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줄이고 바꿔라 - 문장을 다듬는 세 가지 글쓰기 원칙, 개정판
장순욱 지음 / 북로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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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글쓰기에 많은 독자들이 점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글쓰기가 모두 펜과 종이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디지털 문화의 깊숙한 지점에 이르러 펜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일부일 뿐이다. 이에 따라 글쓰기의 필요성도 사실 예전에 비해 훨씬 줄었기에, 점점 더 어려워진 점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빠르게 의사 전달과 소통이 가능한 SNS의 무한 발전에서 더욱 잘쓴 글보다는 빠르게 쓰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에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일은 잦을 것이다. 펜으로 종이에 쓰는 글을 쓰던 시절, 아날로그 시대의 글쓰기에는 글을 잘 쓰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전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편지 하나라도 모두 손글씨로 써서 전달해야 했기에 글씨체부터, 오탈자, 문장의 흐름, 적절한 어휘의 사용 등 그야말로 한 자, 한 자가 집중력이 필요했었다. 이 시기에는 비즈니스 면에서도 보고서, 설명도 등 많은 계획서나 기안서 등을 쓰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기에 글쓰기에 더욱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오탈자나 맞춤법까지도 그 문서의 신뢰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 시절 글쓰기는 종류를 막론하고 전업 작가들의 글쓰기가 기준이 되었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3다(多)가 기본 조건이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은 쓰는 것이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SNS 시대에 인스턴트 메신저, 블로그 등이 의사전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입시나 입사에서 논술이나 자기소개서가 보다 더 중요해졌다. 시험의 당락이나 판단의 적부(適否)를 가려야 하는 기준으로 됐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잘 써야 한다. 간결하고 매혹적인 글이 관심을 끈다."는 다름이 없다. 다만 평소에는 SNS나 인터넷에 댓글 정도만 쓰던 글쓰기 습관에서 올바른 글쓰기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정작 필요할 때 적절하게 대처하기가 어려워진 것뿐이다. 

이 책 『지우고 줄이고 바꿔라』의 저자 장순욱은 글쓰기가 어려워진 배경이나 상황에 대해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고 단언한다. 아울러 얼마나 잘 썼는지 평가해줄 사람도 드물고 기준도 불명확하다. 사람마다 잘 썼다는 기준이 때론 다르기도 하다고 밝힌다. 글쓰기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판단이다. 독자도 공감한다. 독자도 아날로그 세대라서 학교에서 배울 때까지는 아날로그 글쓰기 방식으로 배웠다. 다만 사회 생활 시작할 무렵부터 사회에서 디지털 문화가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해 컴퓨터 교육도 따로 받았다. 저자의 지적에 공감하는 이유이다.



저자는 잘 쓴 글이란 간명함을 갖춘 문장의 집합이라고 강조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써야 명확한 의사전달이 가능해진다는 신념으로 무장된 것 같다. 그렇다면 간결하게 쓰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이 책 표제어대로 '지우기’, ‘줄이기’, ‘바꾸기’ 세 가지다. 저자에 따르면 글이 간명하지 못한 이유는 군더더기가 문장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걸 찾아 지우거나 줄이고 혹은 바꾸면 된다. 저자는 글쓰기 습관 고치기에 주목해 많은 사람의 글에 등장하는 나쁜 습관을 정리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을 찾아낸다면 글솜씨가 부쩍 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어떻게 쓸 것인가〉, 2장 〈지우기〉, 3장 〈줄이기〉, 4장 〈바꾸기〉, 5장 〈글쓰기 강의〉, 6장 〈실전 연습〉 등이다. 필기구와 종이만으로 글쓰기를 하던 예전이나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모든 글쓰기를 대신하는 지금이나 좋은 글을 쓰는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 바뀌어도 너무 많은 것이 순식간에 바뀌어서 적절한 방법을 제대로 몰라서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이다. 혹은 지금처럼 지내도 소통이나 웬만한 업무 처리에는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글을 잘 쓸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책읽기, 글 다듬기도 컴퓨터를 통하거나 컴퓨터가 알아서 체크해주기 때문에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되지 않는다. 이메일, 카카오톡, SNS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바뀐 환경이다. 어디서든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와 글로 소통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빠른 속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나 글을 자주 쓰는 만큼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다면 좋겠지만 오히려 나빠지는 현상이 눈에 띈다. 

입말(구어) 그대로를 글로 옮길 뿐 아니라 짧은 문장만을 쓰는 탓에 올바른 단어로 긴 문장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맞춤법도 거의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굳어버린 잘못된 글쓰기 습관이 학생의 답안지와 과제물, 직장인의 보고서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학교와 직장 그리고 SNS 공간에서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쉽고 빠르게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방법은 없을까? 좋은 글 쓰기는 이런 문제의식의 발로에서 시작된다.


좋은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 『지우고 줄이고 바꿔라』는 유용한 책이다. 저자는 오랜 기간 신문사 기자와 출판 관련 일을 해오면서 체득한 글쓰기 노하우를 아낌없이 소개한다. 그는 글을 쓸 때 알게 모르게 나타나는 나쁜 습관을 정리해 이를 세 가지 원리로 손쉽게 바로잡는 방법을 알려준다. 즉 ‘지우기’ ‘줄이기’ ‘바꾸기’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군더더기 많고 이해하기 힘든 문장을 간결하고 매력적이며 효율적인 글로 고칠 수 있게 도와준다.

글을 잘 쓰려면 국어 교과서를 다시 봐야 할까? 맞춤법과 띄어쓰기, 표준어와 외래어 표기법 등 어문규정을 배워야 하나? 글쓰기 교실이라도 다녀볼까?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고민일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보다는 기존의 글을 잘 고쳐 더 좋은 글로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세대라고 통칭되는 21세기 뉴밀레니엄 세대가 이 책에서 지적하는 점들을 숙지하고 계속 사용하다 보면 확실히 달라지는 글쓰기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저자는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또는 불필요하게 사용하거나 ‘~적’ ‘~버렸다’와 같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한결 깔끔하고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문장을 다듬는 세 가지 원리는 다음의 예와 같다.

① ‘지우기’에서는 명사의 반복, 주어와 술어의 반복, 구와 절의 반복, 동사의 반복, 의미의 반복, 한자어나 영어의 반복, 문장의 의미 반복, 서술어의 의미 반복, 부사/ 형용사 의미 반복, 조사의 반복, 너무 많은 접속사, 불필요한 명사, 불필요한 동사, 불필요한 보조사, 불필요한 의존명사, 불필요한 지시대명사를 기술하고 있다.

② ‘줄이기’에서는 늘어진 동사, 늘어진 명사, 간접화법, 동사┼동사, 목적어┼서술어 ,부사┼관형어, 복수형, 짧은 단어 사용하기, 의미 없는 접사, 끊기에 대한 설명이다.

③ ‘바꾸기’에서는 호응하기, 구어체 바꾸기, 수식어 위치에 알맞게 쓰기, 영어식 표현 바꾸기, 같은 단어의 반복,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쉬운 단어 택하기, 구체적으로 쓰기, 끼리끼리 모아주세요 등이 서술돼 있다.


책의 1장 〈어떻게 쓸 것인가〉는 총론이다. 즉 '지줄바'(지우기 줄이기 바꾸기)를 잊지 말 것을 주문한다. 책에 따르면 지우기는 반복 혹은 중복을 피하는 작업이다. 타자가 야구배트 두 개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고 안타가 곱빼기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휘두르기가 불편해 아웃되기 더 쉽다. 수비수가 양손에 글러브를 낀다고 공을 잘 잡는 것 역시 아니다. 반복해서 사용된 단어도 이와 같다. 불필요한 단어를 찾아 없애야 한다. 두 번째는 줄이기다. 줄이기는 불필요한 지방을 빼는 일종의 다이어트와 같다. 몸무게가 70킬로그램인 사람이 그 가운데 10퍼센트인 7킬로그램만 빼도 몸매가 살아난다. 70자인 문장에서 일곱 글자만 줄여도 글맵시가 몰라보게 좋아진다. 간결해지고, 임팩트는 증가한다. 바꾸기는 어색하거나 맥락에서 벗어난 말을 수정하는 작업이다. 반복된 단어는 우선 지우기를 시도하는데, 어려운 경우 의미가 비슷한 단어로 바꾸거나 표현이 생뚱한 경우도 다르게 써야 한다.

저자는 그러나 이 책에서 정리한 36가지 문제가 원고에 단 한 번이라도 나타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완벽하게 쓰는 일은 누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이지당 한 번쯤 같은 문장에 단어가 반복되거나 동사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주목해야 할 점은 같은 문제가 습관처럼 반복되는 지점이다. 그걸 찾아 고치면 된다고 말한다. 저자가 기자 생활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풀어쓰고 있다. 누군가의 글을 고쳐줄 때는 완전히 뜯어 고치기보다 지줄바를 함으로써 본래의 맛을 최대한 살려줄 것을 권유한다.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고쳐쓰기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후 저자는 타인의 글을 고칠 때는 각각의 맛을 최대한 살린 가운데 지줄바로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문장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책의 첨삭도 원문 구조를 유지한다는 원칙 하에 작업했다. 원래 구조를 살리면서 지우고 줄이고 바꿨다. 문장을 완전히 뒤집어 뜯어 고친 경우는 드물다고 밝힌다.


책에 따르면 글을 쓰는 이유는 어려운 단어 구사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가능하면 쉽고 알아듣기 편한 말로 표현해야 한다. 물론 쉬운 말이라는 게 앞서 본 것처럼 풀어서 길게 늘여 쓴 걸 뜻하지는 않는다. 생소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가급적 쉬운 것으로 대체하라는 말이다. 예컨대 예전에는 많이 사용했으나, 최근 빈도가 낮아진 단어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걸로 바꿔야 한다. 또한 전문용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기에 모두 이해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최대한 알 수 있게 써야 한다. 그래야 읽는 사람과 교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장황하게 설명해도 안 된다. 짧고 간략하게, 하지만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는 전달능력이 전문적인 글을 대중적으로 쓸 때 필요하다. 지식은 자기만족을 넘어 많은 사람과 교감할 수 있을 때 보석 같은 가치가 생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전문용어를 쉬운 단어로 풀어내는 능력이다.

2장 〈지우기〉, 3장 〈줄이기〉, 4장 〈바꾸기〉는 지줄바에 대한 각론을 펼친다. 특히 용례를 들어 친절하게 수정 전과 수정 후의 문장을 독자들이 비교할 수 있게 저자가 직접 바꿔 책에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높인다. "글을 쓰다 보면 ‘~적’, ‘~화’, ‘~성’, ‘~감’ 등 불필요한 접사가 붙는 경우가 많다. 무의미한 접사와 마주치면 달리던 차에 급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이 든다. 한 번 정도는 괜찮지만 반복되면 멀미가 난다. 반대로 그걸 제거하면 뻥 뚫린 길을 달리는 상쾌함이 느껴진다. 덜컹거리며 갈 것인가, 시원하게 달릴 것인가. 답은 물론 후자다. 글은 최대한 물 흐르듯 유연해야 한다. 딱 한 글자지만 불필요한 접사가 그걸 방해할 수 있다. 이는 곧 한 글자만 치우면 글이 몰라보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p.125)

5장은 〈글쓰기 강의〉란 제목의 장(章)이지만 지즐바를 통해 말하지 못한 바를 보완하고 또 심층적 글쓰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한 장이다. 중요한 항목 10개만 선정해 여기에 적어본다. ① 호흡으로 고치기 ② 노력이 명문을 만든다 ③ 오탈자의 일상 ④ 가능하면 구조를 흔들지 말 것 ⑤ 이왕이면 다홍치마 ⑥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라 ⑦ 양만큼 질도 중요하다 ⑧ 얼마나 잘 버리느냐가 성패를 결정한다 ⑨ 첫 문장이 중요하다 ⑩ 욕심 버리기


오늘 경기는 삼성이 한화를 2대 1로 이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오늘 경기는 삼성이 한화를 2대 1로 이겼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리포터가 이렇게 말했다. 불필요하게 많이 등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같습니다’가 아닐까. 7월 초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으면 ‘여름이 다가왔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굳이 ‘여름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라고 할 필요가 없다.(p.104)


일은 계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적’은 의미 없는 군더더기다. 빼고 나면 문장이 간결해진다. 읽으면서 걸리는 느낌이 절반쯤 줄어든다.(p.125)


저자 : 장순욱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경제를 몰라 세상이 답답하고 취직이 걱정돼 제대 후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고, 내친김에 영국 뉴캐슬 대학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경제신문과 스포츠투데이를 거쳐 중앙일보 NIE면 담당 기자와 팀장으로 일했다. 기자 시절부터 실물경제와 재테크의 다양한 면을 추적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푼돈의 경제학》, 《부자들의 상상력》, 《하룻밤에 읽는 경제》, 《불황의 경제학》, 《시간과 균형》 등 여러 책을 썼다. MBC, SBS, YTN, CBS, KTV 등에서 경제평론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미국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세계경제를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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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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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가들은 대체로 자신의 모국어로 글을 써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꼽을 수 있다. 또 세계의 전 문인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은 물론 자국 내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는 사람도 많다. 그들이 외국어를 몰라서 모국어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 심지어는 여러 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문인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두 개 이상의 언어에 정통해 각각의 언어로 글을 써 인정받고 수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물론 과문(寡聞)한 독자로서 아는 것이 적어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책 『영혼 없는 작가』의 저자 다와다 요코는 이 두 가지 언어로 모두 책을 냈다. 일본 문학인이기 때문에 일본어로 쓰고 독어로 번역을 따로 한 작품이 아니다.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 

다와다 요코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범상치 않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이중 언어 작가'라기보다는 '다중 언어 작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엘리〉에 따르면 다와다 요코는 얼핏 범상해 보이는 세계의 기호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해독해 나가는 유심한 관찰자다. 또 모(국)어와 외국어의 문턱을 넘어 다니며 몸의 감각으로 낯선 언어의 세계를 유영하는 유목민이라고도 말한다. 그에 대한 수식어는 이뿐만 아니다. 엄격하고 절제된 사유로 신화적 상상의 안팎을 넘나드는 샤먼이라는 별명도 소개한다. 4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하며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그의 이름을 문학사에 알린 대표작이자, 언어와 세계에 대한 작가 고유의 사유가 집약되어 있는 작품 『영혼 없는 작가』의 개역 증보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독문학자 최윤영 교수의 기획 및 번역으로 초판본 출판됐다. 이후 오랫동안 절판 상태로 있었지만, 저자의 새 중요한 작품과 초판본 이후 발표된 작품들을 추가한 개역 증보판으로 펴냈다. 초판본에는 열네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었지만 이번 새로운 판본에는 ‘다와다 유니버스’의 중요한 조각 아홉 편이 추가되었다.


출판사에 따르면 전체 스물세 편의 글은 다와다 요코가 독일어로 처음 쓴 『유럽이 시작하는 곳』(1991), 『부적』(1996),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2002) 등 세 권에서 다와다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단편들을 가려 뽑았으며, 그중에서도 몽환적이고 에세이적인 사유가 돋보이는 초기 대표작 『부적』 열여섯 편은 전부 번역해 실었다. 최윤영 교수는 이번 개역 증보판을 작업하며 새로운 단편들을 번역하는 작업과 함께 기존 번역문도 전면적으로 다시 손질했다. 또 다와다 요코의 세계를 개괄하는 해설도 책 뒷 부분에 새로이 써 독자들에게 풍성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주었다.

독자가 저자 다와다도, 또 그의 책을 읽어본 적도 없어 잘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인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복간을 요청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 5월 다와다 요코 방한 당시 많은 독자가 이 책의 절판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재출간을 요청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개역 증보판을 펴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특별히 찾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작가인 만큼 한국에도 그의 저서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영혼 없는 작가』는 작가의 세계를 관통하는 언어-예술-세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서 이번 재출간은 더욱 뜻깊다고 출판사 측은 덧붙인다.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최윤영은 표제어 '영혼 없는 작가'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한다. 마치 과문한 독자의 생각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듯하다. "흔히 작가를 그 나라나 문화권을 대표하는 '영혼'이라 생각한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러시아의 영혼이라 부르듯 말이다. 그런데 다와다 문학의 핵심적 특징을 보여주는 '영혼 없는 작가'의 제목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에게 영혼이 없다니, 뭔가 기구한 사정이 있는가 싶은 생각도 들고, 혹은 나라나 사회의 영혼을 대변하는 작가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작가는 차원을 달리하여 이야기한다. 오늘날 긴 여행 중에 영혼은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몸을 따라가지 못해 분실되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는 기발한 착상은, 사실 인디언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p.265)


역자는 다와다에게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경계를 넘나들며 쓰는 과정에서 한 언어에 얽매인 사고를 풀어내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유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힌다. 특히 다와다는 많은 외국어를 보고, 듣고, 인지하면서 의미를 새롭게 상상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듯하다. 이 책의 각각의 글들은 이를 증명이라 하듯 언어의 신세계는 물론, 세계의 여러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언어 비교를 하듯 글로써 풀어내는 능력을 보면 독자들이 놀랍고 신비로운 생각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깊은 사유는 말과 글의 차이점은 물론 각 나라 언어의 특징을 연결하는 공통적 의미에 대해 추출해 내기도 한다. 

또 독일어로 쓰인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수록된 글들이 에세이에 가까운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다와다 요코의 문학은 일본어 작품과 독일어 작품이 주제, 형식, 문체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일본어 작품이 스토리를 갖춘 본격 문학에 가깝다면, 독일어 작품은 작가가 문화 간 차이를 발견하고 이를 주제화한 에세이적 성격이 강하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조용하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통찰로 사유의 직접적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와다의 일상적 관찰을 따라가다보면, 말 그대로 허를 찌르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와 함께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언어에 대한 작가의 세심하고 민감하고 다정한 시선을 잘 드러낸다. 제목에서부터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을 결합해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유머러스한 방식은 다와다식 하이브리드의 원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전”과 “마을”, “사랑”과 “광물학”, “고트하르트터널”과 “생물의 배”를 연결한다. 사전에서 단어들이 빠져나와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고, 몸을 암석에 빗대어 주름진 층을 상상하고, 터널을 통과하는 것을 배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하는 식이다.


이러한 연결과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의미를 찾는 연구”부터 “의미와 벌이는 유희”까지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특히 이중 언어 사용자로서 몸으로 체득한 언어적 사유가 도드라진다. 세계와 자신의 관계가 언어로 불가분하게 맺어져 있다는 깨달음, 언어를 이동하면 사물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는 의식,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될 때 그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맛을 내는 혀에 대한 자각 등 여태껏 심상하게 느꼈던 일상의 모든 것이 다와다 요코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새롭게 인식된다. 


“자, 이제 중세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여행 가이드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 도시가 중세 땐 실제로 존재했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내 질문에 가이드는 다소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바른 답을 내놓았다. “이 중세도시가 아직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알아내셔야 해요. 어쨌든 이 도시는 마치 중세를 연출한 무대 세트 같아요.”

“무대 세트”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중세를 한때 존재했다가 영원히 사라진 과거의 시대로는 상상할 수 없었다. 오히려 중세는 반복해서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처럼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어떤 것이었고, 매번 새롭게 재현되는 무엇이었다.(p.67) -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 독일 수수께끼」 중에서


이렇게 인식된 모든 것은 다와다를 통해 인류학적 현상, 신중히 해독해야 할 세계의 암호로 바뀐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불가사의를 문학적으로 파고드는 일종의 민족지인 셈이다.

이 책은 형식 면에서 에세이로 분류되지만, 작가는 전통적 장르 구분의 구속에서 벗어나 언어와 사유와 장르의 경계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덕분에 이 책의 글들은 픽션과 에세이가 서로 몸을 바꿔가며 단어와 문장, 글이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향연을 눈부시게 선보인다. 작가가 유심히 포착하는 대상들도 그 스펙트럼이 넓은데, 시베리아 횡단 열차부터 연필, 타자기, 중세도시, 통조림, 전철, 배우, 알프스 터널, 일요일, 음악, 파울 첼란까지 실로 다양해서, 소재별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밖에도 다와다의 문학 세계 초기부터 일관되게 흐르는 언어와 정체성, 국가주의의 폭력성을 문제 삼는 비판적 인식은 장르와 언어에 대한 경계적 사유 너머를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귀신들의 소리」에서 어느 독일인이 바흐를 독일 음악이라고 무심히 주장한 사례는 “우리”라는 범주를 암묵적으로 전제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 타자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모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텅 빈 수사에 대한 “구역질” 역시 단일한 언어를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 집단주의를 향한 일침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어떤 귀신들이 공기 중에 특별한 떨림을 불어넣었을 수 있다. 내 몸은 이 쓰레기들을 질료화하기 위해 사용된 것일 뿐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때조차 나는 문장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상상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문학을 쓰는 것이 한층 더 큰 위안이 된다. 적어도 문학에서 나는 무언가 의미 있는 사명을 전달하겠다는 의도를 갖지 않는다. 문학의 단어들은 그저 하나의 그물망을 만들고 이 망은 떨림의 쓰레기들을 잡아낸다.

쓰레기-단어들은 마치 유성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다. 유성들은 일단 떨어지면 더 이상 별자리에 속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저 파편들, 단편들, 조각들일 뿐이다. 한 그물망 안에 있는 조각들 사이에는 부조화가 지배한다. 사실 나는 이전에 별자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망 안에서 스스로 새로운 선을 긋고 새로운 별자리를 그려 넣는다.(p.181) - 「귀신들의 소리」 중에서


이 책 『영혼 없는 작가』에 배음(倍音)처럼 깔려 있는 이런 식의 섞임과 깨짐, 비판과 거리 두기의 사유는 일차적으로는 낯선 언어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무엇보다 몸이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공간상으로 보면 이 책은 모스크바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시작해 독일, 일본, 미국을 거쳐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서 끝을 맺는데, 이 여정 또한 내용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흥미롭게 읽힌다. 『영혼 없는 작가』와 더불어 몸의 여행, 장소의 여행, 언어의 여행을 함께하는 독자들은 나라와 도시, 현실과 환상, 언어와 사물을 이동하며 경계의 흩뜨림이 열어주는 환상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자 : 다와다 요코 (Yoko Tawada, たわだ ようこ, 多和田 葉子)


독일 베를린에 살면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소설, 시, 희곡, 산문을 쓰는 작가다. 196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82년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이주했다. 1990년 독일 함부르크 대학 대학원에서 독문학 석사 학위를, 2000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건너갔던 열아홉 살의 경험은 삶의 지축을 뒤흔들었다. 기나긴 기차 여행 동안 물을 갈아 마시며 서서히 낯선 세계에 가까워진 그녀는 독일에 도착하여 전혀 알지 못했던 언어를 새로 익히면서 그때까지 알았던 세상과 사물을 송두리째 다시 보는 전율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언어’ 자체에 천착하도록 했고, 언어가 지닌 ‘매체’로서의 불안한 혹은 불편한 속성은 다와다 문학의 일관된 주제가 되었다.

다와다에 따르면 언어는 자아와 세계를 매개하는데,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하다가 새로운 언어를 새로운 매개로서 사용할 때 비로소 우리가 이 언어(매개)를 통해 생각하고 발화해 왔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머릿속에서 아무런 성찰의 과정 없이 흘러나오는 말들은 세계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므로, 그녀는 이에 안주하려는 인식의 자동화에 제동을 걸고 세상의 잊히고 버려진 또 다른 측면을 다른 방식으로 다르게 보고자 부단한 문학적 시도를 아끼지 않는다.

1987년 시집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로 데뷔했는데, 일본어로 쓰인 시가 번역되어 책에 일본어와 독일어가 나란히 실렸다. 이듬해 독일어로 처음 쓴 단편소설 『유럽이 시작하는 곳』이 출간되었고, 1991년에는 일본어로 쓴 단편 「발뒤꿈치를 잃고서」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받았다. 다와다 요코는 독일에서 샤미소상, 괴테 메달, 클라이스트상 등을, 일본에서 아쿠타가와상, 이즈미 교카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요미우리 문학상 등을 받는 한편 독일 문학을 공부해 1990년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2000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작가가 30여 년간 쓴 작품은 약 30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1천 회 이상 낭독회가 열렸다.

작품으로 『눈 속의 에튀드』, 『여행하는 말들』, 『헌등사』, 『용의자의 야간열차』, 『영혼 없는 작가』, 『목욕탕』,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다. 그 밖에 중편집 『세 사람의 관계』, 『개 신랑 들이기』, 단편집 『고트하르트 철도』, 『데이지꽃 차의 경우』, 『구형 시간』, 장편소설 『벌거벗은 눈의 여행』, 『보르도의 친척』, 『수녀와 큐피드의 활』, 『뜬구름 잡는 이야기』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3부작 중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별빛이 아련하게 비치는』, 시집 『아직 미래』 등이 출간되었다.


역자 : 최윤영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와다 요코를 한국에 처음 소개했으며, 관련 연구서인 『엑소포니, 다와다 요코의 글쓰기』를 펴냈다. 지은 책으로 『한국문화를 쓴다』 『서양문화를 쓴다』 『카프카, 유대인, 몸』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영혼 없는 작가』 이외에 『목욕탕』 『눈 속의 에튀드』 『어느 아이 이야기』 『이상한 물질』 『문화와 문화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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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계가 하나였다 픽셔너리 1
박대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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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겸 작가의 소설은 형식을 뛰어넘는다. 또 가상세계와 현실을 넘나들며 스토리가 전개된다. 한 평론가가 그의 소설을 "혼돈의 소용돌이를 뚫고 나오는 경쾌하고도 뻔뻔한 유머"라고 평가라는 말도 그리 싫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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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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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수개월 전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란 장편소설을 출간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김대겸 작가가 이번엔 『모든 세계가 하나였다』란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출판사 〈북다〉의 새로운 중편 시리즈 '픽셔너리'의 첫 번째 작품이다. ‘픽셔너리’는 ‘픽션(Fiction)’과 ‘딕셔너리(Dictionary)’의 합성어로, ‘나’를 픽션화하는 A부터 Z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낸 일종의 가상 사전이라고 출판사 측은 설명한다. 저자 김대겸은 이전 작품들을 통해 ‘소설을 쓰는 사람’과 ‘소설을 읽는 사람’ 간에 작동하는 소설의 원리를 집요하게 탐구하며, 그 관계 속에서 문학이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지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삶과 허구, 픽션과 메타픽션의 과감한 패치워크를 통해 ‘소설을 쓰는 나’와 ‘소설로 쓰여지는 나’의 내밀한 역학관계를 드러내며 “말 그대로 ‘선 넘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또한 패치워크된 이야기 조각을 또 한 번 비틀며 독자의 예상을 과감하게 넘어선다. 김대겸 특유의 비틀림과 혼돈의 소용돌이를 뚫고 나오는 경쾌하고 뻔뻔한 유머에 낯선 독자로서는 사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박대겸 소설에 매력을 느낀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매력에 다시금 빠져들게 한다. 『이상한 나라의 소설가』 『부산 느와르 미스터리』에 이어 이번에 출간된 『모든 세계가 하나였다』는 ‘소설가 박대겸 3부작’의 완성이자, 픽셔너리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SF소설에 익숙지 못한 독자는 이 소설의 〈차례〉를 펼치는 순간 무척 당혹스러웠다. 중편소설 한 작품에 무슨 제목이 이렇게 많을까? 작은 책 한 권에 무려 13개의 낯선 문구들이 나열돼 있다. 순서도 「프롤로그」의 번호를 '0'번으로 잡았다. 이어 장(章)을 나누는 듯한 제목에서 소설에서는 생경한 단어들이 줄을 잇는다. 1장 「메타픽션은 안 됩니다」, 2장 「그것이 에세이와 자전소설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3장 「일상 미스터리 장르에 나올 법한 이야기」, 4장 「'소설가 박대겸 3부작'을 집필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등 에세이에서도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제목이 횡설수설하는 듯, 무의식이나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연속적으로 이어붙인 듯하다.



몇 개만 더 적어 본다면 5장 「갭모에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았겠건만」, 11장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인가」, 12장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아」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마지막 장인 13장에서는 「작가 후기를 겸해서」라며 소설이 끝난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독서량이 적은 독자로서는 다행이다 싶다. 왜냐하면 아날로그 시대의 필법과 문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몇 년 만에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면 기왕 상경하기로 마음먹었으면 혼자 힘으로 살 생각을 해야지 하필 마침맞게 제안해 온 에른스트의 호의를 넙죽 받아들여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p.7) 

페이지를 넘기자 분위기가 돌변한다. 그리고 저자 특유의 (신비주의 혹은 가상세계) 전략이 나온다.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질문과 응답이 섞인다. 집 안에 엎드린 채 쓰러진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어떻게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독자의 느낌으로는 앞 문장에서 연결되는 글로 보아 동거인 에른스트를 생각해낸 말인가 싶다. 그러나 에른스트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는 늘 어깨 아래까지 내려가는 장발을 선호했으니까.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인공이자 저자 박대겸의 시선이다. 주인공은 지금 사태 파악을 위한 관찰자이기도 하다. 지금 집 안에 엎드린 채 쓰러져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주인공 박대겸은 문득 자신이 집을 잘못 들어왔나 고개를 들어 거실을 살펴본다. 거실 가운데 직사각형 목재 테이블과 의자 두 개, 벽에 걸린 동그랗고 하얀 시계, 그 앞에 갓이 씌어진 키가 큰 전등으로 미루어 확신한다. "여긴 내가 사는 집이 맞아." 그러나 혼자 있는 방 안에서 누구와 대화하는가? 스스로 묻고 답하지만 의식 속인가. 혼잣말도 아닌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독자는 받는다. 

독자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한 번 자문해 보면서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것도 무척 재밌을 것 같다. "잠깐, 112에 신고를 해야 하나 아니면 119에 먼저 신고를 해야 하나. 바닥에 쓰러져 있긴 하지만 아직 목숨이 붙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119에 신고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도저히 저 사람 목에 손가락을 대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대화는 과연 ‘소설가 박대겸’의 진짜 목소리일까, 아니면 ‘소설 속 박대겸’의 허구적 목소리일까. 의문이 들지만 저자 박대겸은 이미 그런 반응을 예견한 듯, 첫 장면부터 미스터리적 상상력을 덧입힌다. 독자의 기대를 과감히 비틀기도 한다. 자정이 넘어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온 ‘박대겸’이 현관 바닥에 엎드린 채 쓰러져 있는 “낯익은 얼굴에 낯익은 복장”의 또 다른 박대겸과 마주하면서 소설은 마치 사건의 현장으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갑자기 에른스트의 침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설마 이렇게 만든 또 다른 사람이 집 안에 숨어 있던 건가. 침실 손잡이를 잡자 안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린다. 인기척은 침실 문 쪽으로 다가왔고, 박대겸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침실 문이 열리려는 순간, 현관의 전등이 자동으로 꺼진다. 당황한 박대겸은 허공을 휘휘 젓어 휘적거린다. 침실 문이 열리면서 사람 형태의 누군가가 나타난다. 시야에 들어온 건 에른스트이다. 

이때 에른스트의 반응이 거실 안의 상황을 파악한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봤다가 다시 박대겸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까지 왔나 보네." 

이 세계까지 왔다? 박대겸은 에른스트가 뱉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려 했으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의 의미지. 이 세계까지 왔나 보다."

박대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무언가 알아챘다는 듯 가까이 다가온 에른스트에 물는다. 

"여기 쓰러져 있는 사람, 혹시 아는 사람이야?"

"당연히 알지."

"누군데?" (중략)

낯익은 얼굴에 낯익은 복장.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박대겸 자기 자신이었다.(p.11)



독자의 머리가 혼동되고 혼란 속을 헤매지만 소설은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사건 현장을 말끔히 지워낸다. 2장 「그것이 에세이와 자전소설의 차이점이기도 하다」에서는 출판사로부터 청탁받은 원고 구상에 골머리를 앓으며, 신인 소설가로서 발돋움하기 위해 출판사들이 밀집한 서울에 머물러야 할지 아니면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부산의 부모님 댁에서 살아야 할지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실제 주인공과 저자 박대겸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두 개의 자아를 붙였다 떼어놓다를 자유자재로 시도하는 사이 주인공의 현실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독자들이 소설가로서의 주인공이 갖는 고충에 공감하려는 순간, 박대겸의 친구이자 탐정인 에른스트를 등장시키며 소설은 또 한 번 장르적 비틀기를 시도한다. “소설에 탐정이라는 존재가 나오는 순간, 아무리 에세이처럼 써봤자 완전히 픽션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한국에서 탐정이라는 직업은, 비유하자면 유니콘 같은 존재니까.”(p.31)

이처럼 이 작품 『모든 세계가 하나였다』에서 저자는 삶과 허구, 픽션과 메타픽션의 조각들을 능숙하게 이어 붙인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패치워크 원단은 소설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중심으로 재단된다. 저자는 “소설과 현실이란, 언제든 뒤섞이고 뒤엉키고, 분리되는가 싶다가도 다시 뒤범벅되는 무언가”(p.87)라고 말하며, 어떤 세계를 믿지 못한다면 그 어떤 세계도 결코 쓰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또 한 번의 ‘선’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우주 어딘가에 우리와 조금 다른 시간대의, 우리와 조금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는 것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발상은 더욱 부풀어 올라 어쩌면 내가 창작한 ‘소설가 박대겸’ 역시 다른 평행우주에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다른 세계의 ‘나’ 역시 소설을 쓴다면?”(p.48)라는 물음으로, 소설은 확장된 상상력으로 나아간다.

저자 박대겸은 능란하게 직조한 ‘불일치의 세계’를 통해,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도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창조된 세계를 진심으로 믿는 일이라고. 이것은 곧 작가가 소설이라는 허구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세계에 품는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에는 서울 우이천변에 있는 저자의 집필실에서의 일상 등 현실에서의 자신의 활동을 포함해 글을 쓰는 이야기부터 메타버스, 소설가, 탐정, 유니콘, 평행우주 등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며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때로는 SF소설 같고, 한편으로는 현실 세계를 힘들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의 소설관도 일반 소설가와 다소 차이점이 있다. 

"어떤 세계를 믿지 못한다면 그 어떤 세계를 쓸 수 없지 않겠는가. 소설 속 세계가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한들, 소설가는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자신이 창조한 허구의 세계를 진심으로 믿을 것이다. 소설을 써본 적은 없지만 벌써 20년 넘게 소설을 읽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살아가는 동안 소설이 현실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고, 반대로 현실이 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p.86~87)

돌고 돌아 다시 온 현실에서 저자는 13장 「작가 후기를 겸해서」에서 "나는 이 마지막 챕터를 일본 사가현 사가시 복합쇼핑몰 유메타운 2층에 있는 푸드코드 창가 자리에서 쓰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이번 소설에서는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기성 작품이 아니라 친구들이나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참조한 부분이 있다고 밝힌다. 새로운 소설 결말도 떠오르지 않고 새로운 집도 못 구하는 진퇴양난의 시기, '나'는 사실상 현실도피를 하고 만다고 고백한다. 그가 일본에서 현실로 돌아온 후 공교롭게도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에 다시 일본에 못 가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이며 국회 상황을 라이브로 지켜보았다고 덧붙인다. 다행히 자정을 넘긴 새벽에 계엄이 해제되었다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표제어 '모든 세계가 하나였다'라는 경험을 에세이 형식을 빌어 결말에 이르면서 현실 인식이 뚜렷해진다. 형식과 내용, 허구와 현실, 가상세계와 현실이 하나로 묶여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추천사〉를 통해 문학평론가 박인성은 "자전적 에세이조차도 메타픽션으로 다시 쓰는 시도는 작가의 뇌절마저 문학으로 승화한다. 패치워크(patchwork) 스타일로 기워진 복잡한 옷감처럼, 이 소설은 삶과 허구, 픽션과 메타픽션의 원단조직을 과감하게 짜맞춘다. 누군가에게는 섬세한 조각맞추기 유희처럼 보일 수 있는 이유다. (중략)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에고이스트적인 이 세계가 나는 그리 싫지 않은 것 같다."고 썼다.(p.174~175)


저자 : 박대겸


소설집 『픽션으로부터 멀리, 낮으로부터 더 멀리』, 장편소설 『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 『부산 느와르 미스터리』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 중편소설 『이상한 나라의 소설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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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치 - 한 번뿐인 아름다운 삶에서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임을 진정으로 믿는 법
제이미 컨 리마 지음, 허선영 옮김 / 알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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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자존감을 쌓는 방법에 관한 멋진 작품이다. 삶의 바꾸려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믿는 법을 단계적으로 알려준다. 이 책은 "나는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라는 자존감을 높여주고, 그 여정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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