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경제학자들 - 그들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EBS CLASS ⓔ
류동민 지음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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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9명의 경제학자들』은 “왜 오늘날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저자 류동민의 집필 취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서문인 「책머리에」에서 "경제학의 역사는 의외로 경제학계 내부에서의 관심과 대중적 관심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존재하는 영역이다"라는 전제를 내세운다. 하지만 경제학이나 경제사상의 역사 혹은 유명한 경제학자의 생애에 관한 책들이 아직도 계속해서 출간되는 것은 독자들의 수요에 따른 것으로 판단한다면 경제학의 역사는 지나치게 푸대접을 받는 데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저자는 이 푸대접의 원인은 경제학이 엄밀한 과학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어느 정도는 착각에 기초한 자부심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틀린 이론을 공부할 여유나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한다.

반면 경제 문제를 이해하고 싶지만 현대 경제학의 복잡한 언어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사람에 대한 관심, 즉 무엇보다도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경제 원리의 발견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등이 대중적 관심 때문이라는 이유도 열어두고 있다. 이런 상황은 경제학의 실존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점도 언급한다. 저자가 고심 끝에 찾아내고 펼친 '재현의 경제학', '네러티브로서의 경제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홉 명의 경제학자는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삼의 진실',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찾지 못한 것'들을 재현하는 내러티브로 남기고자 했다는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 문제란 우리가 먹고살면서 생겨나는, 바꿔 말하자면 먹고살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총체다.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경제 문제들을 요령 있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 즉 내러티브(narrative)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수요곡선이나 공급곡선이 뭔지 몰라도 누구나 하루에 몇 번은 상품 거래를 하면서 살아간다. 경제 문제는 늘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되고 있다. 경제학이나 경제학자가 하는 일은 그것을 다시 한 번(영어의 접두사 're'가 의미하는 바) 드러내는 것, 즉 레프레젠테이션(representation)하는 것이다. 레프레젠테이션은 보통 재현으로 번역된다. 재현의 경제학과 네러티브로서의 경제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어 "삶에서 겪는 다양한 사건과 감정, 생각 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중요한 특징"이라고 언급하고, "문학이나 예술에서처럼 각자의 형식으로 재현을 추구하지만 우리가 겪는 일의 감정이나 생각을 하나도 빠짐없이 백과서전처럼 풀어 쓴다고 해서 좋은 재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보다 더 세밀하게 초상화를 그려준다고 훌륭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포인트가 색채이건 빛의 움짐임이건, 그 이전의 화가들이 놓쳤던 부분을 창조적으로 드러낼 때 그것은 비로소 예술이 된다"고 설명한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일 겪는 경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대하소설 쓰듯 몇천 페이지로 기술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경제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경제학을 배우는 첫 번째 목적은 세상의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 여기의 삶을 지키기 위해 역사 속 오래된 생각들을 소환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 경제학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인 저자가 사회과학적 문제의식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다시 쓴 경제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애덤 스미스에서 레옹 왈라스, 마르크스에서 민족 경제학자 박현채까지 경제 사상사 뼈대를 읽는 즐거움과 지금 여기의 현실을 비추는 생생함, 체계 바깥에서 체계를 생각하는 메타(meta)적 사고를 통해, ‘재현의 경제학’ ‘내러티브로서의 경제학’를 선보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애덤 스미스, 리카도, 맬서스와 밀, 마르크스, 레옹 왈라스. 케인스, 레딘, 그리고 박현채까지 어쩌면 현대인의 물질적 삶과 그것에 얽힌 생각의 얼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홉 명의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이 책은 각각의 경제학자들이 자신이 살던 시대의 경제 문제를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재현하려 했는지, 그들이 최선을 다해 극복하려 했던 점들은 무엇인지,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삶의 진실, 역사가 기억하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찾지 못한 것, 찾아냈다고 믿었던 것 혹은 믿고 싶었던 것을 추적한다.

 


 

책에 따르면 재벌 기업들이 자금을 대는 신문사에서 법인세 인상을 반대한다거나, 건설 사주가 오너인 언론사가 은근히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보도를 내보내는 경우는 흔하다. 물론 논리는 매우 공익적이고 중립적인 듯한 외양을 취하지만 그 속내는 특정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체계 바깥에서 체계를 생각하는 메타(meta)적 사고를 통해, 지금 여기 ‘나를 위한 경제학’을 찾는다. 경제학적 재현에도 언어의 불완전성 문제는 존재하지만 경제학에는 그 너머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경제학은 물질적인 삶, 즉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학문이다. 그러다 보니 얽혀 있는 사람들마다 이해관게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경제학이 재현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면 과연 객관성을 갖춘 과학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재현의 방식과 재현자의 관점에 따라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주장이들이 양립한다는 것, 그것이 단지 순수 논리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 이른바 '메타적 사고'를 하는 것, 말하자면 체계 바깥에서 체계를 생각하는 것이먀말로 오히려 경제학이 사회과학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독자는 경제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한 사람으로서 교양 차원에서 경제학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근대적 의미의 경제학자는 애덤 스미스, 나라로는 영국, 저서로는 『국부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처음으로 발전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 그 출발점을 이루는 인물이 애덤 스미스이고, 그의 대표 저작이자 경제학의 역사에서 손꼽히는 고전이 『국부론』이다. 1776년은 『국부론』이 출간된 해이고, 신대륙의 미국은 이제 독립선언을 한 나라가 된다. 포물선의 꼭짓점에는 데이비드 리카도가 있다. 1817년은 그의 대표적인 저작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가 간행됐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모양을 취하는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경제학에 밀려나기 때문이다.

포물선의 마지막쯤에 존 스튜어트 밀이 위치한다. 1848년은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가 출간된 해이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왔다. 저자 류동민은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영국인이었고, 이는 고전학파가 때로 영국 고전경제학이라 불리는 까닭"이라고 말한다. 이 시기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가 마무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최초로 본격화한 시기로, 그 현장에서 근대경제학이 꽃 피웠다는 점을 저자는 언급한다. 이때 마르크스는 "인간의 해부는 원숭이의 해부를 위한 열쇠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경제가 가장 발전한 사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학이 나오는 것은 일종의 경험 법칙이라는 의미를 설명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경제학의 중심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아간 것도 이러한 경험 법칙이 여전히 들어맞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한다.

 


 

독자가 이 책을 굳이 읽었던 이유는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고(故) 박현채 경제학자 때문이다. 또 그의 생애와 그가 썼던 경제학 저서 『민족경제론』에 대해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는 드라마틱한 점이 있고, 사회주의적 기본 토대를 갖고 있는 『민족경제론』이 우리 나라의 근대 경제학 저서의 효시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인 것 같다. 박현채는 1934년에 출생한(1995년 작고)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로서 백과사전에도 올라 있다. 그는 1950년에서 1952년 사이 빨치산 소년돌격부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지리산·백아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당하기도 했다. 요즘으로는 중학생 때 빨치산으로 자원하여 활동했다는 점이다.

그는 1964년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이 7대 대선(1971년)을 앞두고 제시했던 '대중경제론'에 영향을 끼친 그의 『민족경제론』은 '농업 협업화' 및 대기업 위주가 아닌 중소기업을 진흥하게 하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한 대외 의존에서 벗어난 자립 경제를 강조했다. 이후 신식민주의 이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을 합하여 조희연, 이진경, 장상환, 전효관 등과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론을 창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 류동민은 한국의 상황에 천착해 재야 경제학을 일궈온 점을 다룬다. ‘성장’에 대한 문화적 유전자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항 담론을 제안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 지금의 한국 경제에 던지는 함의를 알아보고,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한다.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는 어떨까?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단지 불공정한 소득 분배로 말미암은 빈부 격차의 문제를 넘어 생산 과정 안에서의 지휘와 통제 권력, 그리고 그것을 견제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요구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중략) 마르크스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것이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노동자가 결합된 사회적 힘의 산물이 자본가의 것으로 바뀌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플랫폼에 주어진 권력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마르크스 자신의 문제의식과도 맥이 닿아 있다.(P166~168)

 

저자 : 류동민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경제학설사와 정치경제학을 강의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과학적 문제의식과 인문학적 상상력의 결합을 통해 경제학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인간의 삶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를 경제학적으로 밝혀 설명하기 위해 열심히 읽고 쓰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총체적으로 재현하는 것, 그것이 경제학과 그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IN>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오랫동안 칼럼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정치경제학 강의 노트』,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공저), 『기억의 몽타주』 등이 있다.

“철학은 세계를 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변혁해야 한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나, 이때 철학은 경제학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 여겼다. 사회과학적 사고를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료한 형식으로 나타내는 것. 그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수학적 기법을 활용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으로 삼았다. 모든 사회과학적 문제들은 이미 오래 전에 수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대답하려 했던 것들이라는 깨달음에 이른 것은 최근에 와서이다. 영산대학교 유럽지역통상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는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있다. 정치경제학과 경제학설사를 가르치며 ‘분배와 민주주의의 경제학’이라는 강좌를 새로 개설할 예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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