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인간명품』은 고(故)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삶을 재조명하며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집필됐다. 저자 임하연은 책의 부제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에서 집필 취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책의 첫 문장에서 재클린이 한 말을 인용 별도 페이지를 할애해 쓰고 있다. "살아가는 매 순간은 서로 다릅니다. 좋은 일, 나쁜 일, 어려움, 기쁨, 비극, 사랑, 행복은 모두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체로 얽혀 있는데, 이것을 인생이라 부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떼어낼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럴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p.5) 

이 책은 또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수저계급론'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아예 싹부터 자르는 매우 유해한 비판적인 조어라고 지적한다. 청년들이 사회 비판의식을 갖는 것은 희망적인 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수저계급론은 정반대의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용어다. 수저계급론이란 한 나라의 개인이 부모의 자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른 사회경제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말하며, 그 결과 한 개인의 인생에서 성공은 전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2015년쯤 등장했으며, 대한민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최근 내놓은 논문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을 보면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2000년대 42.0%로 크게 늘었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 비율도 80년대 연평균 5.0%에서 2010~2013년 8.2%로 증가했다. 개인이 노력해 버는 소득보다 물려받은 자산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면서 수저 계급론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과거의 축적된 부와 그로부터 얻는 수익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한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이 이론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유명한 영문 관용구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위키백과는 추정한다. 이는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다', '행운을 쥐고 태어나다'라는 뜻이다. 이에 따르면 과거 유럽의 귀족들은 은그릇을 자주 사용했고, 보모들이 은수저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등의 행동으로 집안의 재산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족의 부를 기준으로 개인을 분류하기 위한 몇 가지 범주를 정립하기 위해 이 개념을 적용하였다.

이 단어는 1960년대를 전후로 대한민국에 고스란히 넘어와 대중이 쓰기 시작했다. 영미권의 관용구가 우리나라에 이처럼 널리 확산된 것은, 은수저에 대해 한국과 영어권의 관점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양에서 은수저는 부귀, 특히 상속된 부를 상징하는 물건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왕족 등 상류 계층에서 독살을 피하고자 은수저를 실제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래는 오랜 기간동안 세계 도처에서 '은수저'가 부유함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금수저'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없었으나, 세계구급 스포츠대회 등에서 '금은동'이 서열화되고 이것이 대중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면서 자연히 은수저가 가진 부유의 상징도 금수저로 옮겨가게 되었다. 현대로 넘어오며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금'이 '은' 보다 상위의 귀금속이란 인식이 널리 퍼지며 실제로는 금수저는 만들지도 않고 써먹지도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개념적으로 금수저가 부유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돌잔치에 조그마한 금수저를 선물하는 관행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저 계급론이라는 말이 시작되었을 때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4가지 종류 최초로 제시되었다. 

이때는 금수저는 따라잡을 수 없는 부자. 동수저는 평범한 서민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빈곤한 가정은 흙수저, 그보다도 더 떨어지는 가정은 똥수저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 『인간명품』은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나 자체가 명품이 되고 싶은 청춘들에게 길을 보여준다. 내가 물고 태어난 수저에 불안을 느끼는 한국의 청춘들은 외적인 조건 대신 스스로 빛나게 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럭셔리의 어원 라틴어 luxus는 ‘빛’이자 ‘과도함’을 뜻한다. 빛나고 싶어하는 욕망은 곧 불안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은 그 불안과 욕망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인생을 통해, 사치와 교양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에게 고상한 돌직구를 던진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답은 문화적 자부심이다. 저자가 고유명사 그대로 고집한 ‘상속자 정신(Sangsokja Jungshin)’은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된 과거로부터 물려받는 힘이다. 조선 백자, 유럽의 아틀리에, 장인의 노력 속에서 축적된 가치가 오늘의 청춘을 다시, 스스로 빛나는 명품으로 태어나게 한다. 태어날 때부터 명품인 사람은 없다. 살아가는 순간이 쌓여 걸작이 된다. 이 책은 불확실한 청춘이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고, 상속자 정신을 이어가는 세대로 세우는 가장 고귀한 길이다.

재클린의 삶을 재조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은 재클린의 아포리즘을 옮긴 피상적인 명언집이 아니다. 목차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녀의 문장은 어디에도 없다. 모티브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클린은 아일랜드계라는 이유(고 케네디 대통령도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의 가문이다.)로, 성골과 진골이 나뉘던 미국 상류층 사회에서 늘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 혈통과 교양을 내세워, 결국 세상의 시선을 뒤집고 세기의 아이콘이 되었다. 저자는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흐름에서 오늘날 한국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영감을 새롭게 풀어냈다. 그리고 이를 ‘상속자 정신’으로 이름 붙였다. 불안과 비교가 일상이 된 오늘, 가장 값진 명품은 가방도 시계도 아니다. 뭘 걸쳐도 빛이 나는 청춘, 그 자체가 명품이란 저자의 확고한 메시지다.



책의 〈추천사〉를 쓴 박정근 교수(럭셔리 브랜드 연구소 소장)는 「타고난 운명보다 걸어온 길이 사람을 빛낸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간명품』은 제목과 달리 명품이라는 단어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계급차별적이지 않고 공동체 지향적이라는 점도 흥미롭다"며, "창조적 시선으로 재클린의 이야기를 통해 '고유함' '탁월함' '역사와 스토리' '심미안' '영향력'이라는 다섯 가지 자질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고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단어들에는 오늘날 청년들이 갖추어야 할 개념들이 모두 들어 있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오래도록 강조해온 자질을 의인화한 결과라고 박 교수는 밝힌다.

박 교수에 따르면 젊은 날 누구나 지나칠 정도로 빛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종종 불안과 맞닿아 있고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갈망은 모순과 역설을 낳는다. 이 책은 그 불안과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사치와 교양의 양극을 오갔던 재클린을 탁월하게 줄타기한다. 속물근성에는 주저하지 않고 고상한 돌직구를 날린다. 재클린 사회학을 기초로 던지는 저자의 주장 또한 명확하다. 한마디로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과거의 상처, 현재의 어려움, 미래의 불확실성까지도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라고 생각하며 껴안을 수 없다면 그 인생은 무엇이냐는 질문도 던진다. 그것이 삶을 명품으로 완성하는 태도가 아니냐는 물음이다.

이 책은 '학생'이 묻고 '상속자'가 답하는 대담형으로 쓰였다. 이 형식은 〈서문〉부터 마지막 장(章)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본문은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겠지만 앞서 〈추천사〉에서 박 교수가 말한 다섯 가지 자질이 각각 1장씩 차지해 재클린의 삶을 상세히 설명하는 데 쓰인다.



각 장의 제목보다 부제로 쓰인 문장이 훨씬 직관적이다. 1장 〈고유함-가장 고귀한 것은 가장 초라한 곳에서 태어난다〉, 2장 〈탁월함-운명은 오래된 설계도를 품고 있다〉, 3장 〈역사와 스토리-시간이 만든 무게와 나만의 서사〉, 4장 〈심미안-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창조하는 안목〉, 5장 〈영향력-세상에 남기는 비밀스러운 파문〉 등이다. 1장에서는 저자가 세운 '상속자 정신'을 설명한다. 당연히 재클린의 출신이 소환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재클린은 아일랜드의 대기근과 대영제국의 압제를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 이민자 집안이다. 엄청난 힘을 가진 영국의 식민지배를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대기근 때 굶어죽지 않기 위해 피신한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이라고 얼마나 대우를 해줬을까. 미국은 이른바 와습(WASP, 백인, 앵글로색슨 족, 청교도)이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거쳐 13개주 연합국가를 건설했다. 와습은 이미 미국의 영향력 있는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은 후였다. 재클린은 당시의 '수저계급론'을 부정했다. 특정 집단 내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픔(박탈감)을 겪었단 뜻이다. 

이로 인해 재클린은 가정 내에서부터 할아버지 등 자상한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은 물려받지 못했을 거란 사실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렇다면 '상속자 정신'이란 말과 배치되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은 '상속자'의 답변을 통해 해결된다. "상속자 정신은 부모로부터만 오는 상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모를 뛰어넘어 사회로부터 받는 더 넓고 큰 상속을 뜻한다.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답한다. 이것이 '상속자 정신'이라고 한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재산의 개념에서 상속을 '기회'라고 본 것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다고 대담자 학생은 통계치를 제시한다. 웰스ㅡX에서 세계의 부호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재벌 중 66.7%의 부의 원천은 상속 재산이었다. 나머지만 자수성가를 통해 부를 이뤘다는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세계 평균과 비교해도 이는 명확하다. 상속재벌이 약 40%, 자수성가 재벌이 60%였다는 것.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상속자들의 나라인 셈이다.



저자 임하연은 출판기획자로서 무엇보다 ‘재미’를 중시했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대화체와 소설식 구조를 띠고 있어 마치 재클린이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학생과 상속자의 대화는 흡입력 있게 전개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밤새 정주행하게 만든다. 단순한 교양서가 아니라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담겨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간명품은 태어나면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삶의 흔적이 고유함이 되고, 평범을 넘어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갈망이 탁월함으로 빛난다.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 심미안이 되고,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용기로 번져갈 때 비로소 영향력이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삶 자체가 드물고 귀한 걸작이며, 이 책은 태어난 수저의 색깔로 불안이 갈리는 시대에서 청춘이 명품으로 거듭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상속자: 그렇지 않아요. 타고난 운명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느냐 생각해 보면 달라지겠죠. 수저계급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관계를 권력관계로 볼 수밖에 없어요. 나보다 재산을 더 물려받은 사람, 덜 물려받은 사람 오로지 두 가지로 나뉘죠. 하지만 인간은 사랑 할 때만큼은 동등해요. 인간관계를 내가 먼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세상이 달라지죠. 그녀와 나 사이에는 분명 격차가 있었지만,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영혼만큼은 동등했어요. ‘그녀도 나와 같은 영혼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타고난 운명의 열쇠를 내가 쥐게 되죠.

학생: 정말 그런 거예요?(p.182~183) - 「운명을 다시 쓰는 손끝」 중에서


저자 : 임하연


한국 출판계에서 보기 드문 유학파 출판 기획자이자 인문학 작가다. 사람을 ‘원석’에 비유하며 매일의 선택과 작은 용기, 삶의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걸작이 된다고 믿는다. 스무 살 무렵, 런던 소더비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아트컬렉터 교육을 받을 때도 눈앞의 재산보다 오래 남는 문화와 교양에 관심이 머무른 덕분이다. 임하연의 시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가치’에 머문다. 그녀는 문화적 자산과 교양, 대화 속에서 길러지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인간을 빛나게 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글은 이러한 대화의 힘을 바탕으로 독자와 만난다. 작품마다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스스로와 대화하는 경험을 얻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레코더블 시즌 1 : 괴뢰사
한혁 지음 / 더케이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언레코더블』은 ‘기록될 수 없는 사건들’ 시리즈의 시즌 첫 작품이다. 이름 그대로 범죄지만 기록되지 않고, 진실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첫 번째 편 〈괴뢰사〉는 초능력을 다룬다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있다. 사실 독자는 '괴뢰사'란 단어는 처음 접한다. 이 책을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색적인 책의 표지와 스릴러라는 소개에도 관심이 컸다. 출판사의 소개글 따르면 이 소설 작품은 무엇보다도 장르적 재미가 돋보인다. 현장을 가득 채우는 긴장,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결,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스크린 위에 옮겨진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동시에 단순한 추격과 격투가 아니라 ‘왜 어떤 사람은 괴물이 되고 어떤 사람은 끝내 인간으로 남는가’라는 물음을 함께 건넨다. 

스릴러에 익숙지 못한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었다. 국어사전은 괴뢰사(傀儡師)는 "민속 꼭두각시놀음에서, 꼭두각시를 놀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일차적 판단으로 괴뢰사의 '사'가 죽음(死)을 뜻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뒷 표지 안쪽에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설명이 되어 있다. 책 속의 인용문으로 뜻을 더 분명하게 해준다. 

"어쩌면··· 괴뢰사일지도 모르겠군. 괴뢰사라는 건 꼭두각시를 부리는 인형사를 뜻해. 그들은 실로 연결된 인형을 조종하듯 일정한 거리에서 사물을 움직이지만, 우리 눈엔 결코 보이지 않아."

이 소설은 모두 13장(章)으로 이뤄져 있다. 〈프롤로그〉 대신 쓴 '00장'과 〈에필로그〉를 합친다면 15장으로 구성된 셈이다. 책의 첫 문장은 "때때로 남겨진 자는 괴물이 된다."이지만 사실 페이지를 달리 해 이 한 문장만 써 놓은 것으로 보아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듯하다. 실제 가장 첫 문장은 '00'으로 표기된 〈프롤로그〉에서 시작한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한밤을 깨운 것은 묘한 마찰음이었다. '드르륵' 의자가 바닥을 긁는 기분 나쁜 소리에 아이는 눈을 떴다. 얕은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눈을 비비며, 가장 먼저 한 사람을 떠올렸다."(p.7)



앞서 나온 아이는 열 살이고 이날 밤 사건으로 고아가 된다. 엄마 아빠가 차례로 낯선 괴한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책 소개글에 따르면 괴뢰사의 섬뜩한 존재감은 초능력적 장치이면서도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은유다. 독자는 액션의 쾌감을 따라가다가도, 불시에 던져지는 질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언레코더블』의 힘은 바로 이 두 겹의 매력에 있다. 세상에는 끝내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지워진 흔적 속에서도,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1편 〈괴뢰사〉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 증명할 수 없는 진실들이 앞으로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 소설 작품은 스릴러, 미스터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은 남겨진 아이와 어른의 책임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한 아이가 결국 스스로 괴물이 되어 세상에 칼끝을 겨누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야기는 초능력이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극적인 긴장과 서스펜스를 만들어내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질문은 잔혹할 만큼 현실적이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는가, 그리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어른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작품은 이 질문을 피해 가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괴뢰사가 조종하는 인형의 기괴한 움직임은 초현실적인 장치이면서도, 인간 내면의 균열을 드러낸다. 이에 따라 독자들은 단순히 괴이한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의 상처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해 내는지 체감할 수 있다. 경찰과 범죄자의 대결로 보이는 이야기는 사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어른과 끝내 인정받고 싶어 한 아이의 충돌이다. 결국 소설 속 주인공들이 남기는 것은 총성도, 칼날도 아닌 늦게 도착한 사과 한마디와 눈물의 무게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독자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괴물은 태어나는가, 길러지는가. 그리고 어른은 언제, 어떻게 아이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책의 시작이자 전체 내용의 흐름을 잡아주는 〈프롤로그〉 00장(章)은 이날 밤 사건의 전개와 일단락에 몇 사람이 등장한다. 당연히 사건의 목격자이자 살아남은 아이와 사망한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강도 살해범으로 추정되는 체포된 범인이다. 또 아이의 전화 신고로 출동한 경찰, 한재우와 그의 한 팀 선배 김 경장이 있다. 이들은 아이가 112에 신고해 출동한 경찰들이다. 아이가 눈을 떠서 엄마 아빠방으로 가면서 방 안에서 일어난 소음 때문에 멈칫한다. 엄마 아빠 외에 누군가 방안에 있다. 문고리를 살짝 돌려 열고 아이는 얼굴을 빼꼼 내민다. 아이의 시선이 무언가를 발견하며 동시에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온다. "엄마~!!!" 

아이의 부모가 동시에 잠에서 깨어나고 검은색 일색의 옷차림에 식칼을 든 남자가 침대 곁에 서 있다. "꺄악~!!!"

엄마의 비명과 동시에 아빠의 몸이 남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두 남자는 한 덩어리가 되어 뒤엉켰다. 아빠가 남자와 육탄전을 벌이는 사이 엄마는 방 밖으로 뛰어나와 아이를 살폈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엄마의 물음에 아이는 엉엉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방 안으로 빨리!"

아빠는 필사적으로 아내와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 말은 그의 유언이 되었다. 

엄마는 급히 아이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문 잠그고, 112에 전화해! 어서!" 아이가 전화한 후 누군가 연신 방문을 두들기는 쾅쾅 소리에 울음을 터뜨리며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경찰이 출동하고 아이는 살해되기 직전 경찰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칼을 휘두르는 범인을 한재우 순경이 손바닥으로 칼을 막은 것이다. 격투 끝에 범인은 체포되고 한재우는 손바닥에 칼이 박히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현장에선 살해 흉기는 발견되지만 그 흉기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현장 주변에선 살인자의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다. 경찰에서는 미재 사건으로 돌리지만 이런 사건을 따로 수사하는 사람들, 조직이 있다. 그들은 이런 사건들을 기록할 수 없는 '언레코더블 사건'이라고 분류한다.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은 기록할 것이 없다는 말일 수도 있고, 기록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언레코더블 사건'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건을 수사하고 추적하는 이들에겐 기록으로 남겨진 수많은 것들이 가지고 있다. 단지 일반적인 사람들, 경찰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그런 기록과 단서였다. 어릴 적 부모가 살해되는 현장에 있던 아이는 그 시간 자체가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 아이는 그 트라우마를 자신의 손으로 악을 응징하는 쪽으로 해소한다. 이 소설은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철수는 죽은 남자들을 경멸하듯 쳐다보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택진이 다시 보고를 이어갔다. “공원에 끌려온 뒤, 구타를 당했고…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셋 다 죽어 있었답니다. 지금도 지구대에서 보호 중이고요.” “과수대에서는 뭐래?” “살해도구가 석상인 건 확실한 것 같답니다. 사체들 전부 머리가 깨져 있는데 그 상처랑 딱 맞아떨어진다고요. 석상에서 피해자들 머리카락도 묻어나왔답니다. 문제는….” ‘문제’라는 말에 철수가 눈을 부라리며 택진을 쳐다보았다. 택진은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석상에… 아무 흔적도 없답니다.”(p.29-30)



이 소설 『언레코더블』은 ‘읽는다’기보다 ‘보는’ 경험에 가깝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서 장면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인물의 움직임과 긴장감이 영상처럼 또렷하게 다가온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스릴러적 긴장에 머무르지 않고, 그 긴장을 영화적 리듬으로 구현해낸다는 데 있다. 이는 저자 한혁이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전공한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라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저자의 묘사는 카메라가 줌인하듯 인물의 표정이 드러나고, 한 컷 한 컷 이어지듯 장면이 겹쳐진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활자를 읽는 동시에 이미지를 체험하는 이중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소설 작품은 장르소설임에도 시각적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더해, 마치 영상과 문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독창성이 장점이다. 과장된 서술 없이도 화면이 그려지고, 설명을 넘어선 감각이 전해진다. 

초능력을 지닌 빌런과 일반인 형사의 대결 구도라는 설정 자체는 소설의 시작부터 미스터리하면서도 흥미로운 서사 무대를 예고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 담백하면서도 압도적인 힘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이어지는 시리즈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탁자 위에는 정체 모를 기계 부품들이 녹슨 채 널려 있었고, 장식장 안에는 작은 석상들이 촘촘히 줄지어 서 있었다. 일부는 고대 신의 형상 같았고, 일부는 어디서 본 듯한 불상의 파편 같았다. 빛은 형광등이 아니라 천장에 매달린 낡은 주홍빛 전등 하나뿐이었는데, 그 불빛이 유리 진열장에 부딪혀 기묘한 그림자를 벽 곳곳에 흩뿌렸다. 한울은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게 안은 마치 버려진 시간과 잊힌 기억들이 얽혀 만든, 작은 세계의 심장부 같았다. 한울은 괜히 목덜미가 서늘해져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도, 누군가가 빽빽한 골동품 사이에서 숨을 죽이고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재우가 걸음을 멈췄다.(p.123)


저자 : 한혁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전공했다. 2016년 스토리공모전에 당선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영화, 드라마 원작 스토리텔링과 소설, 웹툰 작업을 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에 웹툰을 연재했으며, 원작으로 기획한 소설 두 편이 드라마로 개발 중이다. 연령,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을 대상으로 스토리텔링 수업을 하고 있다. 인생에 특별한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계속 글을 쓸 계획이다. (8_hans@naver.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이나 무관심이 아닌 공감과 따뜻한 위로라고 생각할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공감과 위로는 물론 자신의 삶도 다시 되돌아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에는 세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드림래더」, 「도마 위의 생」,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 등이다. 각 단편마다 주인공의 나이와 인물이 다르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때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의 소설은 아니다. 여자이기에, 인간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대략 ①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① 결혼 생활, ③ 중년 이후의 삶 등이 실제 저자 채도운의 경험담인 듯 생생하게 담겨 여성으로서의 삶의 애환이 진하게 배어 있다. 이 작품들은 도움과 돌봄, 살림과 살생, 공동체와 개인이 한 덩어리로 뒤엉키는 이야기를 저자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의 온기를 담아 담담하게 풀어간다. 

첫 작품 「드림래더」는 주인공 시은의 초등학교 시절 때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바보'라고 소문난 남자아이 옆자리 짝꿍으로 시은을 앉히며 담임 선생님은 평소 시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책임감 있고 착한 어린이라는 치사까지 곁들여 남자아이의 친구 겸 보호자 역할을 해줄 것을 맡긴다. 초등학생 시은은 다른 친구들이 '바보의 짝꿍' '코흘리개의 신부', '코닦개'라고 놀리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시은은 울먹이며 바꿔 달라고 선생님께 말한다. 그러자 선생님은 시은의 어깨를 붙잡고 한마디를 할 뿐이다. "우리 시은이,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다." 이 말은 시은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콤플렉스가 된다.

시은은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실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진 말인지. 선생님이 자신에게 나눠준 애정과 신뢰를 한순간에 거둬 버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시은은 순식간에 자신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엉망진창의, 되바라진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며칠이 지나고 시은은 몇 번의 각오 끝에, 남자아이의 누런 코를 자신의 소매로 닦아 주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시은은 변하지 않았다. 남이 싫어하는 뒷치다꺼리를 온통 도맡아 했다. 극단의 평가가 뒤따랐다. 위선과 성심, 그 사이에서 위태롭게 서 있으면서도 시은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다녔다.



이런 시은을 눈여겨본 건 대학교 대외정책실의 교직원이었다. 몇 번이고 마주칠 때마다 무겁고 더러운 일을 마치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라는 듯 당연하게 했다. "요즘 세상에 이런 학생이 있다니···" 대외정책실은 매년 지역 활동가, 사업가, 정치가를 초청해 콘퍼런스를 개최하곤 했는데, 행사 뒤풀이 겸 진행된 식사 자리에서 시은을 지켜본 일화를 이야기했다. 당시 지방대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도 신성을 갖춘 인재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 그의 앞에 앉아 있던 병원장은 자신의 명함을 그에게 내밀며,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지역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그 학생을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은이 찾아간 병원의 프로그램 이름이 이 단편의 제목인 '드림래더', 즉 '꿈(의) 사다리'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드림래더 첫 공식 모임 날이에 열 명 남짓의 학생들이 앉아 있다. 키 170cm 남짓의 50대 초반의 남성과 뒤따라 들어온 남자는 정수리가 벗겨진, 회색 재킷에 검은 등산바지 차림이다. 그는 마이크를 켜더니 "안녕하세요, 저는 드림래더를 이끌어 갈 지역기념사업회 사무처장 김인호라고 합니다." 이후 김인호와 시은, 시은의 대학 친구 희주 등 3인의 인물들이 스토리를 끌어 간다.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던 희주였건만, 그녀는 언제부터 웃고 있었을까. 시은은 그런 희주를 바라보며 자신의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고, 그다음 왼쪽 입꼬리를 바짝 끌어올렸다. 친구인 승재의 말이 옳았다. 결국 자신을 붙잡는 건 현실이 아니라, 스스로가 걸어 둔 기대일지도 모른다."(p.20)

"기대는 마음의 빚이야. 마음에 달아 두지마." 식당으로 위장된 정치 행사에서 청년들의 손ㅡ그중에서도 여성의 손ㅡ이 밥을 차리고, 침을 닦고, 사진을 찍고, 피켓을 든다. 돌봄과 봉사, 무급 감정노동이 '착함'이라는 미덕으로 호출될 때, 여성은 더 빨리 앞줄에 서게 된다. 약속했던 취업 연계는 돌아오지 않고, 되돌아온 건 첫 장면의 말이 반복될 뿐이다. "시은아··· 실망이다."

이 작품은 길들이는 말로 시작해, 기대-실망-재기대의 고리에 청년을 묶어 두는 한국식 돌봄·정치의 장치를 파헤친다. 박수와 사진 뒤에 숨은 ‘공짜 노동’의 역설을 드러내며, “누굴 위해, 누가 무엇을 닦고 있나”라는 질문을 남긴다.


「도마 위의 생」은 일상의 부엌에서 시작한다. 물고기·생선, 치킨·헨, 쉽·램·고트···. 아이의 질문이 분류를 흔든다. 모든 것이 '식재료' 하나로 정의된다면, 사람을 부르는 방식도 그 꼴을 닮는다. '여자'는 주부·엄마·아내를 거쳐 결국 '살림하는 손'으로 축소된다. 이름을 줄이면 역할이 줄고, 역할이 줄면 권리도 줄어든다. 이 작품은 이 위험한 등식을 조용히 조명한다. 곧 드러나는 건, 그 분류마저도 결국 먹기 위해 생명을 가르는 인간의 이름 짓기라는 사실이다.

이 작품에는 고교 시절 폭력을 회고하는 일인칭 독백이 나온다. 가해의 흔적이 오래 남는다. 저자는 '손의 기억'을 불러내, 타인의 온기를 빼앗는 폭력의 촉각과 주부가 처음 부엌에서 생물을 죽여 상에 올릴 때의 촉각이 어떻게 닮아 있는지 보여준다. 즉, 식(食)을 위해 생(生)을 가르는 이름 붙이기의 폭력이 어떻게 일상으로 스며드는지, 그리고 타인의 온기를 빼앗던 폭력의 촉각이 ‘살림하는 손’의 첫 살생과 닮아 있음을 저자는 포착해 낸다. “살림은 어디까지가 살생과 분리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독자들의 손을 멈추게 한다. 다른 두 편의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이가 매우 짧지만 전하는 메시지를 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이 소설은 살림과 육아, 끝없는 노동과 희생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점점 지워져가는 중년 여성의 삶을 추적한다. 그녀의 일상은 마치 도마 위의 생선 같다. 자르고 다듬고 버려지는 삶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비유다. 저자는 도마 위에서도 여전히 꿈틀거리는 ‘생’을 보여준다. 완전히 죽지 않은 존재의 온기, 그 미세한 움직임이야말로 인간이 끝까지 놓지 않는 삶의 본능이다.

표제어로 쓰인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는 쉰일곱 살 '이진'의 작은 반지에서 출발한다. 이진은 시장-죽가게-집을 오가며 흥정으로 버텨 온 사람이다.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인데 누가 뭐라고 해!"라는 말은 생활 습관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다. 어느 날, 서점 행사에서 본 한 줄기 은빛이 그녀의 세계로 들어온다. 반지는 겉으로는 사치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도 값어치가 있다”는 자기 인정 욕구의 발로이다. 그러나 정년 없는 가게, 집으로 되돌아온 노동, 장갑 한 켤레가 덧씌우는 의무 속에서 중장년 여성의 욕망은 쉽게 ‘소모품’으로 사용될 뿐이다.



은퇴 날, 남편 고환은 반지를 선물한다. 하지만 그 반지를 주고받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장면을 들여다보면 이진의 삶이 이지(easy)하지 않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정년 없는 죽가게는 다음 날도 문을 열고, 퇴직한 남편의 쇠진한 노동은 집안으로 되돌아오며, 아들의 선물인 고무장갑은 결국 이진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진이 자신을 소진해 얻은 그 반지는, 누군가에게는 취향 따라 쉽게 갈아 끼우는 소모품일 뿐이다. 다음 날도 그녀의 손은 새벽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것이다. 값(price)은 지불하지만, 값어치(value)를 지키는 일은 여전히 그녀 몫이다. 간극, 그리고 “노년의 욕망은 죄인가”라는 사회의 물음에 맞서는 한 사람의 체온을 섬세하게 지켜낸다.

반면 이진은 어느 날 비슷한 연배의 자신과는 너무 다른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 작가 하이안의 삶을 목격하고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손에서 반짝이는 은반지에 집착한다. 그녀는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속으로 뇌이면서도, 이진에게 공감이 간다. 비록 외견상 고상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진의 삶도 충분히 반짝이는데, 아무도 그걸 알려고 하지 않고 이진 자신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시들어 간다.


“나는 나라고 생각했어. 오롯하고도 개별적인 존재로서 ‘미아’ 말이야. 하지만 이제 알겠더라고. 나는 과거로부터 건너온 무수히 많은 존재의 집합체에 불과하다고 말이야. 아무리 세대가 달라져도, 부여된 여성의 의무에서는 독립할 수 없는 거야. 아무리 교육받고 지식을 쌓아도 닮기 싫었던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나를 봐. 엄마도 이런 나를 바라지 않았겠지. 자신의 미래를 희생해서 투자한 결과물인데. 그런데 나를 봐, 나도 그저 과거에 있던 그런 여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야.”(p.109)


여기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잔잔하게 읽히며 내용 또한 요란스럽지 않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언뜻 행복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깊은 절망에 빠져들기도 한다.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에서 에세이 「진상(眞相)」으로 〈작가의 말〉을 대신한다. 이 에세이에는 '엄마의 진상을 이해하는 순간은 내가 진상이 될 때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자라서 엄마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무 먼 이야기이고, 설령 엄마가 된다 해도 '우리 엄마'와는 다른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가격을 흥정하는 엄마, 갓길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워두는 엄마, 카페에서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엄마,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주섬주섬 싸오는 엄마. 그 모든 모습을 닮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엄마 모습을 닮기 싫었다고 에세이에서 털어놓는다. "복숭아를 깎으며 씨앗에 붙은 과육을 먹으려, 손에 과즙을 줄줄 흘리며 먹는 엄마의 습관이 싫었다"고 말한다. 또 "락스물로 얼룩진 티셔츠를 버리지 않고 계속 입는 것도, 불편하다며 브래지어를 벗고 티셔츠만 걸치는 그 적나라함도, 어느 날 시장에서 짝퉁 지갑을 사오던 일도 정말이지 싫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흔히 매우 부적절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극장이든 이른바 '진상'을 자주 목격한다. 저자는 "진상(眞相)의 본래 뜻은 사물의 참된 모습을 말하는 단어였다"며, "그러다가 억지를 부리거나 무례한 사람들 두고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났다'라는 의미에서 '진상이 드러났다'라고 쓰이기 시작해, 이젠 진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겨울이 되면 조금이라도 일찍 보일러를 끄려고 애썼고, 여름에는 특별한 날에만 에어컨을 켜려고 리모컨을 숨겨 두곤 했다. 마트에서 환불을 요구하던 엄마의 목소리는 진상의 소동이 아니라, 오만 원과 오백 원이 뒤엉킨 생의 산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미워하던 수많은 장면 속에도 엄마의 맥락이 담겨 있었다."(p.137)고 저자는 사유한다.


저자 : 애매한 인간(채도운)


1992년생. 자격증, 이력, 경력, 전문성, 돈, 재능 등 모든 게 애매한 인간. 무난하게라도 살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다 마침내 공공기관 입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힘겹게 4년을 버티고 퇴사, 나고 자란 진주에서 무작정 카페를 열었다. 그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주인을 닮아서일까? 카페도 애매하다. 카페인가, 서점인가, 마을회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함이 주는 힘을 믿기에, 이 공간을 방문해주는 손님, 친구들,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를 충실히 잘 살아내고 있다. 애매한 인간의 카페 창업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엄마가 카페에서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전자책을 출간했다. 오늘도 진주에서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애매하게 운영 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한 문장, 내일이 달라지는 마음습관 선물 세트 - 도서 1권 + 기록 노트 1권 + 전용 펜 1자루
최규운 지음 / 서로(敍路)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하루 한 문장, 내일이 달라지는 마음습관』은 우리 일상 속 이야기와 깊은 성찰을 통해 행복, 관계, 자기 성장을 구체적으로 풀어낸 생활 에세이집이다. 독자들은 짧지만 깊이 있는 문장들을 통해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다르게 시작할 수 있는 사유의 단초를 얻도록 구성되어 있다. 저자 최규운은 오랜 시간 매일 아침 글을 쓰며, 독자들과 나누었던 '마음의 편지'를 바탕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당신의 하루를 위한 한 문장」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통해 그간의 과정을 말한다. "쉼표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여는 한 줄의 글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한 목적도, 거창한 포부도 없이 그저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맞이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p.12)

막상 책으로 엮으려 할 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강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여전히 부족한 문장들과 미완의 생각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글"이라 말하는 분들의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다시 펜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 글을 정리할 때도 저자는 다시 한 번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마침표는 끝이 아니라, 쉼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 글은 이 한 권으로 잠시 멈추지만, 삶은 여전히 오늘도, 내일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p.13)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인문학 강연자이자 출판 기획자인 설혜는 책 속의 구절을 인용해 책의 성격과 가치를 부여한다. "이름 없는 들풀일지라도, 햇살을 향해 곧게 서 있고, 그 자리를 환하게 밝힌다면 잡초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바로 시도해볼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지낸 ‘편지의 감성’을 다시 불러낸다. 한때는 손편지로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나누던 시대가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빠른 속도와 디지털 메시지에 익숙해졌다. 이 같은 시대 속에서도 ‘짧은 한 문장’이 마음을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명사들의 언어와 고사성어, 일상의 깨달음이 조화롭게 담긴 문장들은 마치 아침마다 건네받는 손편지처럼, 하루의 시작에 작은 울림을 전한다. 예를 들어, “이름 없는 들풀일지라도 햇살을 향해 곧게 서 있다면 잡초가 아니라 존재의 빛이 됩니다.”(「잡초, 혹은 산삼」)와 같은 문장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게 만드는 사유의 방향을 제시한다.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마음가짐〉, 2장 〈자기성찰〉, 3장 〈성장과 변화〉, 4장 〈관계와 소통〉, 5장 〈행복과 감사〉, 6장 〈삶의 지혜와 리더십〉 등이다. 각 장에는 11~22항목의 제목과 106개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지낸 ‘편지의 감성’을 다시 불러낸다. 한때는 손편지로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나누던 시대가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빠른 속도와 디지털 메시지에 익숙해졌다. 이 같은 시대 속에서도 ‘짧은 한 문장’이 마음을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명사들의 언어와 고사성어, 일상의 깨달음이 조화롭게 담긴 문장들은 마치 아침마다 건네받는 손편지처럼, 하루의 시작에 작은 울림을 전한다. 예를 들어, “이름 없는 들풀일지라도 햇살을 향해 곧게 서 있다면 잡초가 아니라 존재의 빛이 됩니다.”(「잡초, 혹은 산삼」)와 같은 문장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게 만드는 사유의 방향을 제시한다.



자기계발에 열심인 사람들은 대부분 짧은 한 문장이 하루를 바꾸고, 작은 습관이 삶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이 책 『하루 한 문장, 내일이 달라지는 마음습관』도 지난 10년 동안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전해온 따뜻한 아침편지를 한 권에 담아낸 산문집이다. 이번 '특별 세트'에는 독자가 직접 기록하며 성찰할 수 있는 〈마음습관 기록 노트〉와, 편안한 필사를 돕는 전용 펜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노트에 기록하며 나만의 성찰 일기를 남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선물용으로도 적합해, 단체·기관·기업 행사에 활용하기에도 적절해 보인다.

특히 최고급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제작됐으며, 따뜻한 수채화풍의 삽화와 함께 구성돼 읽는 즐거움과 소장 가치를 더했다고 출판사 〈서로〉는 밝히고 있다. 또 책의 앞표지와 띠지에 그려진 자작나무숲과 푸른 여름 숲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에 평온함을 준다. 빛을 머금은 수채화의 나무들은 마치 '당신의 하루가 다시 빛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하다. 책장을 열기 전부터 이미 독자는 자연의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의 숲길에 들어서게 되는 느낌이다.

〈서로〉는 “AI와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삶을 빠르게 바꾸는 시대에, 『하루 한 문장, 내일이 달라지는 마음습관』은 마음의 회로를 다시 연결하는 책이 될 것”이라며, “짧은 한 문장이 독자들의 하루를 바꾸고,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찬기 경영공학 박사는 〈추천사〉에서 “이 책은 AI 시대에 왜 우리가 ‘마음을 돌보는 문장’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다”며, “매일의 한 문장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마음의 습관을 재구성하는 알고리즘이자, 삶을 설계하는 코드와 같다”고 평가했다.



출판사 측은 이 책의 특징을 다음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① 10년 이상 매일 써온 ‘아침편지’의 진심을 담은 기록 ② 짧지만 울림 있는 한 문장으로 하루를 여는 사색 습관 제안 ③ 명언, 고사성어, 자연 이미지 등과 연결된 감성적 문체 ④ 디지털 시대의 마음 회복을 위한 ‘비움의 책’ ⑤ 세대와 관계없이 함께 읽고 나눌 수 있는 일상 철학 에세이 등이다. 사실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가 디지털 홍수에 휩쓸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현대인들은 아침 눈 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엄청난 양의 정보에 휩쓸리면 살아간다. 많은 정보는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개인의 뇌를 지배한다. 세계는 이미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 받으며 궁금한 것을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네트워크를 잘 갖춘 디지털 현대인은 원하는 정보를 즉각 즉각 흡수 처리할 수도 있다. 반면 아직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식은 물론 앞으로 쏟아지는 정보 역시 제한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정보는 미처 판단하기조차 힘들다. 현대인들은 이미 디지털, 스마트폰에 정복당한 일상을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찾는다. 그리고 하루종일 각종 정보와 힘겨루기를 하는 게 일상이 된다. 속도 속에서 우리는 이미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다. 결국 디지털에 매몰돼 자기 자신을 차츰 잃어버린다. 짧은 문장의 임팩트 있는 글은 기억하지만 길거나 복잡한 문장은 아예 입력부터 거부된다. 물론 아날로그 시대에도 짧은 문장을 선호했다. 인간의 두뇌가 긴 문장을 소화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지 않는데도 짧은 문장이 확실히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선천적이어서일까. 

현대인들이 긴 글보다 짧은 문장에 더 빨리 반응하는 것은 디지털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한 줄의 시, 짧은 명언을 선호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이 짧은 문장, 짧은 글로 전하는 메시지는 예전 아날로그 감성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시대가 아무리 정보 홍수 속에서 헤매고 있어도 독자들은 정확히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가려낸다. 그리고 기억하기 좋게 다시 재구성해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와 인간의 두뇌가 비슷하게 작동하는 원리가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문장들은 감정적, 감성적 내용을 절제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미 감성적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를 쓴다는 일은 어쩌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필사를 매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시간을 아껴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필사하는 순간은 모든 신경이 집중되고, 그 시간에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있으니까 '시간 절약'이란 말도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하더라도 꼭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원한다면 결코 생략할 성질의 일이 아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오늘부터라도 필사에 정성을 들여 시작해 볼 일이다. 


저자 : 최규운


세진메디칼 대표, 자유기고가. 2010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세진 아침편지’를 써오고 있다. 매일 아침 삶의 조각을 글로 엮으며,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왔다. 짧지만 깊이 있는 문장 속에는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길 위를 걷는 삶의 여정에서 길어 올린 감정과 통찰이 시처럼 스며 있다. Medical Device 기업의 대표로서 쌓아온 풍부한 현장 경험,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독서와 성찰은 그의 글에 단단한 현실감과 따뜻한 감수성을 함께 담아낸다. 그는 단지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 좋은 글과 책을 나누는 삶의 전도사로 살아가고 있다. 편지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사유하고, 함께 웃으며, 함께 성장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은 어느새 자신만의 아침을 열고, 스스로를 돌보며,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지속적인 글쓰기로 일상을 밝히고, 글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 작가는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의 첫 문장을 꺼내어,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빛이 되기를 꿈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