 반비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의 마음은 미래보다는 과거의 일들을 생각할 때 편안해집니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자간 일들을 회상할 때 우리의 마음은 한결 더 여유롭고 푸근해집니다. 19세기 영국 작가들이 산업화로 인해 삭막해진 사회의 살풍경에 참담해 하고 사람들의 정서를 다독이며 했던 이야기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정서와도 충분히 공명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희로애락애오욕에서부터 자유로운 삶을 향한 갈망, 아름다운 것에 대한 매혹, 인생의 무상함과 회한을 극복하고 싶은 심정, 그리고 자연에 대한 동경까지…, 이 섬세하고 다양한 감정들은 오직 인간만이 느끼고 추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 감정들을 오롯이 향유할 줄 아는 삶을 ‘낭만적인 삶’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는 시절이 온다고 해도,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삶에 부여된 낭만성을 놓치지 않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p.10~11)

 


 

책에 따르면 증기기관의 발명이라는 기술의 격변으로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시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다. 하지만 산업화의 이면에는 농촌의 피폐화, 도시 빈민의 발생, 대량생산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들의 비인간적인 착취 등 갖은 사회문제들이 존재했다. 무참히 짓밟혔던 아동 인권과 영국 중산계급에 만연했던 물욕 등, 당시 영국 사회에 만연했던 부조리와 병폐는 당대의 예술가들로 하여금 산업혁명 이전의 과거로 회귀하게 만들었다.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예술가들은 중세를 동경하고, 자연에서의 단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했다. 이들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마음의 안식처로 삼았다.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에는 사랑, 순수, 자유, 감수성, 아름다움의 가치에서부터 자연에서의 삶, 고독의 즐거움, 삶의 덧없음을 관조할 줄 아는 시선에 이르기까지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이 설파했던 주요한 가치들이 소개되어 있다. 시 작품도 빠질 수 없다. 저자는 “요즘에는 삶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달뜬 감정에 취해 시를 낭송하는 사람도, 시집을 사서 들여다보는 사람도 찾기 어려워진 것 같다. 하지만 효율과 성취만을 강조하며 바삐 돌아가는 세상사의 한가운데에서 시 한 구절이 건네는 위안의 힘을 놓치고 살기엔 시는 너무 아름다운 장르다.”고 강조한다. 영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인 퍼시 셸리의 말을 빌리자면, 시는 “친숙한 대상을 마치 친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즉, 너무나 친숙한 나머지, 우리가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시인은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한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자면 시를 통해 아름다움을 가렸던 장막이 벗겨짐으로써 일상 속에 숨은 새로운 미를 평범한 사람들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연구했던 저자의 안내를 따라 윌리엄 워즈워스, 로버트 번스, 존 키츠, 윌리엄 블레이크, 조지 고든 바이런,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알프레드 테니슨, 새뮤얼 콜리지, 샬롯 스미스, 메리 로빈슨 등 영문학사에 그 이름을 남긴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들을 음미하다 보면 각박해진 우리 삶은 어느새 생기로 가득 채워진다. 200여 년 전 영국이라는, 지금의 우리와 전혀 다른 시공간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이유는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뀐다 하더라도 인간 본연의 정서를 오롯이 누리며 사는 낭만적 삶의 가치는 불변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들은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도 지극히 낭만과 감성을 추구했던 ‘로맨티스트’ 들이었다. 조지 고든 바이런은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난관과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정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 독립 전쟁에 출전하기도 했다. 존 키츠는 시인이 되고자 했던 자기 안의 소망을 내려놓지 못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예술적 열망을 따랐다. 그 결정은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라는 명제의 생생한 사례이고, 그의 이름은 영문학사에 영원히 아로새겨졌다.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에서의 고요하고 소박한 일상 가운데에서 삶의 진실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작해야 눈높이에 맞는 현실만을 응시하고 있을 때 고개를 들어 눈부신 별들을 바라보며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기도 했다.

 


 

모두가 ‘변화’만을 외치고, 대세와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듯한 조급함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 ‘나다움’에 집중하는 삶을 원한다. 하지만 대부분 현실의 벽이 이를 가로막고, 우리는 적당한 삶에 안주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문한다. "나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 눈앞의 현실을 위해 닫아둔 내 진정한 모습을 해방하기 위한 열쇠가 바로 ‘낭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낭만은 도피가 아니라 내가 삶에서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되짚는 또다른 여정이다. 이른 새벽 교요한 숲으로의 산책처럼, 늦은 밤 훌쩍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처럼,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잊었던 나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라도 마음속에 ‘낭만’을 품고 있으니까.

“영국에서는 밤에 네온사인 불빛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덕분에 영국의 밤은 고요하고 정겨운 느낌이 듭니다. 해가 저문 밤에는 자연 그대로의 어둠을 빛으로 방해하지 않고 오롯이 누릴 줄 아는 영국의 감성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밤하늘을 빛으로 물들이지 않는 영국인들의 태도는 사뭇 낭만적입니다. (…) 어두운 한밤에도 넘치는 빛 가운데에 서 있는 인간은 더 이상 하늘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별빛에 가닿지 않죠. 아니,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휘황한 지상의 빛에 온통 시선을 빼앗겨버렸기 때문이죠. 우리가 다시금 회복해야 하는 감수성과 낭만은 문명의 강령한 빛이 압도하고 있는 밤하늘에서도 여전히 희미하게나마 반짝이는 저 별빛과 함께 빛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 에필로그 「낭만적인 삶을 위하여」 중에서

 

저자 : 김성중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해 동대학 석사를 마쳤으며, 미국 네브라스카 주립대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의 요크(York) 대학과 카디프(Cardiff) 대학에서 방문교수로 활동했으며, 《윌리엄 워즈워스 다시 읽기》를 출간했고 번역서로는 《목요일이었던 남자》가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영문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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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경제학자들 - 그들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EBS CLASS ⓔ
류동민 지음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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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에서 레옹 왈라스, 마르크스에서 민족 경제학자 박현채까지... 경제 사상사 뼈대를 읽는 즐거움과 지금 여기의 현실을 비추는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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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경제학자들 - 그들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EBS CLASS ⓔ
류동민 지음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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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9명의 경제학자들』은 “왜 오늘날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저자 류동민의 집필 취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서문인 「책머리에」에서 "경제학의 역사는 의외로 경제학계 내부에서의 관심과 대중적 관심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존재하는 영역이다"라는 전제를 내세운다. 하지만 경제학이나 경제사상의 역사 혹은 유명한 경제학자의 생애에 관한 책들이 아직도 계속해서 출간되는 것은 독자들의 수요에 따른 것으로 판단한다면 경제학의 역사는 지나치게 푸대접을 받는 데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저자는 이 푸대접의 원인은 경제학이 엄밀한 과학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어느 정도는 착각에 기초한 자부심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틀린 이론을 공부할 여유나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한다.

반면 경제 문제를 이해하고 싶지만 현대 경제학의 복잡한 언어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사람에 대한 관심, 즉 무엇보다도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경제 원리의 발견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등이 대중적 관심 때문이라는 이유도 열어두고 있다. 이런 상황은 경제학의 실존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점도 언급한다. 저자가 고심 끝에 찾아내고 펼친 '재현의 경제학', '네러티브로서의 경제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홉 명의 경제학자는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삼의 진실',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찾지 못한 것'들을 재현하는 내러티브로 남기고자 했다는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 문제란 우리가 먹고살면서 생겨나는, 바꿔 말하자면 먹고살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총체다.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경제 문제들을 요령 있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 즉 내러티브(narrative)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수요곡선이나 공급곡선이 뭔지 몰라도 누구나 하루에 몇 번은 상품 거래를 하면서 살아간다. 경제 문제는 늘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되고 있다. 경제학이나 경제학자가 하는 일은 그것을 다시 한 번(영어의 접두사 're'가 의미하는 바) 드러내는 것, 즉 레프레젠테이션(representation)하는 것이다. 레프레젠테이션은 보통 재현으로 번역된다. 재현의 경제학과 네러티브로서의 경제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어 "삶에서 겪는 다양한 사건과 감정, 생각 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중요한 특징"이라고 언급하고, "문학이나 예술에서처럼 각자의 형식으로 재현을 추구하지만 우리가 겪는 일의 감정이나 생각을 하나도 빠짐없이 백과서전처럼 풀어 쓴다고 해서 좋은 재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보다 더 세밀하게 초상화를 그려준다고 훌륭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포인트가 색채이건 빛의 움짐임이건, 그 이전의 화가들이 놓쳤던 부분을 창조적으로 드러낼 때 그것은 비로소 예술이 된다"고 설명한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일 겪는 경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대하소설 쓰듯 몇천 페이지로 기술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경제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경제학을 배우는 첫 번째 목적은 세상의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 여기의 삶을 지키기 위해 역사 속 오래된 생각들을 소환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 경제학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인 저자가 사회과학적 문제의식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다시 쓴 경제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애덤 스미스에서 레옹 왈라스, 마르크스에서 민족 경제학자 박현채까지 경제 사상사 뼈대를 읽는 즐거움과 지금 여기의 현실을 비추는 생생함, 체계 바깥에서 체계를 생각하는 메타(meta)적 사고를 통해, ‘재현의 경제학’ ‘내러티브로서의 경제학’를 선보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애덤 스미스, 리카도, 맬서스와 밀, 마르크스, 레옹 왈라스. 케인스, 레딘, 그리고 박현채까지 어쩌면 현대인의 물질적 삶과 그것에 얽힌 생각의 얼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홉 명의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이 책은 각각의 경제학자들이 자신이 살던 시대의 경제 문제를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재현하려 했는지, 그들이 최선을 다해 극복하려 했던 점들은 무엇인지,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삶의 진실, 역사가 기억하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찾지 못한 것, 찾아냈다고 믿었던 것 혹은 믿고 싶었던 것을 추적한다.

 


 

책에 따르면 재벌 기업들이 자금을 대는 신문사에서 법인세 인상을 반대한다거나, 건설 사주가 오너인 언론사가 은근히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보도를 내보내는 경우는 흔하다. 물론 논리는 매우 공익적이고 중립적인 듯한 외양을 취하지만 그 속내는 특정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체계 바깥에서 체계를 생각하는 메타(meta)적 사고를 통해, 지금 여기 ‘나를 위한 경제학’을 찾는다. 경제학적 재현에도 언어의 불완전성 문제는 존재하지만 경제학에는 그 너머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경제학은 물질적인 삶, 즉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학문이다. 그러다 보니 얽혀 있는 사람들마다 이해관게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경제학이 재현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면 과연 객관성을 갖춘 과학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재현의 방식과 재현자의 관점에 따라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주장이들이 양립한다는 것, 그것이 단지 순수 논리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 이른바 '메타적 사고'를 하는 것, 말하자면 체계 바깥에서 체계를 생각하는 것이먀말로 오히려 경제학이 사회과학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독자는 경제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한 사람으로서 교양 차원에서 경제학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근대적 의미의 경제학자는 애덤 스미스, 나라로는 영국, 저서로는 『국부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처음으로 발전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 그 출발점을 이루는 인물이 애덤 스미스이고, 그의 대표 저작이자 경제학의 역사에서 손꼽히는 고전이 『국부론』이다. 1776년은 『국부론』이 출간된 해이고, 신대륙의 미국은 이제 독립선언을 한 나라가 된다. 포물선의 꼭짓점에는 데이비드 리카도가 있다. 1817년은 그의 대표적인 저작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가 간행됐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모양을 취하는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경제학에 밀려나기 때문이다.

포물선의 마지막쯤에 존 스튜어트 밀이 위치한다. 1848년은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가 출간된 해이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왔다. 저자 류동민은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영국인이었고, 이는 고전학파가 때로 영국 고전경제학이라 불리는 까닭"이라고 말한다. 이 시기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가 마무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최초로 본격화한 시기로, 그 현장에서 근대경제학이 꽃 피웠다는 점을 저자는 언급한다. 이때 마르크스는 "인간의 해부는 원숭이의 해부를 위한 열쇠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경제가 가장 발전한 사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학이 나오는 것은 일종의 경험 법칙이라는 의미를 설명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경제학의 중심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아간 것도 이러한 경험 법칙이 여전히 들어맞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한다.

 


 

독자가 이 책을 굳이 읽었던 이유는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고(故) 박현채 경제학자 때문이다. 또 그의 생애와 그가 썼던 경제학 저서 『민족경제론』에 대해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는 드라마틱한 점이 있고, 사회주의적 기본 토대를 갖고 있는 『민족경제론』이 우리 나라의 근대 경제학 저서의 효시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인 것 같다. 박현채는 1934년에 출생한(1995년 작고)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로서 백과사전에도 올라 있다. 그는 1950년에서 1952년 사이 빨치산 소년돌격부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지리산·백아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당하기도 했다. 요즘으로는 중학생 때 빨치산으로 자원하여 활동했다는 점이다.

그는 1964년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이 7대 대선(1971년)을 앞두고 제시했던 '대중경제론'에 영향을 끼친 그의 『민족경제론』은 '농업 협업화' 및 대기업 위주가 아닌 중소기업을 진흥하게 하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한 대외 의존에서 벗어난 자립 경제를 강조했다. 이후 신식민주의 이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을 합하여 조희연, 이진경, 장상환, 전효관 등과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론을 창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 류동민은 한국의 상황에 천착해 재야 경제학을 일궈온 점을 다룬다. ‘성장’에 대한 문화적 유전자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항 담론을 제안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 지금의 한국 경제에 던지는 함의를 알아보고,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한다.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는 어떨까?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단지 불공정한 소득 분배로 말미암은 빈부 격차의 문제를 넘어 생산 과정 안에서의 지휘와 통제 권력, 그리고 그것을 견제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요구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중략) 마르크스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것이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노동자가 결합된 사회적 힘의 산물이 자본가의 것으로 바뀌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플랫폼에 주어진 권력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마르크스 자신의 문제의식과도 맥이 닿아 있다.(P166~168)

 

저자 : 류동민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경제학설사와 정치경제학을 강의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과학적 문제의식과 인문학적 상상력의 결합을 통해 경제학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인간의 삶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를 경제학적으로 밝혀 설명하기 위해 열심히 읽고 쓰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총체적으로 재현하는 것, 그것이 경제학과 그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IN>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오랫동안 칼럼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정치경제학 강의 노트』,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공저), 『기억의 몽타주』 등이 있다.

“철학은 세계를 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변혁해야 한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나, 이때 철학은 경제학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 여겼다. 사회과학적 사고를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료한 형식으로 나타내는 것. 그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수학적 기법을 활용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으로 삼았다. 모든 사회과학적 문제들은 이미 오래 전에 수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대답하려 했던 것들이라는 깨달음에 이른 것은 최근에 와서이다. 영산대학교 유럽지역통상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는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있다. 정치경제학과 경제학설사를 가르치며 ‘분배와 민주주의의 경제학’이라는 강좌를 새로 개설할 예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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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클럽연대기 - 조용한 우리들의 인생 1963~2019
고원정 지음 / 파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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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경제개발의 미명으로, 또는 그 피해 전력의 명분화(名分化)로 ‘자기 이익’만 챙겨온 ‘잘난 인간’들과 그들로부터 파괴당한 ‘조용한 인생’들 사이에 ‘나와 우리’가 있지 않았나 돌이켜보는 문학평론가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 소설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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