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 - 도전과 모험을 앞둔 당신에게
김재철 지음 / 콜라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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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은 스스로를 지탱한 세 가지로 ‘도전’과 ‘열정’, 그리고 ‘호기심’을 꼽는다. 바다를 향한 그의 시선에서 도전과 야망이 엿보였고, ‘나는 제대로 살아왔는가.‘가 늘 자신을 바로잡아 주었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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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 - 도전과 모험을 앞둔 당신에게
김재철 지음 / 콜라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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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돌아보면 내 삶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호기심에서 시작해 실행하고 탐구하고 실행하다보니, 도전이 도전을 낳고 습관이 됐을 뿐이다. 그 습관을 남들은 열정이라고 불렀다.”(p.23)

이 책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은 동원그룹 김재철 명예회장의 자서전이다. 동시에 에세이로도, 자기계발서로도, 또 경영 서적으로 활용되어도 좋다. 이 책엔 그가 살아온 이력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특히 가난했기에 돈을 벌기 위해 주저없이 돈을 버는 산업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어간 적극적인 모습에서는 목적이 있으면 적극적인 추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본받아야 할 위인전으로 참고할 만하다. 집안이 어려워 선택한 대학도 진리 탐구보다는 하루빨리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감으로 수산대를 택했고, 계획대로 원양어선을 탔다. 큰 배를 타고 바다 위를 가른다는 것은 낭만적으로도 보이기도 하다. 실제 마도로스는 많은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일 때가 있었다. 독자는 한 번도 원양어선을 타본 적이 없지만 몇달 간 바다 위를 떠다닌다는 것은 낭만의 수준을 벗어난 일이다. 거칠고 변화무쌍한 바다를 수개월씩 타고 이동한다는 것은 강인한 체력과 자신을 이겨내는 정신력, 일에 대한 열정 등 많은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은 동원그룹·한국투자금융지주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이다. 원양어선 무급 실습 항해사로 시작해 그룹 총수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그야말로 도전과 응전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그의 도전이 특별한 이유는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날로 급변하는 환경을 내다보며 도전의 방식과 태도를 변화에 발빠르게 맞춰갔다. 경영인으로서도 남다른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파도에 맞서는 것뿐이다.” 저자는 파도에 맞서 이겨냈기 때문에 오늘날 그룹 회장이 되었고, 90이 넘은 나이임에도 일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은 '천상 일꾼'의 모습이 엿보인다.


“동원은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온 결과, 현재 원양어업과 수산물 가공 외에 물류 컨테이너 터미널, 축산, 가정 간편식 등의 사업, 나아가 2차전지 소재 부품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 특히 포장재는 동원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다. 전혀 다른 업종인 증권업도 한국투자증권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기업은 환경적응업’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 시도하고 도전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성장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게 우리의 목표다.”(p.75)

그는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한 번도 ‘같은 도전’을 한 적이 없다. 그리하여 그의 도전은 21세기 경영뿐 아니라 사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덕목인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며, 나이 아흔이 넘은 지금도 그 자신을 통해, 직접 설립한 기업들을 통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는 개인으로서나 경영자로서나, 늘 도전을 꿈꾸고 행하고 마침내 이루어내는 ‘드리머(Dreamer)’의 길을 걸어왔다.

김 회장은 ‘왜 편한 길을 놔두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험한 길을 걸어갔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충분히 의문이 들 만했을 것 같다. 그의 삶에서 선택은 진학도, 취업도 무엇 하나 일반적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김 회장의 답은 늘 한결같았다고 밝힌다. "어려운 길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편한 길로 갈 힘이 없었다. 편한 길에는 이미 머리 좋고, 집안 좋은 사람이 많았다. 그 길에는 들어서기도 어렵고, 설사 어렵사리 들어간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도 쉽지 않고, 두각을 나타내기란 더더욱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안 가는 곳에 가면 새로운 성취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만의 길을 찾았다고도 할 수 있다.”(p.105) 대단한 배짱이다.


저자인 김재철 회장은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가슴 뛰는 도전’의 메시지를 이 땅의 청년들과 직장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집필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늘 궁금했고, 질문했고, 시도했고, 도전했다. 이 책은 그가 품어온 호기심과 도전의 질문들이자 열정과 성장의 답변들이다. 꿈을 품고 있거나 그 꿈을 이루고픈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를’ 원하는 요즘의 청년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바보 같다’고 여기는 지금의 직장인들에게, 김재철 회장이 몸으로, 또 삶으로 증명해낸 도전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귀하고 값진 이정표이자 가르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 회장의 인생은 늘 위기의 연속이었다. 이후 사업을 시작하고,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철판 한 장 밑에 지옥을 깐 생활’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패의 순간마다, 포기의 순간마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는 바다 위에서의 결심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그를 지탱한 키워드는 세 가지, ‘도전’과 ‘열정’, 그리고 ‘호기심’이었다고 스스로 다짐한 좌우명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오늘날 서양 문명이 세계의 지배자가 된 것은 신대륙을 발견해서가 아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배를 직접 만들고 목숨을 담보로 바다로 뛰어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모험은 신대륙이나 다른 피지배자들에게는 '재앙'이지만 그들에게는 잘살기 위해 돈 버는 일이었다. 신대륙의 엄청난 자원, 아프리카의 노예사업 등을 노리고 그것으로 부를 창출해 낸 것은 문명인으로 할 짓은 아니지만 신대륙의 자원과 물자에 대한 욕망은 그들의 야만을 눈가리게 했다. 거친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뱃사람들의 모험심과 약탈한 자원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부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고, 세계를 아우르는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뱃사람들의 모험심은 비판받지 않는다. 남들이 두려워하는 망망대해로 나아가 거친 파도를 극복하고 시선을 바다 너머로 갖게 하는 인간의 본능적 호기심과 탐험심은 인류 문명을 발달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저자가 스스로를 지탱한 세 가지 ‘도전’과 ‘열정’, 그리고 ‘호기심’으로 꼽는 것도 바다를 향한 그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대업을 완성한 그룹 총수로서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짧을 수 없지만, 이 책은 무척 짧다. 자신의 행적을 전부 풀어놓지 않고 청년들을 위한 책을 썼기 때문이다. 저자는 「작은 불씨를 꿈꾸며」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늦은 나이에 정중하게 거절해 왔던 책(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등)을 끝까지 고집하지 못하고 책을 낸 것은 분명 '청년들에게 남길 말'에 설득당해서였다. 저자 스스로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누가 자신을 추켜세우는 것도 생리적으로 싫어했다는 말도 분명히 한다. 심지어는 저명한 작가들도 저자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여러 번 제의해 왔으나 한사코 거절했던 그였다. 다만 회사나 대학교, 대학원 특강 등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일은 보람 있고 필요하다는 생각에 여전히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상황도 이야기한다. 김 회장은 이번 책을 내면서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 한마디 덧붙인다.

"돌아보면 내 삶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호기심에서 시작해 실행하고 탐구하고 실행하다보니, 도전이 도전을 낳고 습관이 됐을 뿐이다. 그 습관을 남들은 열정이라고 불렀다."(p.23)

이 책은 길지 않은 분량으로 3부(stage)로 이뤄져 있다. 1부 〈도전의 태도 : 지금, 나의 가슴은 정말 뛰고 있는가〉, 2부 〈호기심의 바다 : 창조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시작된다〉, 3부 〈열정의 온도 : 풍랑이 일 때, 진짜 항해가 시작된다〉 등이다. 각 부는 각각 3~4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엔 「플러스 스토리」를 추가해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각 부는 저자가 스스로를 지탱해오던 힘이라고 말한 ‘도전’ ‘열정’ ‘호기심’이다. 1부에는 「선택」「목표」「변화」「실패」란 키워드로 4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도전의 증인, 희망의 증거」란 플러스 스토리가 실려 있다. 2부엔 「호기심」「현장」「융합」「독서」가 핵심어로 자리 잡고 김 회장의 삶에 등장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열정」「각오」「정의」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담담하게 쓰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 「미완의 꿈」이란 제목의 〈에필로그〉와 「열정이 묻고, 경험이 답하다」란 제목의 문답식 〈부록〉이 책을 보충한다. 이 책을 정리한 「삶과 꿈, 호기심과 도전」이란 제목의 〈정리자의 글〉도 눈길을 끈다.


책의 시작 부분에서는 책 속 글의 내용을 강조해서 쓴 부분 가운데 중요한 문장을 발췌해 따로 지면을 12면을 할애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적힌 문장 몇 개를 옮겨 적는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나는 제대로 살아왔는가.', '내 선택들은 옳았는가.', '다른 삶을 살 수는 없었나.'

바다 위의 생할은 언제 죽음과 마주할지 모르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비단 바다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내 인생은 늘 위기의 연속이었다. 이후 사업을 시작하고,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철판 한 장 밑에 지옥을 깐 생활'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패의 순간마다, 포기의 순간마다, 위기의 순간마다, 바다 위에서의 결심을 떠올렸다. '덤으로 한번 더 사는 인생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다 가자. 구질구질하지 않게 사는 거야.'

지금까지 나를 지탱한 키워드는 세 가지. '도전'과 '열정', 그리고 '호기심'이다.

나는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늘 궁금했고 질문했고 시도했고 도전했다. 이 책은 내가 품어온 호기심과 도전의 질문들이자 열정과 성장의 답변들이다. 꿈을 품고 있거나 그 꿈을 이루고픈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 김재철


동원그룹 · 한국투자금융지주 창업주. 주변의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따놓은 당상이었던 서울대를 포기하고 수산대로 진학을 결정하며 ‘바다 인생’이 시작되었다. 실습차 동해, 서해, 남해를 다니며 어족 자원이 거의 절멸상태임을 확인하고 좌절했으나, 국내에서 첫 원양어선이 출항한다는 기사를 보고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다. 수산대를 졸업하면 ‘갑종 2등 항해사’ 자격이 주어지지만, ‘이론’보다 ‘실습’, ‘학위’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 ‘무급 실습 항해사’로 참치잡이 국내 원양어선 1호인 ‘지남호’에 올랐다. 고기를 잡으면 배를 갈라보고, 어디서 어떤 크기의 참치가 잡히는지 연구하며 훗날 ‘참치를 잘 잡는 선장, 캡틴 킴’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1969년 동원산업을 설립했고, 1982년 한신증권을 인수하며 오늘날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김재철 비즈니스의 하이라이트는 2008년 미국 최대, 세계 최대의 참치캔 회사 스타키스트 인수였다. 스타키스트는 동원산업 창업 초기 원양에서 물고기를 잡아 납품하던 회사 중 하나였는데, 그 회사를 인수하며 동원은 세계 참치캔 1위 업체가 됐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기업은 환경적응업’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온 결과, 현재 동원은 원양어업과 수산물 가공 외에 물류 컨테이너 터미널, 축산, 가정 간편식 등의 사업, 나아가 2차전지 소재 부품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 특히 포장재는 동원이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다.

그는 공적 영역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았다. 2006년에는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을 맡았는데 유치전을 승리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앞서 1986년 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 훈장을 받았던 그는 무궁화장과 금탑산업 훈장을 받은 거의 유일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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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1분 철학 관계수업
서정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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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철학서를 만화로 보는 일은 처음이다. 이 책 『만화로 보는 1분 철학 관계수업』 이외에도 몇 권의 철학 서적이 이미 만화로 제작된 적이 있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워낙 멀리 했던 철학은 몇 권을 읽어봐도 중심 사상은커녕 철학자의 사유의 원천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살아가면서 알아두면 뭔가 도움이 될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한 탓일까? 몇 권 읽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여러 번이다. 철학은 사실 어려운 학문이고, 특히 사고와 사유의 학문으로 알려진 학문이기에 책도 정독을 해야 할 것으로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도 서적을 만화로 이해하도록 출간한 책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독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다 주신 〈어린이 세계 명작 전집〉에도 늘 그리스·로마 신화가 1, 2번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필독서란 듯이. 그러나 독자의 독서법이 잘못 되었는지 몰라도, 수많은 인명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결국 완독하지 못한 리스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금도 완역판을 읽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거리감이 있다. 많이 등장하는 '제우스'나 '헤라' 등은 머릿속에 박혀 있지만 아직도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더욱이 희랍어와 라틴어 발음이 다르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 정도로 무심했다.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철학보다는 신화가 훨씬 더 생활에 밀접하고 심지어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르고서는 대화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역시 만화로 읽어서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한 채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기서 다룬 10명의 철학자는 대부분 익숙한 이름이어서 그나마 쉽게 읽힌다. 걱정했던 이해도도 그림을 곁들여 읽어보니 조금은 더 수월하고 친근감 있어 가깝게 느껴졌다.


저자 서정욱은 대학 교수로 있지만 청소년과 이해하기 쉬운 철학 서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분이란 것도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철학자를 선택한 것도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인물들로 골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제한된 지면과 철학자 수 중에서 철학의 흐름을 가름하는 인물들로 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흔히 서양 철학의 원류를 그리스 철학으로 꼽긴 하지만 인물은 '소크라테스'로 알고 있다. 사실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란 별명도 있지 않은가? 이 책에서는 철학의 원조는 '과학(자연과학)'이라고 말한다. 철학의 시작은 탈레스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사에서는 철학의 과제를 우주, 자연, 인간이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당시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우주를 관측할 장비와 자연을 연구할 과학적인 이론의 부족으로 자연에 대해 답을 주기가 힘들었다"고 전제한 뒤 "결국 인간 문제에 눈을 돌렸다"고 설명한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철학이 시작되면서부터 대화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삶에서 부딪히는 대부분의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현대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철학자들의 지혜를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만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냈다고 책의 성격을 밝힌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프로타고라스, 제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쇼펜하우어 등 10인의 유명 철학자들이 등장해 현대의 인간관계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명쾌한 지혜를 전달한다. 각 철학자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삶에서 즉각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인간관계를 좀 더 깊고 명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서문〉에 따르면 철학자는 고독한 사유의 존재임을 떠올려본다. 고독한 사유의 존재인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이렇게 정리된 생각은 진리로 이어진다. 결국 철학자들은 인간관계를 통해 진리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이렇게 고독한 사유의 존재인 사람은 항상 누구와 함께함으로써 스스로 완전히 혼자가 아님이 밝혀진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철학자의 고유한 철학은 모두 인간관계 속에서 생겨난 철학자들만의 고유한 통찰이다.

철학사에 등장하는 많은 철학자들은 누구의 스승이거나 후견인이었다. 여기서 '누구'는 왕, 왕자, 귀족, 혹은 명문가의 장군이었다. 즉 철학자는 권력자와 항상 가까이 있었고, 권력자에게 권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권력자는 인간관계를 누구보다 신중하게 해야 할 사람들이다. 철학자는 그들에게 인간관계의 신중함을 가르쳤고, 그들은 정성을 다해 배워 자신의 권력을 배가시켰다. 그 결과 철학자와 권력자의 관계는 단순한 배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를 통한 투쟁의 장이었고, 서로를 도와준 협력의 관계였다. 권력자는 철학자로부터 배운 인간관계를 자신의 세계로 해석하였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철학자는 관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세속과 떨어져 자시난의 사유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때 철학자의 친구는 고독, 침묵 등이다. 철학자가 사유하는 이유가 진리를 찾는 것에 있다면, 진리의 원천은 관조의 세계이다. 관조의 중요성을 외로움과 침묵에서 찾는다면, 철학자는 내면의 소리로 인간관계를 논한다. 철학자의 내면의 소리는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그 파장은 너무 넓게 퍼져나간다. 이렇게 철학 자체는 혼자의 행위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인간은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 존재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철학자는 이렇게 다른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의한다. 즉 철학자는 인간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p.5~6)



이 책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철학자 10명이 소개된다.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자신을 보호하는 법〉, 2장 〈이성으로 나를 지키는 법〉, 3장 〈덕을 실천하는 법〉, 4장 〈적을 만들지 않는 법〉, 5장 〈의견이 달라도 대화할 수 있는 법〉, 6장 〈의무로 관계를 지키는 법〉, 7장 〈행복을 추구하는 법〉, 8장 〈힘의 관계를 직시하는 법〉, 9장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10장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 등이다. 현대인들은 '관계' 문제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살면사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자신을 가장 기댈 수 있는 곳이 사람이란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친구, 연인, 직장 동료와의 좋은 관계를 원하고 간혹 갈등이 있으면 괴로워한다. 이 같은 갈등은 가장 가까운 가족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가장 고통스러워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의 인간관계는 선의를 기대하지만 꼭 선의로만 대하지 못할 경우 갈등이 발생하고, 그 갈등은 고통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런 관계의 지속은 끊임없이 추구하고, 우리를 그만큼 지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 국가 중 갈등지수 1위라는 불명예까지 안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관계로 병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으로부터 덜 상처받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해답을 철학에서 찾는다. ‘관계 문제에 철학이라니?’ 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은 인간과 삶,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누구보다 깊고 오래 성찰해온 학문이다. 결국 삶의 모든 문제는 관계에서 비롯되고,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그 해답을 고민해왔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가장 고통을 주는 게 인간관계의 갈등이다.

저자는 이 책을 청소년들에게 인간관계를 잘 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집필했다. 철학에서 배워야 하는데 독자처럼 철학을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하고 아예 접근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쉽게 철학을 접할 수 있도록 만화로 그려냈다. 이 책에는 철학자 이외 질문자가 한 사람이 나오는데 청소년이다.


청소년이 철학자들을 찾아가 인간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즉, 만화 형식의 철학 수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각 철학자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대화와 구체적인 장면을 통해 독자 스스로 사유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누구나 겪을 법한 관계의 갈등과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철학자들은 그 속에서 예리한 통찰과 실천 가능한 조언들을 던진다.

특히 이 책은 각 철학자의 핵심 메시지를 단 1분 만에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짧고 명료하게 구성되어 있어, 시간 내기 어려운 현대인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독자가 딱 여기에 해당하는 듯하다. 짧은 분량이지만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저자는 독자의 생각을 전환시키고, 일상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실용적 철학으로 다가가도록 꾸몄다. 이 책은 철학이란 결코 어려운 사변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나와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실천의 도구이자 삶의 기술임을 보여주는 데 첫 번째 목적이 있다.

저자는 철학은 단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삶의 도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에 지치고 길을 잃은 이들에게 철학이라는 나침반을 건네며, 이 책을 통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이끈다. 지금 이 순간 철학자들의 지혜를 따라가며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를 다시 조율해볼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관계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 당신의 삶도 조금씩 가벼워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철학자의 노트」란 별도의 코너가 마련돼 있다. 만화 그림으로 미처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글을 읽음으로써 복습 겸 되새김으로써 확실히 알기에 힘이 될 것이다.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핵심 내용에 대한 설명 등이 주를 이룬다. 마치 시험 치기 전 공부한 것을 정리해둔 별도 요약집 느낌이다. 또 시대적 배경 설명에는 새로운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철학자와 인간관계의 간극을 직접 느낄 수 있다. '프로타고라스' 「철학자의 노트」의 경우 "전쟁이 없던 시기의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민들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법정에 모였다. 생계를 위해 하루 일당을 받는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변호인으로 활동하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배심원은 대부분 법률 지식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기에, 변호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려한 웅변으로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p.36)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출간 후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의 일부를 여기에 적는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눈여겨 볼 것을 권유한다. 

Q) 많은 청소년이 철학을 어렵고 고리타분한 옛사람의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철학이 청소년에게 왜 중요한지 짧게 알려주시겠어요?

A) 철학을 배울 때 우리는 대개 철학자의 생애와 이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철학자의 이론과 생애는 중요한 연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철학이든 그 철학에 철학자의 생애와 목표 의식 같은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철학을 안다는 것은 철학자의 생애를 아는 것이고, 철학자의 생애를 아는 것은 철학자의 목표 의식을 아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의 한 단계, 예를 들면 청소년기에 어떤 목표를 찾는 데 철학이 도움을 주는 것이죠.


Q) 그래도 여전히 어렵게 느끼는 청소년이 있을 거 같아요.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요?

A) 거의 모든 철학자가 자신이 살던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철학자의 사상과 생애는 당시 그가 살던 시대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철학자의 생애나 사상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그 철학자가 살던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역사와 문화를 알면 당대의 철학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래도 철학 이론이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 이론의 중요 개념만 다시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모든 철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려고 몇 가지 중요 개념을 나열합니다. 그 개념만 이해하면 의외로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자 : 서정욱


배재대학교 심리철학상담학과 명예교수.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배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고대 그리스 철학과 신칸트학파, 논리학 분야에서 여러 논문과 저서를 펴내며 연구 활동을 해왔다. 학술 분야 이외에 청소년과 일반 대중을 위한 철학 강의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어릴 때부터 철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을 다수 집필했으며, 소설이나 동화 또는 만화 형식을 빌려 철학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저서로는 『만화 서양 철학사』 1, 2, 3권과 『플라톤이 들려주는 이데아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들려주는 행복 이야기』 『푸코가 들려주는 권력 이야기』(2008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 『철학의 고전들』(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 『푸코가 들려주는 권력 이야기』 등이 있다. 또한 『소크라테스, 구름 위에 오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소를 타다』(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로 철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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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 왜 지금 노무현인가
    이장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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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표제어가 말하듯 중앙일보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사 등을 묶어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를 위주로 쓰인 기획물이다. 중앙일보는 첫 기획 시리즈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 비사를 묶어 연재를 실시한 바 있다. 이때 제목은 〈대통령 비서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자는 정치에 별로 뜻이 없고, 따라서 관심도 없는 편이었다. 신문을 일일이 찾아 읽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단행본으로 엮어 출간되었을 때 구입한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 책은 집 어디 구석엔가 꽂혀 있을 터다. 중앙일보는 그 뒤 대통령이 바뀌고 정치 환경이 변할 때마다 집권기 비사를 중심으로 공과를 평가하는 차원에서 이 기획 시리즈를 이어갔다.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업적으로나, 인물로나 매우 독특하고 유별난 리더요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한다. 다음 과연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었을까,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에 대해 접근해 들어간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도, 한 정치인으로서도 독특한 이력과 공과가 많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연히 논란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는 4명의 전현직 기자(이하 저자)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집권 당시 노무현의 지지도가 얼마나 바닥이었는지를 지금의 젊은 세대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퇴임 당시 지지율은 10%가 채 되지 않았으며, 언론이나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한 처량한 신세였다. 하지만 불과 15년이 지나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2024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1위(31%)가 바로 노무현이다. 2위 박정희(24%)를 큰 차로 앞섰다.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는 지지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던 그가 지금은 압도적 1등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취재를 따라 노무현의 정치 인생,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 등을 알아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중앙일보의 온라인 유료 플랫폼 더중앙플러스에 연재된 기획 시리즈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을 엮은 도서다. 취재팀은 지난 1년간 노무현과 참여정부 5년의 공과를 복원하고 평가했다.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질책했으며, 노무현의 정치적 선택과 정책 판단을 당시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다시는 당사자를 만날 수 없게 된 한계는 증언과 기록을 통해 최대한 보완했다. 이를 위해 20여 년 전 노무현의 시대를 취재 현장에서 겪었던 두 명의 전직 기자, 호기심에 가득한 현직 기자 두 명이 팀을 이뤄 100여 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참여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이 대부분이지만, 반대 진영에 섰던 인물들도 만났다.

    또한 대통령 취임 첫해이던 2003년 11월, 주요 일간지(중앙·조선·동아·한국·세계일보) 편집국장들과 진행한 비공개 동동주 만찬의 대화록을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이던 이장규의 메모를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언론 및 경제, 정치자금 문제뿐 아니라 집안과 개인 문제, 대선 뒷이야기 등을 깜짝 놀랄 만큼 솔직한 어투로 털어놓았다. 이제 지난 1년여간의 복원 작업 결과를 다시 단행본으로 엮어 세상에 띄운다. 아마도 노무현은 더 오랫동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독자들의 판단을 구한다. "노무현은 과연 1등 대통령인가. 아니면 시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착시인가." 저자가 책에 실은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준다.

    독자가 노무현이란 존재를 처음 알았던 것은 〈5공 비리 청문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8년 13대 국회에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때 전두환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5공 비리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가 열리는 국회 바깥에서는 전두환, 이순자의 구속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여졌다. 이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사람이 국회의원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은 증언대에 선 채 꽂꽂한 자세로 말을 이어가던 전두환을 향해 정곡을 찌르는 질문과 함께,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다고 전두환을 향해 집기를 집어 던지는 과격한 행동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마치 민중의 분노를 대변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거침이 없었고, 많은 동료 의원들의 눈길을 한데 모았다. 노무현은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은 그를 얼마나 알고, 또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나간 시대의 인물들을 각자의 관점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평가하고 기억한다. 노무현은 그런 역사의 인물들 가운데서도 가장 논란이 큰 존재다. 

    노무현은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일한 5년간은 물론,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원칙과 소신을 고집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퇴임 무렵 지지율이 10%대였던 노무현은 지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을 꼽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노무현의 시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저자들은 지난 1년여의 취재를 통해 성공한 노무현과 실패한 노무현을 차분히, 냉정하게 들여다보았다.

    모두가 기억하듯 노무현은 민주화 이후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다.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평범하지 않았다. 영광과 좌절, 성공과 실패가 씨줄과 날줄처럼 뒤엉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삶이었다. 5공 청문회 스타로 떴지만 3당 합당에 반대해 낙선을 거듭했고, 간신히 야당 후보가 돼서는 승산 없는 후보 단일화에 나섰다. 드디어 대통령이 되자 이라크 파병,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지지 기반을 버리는 정책 결정을 감행했다. ‘바보 노무현’으로 집약되는 이런 면모들이 언론과의 싸움, 부동산·교육 개혁 실패, 걸핏하면 터졌던 말실수 등 그가 재직 중에 저지른 무수한 실책들을 가려주고 있다.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노무현과 참여정부 5년의 이러한 공과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앙의 시선에서 다시 보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이 기획 시리즈가 연재되는 동안 예기치 못한 상황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한 후 탄핵 사태, 대통령 파면에 이어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이젠 이재명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고 어지럽고 불확실한 내외 사건이 이어지는 정세 속을 어떻게 돌파할지 새 정부의 막중한 책임이 놓여 있다. 저자들은 돌발적이고 충격적인 사태 진전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힌다. 당초 계획했던 내용들을 빼고 시대 상황과 관련된 취재를 추가해 기획안을 수정했다고 털어놓는다. 급박한 상황 변화 속에서 20년 전 노무현 시대가 던지는 메시지를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힌다. 탄핵이나 대행 체제, 개헌·대연정 등의 최근 상황은 이미 노무현의 시대에 등장했던 이슈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대나 기간 구별 없이 사건이나 사안 별로 따로 분리해 모두 3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통령의 공과 과는 찬성과 반대가 있기 마련이다. 첫 장 "자신을 버려 폐족을 구하다"는 부제가 붙음으로써 좀 더 참담한 마음이 든다. 「스스로 쓴 가혹한 판결문」. 저자는 노무현의 극단적 선택은 정해진 수순에 따른 것은 아니고, 분명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결단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 노무현은 낙향하면서 측근들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의욕적으로 도모하고 있었다. 대통령 경험을 토대로 진정한 정치 개혁을 위한 '진보정치의 미래'를 그려내는 작업이었다. 그랬던 것인데, 주변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이를 포기하고, 회고록을 쓰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것도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실패와 좌절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참회록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p.18~19) 이 내용은 미완성 회고록의 일부를 가져왔음을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쓰고 있던 박연차 회장이 선물했다는 시계 이야기는 '치졸'한 대통령으로 몰려는 검찰 측의 의도적임을 간파하고 이를 빼자고 검찰 측에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변호인으로서 검찰 조사 과정을 시종 함께했던 문재인이 장례 직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2009년 6월 2일자)에서 말한 내용이 좀더 구체적이라며 인용하고 있다.


    "(노무현이) 박연차 회장의 돈을 알게 된 것은 올 2~3월째다. 권 여사가 처음에 (자식들) 유학 비용 정도로 이야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집을 사기 위한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 (검찰 수사에 대해서) 정치 보복에 의한 타살론까지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 (그러나)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들이 그분을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으니 타살적 요소는 있다." 이 문장을 보니 당시 검찰 수사팀장이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때 청와대 사정수석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설득력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검찰의 수사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개입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밝혀내는 일은 검찰 특수성에 비춰 볼 때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다만 당시 중수부장이었던 이인규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란 책을 통해 전모를 밝힌 내용이 있다. "수사는 불구속으로 하되, 시계 선물을 언론에 흘려서 도덕적 타격을 가하라는 압력이 있었다." 사건을 도덕적 흠결이 있는 비열한 사건으로 몰아감으로써 그의 도덕적 흠집을 내야 한다는 수사 원칙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기법인지 모르지만 정공법이 아니라면 수사 자체가 목적 수사였음을 드러내는 한 부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12·3 비상계엄(내란)으로 대통령은 파면되고 이재명 대통령이 새로 취임했다. 이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주당은 이 위헌·불법적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특검까지 출범시키며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부 내란 옹호 세력을 중심으로 정치 보복이란 프레임으로 걸고 넘어지려고 하지만 국민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내란 잔당'으로 몰리자 또다른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등 5개 재판을 임기 끝나면 꼭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통령 선거와 당선 등으로 재판이 연기되었으니 임기 후에라도 재판을 받는다는 확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얼핏 들으면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발언 이면에는 대통령의 정치 보복의 힘을 빼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어떻게 할지는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 국민의 뜻이리라.


    위헌·불법적 비상계엄으로 보궐선거 성격의 이번 대선을 통해 계엄선포한 내란 수괴 윤석열 전 대통령 말고 가장 많이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은 단연 '김건희'다. 전 영부인인 김건희는 왜 국민 밉상이 되었나? 국민들에게 비춰진 그의 성격이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에 별 문제가 부각되지 않지만, 사실 선거 전부터 그는 언론의 도마 위에 수없이 올랐다. 그는 남편의 대선 후보로 되기까지 적잖은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그것까진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것 저것 검증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언론으로부터 재산(돈) 문제가 자꾸 불거져 나왔다. 재산이 의외로 많은 점, 김건희의 어머니의 재산 증식 과정에서의 편법 등이 쉴새없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불법적인 점을 밝혀내지 못했다. 또 선거 과정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운영 중인 회사의 설립, 강의하던 대학에서의 이력서 위조 등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그러나 검찰은 그 많은 혐의나 용의점 중 하나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선거전에 돌입했다. 

    전 대구시장 홍준표는 2024년 10월 중순 자신의 SNS를 통해 하필이면 권양숙을 거론하고 나섰다고 저자는 책에 쓰고 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두고 노무현의 부인 권양숙 여사의 처신을 배워야 한다며 정치 훈수를 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장인의 좌익 경력으로 곤욕을 치른 후 대통령이 된 이후에 권양숙 여사는 5년 내내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언론에 나타나지 않았다. 보수 우파 진영에서도 노 대통령 임기 내내 권 여사를 공격하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기인한다. 지금 대통령의 국민 지지가 퍼스트레이디의 처신이 그중 하나의 이유가 된다면 당연히 나라를 위해서 김 여사께서는 권 여사같이 처신하셔야 한다." 그의 평소 입담에 비하면 매우 정중한 요구다. 국민이 모르던 것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윤 대통령 위에 김 여사'란 풍문이 의도적 공격인 줄 알았다. 


    저자 : 이장규

    글쓴이 이장규는 언론, 기업, 대학 등을 전전하며 여러 직업을 살아왔다. 경제기자 오래 한 것을 밑천 삼아 술 회사의 CEO도 지냈고, 신재생에너지 회사와 항공사의 경영을 맡기도 했다. 은행과 재벌회사 사외이사를 맡았었고, 회계법인에서도 훈수를 뒀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껴서 한동안 빠졌었고, 대학 경영을 맡아서는 호된 고생과 좌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를 지배하는 DNA는 여전히 기자다. 31년간 중앙일보에서 경제부장, 편집국장, 뉴욕 특파원, 일본총국장, 경제대기자를 거치면서 시작했던 책 쓰기는 직업에 상관없이 나름대로 계속해 왔다. 주 관심사는 정치적 리더십과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다. 정설은 없으나 한국은 그런 점에서 세계사적인 관찰 대상이요, 귀중한 사례 연구거리라고 그는 믿고 있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1991)는 전두환 경제를,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2011)는 노태우 경제를, 『대통령의 경제학』(2014)과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한국경제 이야기』(전 2권, 2014)는 총론적 정리를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담아낸 결과물들이다. 그런 노력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밖의 저서로 『한국경제 설 땅은 없다』(1993), 『19단의 비밀, 다음은 인도다』(2004), 『카스피해 에너지전쟁』(2006) 등이 있다.


    저자 : 손병수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입사, 28년간 경제 담당 기자로 일했다. 경제부장과 산업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경제경영 잡지 발행인, 뉴욕중앙일보사장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퇴직 이후 기업으로 옮겨 삼표그룹에서 대표이사, 대외협력 담당으로 일하기도 했다. 저서로 《한국 경제 먹여 살릴 10 대 산업》(공저), 《희망을 여는 아침》등이 있다.


    저자 : 고성표

    25년 동안 중앙일보, JTBC, 중앙SUNDAY, 월간중앙 등 다양한 매체를 경험했다. 사회부와 탐사기획국 등에서 팀장으로 일하면서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 호흡 긴 탐사보도 분야에 전념해 왔다.


    저자 : 박유미

    대학에서 법학·정치학을 전공했다. 2007년 중앙일보 입사 후 중앙일보와 JTBC에서 정치·경제·사회부를 두루 거쳤다.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세상과 사람을 깊고 넓게 보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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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정유진.한정선 옮김 / 노엔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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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자신의 벽』을 읽다 보면 피히테가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우국 대강연 때 연설하던 것이 떠오른다.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하자 철학자 J. G. 피히테가 적군의 점령하에 있는 베를린학사원 강당에서 행한 우국 대강연 말이다. 우국 대강연은 1807년 12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3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마다 열렸다고 한다. 이 강연을 통해 피히테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신의 진작(振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독일 국민의 분기(奮起)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알려진 명강연이다.

    『자신의 벽』의 저자 요로 다케시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분이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저자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책은 최근에 자주 떠오르는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오래전부터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해 왔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등의 그런 생각이 아니라 "나 자신이 왠지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고,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라고 언급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신경이 너무 많이 쓰여 유치원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그런데 인턴은 거쳤지만, 임상의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이 의사가 되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죽어 나갈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등 의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의사도 아니고, 심리학이라고는 공부해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일 수 있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믿지 않아서라고 풀이한다. 이는 세상과 잘 타협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신의 마음속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가 보면 '막다른 곳'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거기에는 과연 내가 정말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라는 동기가 있다고 한다. 사실 자신은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른다고 고백한다. 매우 모호한 질문과 답을 마음속으로 하던 저자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잘하려면 남들보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결국에는 결말이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뇌과학을 말하는 것인지, 심리학 이야기인지, 혹은 철학이나, 컨설턴팅인지 모를 저자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이때 저자는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한다. "참고로 문학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해 온 것들은 소설에 이미 쓰여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부분을 읽어 보면 안나 오빠의 삶의 방식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니츠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는 미네코가 마지막에 산시로를 만나는 장면에서 '나는 나의 허물을 알고 있다. 나의 죄는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는 성경의 구절이 인용됩니다. 젊었을 때부터 저는 이 소설들에 나오는 이 구절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그 자체가 저 자신에 대한 해답이 되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참 어렵군요. 해답은 눈앞에 있는데,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p.7)

    저자 이야기의 물꼬를 어디서 어떻게 터야 할지 독자로서는 난감하지만 계속 경청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은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파헤치며 ‘자신’과 ‘개성’,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에세이라는 설명이 이미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유치원생 시절부터 남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 경험,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음에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해 의사의 길을 포기한 이야기 등, 저자는 자신의 불안과 고민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고,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위로와 공감을 얻게 된다." 출판사 측의 정리된 소개글을 읽게 되면 차츰 저자의 집필 의도가 안개 걷히듯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책 『자신의 벽』이란 표제어에 이제 조금 다가선 느낌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다. 저자는 자신이란 “지도 속의 현재 위치를 표시하는 화살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개성이나 자아의 확립,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자신’은 사회와의 조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 임사체험, 뇌과학 사례, 문학작품 인용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자신’의 경계와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좋아야 잘하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넘어,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회와의 조화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따뜻한 시선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의 연결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의 문제를 용기 있게 드러내는 저자의 진솔함,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보편적 진리는,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감동을 남길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 『자신』은 화살표에 불과하다〉, 2장 〈진짜 나는 마지막에 남는다〉, 3장 〈나의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4장 〈에너지 문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 5장 〈일본의 시스템은 살아있다〉, 6장 〈유대에는 좋고 나쁨이 있다〉, 7장 〈정치는 현실을 움직이지 않는다〉, 8장 〈「자신」외의 존재를 의식한다〉, 9장 〈넘쳐나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10장 〈자신감은 「자신」이 키우는 것〉 등이다.



    1장에서 저자는 나 「자신」은 '화살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신을 「편애」하고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흔히 하는 순수한 질문을 한 번 떠올려 볼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입안에 있는 더럽지 않은데, 왜 입 밖으로 뱉으면 더러운 거예요?" 이 질문은 꽤 날카롭다. 실제로 입안에 있는 침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지만, 그 침을 컵에 가득 모아서 마시라고 하면, 아무리 자기 것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싫어할 것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어 질문한다. 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갑자기 싫어지는 걸까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좀처럼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은 자신을 「편애」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금방 풀린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의 뇌, 즉 의식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나다'라는 자아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그 범위 안에 속해 있으면 「편애」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그때까지 「편애」하던 감정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어 버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논리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람들의 심리 상태의 변화 등을 저자는 1장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침'에 이어 '대소변', '수세식 화장실 보급', '해부학에서의 잘린 목이나 팔' 등을 사례로 들어 하나하나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임사 체험'이다. 현장에 가보면, 체험 중인 사람은 의식이 없다. 그러니 말을 걸어도 당연히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희미한 의식이 남아 뭔가 끔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진다. 이 꿈에는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있는 듯하다. '강 건너편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외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보고되고 있는 것이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경험이다. 이를 유체 이탈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실제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뇌의 작용으로 인한 현상이 분명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군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국가주의에 대한 호소로 보기 쉽다. 그러나 독자가 보기에 단연코 이는 아니다. 저자는 5장 〈일본의 시스템은 살아있다〉 '시위(데모)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제한다. 한때는 총리 관저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매주 열릴 정도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도 우리의 일부 아닙니까?"라고 말하면, 분명히 화를 내는 이들도 있을 것 같아서 매우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우리의 속내는 이런 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때도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 자신도 원전이 언제 이렇게 늘었나 하고 의아해 한다고도 밝힌다. 그럼에도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이 문제 역시 나 자신과 연결된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의 성찰은 지속된다. 본래 일본인은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다는 점도 짚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천황이라는 한 사람이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천황이 상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한 사람에게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냉정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일본인들은 거기에 특별히 위화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p.79)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수탈을 당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일본인이 왜 군국주의에 쉽게 빠져들었는지 전체주의 사상의 원류를 찾아 지적하고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의 이어지는 지적은 독자를 더욱 놀라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잊었거나 모르고 있겠지만, 과거 일본인에게는 '생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태어난 날은 각각 존재하고 기록은 하지만 그것을 축하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모두가 일제히 새해를 기준으로 나이를 먹게 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세는 나이'를 저자는 일본 전체주의 집단주의의 원류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음력설과도 비슷한 셈법인 것 같다. 음력 12월 31일 생이면 하루 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천황을 정점으로 한 사상의 가족이라는 뜻이라고 저자는 자성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세는 나이는 없어졌고, 이런 전쟁 이전의 습관이나 법률도 바뀌었지만, 어딘가에 이런 가족적 의식은 남아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의 주장은 왜 우리에게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일까. 우리도 아직 음력설을 쇠고, 음력의 나이로 나이를 셈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물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는 모두 양력에 따라 바뀌었지만(1961년) 중년 이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력 생일로 호적(?)에 올렸고 가정에서는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환산한 날짜에 맞춰 생일을 쇠는 문화이기에 저자의 지적은 참신한 느낌이다.


    저자 : 요로 다케시(Takeshi Yoro, ようろう たけし, 養老 孟司)


    일본에서 대표적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요로 다케시는 1937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곤충채집에 열정을 쏟아 대학에서 곤충 연구를 희망했지만, 최종 진로는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1962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요로 다케시의 세계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요로 다케시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바보의 벽』, 『신체를 보는 법』, 『유뇌론』, 『죽음의 벽』 등이 있다. 특히 『바보의 벽』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신체를 보는 법』은 산토리 학예상을 요로에게 안겨주었다. 그중 『바보의 벽』은 ‘요로 철학’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일본에서만 400만 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역자 : 정유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기술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정보와 전략분야에서 일본 관련 일을 했고, 현재 출판과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고등학생을 위한 경제학 입문』(CHIKUMA新書), 『특허미래』(日經BP), 『IoT의 미래』(日經BP)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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