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10주년 개정증보판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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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의 저자 장석주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비평가, 인문학 저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40년 넘게 글을 쓰고, 또 글 쓰는 방법을 강의하며 문학에의 열정을 쏟았다. 고희의 나이로 접어들었지만 그의 문학에의 천착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문학에의 천착으로 얻은 깨달음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정리한 창작 노트다. 이번 개정증보판은 출간 10주년 기념으로 독자들의 지속된 개정판 출간 요청에 호응해 에세이 작가를 지망하는 독자들의 수요 해소를 위해 ‘에세이 작법’에 대한 원고와,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은 작가 한강의 문체를 분석한 특별한 원고가 추가됐다.

“글을 잘 쓰려면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지금은 중년에 들어선 독자도 한때 글을 써볼 것을 희망했지만 문재(文才)가 부족한 탓인지 중도에 접고 말았다. 덕분에 글쓰기 교본이나 텍스트를 여러 권 읽은 기억이 난다. 출간되는 책마다 주제가 다르고 관점이 다르지만 모든 글쓰기 텍스트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한 가지가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란 격언이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나,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왕도가 없다고 해놓고도 웬 글쓰기 교본은 그렇게 많이 출간됐는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글 잘 쓰는 방법은 그때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 당시 글쓰기 교본이 근거없는 개인적 주장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판단한다면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독자 기억으로는 "3다(多)"를 모두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3다는 아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많이 읽고(多讀)' '많이 생각하고(多思)' '많이 쓰기(多作)'를 이르는 글쓰기 교본의 원칙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데, 3다의 부족 때문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사실 어떤 책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는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많이 읽고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읽고 쓰는’ 것이라는 게 저자 장석주의 지론이다. 즉, 작문 테크닉과 작가들의 비법을 무턱대고 따르기보다는 글쓰기의 기본을 다지고 본질적인 안목을 기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고(故) 기형도 시인이 가장 사랑한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평론가 등 전방위 문인으로 활동하는 장석주는 독학으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해 6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 저자는 고희를 앞둔 지금도 날마다 하루 8시간씩 책을 읽고 4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어마어마한 생산 능력과 성실한 글쓰기의 비결에 대해 그는 “어떤 글이 나오는가는 삶의 경험과 자세, 태도의 문제로 그것이 곧 자기 문장이나 글의 스타일이 된다.”고 강조하며, 작가의 삶을 날것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날마다 도서관에서 책이나 꾸역꾸역 읽으며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시를 끼적이던 ‘문청’ 시절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등단 후에도 계속된 창작의 고통과 재능에 대한 회의, 생계에 대한 불안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까지 작가로서의 신산한 삶에 관한 진솔한 고백들도 저자는 이 책에서 털어놓는다.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겪어냈지만 마음의 끼니로 책을 먹고, 읽고, 써 온 저자는 자신이 존경하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말에 빗대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도했었다. 실패했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더 잘 실패하라.”

일상이 글감이 되고, 글쓰기가 일상이 되는 삶을 통해 그가 체득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자기답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 글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쓰기 시작하면 삶의 의미에 눈뜨게 되고, 살아갈 힘도 얻게 된다. 그것이 글쓰기의 본령이고, 인문학 공부임을 이 책은 강조한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현실의 지옥을 벗어나 빛 속을 뚫고 나가는 일과도 같다. 삶에의 의욕과 글쓰기에의 욕망은 하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다.” 즉, 글쓰기는 재능이나 소질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만큼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방법론을 제시하는 이 책은 초보 작가뿐 아니라 글쓰기 입문자들, 자신만의 글쓰기를 마음먹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작가 지망생들, 혹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한 확실한 안내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밀실: 글쓰기를 위한 책읽기〉, 2장 〈입구: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3장 〈미로: 글쓰기에서 마주치는 문제들〉, 4장 〈출구: 작가의 길〉, 5장 〈광장: 글쓰기 스타일〉 등이다. 〈개정판 서문〉과 「세상의 저자와 작가들은 고마운 스승이다」이란 제목의 〈에필로그〉가 책의 앞뒤로 붙어 있다. 특히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던 책들」의 목록이 마지막 부분에 〈부록〉으로 첨가돼 시선을 끈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사춘기 시절에 쓴 첫 단편 「기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단편은 열여섯 살 겨울에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내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에서 끼적인 것이다. 책상 위에 널린 교과서들을 옆으로 밀치고 알 수 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문장을 썼다. 이 단편은 당시 중고생들이 많이 보던 〈학원〉이라는 잡지에 활자화되면서 박제되었다. 누구에게도 '소설작법'을 배운 적도 없는 상태에서 단편을 써낸 것은 한국현대문학전집을 통독하며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두로 읽은 덕분이었으리라. 분명 한국 작가들의 소설들이 내 소설의 교본이 되었을 테다. 그 뒤로도 단편 몇 편을 썼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을 쓸 수가 없었다. 소설을 쓰고 싶은 열망은 끓어오르는데,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p.7) 다독의 중요성과 문학에의 열정의 합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어 다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쓰다'는 돋, '살다'」라는 작은 제목을 붙였다. "나는 거친 세상을 떠돌다가 굳은 결의를 다지며 혼자 시립도서관의 구석에 처박혀 습작을 했다. 무수한 실패를 겪은 뒤 등단을 하고 시집과 비평집을 펴낸다. 내가 습작 경험으로 얻은 결론은 천부의 재능이라는 것은 거짓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과 '쓰다'와 '살다'는 동의어라는 사실이다. 무수한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는 작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정직하게 실패를 겪고 그것을 제대로 반추한 사람만이 작가로 빚어지는 것이다. 실패 경험은 작가들의 자산이자 글쓰기의 동력이다. 작가들은 삶의 장면들, 이야기, 꿈과 환경의 파편들을 언어라는 도구를 써서 글을 빚는다. 작가의 연장통에 담긴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언어다. 작가들이란 언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걸 올바로 쓰는 법을 훈련 받은 사람들이다.



이 책은 저자의 체험에서 건져 올린 창작론이자 고전문학에서부터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의 스타일을 광범위하게 탐구한 작가론이기도 하다.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의 예문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각각의 문체와 형식, 내용과 철학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책이라고 한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한강의 시적인 문체, 소설쓰기로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김연수, 강건한 탐미주의의 문체로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김훈, 문장을 재즈 리듬으로 연주하는 하루키, 『노인과 바다』를 15년이나 구상하고 200번 이상 고쳐 쓴 헤밍웨이, 오감을 행복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인간의 부조리함을 명석하게 꿰뚫는 카뮈, 우주와 자연,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그린 허먼 멜빌, 세상을 등진 따뜻한 냉소주의자 J. D. 샐린저 등 ‘작가들의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의 스타일을 한데 모아 보여주는 책인 만큼 그 의미가 특별하다.

이 책에 쓰인, 삶의 파고를 헤쳐 가며 하나의 스타일을 완성해간 작가들의 내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마음의 무늬’이자 ‘사상의 실체’라고 말하며, 글쓰기 스타일을 둘러싼 지적 여정을 밀실-입구-미로-출구-광장이라는 다섯 경로를 따라 산책하듯 나아간다. 저자가 안내하는 생각의 경로를 따라 책의 행간을 걷다 보면 어느새 한 줄 한 줄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펜 끝에서 진짜 ‘나는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3다의 실천 과정을 저자는 '밀실-입구-미로-출구-광장'이라는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3다의 실천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개의 작가들은 작가가 되려는 의식이 생기기 전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 읽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책을 읽는다. 그들 내면에 잠재된 '책을 읽고 싶다'라는 욕망은 본능에 가깝다. 그들은 책읽기를 통해 본능으로서의 지식욕을 채운다. 작가가 되려고 많은 책들을 섭렵한 게 아니라 많은 책을 섭렵했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것이다. 책읽기는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이해와 공감 없이는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글쓰기의 동기는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자극하고 촉발하는 것은 다양한 책읽기다.



앞서 언급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문체를 저자는 「존엄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는 제목을 붙인 '시적인 문체'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상 작품은 이 책에서 해석하고 있다.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인용했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p.299)

『채식주의자』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세 편의 연작으로 구성돼 있다. 세 편의 연작 단편을 관통하는 초점 인물은 영혜인데, 화자는 작품마다 바뀐다. 첫 번째 화자는 영혜의 남편, 두 번째 화자는 영혜의 형부, 세 번째 화자는 영혜의 언니다. 영혜는 어린 시절 개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육식을 멀리하며 타인과의 불화를 겪는다. 독자들은 『채식주의자』에서 동물성과 육식이 보편적인 생활 습관인 타자들에 둘러싸여 대립하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겪는 폭력의 실상과 마주친다. 작중 여성화자의 내면에 고여 있는 분출하지 못한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이것은 내면에 "겹겹이 뭉쳐져" 있는 채식주의자의 고함이자 울부짖음이다. 육식주의자들에 둘러싸인 채식주의자의 발화되지 못한 목소리에 담긴 전언은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라는 육식을 추종하는 세태에 치우친 제 식성에 대한 통렬한 자기 성찰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육식이란 인간이 아닌 동물 개체를 도살하고 그 피와 살을 취하는 일이다. 씹고 삼켜서 제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져버린 동물의 피와 살! 채식주의자의 처지에서 육식은 '차가운 악(cold evil)일 수도 있다. 육식 옹호자들은 기계적 환원주의나 시장 효율성 등을 앞세워 육식의 야비함과 악취를 감춘다고 저자는 장석주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육식에 대한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인용해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양산되는 쇠고기가 호르몬과 살충제로 오염되고, 그 운송과 도축과정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생명적인가를, 쇠고기를 둘러싼 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악과 협잡이 이루어지는가를 일러바친다.



『채식주의자』는 돌연 육식을 향한 혐오와 생리적 거부를 말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하는 화자의 욕구는 외부화되지 못한다. 『채식주의자』는 소수자인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자의 고통으로 얼룩진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며 육식이 숨긴 포식자의 동물성과 잔혹함을 까발린다. 이 소설이 힘을 얻는 이유는 응축된 언어로 시적인 문체를 사용해 명료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시키는 데 있다고 저자 장석주는 생각하는 듯하다.


한강 소설의 가장 큰 매혹은 시적 문체를 통해 드러난다. 시적 문체란 진부한 서술을 뛰어넘는 감수성의 발현이자 함축된 목소리이고, 시를 품은 문체를 가리킨다. 그것은 서사를 품은 채 흐른다. 그 흐름은 모음과 자음이 만나 이루는 교향(交響)이자 자유로운 숨결이며, 응축과 뜻밖의 도약을 품은 시적 스타일을 이룬다.(p.304)


저자 : 장석주(張錫周)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 에세이스트, 인문학 저술가. 그밖에 출판 편집자, 대학 강사, 방송 진행자, 강연 활동으로 밥벌이를 했다. 현재 아내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파주에서 살고 있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 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 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에서 3년여 동안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한다. 2000년 여름에 서른여섯 해 동안의 서울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한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장한 책만 2만 3,000여 권에 달하는 독서광 장석주는 대한민국 독서광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15년을 출판기획자로 살았지만 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자 업을 접고 문학비평가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급변하는 세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보다 잘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있는 호숫가 옆 ‘수졸재’에 2만 권의 책을 모셔두고 닷새는 서울에 기거하며 방송 진행과 원고 집필에 몰두하고, 주말이면 안식을 취하는 그는 다양성의 시대에 만개하기 시작한 ‘마이너리티’들의 롤모델이다.”

저서로는 『몽해항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철학자의 사물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시간의 호젓한 만에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이 있다. 애지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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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훈의 랫시티 - 완벽한 세계 유니버스25가 보여준 디스토피아
에드먼드 램스던 외 지음, 최지현 외 옮김 / 씨브레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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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문화가 21세기 들어 드디어 날개를 펼친 듯하다. 5,000년 간 이어온 우리는 늘 '문화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이는 야만족과 대립되는 개념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를 자랑으로 내세우는 동안 우리는 군사·외교적으로는 지형상 굉장히 불리한 위치라고 군사학자들은 주장한다. 아마 아시아 대륙 동쪽 끝 반도 국가여서 그렇게 말한 듯하다. 더욱이 문화가 앞선 대륙 쪽보다는 해양 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유리했을 터이지만 사실 일본 열도에 가려 태평양을 직접 마주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은 섬 나라이지만 우리 한반도보다 인구가 많은 이유를 독자로서 알지 못하지만 문화도 뒤떨어지고 식량 생산도 충분치 못한 일본에 막혀 해양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 백제의 전성시대와 통일신라, 고려 때는 그래도 중국 해안 쪽으로 돌아 동남아시아와 회교국가와도 바다를 통해 교역을 했던 것으로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지정학적으로 볼 때 매우 불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고대 이후 늘 중국의 위협과 일본의 침입 사이에서 침략에 대비해야 했다.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왔다.

최근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면서 많은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눈부시게 높아졌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 상위권 국가에 들어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목받을 만한 경제력을 갖추었기 때문이겠지만 문화 민족의 자긍심은 갑자기 억지로 세워질 일이 아니다. 아무리 핍박을 받고 나라를 빼앗겨도 이를 되찾으려는 민족적 양심은 살아남아 독립을 향해 목숨까지 스스럼없이 바칠 수 있는 숭고한 이타적 정신이 있었고, 그 가운데 우리 문화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 들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하고, 한국어를 배우려 애쓴다. 한국의 위상이 눈부시게 높아진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사람, 즉 인재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사가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높은 교육열, 낮은 문맹률, 탄탄한 첨단 인프라까지, 한국은 많지도 않은 인구와 넓지 않은 국토로도 이만큼이나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평가가 대두되고 있다. 바로 인구 때문이다.



한국은 이렇게나 빨리 늙어버렸을까?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을까? 단지 정책을 잘 만들면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어 할까?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정책적으로 보조해서 아이를 키우기 쉽게 하면, 과연 인구문제는 해결될까? 인구 관련 연구자들은 이런 식의 피상적인 접근법과 해결책으로는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거라 말한다. 그러니까 단순히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을 넘어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 『랫 시티』가 제시한다.

이 책은 존 칼훈의 삶과 연구를 다룬다. 존 칼훈은 전설적인 연구자로, 쥐를 가지고 한 ‘유니버스’ 실험은 행동학적인 관점에서 인구와 인간 사회의 문제를 살펴보게 한다. 물론 쥐와 인간은 일대일로 등가 치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실험 결과를 무작정 인간 사회에 일대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칼훈의 연구가 시사하는 점은 크다고 한다. 특히 〈유니버스25〉는 단순히 쥐의 이야기라고는 볼 수 없다. 이는 과학의 언어로 쓰인 현대 도시에 대한 실험적 우화이며, 삶의 ‘공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인구가 인류 번영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은 근대에 들어서서야 제기됐다. 중세까지만 해도 인간은 각종 질병에 취약한 데다 식량 사정이 원활치 않아 평균 수명이 불과 40세 안팎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때 인구 문제를 들고 나온 학자가 맬서스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가 인구의 자연증가는 기하급수적인 데 비해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하므로 과잉인구로 인한 빈곤의 증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맬서스는 1798년 「인구의 원리에 관한 이론, 그것이 장래의 사회개량에 미치는 영향을 G.W.고드윈과 M.콩도르세 그리고 그 밖의 저작가들의 사색에 언급하며 논함」이라는 제목의 『인구론』을 발표했다. 이후 이 책은 여섯차례 개정을 거쳐 1826년에 최종판이 나왔다고 한다.



맬서스는 인구란 언제나 생산가능한 식량공급량으로 부양할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계속 증가하는 속성을 지니며, 결과적으로 임금까지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노동력의 증가에 대응할 만큼 식량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작지보다 저급한 토지까지 경작을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단위당 생산량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세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 번째 전제는 인간이 생산하는 생계 수단인 식량은 산술급수적 성장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식량은 동일한 시간안에 동일한 양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전제는 이에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 성장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자 계산 방법인 복리처럼 늘어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전제는 노동자 계층이나 하위 계층 사람들 대다수는 물질적인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맬서스의 인구 이론은 당대 뿐 아니라 후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찰스 다윈, 알프레드 월리스 등의 진화론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찰스 다윈은 1836년에 ‘인구론’을 읽은후에야 진화의 기제가 적자생존, 즉 자연도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맬서스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에 대해 과잉이란 표현으로 개념화하였다. 그의 이론은 당대에는 종종 놀림거리로 취급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후세의 대공황과 케인즈의 등장을 예견한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 책 『랫 시티』는 '인구 소멸에 대한 실험 보고서'란 문구를 표지를 두르는 띠지에 쓰고 있고, 표지에는 「완벽한 세계 유니버스25가 보여준 디스토피아」란 부제가 붙어 있다. 지금 우리의 출산율은 유사 이래 최저인 0.7이라고 한다. 이는 『랫 시티』에서 세운 가설과 이론에 따르면 이처럼 생활 수준이나 수명은 놀랄 만큼 향상되는데 출산율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걸까. 이 현상에 대해 '생식 본능 붕괴'에 대한 우려를 존 칼훈이 실험 결과로 내놓은 결과에 다가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장대익 가천대학교 카천코코네스쿨 석좌교수 장대인은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은 전대미문의 쥐 집단 실험('랫 시티')의 역사를 생태학적 언어로 탐구한 기록"이라며, "쥐 집단의 '과밀화'만으로도 어떻게 행동의 붕괴(번식 중단, 폭력성 증가, 사회 붕괴)가 발생했는지를 추적한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존 칼훈의 이론이나 저서를 직접 번역 출판한 것은 아니다. 존 칼훈의 연구 결과에 공감하고 더 확장하고자 하는 두 학자가 그의 연구를 널리 알리고자 새로 쓴 책이다. 존 애덤스와 에드먼드 램스던이다. 에드먼드 램스던은 퀸메리런던대학교 과학사 및 의학사 수석 강사로, 20세기 미국 사회학, 행동학, 생물학 과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또 존 애덤스는 BBC 선정 '신세대 사상가'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존 칼훈 실험의 역사적, 문화적 영향에 대해 램스던과 공동 작업하고 있다. 역자도 두 분이다. 최지현은 뇌과학자로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설립 초기 멤버로 합류했으며, 현재 KIST 책임연구원이자 UST 교수, 고려대 산학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칼훈의 〈유니버스25〉를 현대화한 실험 공간을 구축하며 인구소멸 과정의 뇌 변화를 추적 중이다. 허성우는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며, 물리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이번 번역에 참여했다.

칼훈은 쥐들이 포식자도 없고 배고픔도 없는 유토피아인 〈유니버스〉에서 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했다. 사람의 개입은 먹이통과 물병을 채우고, 깔짚을 더하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아마도 평화롭고 이상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 않을까?

책에 따르면 처음 A단계는 개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기로, 각자의 영역을 형성하고 둥지를 만들어 서식지를 구축했다. ‘사회적 적응 단계’였다. 곧 개체 수가 급격히 늘었고 점점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B단계, 즉 ‘확장기’가 다가왔다. 개체수는 두 달마다 2배로 늘어났다. 어린 쥐가 성체 쥐보다 3배나 많았지만 양육은 잘 이뤄졌고 교육을 잘 받았다.

그러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이때가 C단계, 즉 ‘정체기’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것은 사회질서의 붕괴였다. 암컷과 새끼를 보호하던 수컷들은 점차 그 역할을 포기했고, 암컷은 점차 공격적으로 변했다. 동성 간 교미 행위가 늘어났고, 출산 후 새끼를 방치하는 암컷이 늘었다. 새끼는 정상적으로 교육받지 못했다. 물리적 공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데도 이미 사회적 붕괴의 초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젊은 수컷은 좌절하고 거부당하면서 점차 주변부로 물러났다. 이 단계가 끝날 때쯤에는 이미 사회 조직은 사실상 죽음을 맞이했다.



마지막 D단계는 ‘멸망의 단계’로, 대개 방치된 채 자라난 쥐들은 개인 공간에 대한 감각이 없었고 욕구나 충동을 잃었다. 공격성도 없고 구애나 교미도 하지 않았다. 무성적이고 비사회적인 이들은 싸우지 않았기에 상처가 없었다. 이들은 끝없이 털을 정리하고 몸을 매만졌으며, 먹고 마시고 자는 것 외엔 하는 일이 없었다.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앉아 있었지만, 반대 방향을 바라볼 뿐 교류하지 않았다. 개체 수 밀도는 절정에 달했다가 점차 줄어들었다. 아무 저항 없이 상황을 받아들인 쥐들은 차분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로 지냈고, 건강히 살다가 자연사했다. 개인으로서는 최적의 삶의 방식이었으나, 전체 종에는 치명적인 재앙이었다. ‘아름다운 자들’만 남은 사회는 결국 서서히 죽어갔다. 칼훈은 마지막 단계의 개체들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고 여겼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You can’t identify with nothing)”기 때문이다.

〈유니버스25〉의 흥망성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한국 사회와 겹치는 지점이 분명히 보인다. 문제는 C단계에 접어들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칼훈의 실험에 따르면, C단계에 접어든 다음에는 무엇을 해도 이미 행동학적으로 무너진 쥐를 되돌릴 수 없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므로 쥐와는 다르고, 인간의 사회는 쥐의 조직과는 다르게 작동한다. 그러나 과연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벌써 D단계에 접어들어 ‘아름다운 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개인적으로 최적의 삶에 길들어 인간 종은 점차 멸종되어가는 건 아닐까?

위 그래프는 칼훈의 유니버스25 실험의 쥐 개체군의 인구 수 곡선이고, 오른쪽은 대한민국의 인구통계 곡선이다. 급격한 성장, 완만한 정체기, 추락하는 비가역적 하강까지, 두 그래프는 놀라울 만큼 닮았다. 이런 유사성은 단순히 우연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초저출산이라는 작금의 현상이 경제적인 선택을 넘어 신경생태학적 위기라고 한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칼훈은 정체된 사회적 관계망이 인간 집단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서, 이를 ‘행동의 붕괴(behavioral sink)’라고 불렀다. 칼훈의 통찰은 군집 행동 연구에서 나아가 뇌과학, 사회학, 역사학이 융합한 연구로 확장되었다. 이렇게 분야를 넘나들며 행동의 싱크를 메울 방안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칼훈의 실험은 1980년대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단지 쥐로 가득한 시각적 충격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실험이 인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엄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연구는 미국 의회 회의록에 인용되었고, NASA와 워싱턴D.C. 행정당국, 감옥 과밀화 정책 자문에 반영되었다. 단일 생물종에 대한 실험이 도시 설계와 국가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정책을 바꾼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공로로 한때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유니버스’ 실험은 예리한 통찰을 제공하는 놀라운 연구 과정이었다.


칼훈은 사회적 접촉의 빈도를 측정해서 ‘사회적 속도’ 또는 ‘사회적 온도’라고 불렀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상호작용 빈도와 그 깊이를 측정하는 개념이었다. 그는 실험을 통해 쥐와 인간 모두에게 이상적인 그룹 크기를 성인 8~16명으로 설정했으며, 최적은 12명이라고 제안했다. 칼훈은 이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했는데, 영장류 조상들이 반고립된 소규모 집단으로 생존했던 유산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문화적 진화는 이러한 원초적 유전적 기반 위에 덧씌워진 것뿐입니다.”

이상적인 크기의 그룹은 개인에게 사회적·심리적 안정을 준다. 그룹이 너무 작으면 자극이 부족해지고, 너무 크면 과도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좌절감이 생겨 폭력적 행동이나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칼훈은 과도한 상호작용이 발생하면 상호작용의 강도가 약화되며, 결국 의미 없는 수준까지 약해진다고 경고했다.

또한 쥐 실험에서 개체 수가 증가할수록 사회적 속도에 따라 하위 계층이 형성되는 것을 관찰했다. 사회적 속도가 높은 개체는 더 활발하게 움직이며 보람 있는 상호작용을 더 많이 나눴다. 반면, 사회적 속도가 낮은 개체는 고립되고 움직임이 제한적이었으며, 결국 하위 계층을 형성했다.(p.287~288)


저자 : 에드먼드 램스던

퀸메리런던대학교 과학사 및 의학사 수석 강사로, 20세기 미국 사회학, 행동학, 생물학 과학사를 연구한다. 웰컴트러스트(Wellcome Trust), 레버흄트러스트(Leverhulme Trust) 등 과학사 관련 주요 연구 펀딩을 수주하며 환경설계, 정신건강, 도시계획과 교감하는 과학의 역할을 깊이 조명해왔다. 존 애덤스와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존 칼훈 실험의 역사적, 문화적 영향에 대해 공동 작업했다.


저자 : 존 애덤스

BBC 신세대 사상가(BBC New Generation Thinker)로 선정된 적이 있으며, 『Interference Patterns: Literary Study, Scientific Knowledge, and Disciplinary Autonomy』의 저자이기도 하다. 에드먼드 램스던과 함께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존 칼훈 실험의 역사적, 문화적 영향에 대해 공동 작업했다.


역자 : 최지현

어쩌다 보니 출판사를 만들게 되었지만, 본업은 뇌과학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설립 초기 멤버로 합류했으며, 현재 KIST 책임연구원이자 UST 교수, 고려대 산학연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버드의대와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객원교수를 지냈고, 마우스 모델에서 인지와 행동을 매핑 중이다. ‘군집뇌과학(Collective Brain Science, CBRAIN)’을 제안하고, 이를 바탕으로 칼훈의 〈유니버스25〉를 현대화한 실험 공간을 구축하며 인구소멸 과정의 뇌 변화를 추적 중이다.


역자 : 허성우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재학 중이며, 물리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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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귀신 도감 - 전설과 민담에서 찾아낸
강민구 지음 / 북오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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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동남아시아 귀신 도감』은 동남아시아 생활 문화와 그들의 의식 속에 깃들어 있는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파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단순 정보 전달보다는 귀신들의 모습을 직접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도록 이미지 중점의 특징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하나씩 살펴 가며 나라별, 지형별, 또는 종교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또 이들 일상 속에서 어떤 일을 터부시하고 어떤 일을 숭배했는지 연구할 경우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속신앙이나 괴물, 귀신 등에 대해 공통점이나 이질적 요소가 있음을 파악하는 것도 영감을 얻기에 도움이 될 듯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귀신이나 괴물은 그들의 전통적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문학적,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강민구는 책의 〈서문〉에서 "동남아시아인들은 종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떠도는 괴담들의 존재들을 '영혼'이나 '귀신'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숭배하거나 이용하는 등 일상생활에 그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간다."고 밝히고, "특히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던 생물체가 죽어 원혼이나 풀리지 않은 염원 등 살아생전의 감정을 품은 채 영혼이 되어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는 이야기가 많다."며 연구 결과를 귀띔한다. 이는 아시아 범주권의 나라(동남아·동북아 등)에서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다. 그러나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기록해서 그림의 도움을 받아 매우 생생하게 재탄생시킨 일도 주목할 만하다. 같은 아시아권이라도 산이 많은 동북아와 바다와 밀림지역의 동남아인들의 생활이 각기 다르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일일 생활권으로 좁혀진 지구촌이라 할지라도 민간의 전통적 생활방식이나 특히 터부시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이 책은 그런 미흡한 점을 잘 드러내주는 데 손색이 없다.



사실 동남아시아의 지역적 배경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서 우선 주식이 '쌀'이고 농업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우거진 숲에는 식물들의 분포가 확실히 갈리는 이질적인 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지역이지만 동남아의 대부분의 국가는 우리보다 훨씬 덥고 비도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는 명백한 다른 점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계절에 따라 출현하는 귀신도 다르다는 점은 연구 결과 주목할 만한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 민간 신앙도 공통점이 많다. 그림으로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랑종」, 「셔터」, 「피막」 등의 공포 영화를 통해 이미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책에서는 동남아시아의 괴이한 존재들을 도감화했다. 민담, 신화 혹은 구전으로 존재하는 귀신, 괴물 등 100가지를 선정했고, 각 존재들마다 얽힌 이야기를 서술했다."며 "각 나라에서 귀신을 지칭하는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태국에서는 피(Phi), 말레이시아에서는 '한투(Hantu), 베트남에서는 혼 마(Hon ma)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기념하는 귀신들을 위한 축제를 보면, 우리나라에 비해 귀신을 좀 더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국의 삿 타이(Sat Thai), 베트남의 텟 트렁 옹구옌(Tet Trung Ngyuyen) 등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 사람들은 굶주리고 저승으로 가지 못해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베푼다 또 동남아시아는 나라마다 두드러지는 종교는 다르지만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의 문화가 퍼져 있어 이와 관련된 귀신들을 다수 볼 수 있었다. 종교뿐만 아니라 중국계, 인도계 등의 여러 인종들이 한 사회 내 혼합되어 있어, 한 나라에서도 귀신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경우들도 많다. 

저자는 동남아시아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미 동남아시아에서는 귀신이 문화의 깊숙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고, 이들을 소재로 영화·드라마·소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특히 이 책에서 등장하는 귀신들은 형태가 불분명하게 회자되는 것들도 많았으며,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경우 저자가 상상력을 더해 귀신의 외형과 능력치를 설정하는 등 빈 부분을 채웠다고 밝힌다. 출판사 측은 이번 출간된 『동남아시아 귀신 도감』은 동남아시아 귀신에 대한 도감 해설집으로서 동남아시아 귀신을 망라하여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호기심을 넘어 동남아시아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이 품어온 두려움과 신앙을 탐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과 가까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듯 믿어지는 귀신들의 세계. 그 생생한 이야기와 상상력 가득한 묘사는 독자들을 알 수 없는 호기심과 공포 속으로 초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전작인 『유럽 괴물 도감』의 2탄의 성격을 띤 책으로 단순히 민속학적 접근을 넘어 귀신의 외형과 특징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도감 형식으로 구성했다. 책에 등장하는 귀신들 또한 단순히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불안이 빚어낸 문화적 산물이다. 책 속에 담긴 귀신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의 머릿속에도 영감이 샘솟게 되는데 이는 귀신들을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잠재적인 소재로 확장시킨 덕분이라는 책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또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는 말이 새삼 머리에 떠오른다. 

인간이 지어내는 이야기는 애초부터 인간 고유의 속성과 문화가 녹아들어서 형성된 민담에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민담 속에 담긴 공포와 미지의 귀신들은 이야기를 갈구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만일 독자들 중에서 작가를 지망한다면 창작자로서 써나갈 이야기의 창의성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캐릭터와 세계관을 설정하는 창작자의 아이디어에 담겨 있다."고 역설한다. 아이디어의 곳간이 되어줄 『동남아시아 귀신 도감』은 동남아시아에 떠돌던 민담의 귀신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특성과 그 유래가 되는 배경을 알려주기 위해 집필했다는 의미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 책은 인문학적 뿌리를 토대로 미신을 창조해낸 인간의 오래된 보편적 욕망이 스며있는 매력적인 괴물 캐릭터들을 따라 가보면 어느새 독자들의 가슴 속에도 창작의 샘이 마구 솟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이 떠올랐다. 나타나는 귀신들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스토리마다 절절했기에 우리들의 감성에 잘 들어맞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독자가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처녀 귀신' 이야긴데 처녀 귀신은 대체로 시집 가기 전 모략으로 죽은 처녀, 첫날 밤 남편을 만나지도 못한 채 죽은 원한 등 스토리가 각각이지만 이들의 명칭은 '처녀 귀신'으로 같았다. 아마 조선 시대 유교 문화에서 억울한 시집살이, 원하지 않은 결혼, 또는 팔려간 경우 등 여성들의 목소리가 억눌렸던 시대에 원한을 품고 죽은 여성들이 많아서 그랬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귀신은 「낭 타니」다. 낭타니는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의 야생 바나나 나무에 서식하는 여자 귀신이다. 책에 따르면 녹색 전통 태국 의상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 모습을 하고 있으며,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목격된다. 낭 타니의 얼굴은 초록빛을 내며, 입술은 매력적인 붉은색이고,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흐른다. 그녀의 특징은 발을 땅에 디디지 않고 바나나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낭 타니는 성격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뉜다. 자비로운 낭 타니들은 지나가는 여행자들이나 승려들에게 바나나와 같은 간식을 주기도 하지만 좋지 못한 성격을 가진 낭 타니들은 아름다운 외형으로 숲을 지나는 남성들을 유혹해 함께 하룻밤을 보낸 뒤, 남자가 자신을 배신하면 비명횡사하도록 만든다. 

말레이시아에도 처녀 귀신은 아니지만 여성 귀신이 있다. 「랑 수아르」는 말레이시아 민담에서 전해 내려오는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한 여성의 귀신이다. 랑 수아르는 긴 손톱, 발목까지 오는 머리카락, 녹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랑 수아르는 사산아를 낳다가 죽었기에 엄청난 슬픔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으며, 건강한 아이를 잉태한 임산부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껴 임산부의 아이와 임산부를 저주하고 공격한다. 랑 수아르에게 공격을 당해 죽은 임산부는 또 다른 랑 수아르로 태어날 수 있는데, 이때 임산부의 시신이 랑 수아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죽은 임산부의 입에 유리 구슬을 넣고 양쪽 겨드랑이에 달걀을 넣은 다음, 손에 바늘을 꽂는 의식을 해야 한다.(p.33)



귀신이 모두 흉칙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 보았던 그림책의 요정의 모습도 이 책에서 보인다. 필리핀 전설에 전해 내려오는 숲에 사는 매우 작은 요정 「람바나」가 눈에 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날개로 갖고 있는데 이 「람바나」는 잠자리의 날개를 갖고 있다. 필리핀 전역에 있는 깊은 숲에서 거주하며 또 다른 요정인 디와타들과 함게 어울려서 지낸다. 람바나들은 떼를 지어 살며 디와타와 함께 숲을 보호하고 숲에 사는 다양한 동식물들을 관리한다. 람바나들은 호기심이 많아 숲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다. 람바나들은 작은 외형에도 불구하고 마법을 굉장히 잘 부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순간이동, 정신지배, 저주, 축복 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적절하게 마법을 통해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타인에게 악한 짓을 하거나 숲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으면 마법으로 벌을 주기도 한다. 

서양 귀신에 가까운 유령도 있다. 「포네기 타예」는 미얀마 민담에서 전해지는, 승려가 죽어 형성되는 귀신이다. 포네기 타예는 성불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며, 승려가 입는 천을 두르고 다닌다. 그들의 뒷모습은 키가 매우 큰 승려처럼 생겼으나, 고개를 돌리면 하얀 해골이 드러나며 큰 귀, 긴 혀, 뽀족한 송곳니를 갖고 있다. 주로 자정 전후로 활동을 시작하며, 포네기 타예를 목격한 사람들에게 질병을 옮긴다. 포네기 타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는 지그재그로 뛰면 된다고 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도망가다 다시 잡힌다면, 불경을 외우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을 수 있으니 늦은 밤에 마을을 배욓하지 않는 편이 좋다.(p.144)


저자 : 강민구


단편영화 〈흔적〉으로 데뷔, 장편영화 〈뉴타운 생존자 수색작전〉과 〈수면이라는 경계 부근에서〉 등에서 연출 및 각본을 맡아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감독이자 영화연구자이다. 다양한 기관에서 영상제작, 연구, 강의 활동도 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인도어, 아랍어 그리고 영화를 전공하였으며, 인도 유학 이후 힌디어 통역사이자 인도 문화 전문가로도 활동 중이다. 괴담에 대한 흥미를 바탕으로 재미있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영상 매체 이외에도 연극, 전시, 출판, NFT 등의 매체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바른 힌디어 첫걸음》, 《인도 영화》, 《인도 도시 괴담》, 《한국 괴담》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kang.kang.11

홈페이지 kangminguu.imweb.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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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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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재조명하며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노력과 희망으로 수저계급론을 넘어 탁월함으로 빛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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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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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인간명품』은 고(故)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삶을 재조명하며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집필됐다. 저자 임하연은 책의 부제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에서 집필 취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책의 첫 문장에서 재클린이 한 말을 인용 별도 페이지를 할애해 쓰고 있다. "살아가는 매 순간은 서로 다릅니다. 좋은 일, 나쁜 일, 어려움, 기쁨, 비극, 사랑, 행복은 모두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체로 얽혀 있는데, 이것을 인생이라 부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떼어낼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럴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p.5) 

이 책은 또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수저계급론'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아예 싹부터 자르는 매우 유해한 비판적인 조어라고 지적한다. 청년들이 사회 비판의식을 갖는 것은 희망적인 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수저계급론은 정반대의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용어다. 수저계급론이란 한 나라의 개인이 부모의 자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른 사회경제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말하며, 그 결과 한 개인의 인생에서 성공은 전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2015년쯤 등장했으며, 대한민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최근 내놓은 논문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을 보면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2000년대 42.0%로 크게 늘었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 비율도 80년대 연평균 5.0%에서 2010~2013년 8.2%로 증가했다. 개인이 노력해 버는 소득보다 물려받은 자산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면서 수저 계급론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과거의 축적된 부와 그로부터 얻는 수익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한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이 이론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유명한 영문 관용구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위키백과는 추정한다. 이는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다', '행운을 쥐고 태어나다'라는 뜻이다. 이에 따르면 과거 유럽의 귀족들은 은그릇을 자주 사용했고, 보모들이 은수저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등의 행동으로 집안의 재산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족의 부를 기준으로 개인을 분류하기 위한 몇 가지 범주를 정립하기 위해 이 개념을 적용하였다.

이 단어는 1960년대를 전후로 대한민국에 고스란히 넘어와 대중이 쓰기 시작했다. 영미권의 관용구가 우리나라에 이처럼 널리 확산된 것은, 은수저에 대해 한국과 영어권의 관점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양에서 은수저는 부귀, 특히 상속된 부를 상징하는 물건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왕족 등 상류 계층에서 독살을 피하고자 은수저를 실제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래는 오랜 기간동안 세계 도처에서 '은수저'가 부유함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금수저'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없었으나, 세계구급 스포츠대회 등에서 '금은동'이 서열화되고 이것이 대중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면서 자연히 은수저가 가진 부유의 상징도 금수저로 옮겨가게 되었다. 현대로 넘어오며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금'이 '은' 보다 상위의 귀금속이란 인식이 널리 퍼지며 실제로는 금수저는 만들지도 않고 써먹지도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개념적으로 금수저가 부유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돌잔치에 조그마한 금수저를 선물하는 관행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저 계급론이라는 말이 시작되었을 때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4가지 종류 최초로 제시되었다. 

이때는 금수저는 따라잡을 수 없는 부자. 동수저는 평범한 서민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빈곤한 가정은 흙수저, 그보다도 더 떨어지는 가정은 똥수저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 『인간명품』은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나 자체가 명품이 되고 싶은 청춘들에게 길을 보여준다. 내가 물고 태어난 수저에 불안을 느끼는 한국의 청춘들은 외적인 조건 대신 스스로 빛나게 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럭셔리의 어원 라틴어 luxus는 ‘빛’이자 ‘과도함’을 뜻한다. 빛나고 싶어하는 욕망은 곧 불안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은 그 불안과 욕망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인생을 통해, 사치와 교양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에게 고상한 돌직구를 던진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답은 문화적 자부심이다. 저자가 고유명사 그대로 고집한 ‘상속자 정신(Sangsokja Jungshin)’은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된 과거로부터 물려받는 힘이다. 조선 백자, 유럽의 아틀리에, 장인의 노력 속에서 축적된 가치가 오늘의 청춘을 다시, 스스로 빛나는 명품으로 태어나게 한다. 태어날 때부터 명품인 사람은 없다. 살아가는 순간이 쌓여 걸작이 된다. 이 책은 불확실한 청춘이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고, 상속자 정신을 이어가는 세대로 세우는 가장 고귀한 길이다.

재클린의 삶을 재조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은 재클린의 아포리즘을 옮긴 피상적인 명언집이 아니다. 목차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녀의 문장은 어디에도 없다. 모티브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클린은 아일랜드계라는 이유(고 케네디 대통령도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의 가문이다.)로, 성골과 진골이 나뉘던 미국 상류층 사회에서 늘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 혈통과 교양을 내세워, 결국 세상의 시선을 뒤집고 세기의 아이콘이 되었다. 저자는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흐름에서 오늘날 한국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영감을 새롭게 풀어냈다. 그리고 이를 ‘상속자 정신’으로 이름 붙였다. 불안과 비교가 일상이 된 오늘, 가장 값진 명품은 가방도 시계도 아니다. 뭘 걸쳐도 빛이 나는 청춘, 그 자체가 명품이란 저자의 확고한 메시지다.



책의 〈추천사〉를 쓴 박정근 교수(럭셔리 브랜드 연구소 소장)는 「타고난 운명보다 걸어온 길이 사람을 빛낸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간명품』은 제목과 달리 명품이라는 단어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계급차별적이지 않고 공동체 지향적이라는 점도 흥미롭다"며, "창조적 시선으로 재클린의 이야기를 통해 '고유함' '탁월함' '역사와 스토리' '심미안' '영향력'이라는 다섯 가지 자질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고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단어들에는 오늘날 청년들이 갖추어야 할 개념들이 모두 들어 있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오래도록 강조해온 자질을 의인화한 결과라고 박 교수는 밝힌다.

박 교수에 따르면 젊은 날 누구나 지나칠 정도로 빛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종종 불안과 맞닿아 있고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갈망은 모순과 역설을 낳는다. 이 책은 그 불안과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사치와 교양의 양극을 오갔던 재클린을 탁월하게 줄타기한다. 속물근성에는 주저하지 않고 고상한 돌직구를 날린다. 재클린 사회학을 기초로 던지는 저자의 주장 또한 명확하다. 한마디로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과거의 상처, 현재의 어려움, 미래의 불확실성까지도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라고 생각하며 껴안을 수 없다면 그 인생은 무엇이냐는 질문도 던진다. 그것이 삶을 명품으로 완성하는 태도가 아니냐는 물음이다.

이 책은 '학생'이 묻고 '상속자'가 답하는 대담형으로 쓰였다. 이 형식은 〈서문〉부터 마지막 장(章)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본문은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겠지만 앞서 〈추천사〉에서 박 교수가 말한 다섯 가지 자질이 각각 1장씩 차지해 재클린의 삶을 상세히 설명하는 데 쓰인다.



각 장의 제목보다 부제로 쓰인 문장이 훨씬 직관적이다. 1장 〈고유함-가장 고귀한 것은 가장 초라한 곳에서 태어난다〉, 2장 〈탁월함-운명은 오래된 설계도를 품고 있다〉, 3장 〈역사와 스토리-시간이 만든 무게와 나만의 서사〉, 4장 〈심미안-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창조하는 안목〉, 5장 〈영향력-세상에 남기는 비밀스러운 파문〉 등이다. 1장에서는 저자가 세운 '상속자 정신'을 설명한다. 당연히 재클린의 출신이 소환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재클린은 아일랜드의 대기근과 대영제국의 압제를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 이민자 집안이다. 엄청난 힘을 가진 영국의 식민지배를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대기근 때 굶어죽지 않기 위해 피신한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이라고 얼마나 대우를 해줬을까. 미국은 이른바 와습(WASP, 백인, 앵글로색슨 족, 청교도)이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거쳐 13개주 연합국가를 건설했다. 와습은 이미 미국의 영향력 있는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은 후였다. 재클린은 당시의 '수저계급론'을 부정했다. 특정 집단 내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픔(박탈감)을 겪었단 뜻이다. 

이로 인해 재클린은 가정 내에서부터 할아버지 등 자상한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은 물려받지 못했을 거란 사실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렇다면 '상속자 정신'이란 말과 배치되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은 '상속자'의 답변을 통해 해결된다. "상속자 정신은 부모로부터만 오는 상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모를 뛰어넘어 사회로부터 받는 더 넓고 큰 상속을 뜻한다.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답한다. 이것이 '상속자 정신'이라고 한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재산의 개념에서 상속을 '기회'라고 본 것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다고 대담자 학생은 통계치를 제시한다. 웰스ㅡX에서 세계의 부호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재벌 중 66.7%의 부의 원천은 상속 재산이었다. 나머지만 자수성가를 통해 부를 이뤘다는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세계 평균과 비교해도 이는 명확하다. 상속재벌이 약 40%, 자수성가 재벌이 60%였다는 것.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상속자들의 나라인 셈이다.



저자 임하연은 출판기획자로서 무엇보다 ‘재미’를 중시했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대화체와 소설식 구조를 띠고 있어 마치 재클린이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학생과 상속자의 대화는 흡입력 있게 전개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밤새 정주행하게 만든다. 단순한 교양서가 아니라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담겨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간명품은 태어나면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삶의 흔적이 고유함이 되고, 평범을 넘어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갈망이 탁월함으로 빛난다.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 심미안이 되고,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용기로 번져갈 때 비로소 영향력이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삶 자체가 드물고 귀한 걸작이며, 이 책은 태어난 수저의 색깔로 불안이 갈리는 시대에서 청춘이 명품으로 거듭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상속자: 그렇지 않아요. 타고난 운명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느냐 생각해 보면 달라지겠죠. 수저계급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관계를 권력관계로 볼 수밖에 없어요. 나보다 재산을 더 물려받은 사람, 덜 물려받은 사람 오로지 두 가지로 나뉘죠. 하지만 인간은 사랑 할 때만큼은 동등해요. 인간관계를 내가 먼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세상이 달라지죠. 그녀와 나 사이에는 분명 격차가 있었지만,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영혼만큼은 동등했어요. ‘그녀도 나와 같은 영혼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타고난 운명의 열쇠를 내가 쥐게 되죠.

학생: 정말 그런 거예요?(p.182~183) - 「운명을 다시 쓰는 손끝」 중에서


저자 : 임하연


한국 출판계에서 보기 드문 유학파 출판 기획자이자 인문학 작가다. 사람을 ‘원석’에 비유하며 매일의 선택과 작은 용기, 삶의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걸작이 된다고 믿는다. 스무 살 무렵, 런던 소더비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아트컬렉터 교육을 받을 때도 눈앞의 재산보다 오래 남는 문화와 교양에 관심이 머무른 덕분이다. 임하연의 시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가치’에 머문다. 그녀는 문화적 자산과 교양, 대화 속에서 길러지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인간을 빛나게 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글은 이러한 대화의 힘을 바탕으로 독자와 만난다. 작품마다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스스로와 대화하는 경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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