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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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오픈 엑시트』는 저자 자신의 경험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한다. "휴일에 어쩌다 함께 식사하게 되면 아버지는 넋두리처럼 회사 생활의 고단함을 늘어놓으셨다. 아침마다 회사에 가는 게 싫을 때가 있지만 가야 하는 게 이 직업이다. 너희믄 회사 다니지 말로 다른 일 해라." 하지만 형들은 모두 기업에 취직했고 나만 다른 길을 걸었다. 당신 말년에 내가 출근하지 않고 병상을 찾으면 우려 섞인 말을 건네셨다. 출근 안 해도 되냐고. "수업 없어서 괜찮아요." 하면 씁쓸히 웃으며 되받으셨다. "출근 안 해도 돈 주는 직업이 있는 줄 몰랐다." 은퇴한 아버지는 회한 섞인 말을 종종 하셨다. "몇 번 나와서 내 사업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 잠든 걸 보면 차마 그러지 못했다······"(p.5)

저자 이철승은 자신의 과거이기도 한 아버지의 회사 생활의 일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고용주의 비위 맞추려 시도 때도 없이 호출당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걸 귀찮아 했다고 「왜 우리는 탈출하고자 하는가」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의 과거이자 아버지가 직장 생활하던 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표제어 '오픈 엑시트'는 독자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열린 탈출구', 혹은 '개방된 탈출구' 정도가 아닐까? 사회 비평 혹은 사회과학 서적으로 분류될 이 책에서 왜 개인적 경험을 책의 「프롤로그」를 끼워넣었을까? 사례를 전제로 우리 사회 현실을 비판하자면 객관적 자료나 통계가 더 설득력을 높일 수 있을 텐데. 독자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우리의 산업화 시대 직장을 다니셨던 아버지는 사실 충분히 객관화된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들기 전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 전쟁과 후유증 수습 등으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더욱이 전쟁을 치렀던 남북의 분단은 해방 이후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영토를 마음대로 분리 통치하기로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가 끝나자마자 이념 대립으로 한반도는 허리가 잘렸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장기 집권 꿈을 학생과 시민들의 분연한 의지로 끊어냈지만, 정국의 혼란이 가시기도 전 다시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당시 박정희 장군(소장)은 정권을 탈취한 뒤 '개발 독재' '철권 통치'를 시작했다. '먹고살기'가 먼저라는 명분이다.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니만큼 가장 시급한 문제는 먹고사는 일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세력은 국민들의 바람을 잘 궤뚫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개발만이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할 명분이라는 점을 잘 간파했다. 사실 폐허에서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려면 당연히 먹고사는 일이 시급하다. 헌법에 정해진 대로 당초 약속했던, 재집권의 경우까지 8년에 한하던 대통령의 임기를 무기한으로 늘리는 개헌을 시도했다. 비상계엄령과 함께 시작된 장기집권 계획의 꿈은 경제 개발 성과로 가릴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른바 '유신'이다. 헌법도 유신헌법으로 바뀌고 임기 6년제의 간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도 연임 횟수를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종신 대통령'의 기초를 다졌다. 민주화를 위한 모든 행위(학생 운동, 노동 운동 등)는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때 비상계엄령에 준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도 추가되었다. 위반할 경우 최고 사형을 언도받을 수 있는 엄청난 법적 제도도 마련됐다. 

이렇게 다져진 유신체제는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위세가 대단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으면서도 일정 기간 유지가 가능했다. 민주화 운동 인사들은 긴급조치권으로 구속 체포해 최고 사형까지 시키는 데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더 급한 경제 발전에 주력한 후 어느 정도 나라의 체제가 갖추어지면 민주화에도 동의하겠다는 절대 정권의 말을 믿도록 국민들은 순치되어 갔다. 배고픈 사람들은 민주화보다 산업화가 먼저였으니 당연히 민주화를 추구하던 몇몇 인사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이 책 저자의 아버지 세대의 일이다. 아버지의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산업화 시대의 희생적 삶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저자 이철승은 한국 사회에 불평등과 세대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언론과 학계, 정계, 일반 대중에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사회학자이다.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이 책은 전작 『불평등의 세대』와 『쌀 재난 국가』에 이은, 〈불평등 3부작〉의 완결작이다. 저자는 『불평등의 세대』에서 386세대가 구축한 세대 네트워크를 분석함으로써 동시대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의 구조를 파헤쳤으며, 이어 『쌀 재난 국가』에서는 그러한 불평등 구조의 기원을 동아시아의 쌀 경작 문화권에서 발달한 ‘벼농사 체제’라는 앵글을 통해 추적했다. 완결작이 된 이 책은 새롭게 떠오르는 불평등의 축으로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을 꼽으며, 이 세 가지 구조적 변동과 그 힘들이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social cage)’라는 기존의 제도 및 구조와 충돌하는 와중에 생성되는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개인적 혹은 집합적 대안으로서 ‘엑시트 옵션(exit op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기존 케이지*의 룰과 관습으로는 이 세 가지 구조적 변동에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당면한 미래에 이 세 가지 변동이 가져올 충격과 재구조화 속에서 개인과 기업은 어떤 적응 전략을 짜고, 국가는 어떤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할까? 시민사회는 어떻게 사회와 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을까? 한국의 정치는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불평등의 미래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까? 저자 이철승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던 구조 개혁의 문제를 ‘기업’을 분석 단위로 삼아 ‘개인의 엑시트 옵션’이라는 수준에서 논의한다. 기업이라는 소셜 케이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노동하는 인간이 인간 사회의 본질이라는 오랜 믿음 때문”이며, 구조 개혁의 문제를 개인 수준으로 낮춘 것은 “엑시트 옵션의 궁극적 행사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수준의 엑시트 옵션은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이렇게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오도 가도 못 하게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밀어내기 싸움에 목매는 이유는 바로 구조적으로, 엑시트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제로섬게임에 올인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이 처절한 아귀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쉽게 엑시트할 수 있는 사회, 특히 중하층의 엑시트 옵션을 확대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 『오픈 엑시트』는 이미 그 싹을 틔운 불평등의 미래에 직면해 노동시장의 구조 개혁, 한국 사회의 구조 개혁을 예비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예기치 않은 선거를 앞두고(책이 출판될 때는 2025 대선이 치러지기 이전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책이 될 것이다.

* 케이지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은 막스 베버다. 베버는 그의 명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92, 1930)의 결론 부분에서 '쇠 우리(iron cage)라는 비유적 개념을 사용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본주의와 근대적 관료제의 기술 통제하에서 고유의 자율성을 잃고 그 규칙과 규범에 종속된다. 이 속박의 '안정성'과 결박의 '견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베버는ㅡ케이지도 강한 결박의 개념인데ㅡ앞에 '쇠(iron)'를 붙였다.((p.23, 저자 주)


이 책은 「소셜 케이지와 탈출 옵션」이라는 제목의 〈이 책의 구성〉과 〈결론〉을 제외하곤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케이지에서 나가기 - 엑시트 옵션의 확장〉, 2장 〈케이지 업데이트 - 인공지능과의 협업〉, 3장 〈케이지 재생산 - 벼농사 체제와 저출생〉, 4장 〈케이지 열기 - 이민과 불평등〉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표제어 『오픈 엑시트』는 제목이 뜻하는 바 ‘이탈 혹은 탈출’과 ‘안착 혹은 속박’에 관한 사회방법론을 이용한 서사다. 소셜 케이지는 사회마다 전승되어온 문화적 구조의 유산으로, 작게는 가족에서부터 마을, 일터, 국가까지 아우르며 개인이 현재의 공동체에서 이탈(exit)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도록 만드는 생태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인센티브 메커니즘과 제도의 총체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서 진화해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소셜 케이지로 발달한 (학벌-내부 노동시장-연공제로 착종되어 뒤엉킨) 기업의 제도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제도들이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이라는 거대한 변동의 물결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에 논의를 집중한다.

이를 테면 동아시아 소셜 케이지의 특징은 협업과 위계, 경쟁을 바탕으로 강력한 내부 규율과 상호 감시 기제가 작동하며, 진입도 어렵지만 빠져나오기(exit)도 힘든 사회적 연결망이자 협동 노동조직이다. 이 소셜 케이지에 한 번 들어서면 조직 안에서는 장기간 고용이 보장되지만, 더 높은 자리와 보상이 주어지는 권력과 부를 향해 구성원 전체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 집단주의적이고 위계적인 협업 시스템은 세대 간, 세대 내 네트워크를 통해 기술 및 도구의 표준화와 평준화를 ‘빠르게’ 확산시킴으로써, 역시 ‘빠르게’ 서구 산업자본주의를 따라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적응하고 키워왔던 소셜 케이지는 오늘날에도 잘 작동하고 있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이렇게 위기에 봉착한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를 어떻게 재구조화할지에 대한 고찰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해온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가 새롭게 닥쳐오는 거대한 구조적 변동과 충돌하는 와중에 생성되는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이탈 혹은 탈출’과 ‘안착 혹은 속박’의 메커니즘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먼저,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는 그동안 동아시아 생산 시스템이 점유해왔던 제조업 분야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인공지능이 외부에서 밀려든 충격으로 인해 우리의 소셜 케이지를 업데이트하는 문제라면, 저출생은 소셜 케이지 내부의 룰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족 구성을 거부하거나, 가족을 꾸리더라도 출산과 육아를 거부하거나 연기함으로써 가부장제가 강제하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와 단절하고 커리어와 여가를 지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이 경우, 출산을 택하지 않은 것은 개인 수준에서는 봉건적 가족제도로부터의 엑시트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저출생 현상으로 나타난다. 사회가 구성원의 새로운 가치와 운동에 그 룰을 맞추지 못해 스스로를 재생산 실패(사멸)로 몰고 가는 이 상황, 게다가 그러한 실패가 사회의 하층에서 더욱더 가속화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민은 다른 사회의 케이지를 엑시트하여 우리의 케이지로 진입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주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200만을 넘어 3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의 협업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산업으로 유입되어 그들만의 지역적·산업적 게토를 만들고 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배제와 분리의 장벽들이 심화되면 미래의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저출생도 문제지만, 출산의 계급화는 그에 못지않은 사회문제다. 상층과 정규직은 더 적은 수의 자식에게 교육 자본과 자산을 몰아주기 위해 출산을 자제한다면, 중하층과 비정규직은 아이들을 키울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서 출산을 자제한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인 개인과 가구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화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결혼과 출산이 상층과 정규직의 전유물이 되어가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 도태를 강제하는 힘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올 것이다.(pp.221-222)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가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인구구조의 변화가 국가와 사회의 근간인 재생산 위기를 초래하며, 이주자들이 이미 우리의 일부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이 책 『오픈 엑시트』는 개인과 기업, 국가와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색하면서, 저자 특유의 독창적인 시각과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 이철승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고 현상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엑시트 옵션의 확대’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전략이지만, 발전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해법일 수도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일자리를 찾고, 스킬(숙련)을 쌓고, 그 스킬을 자유롭게 옮기거나 전환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동시에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학자의 책무라고 여겨 이 책을 썼다고 소회를 풀어놓는다. 다 같이 한 조직에, 현 조직에 매달려 서로의 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제로섬게임에 올인하는 이 닫힌 세계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엑시트 옵션을 탐색하는 이 책은, 우리가 함께 설계해야 할 미래의 방향을 제안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 개혁에 관한 흥미로운 사유서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며 중하층 백인을 결집하는 트럼프의 정치도 이러한 문화주의 우파를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이민 이슈는 좌파정당뿐만 아니라, 우파정당 내부에도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균열은 미국과 유럽에서 국제주의와 세계화를 추진해온 전통 우파가 사그라들고, 신극우파가 출현하여 우파정당을 장악하게 된 구조적 배경이기도 하다. 서구에서 2000년대 이후 극우정당에 의한 의회와 행정부의 장악은 한두 나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며, 그 궁극적 원인은 세계화와 이민이다.(p.299)


저자 : 이철승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복지국가, 노동시장 및 자산 불평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복지국가와 불평등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2005). 유타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를 거쳐 시카고 대학교 종신교수로 2017년까지 근무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2011년과 2012년 전미사회학협회 불평등과 사회이동, 정치사회학, 발전사회학, 노동사회학 분야에서 최우수 및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Social Forces, Sociological Theory, World Politics,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한국사회학』 『경제와사회』 『동향과전망』 『한국정치학회보』 『비판사회정책』 등에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증대」 「한국 복지국가의 사회경제적 기초」 「한국 노동운동과 복지국가의 미래 전략」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9년 번역?출간된 When Solidarity Wor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6(『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 박광호 옮김, 후마니타스)으로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저술 부문)을 수상했고, 같은 해 『한국사회학』에 발표한 「세대, 계급, 위계―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로 2020년 한국사회학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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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
대니엘 오프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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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은 표제어는 사뭇 도발적이고 충격적이다. 표제어로만 봐서는 의사들의 실수나 과실로 환자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당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피해를 받는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자의 폭로성 발언이나 양심 선언일 것 같다는 느낌도 있다. 저자 대니엘 오프리는 뉴욕 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로 일하며 뉴욕 벨뷰 병원에서 25년 간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현직 의사다. 현직 의사가 의료진의 실수로 사망하는 숫자가 전체 미국인 사망자의 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충격적 사실을 접하는 순간을 적었다. 책의 첫 문장은 "이게 정말 사실인가요?"로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2016년 어느 봄날 오후 비컨 출판사(이 책의 출판사)의 편집자가 저자에게 '믿을 수 없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메일에는 〈영국 의학 저널〉에 소개되며 여러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동시에 의료계에 건전한 비평을 불러일으킨) 한 기사가 첨부되어 있었다.* 이 기사는 의료 실수가 미국의 전체 사망 원인 중 세 번째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저자는 답변이 궁했다고 털어놓는다. 반신반의했다. 의료 실수가 정말 유방암이나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고통사고, 당뇨병, 폐렴 같은 병을 제치고 3위라고? 저자는 미국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밸뷰 병원에서 25년째 일하는 내과 전문의로서 오늘날 의료계에서 행하는 나름 합당한 한 단면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21세기 '선진' 사회에 만연한 비만이나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 암 같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따라서 만약 의료 실수가 세 번째로 높은 사망 요인이라면 저자 역시 수시로 그런 사례를 접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지인이나 가족을 통해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심장병과 암에 이어서 세 번째로 마치 출근부에 도장을 찍듯이 빈번하게 사람을 죽인다면, 의료 실수는 저자가 의료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일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 M. A. Majary and M. Daniel, 「Medical Error-the Third Leading Cause of Seath in the US,」 British Medical Journal(BMJ) 353


저자는 이날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천착한 듯하다. "의료 사고는 정당한 의학적 치료의 〈부작용〉이었을까? 아니면 명백한 부주의로 인한 결과였을까? 의료 실수 때문에 출혈이나 신부전, 혈전을 겪는 환자들은 어떤가? 얼마나 많은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위해를 당했을까? 일이 잘못되었을 때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료 사고를 일으킨 의사들은 소송을 통해 징계받았는가? 환자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는가? 소송하지 못한 환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의료 실수를 줄이고 환자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할까?"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책에 따르면 의료 실수에 관련된 자료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1년에 약 4만 4,000명에서 9만 8,000명이 의료 실수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하는 의료 협회의 1999년 최초 보고서부터 1년에 25만 명 이상이 상망한다고 주장하는 〈영국 의학 저널〉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마치 의료 실수 때문에 공중 보건에 비상사태가 초래되기 직전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설령 수치가 완전히 정확하지 않더라도ㅡ이들 보고서는 방법론에 문제가 제기되었다ㅡ연구자들은 의료 실수가 발생하는 빈도가 절대 낮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자료가 틀렸을까? 아니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세 번째 사망 원인'이라는 주장이 어쩌면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어쨌든 의료 실수를 둘러싼 공개된 통계와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의들의 경험 사이에는 명백히 커다란 틈이 존재한다. 게다가 일상적인 환자들의 경험도 방식은 다르나 통계 자료와 견해를 달리한다. 깊은 생각과 고민 끝에 현역 내과 의사로서, 그리고 때때로 환자가 되기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자는 이 문제의 진상을 밝혀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공식적인 자료에 근거한 추론과 내가 경험하는 현실은 완전히 상반되어 보였다. 즉 둘 중 하나는 틀린 주장을 펴고 있다는 뜻이었고, 나의 목표는 누가 틀렸는지 알아내는 것이다."(p.13)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이러한 질문에 대해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며, 크게 두 가지 비극적인 의료 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대 의료 체계에서 반복되는 가장 가혹한 실수의 희생자인 '제이'와 '글렌'은 각각 급성 골수 백혈병과 화상 진단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의사의 잘못된 진단, 간호사의 미온적인 대응, 그리고 감염 합병증을 비롯해 중환자실이나 대형 병원으로 빨리 이송하지 못한 점 등 각 단계별 의료 실수들이 점점 합쳐져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엄청난 의료 사고로 이어진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심각하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사들뿐 아니라 병원 측도 제대로 된 정보를 유족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남편과 아빠를 잃은 이 두 가족은 의료 소송에만 5년 이상이 걸렸다. 이들의 이야기는 의료 실수의 복잡성에 더해서 언제든 의료 실수가 일어날 수 있음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저자 오프리는 제이와 글렌의 사례 외에도 다른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가 해부하는 의료 사고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실수부터 참혹한 의료 재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우리 의료 시스템은 현재도 완벽하고, 앞으로도 항상 완벽하겠지만 저자는 예방 가능한 위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 주제가 오늘날의 의학적 담론에 활력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모두 1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점보제트기 추락 사고」 2장 「불확실의 바다」 3장 「진단과 누락」 4장 「발열」 5장 「진단적 사고(思考)」 6장 「추락」 7장 「공식적으로」 8장 「죽음이 남긴 것」 9장 「시간에 쫓겨서」 10장 「편견」 11장 「법정에서 봅시다」 12장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13장 「답을 찾아서」 14장 「우리 뇌에 맞추어」 15장 「심판」 16장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17장 「바로잡다」 등이다. 의료 지식이 높은 독자들은 제목만 보면 내용의 전개가 대략 짐작할지도 모르지만 일반 독자들은 제목만으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종잡기 어렵다. 의료 실수는 그 틈을 파고들기도 한다. 

의료 실수로 인한 '사망'은 의료 실수 때문에 피해를 보는 환자들의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의료 실수 때문에 출혈이나 신부전, 혈전을 겪는 환자들은 어떤가?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런 부작용은 매우 심각한 위해다. 여기에 더해서 이제는 진단 실수와 진단 지연도 의료 실수로 간주되면서 '예방 가능한 위해'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p.25) 


의료계가 의료 실수를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M&M이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잘 알려진 '질병률과 사망률 회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의료계와 함께해 왔다. 질병률과 사망률 회의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부정적인 의료 결과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를 제공하고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하지만 의료 실수를 분석하는 과정에 우리 '의료계 영웅'들의 견고한 개인주의가 스며들면서 무엇이-더 흔하게는 '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는지 파악하고, 그 부분을 개선하는 방식이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의료 실수는 발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단순한 부산물로 간주되는 정도였다는 주장이다. 모든 문제는 의료 연구가 끊임없는 진전을 이어감에 따라 저절로 해결될 일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듯하다. 

이에 따라 의료 피해에 대한 고찰이 의료 연구의 활발한 분야가 아니었다는 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의료계의 연로한 기득권층은 고귀한 의술-대규모로 진행되는 과학적 연구로 강화된-이 의료계의 성스러운 직무에 모범적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오히려 이런 맹점을 가장 먼저 지적한 사람들은 사실상 전공의들이었다. 저자는 이들 전공의들의 노력은 의료 사고 대안의 틀만 갖춰진 채 지속적인 연구가 명맥만 이어왔을 뿐 적극적인 노력은 없었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저자에 따르면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연구자들은 비로소 대대적으로 의료 피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실질적으로 환자의 안전을 향해 있지 않았고, 아직은 그런 용어조차 만들어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는 미국의 의료 실수 실패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의사들이 소송을 통해 징계를 받았는가? 환자들은 늘어난 의료비를 감당할 만큼 금전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는가? 소송하지 못한 환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와 같은 의문들은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후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자든 실수한 의사든, 병원 측이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들을 엄밀하게 조사한 최초의 연구 중 하나는 하버드 의료 행위 연구였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1984년에 만 1년 동안 뉴욕주에 있는 51개의 병원을 조사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당시 하버드 연구자들은 치부가 공개되더라도 그들 병원이 있는 매사추세츠주가 아닌 뉴욕주의 문제로 비치기를 바랐던 것으로 추측한다. 그들은 무작위로 3만 121개의 차트를 선별했고, 그들이 치료 과정에서 의도되지 않은 상해로 규정한 이상 반응 횟수를 기록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입원 치료의 3.7퍼센트가 의료 상해로 드러났고 그중 14퍼센트는 치명적이었다는 것.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뉴욕주의 모든 거주자에게 적용한다면 1984년 한 해에만 병원 치료의 결과로 거의 10만 건에 달하는 의료 상해(1만 3,451명의 사망자와 2,550건의 영구 장애를 포함하여)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추산한다.

해당 연구자 중 한 명인 소아외과 의사 루치안 리프는 환자들을 상대로 자행되는 엄청난 규모의 위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그는 외과용 메스를 내려놓은 채 이러한 자료를 연구하는 데 남은 경력을 바쳤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1994년 리프는 의료 실수 연구의 초점을 기존의 의료 소송 체계가 아닌 의료 행위를 전반적으로 더 안전하게 만드는 목표로 재설정하는 중대한 논문을 발표한다. 리프는 우선은 자료 수집 단계에서 상해를 입힌 실수뿐 아니라 모든 실수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의료 전문가들은 실수가 환자의 상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리프의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의료 실수가 일반적으로 개인의 실패뿐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에서 기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의료 실수의 직접적인 원인이 간호사가 잘못된 약을 투약하는 사례처럼 사실상 인간의 행위인 경우에도 우리는 언제나 그와 같은 실수를 가능하게 만든 시스템상의 중첩된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을 증거로 내세웠다. 원인을 찾아들어가서 의료 실수의 범위가 의사의 잘못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 등 의료진 모두에게 실수의 범위를 늘려 잡은 것이다. 이렇게 간호사의 실수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면 단순히 간호사의 실수로만 그치지 않고, 왜 간호사가 그런 사소한 실수를 했는지에 대한 근무 환경과 시스템까지도 모두 실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는 말이다. 리프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실수는 인간보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프는 의료 사고의 범주를 넓히면서 유명한 말도 남겼다. "인간은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전제하기보다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전제하는" 의료 체계의 근본적인 실수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 점이다. 

* T. A. Brennan et al., 「Incidence of Adverse Events and Negligence in Hospitalized Patients-Results of the Harvard Medical Practice Study I,」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24(1991): 370~376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의료 체계에서 반복되는 가장 가혹한 실수의 희생자인 제이와 글렌의 경우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이 책에 그 과정을 밝히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쓴 것은 저자의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저자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확증으로 단언할 수 있는 것을 찾아들어가 대안까지 제시하는 현직 의사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이에 앞서 객관적 연구 자료를 통해 의료 실수를 줄이고, 이를 위해 어떤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지까지 제시하고 있다. 서두에 독자가 느꼈던 의료 실수의 객관적 자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수많은 고민과 생각의 결과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들어가 정확하게 문제점을 짚어내 대안까지 제시하는 모습은 의학이 왜 과학인지, 과학이지만 그들의 능력을 왜 인술(仁術)이라고 하는지 공감할 수 있다. 


의료 소송은 완벽과 거리가 멀다. 관련 비용과 수고, 엄중함 때문에 의료 실수를 겪은 환자 중 오직 소수만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심지어 의료법도 일관성이 거의 없다. 배심원이 다르면 비슷한 사건이라도 얼마든지 상반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환자에 대한 배상금도 그때마다 막대한 차이를 보인다. 이외에 자기방어적 의료 조치ㅡ실제든 망상이든 간에 소송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들이 시행하는 모든 추가적인 검사와 치료ㅡ라는 부작용도 존재한다.(p.305)


저자 : 대니엘 오프리(Danielle Ofri, MD)


오늘날 의료계에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를 내는 내과 의사 중 한 명으로, 의사와 환자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감과 장벽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들이 그들의 권한과 한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뉴욕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교 의과 대학원에서 약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 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로 일하며 뉴욕 벨뷰 병원에서 20년 넘게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감정이 의료에 가하는 영향에 관해 연구와 저술을 이어 오며 의사의 감정이 의료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친 『의사의 감정』을 발표했다. 또한 『벨뷰 문학 평론』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뉴욕 타임스』,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 『랜싯』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의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뛰어난 공헌으로 미국 의학 작가 협회로부터 맥거번상을, 골드 재단으로부터 국가 휴머니즘상을 받았다. 미국 여러 의과 대학과 레지던트 과정에서 그의 책과 글을 교육 과정에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외래 의학을 위한 벨뷰 가이드』는 최고의 의학 교과서상을 수상했다. 〈의료 실수〉라는 만연한 문제의 원인을 능숙하게 진단한 『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에서는 모든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체계적 분석을 넘어서 의료 서비스를 정상화하는 방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역자 : 고기탁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펍헙 번역 그룹에서 전문 번역가로 일한다. 옮긴 책으로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 에번 오스노스의 『야망의 시대』,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인 『해방의 비극』, 『마오의 대기근』, 『문화 대혁명』, 토마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헨리 M. 폴슨 주니어의 『중국과 협상하기』, 윌리엄 H. 맥레이븐의 『침대부터 정리하라』, 캐스 R. 선스타인의 『TMI: 정보가 너무 많아서』, 『동조하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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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떠 있는 것 같아도 비상하고 있다네 세트 - 전2권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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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름을 들먹이면 아는 체한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독자들에게 니체는 잘 알려져 있다. 학교에서 그의 철학을 많이 가르쳐서 알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독자 생각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덕분이다. 코로나 펜데믹이 세상에 막 알려질 무렵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감염병 발생지가 어디든간에 감염병 발생, 특히 호흡기 관련 감염병이라면 전염성이 강하기에 우선 국경부터 틀어막는다. 그만큼 세상이 개방되고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하루면 지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갈 수 있는 세상이다. 니체가 왜 코로나와 관계가 있을까? 독자의 판단이지만, 독자 역시 재택 근무가 늘어나면서 회사를 직접 출근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나중에는 일주일에 하루만 회사에 나가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 등에 하루의 상당 부분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밖에 나다니는 것이 제한돼 있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직장 생활한다는 핑계로 멀리했던 책을 손에 잡았다. 잘 들르지 않던 온라인 서점을 찾았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서먹서먹했지만 이내 평정을 찾았다. 카테고리를 먼저 익히니 이용법에 금세 익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은 '니체'의 책이 많았다는 점이다. 니체의 저서 번역본은 물론, 우리나라 철학자가 쓴 니체의 해설서, 또 주석서, 에세이 등 다양하게 니체는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었다. 왜 니체가 인기(?)가 좋을까? 오랜만에 서점에 들른 독자가 섣불리 판단 내릴 문제는 아니었다.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을 선택해 주문했다. 니체 관련 책은 아니었다.

며칠 후 신문에 니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일간지 일요판 '책 소개' 면이었다. 니체의 책이 가장 크게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였으나 기사 중에는 니체가 가장 많이 찾는 책 중의 하나라는 내용이 있다. 책을 담당하는 기자가 쓴 글이다. 그렇게 말한 근거도 '서점 집계'로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그 책을 온라인 서점으로 달려가 주문했다. 니체는 그렇게 독자와 가까워졌다. 그러나 번역본은 물론 우리나라 학자가 쓴 '니체 철학'마저 쉽지 않았다. 우리 학자로서는 굉장히 쉬운 말로 쓰고 있는 것 같지만 한두 문장을 지나면 앞 문장의 말과 연결이 안 되는 듯한 느낌이었고, 에세이마저 단숨에 내리 읽기는 힘들었다. 

"니체는 어렵다." "그런데도 코로나 펜데믹을 맞아 대한민국 독자들은 니체를 가장 많이 읽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기사가 다시 떠올랐다.


몇 년 후 니체의 아포리즘과 통찰에 관련된 국내 저자가 쓴 에세이를 읽었다. 그 내용에는 그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다.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 그는 책의 서문을 그렇게 썼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반인반수의 사티로스(Satyros)가 되기를 원했다. 사티로스는 얼굴은 사람이지만 몸은 염소이며, 머리에 작은 뿔이 난 디오니소스의 시종이다. 주신을 모시는 시종답게 술과 여자를 좋아하며, 과장된 표현과 몸짓으로 우스꽝스러움을 자아내는 급이 뚝 떨어지는 잡신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며 디오니소스의 시종을 희망한 이 사람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다. 그리고 이 책 이름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이다. 제목과 서문도 파격이지만, 본문은 한 술 더 뜬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질문을 던지고 차례로 응답한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고등학교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코로나 펜데믹 이전까지 철학 책을 읽은 적이 독자의 기억에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학과목 이름이 〈국민윤리〉였지 〈철학〉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었다. 교과서 안에 서양철학자와 동양철학자 등의 이름이 나온 것을 보고서야 '철학' 과목인 줄 인식했다. 고등학교 교양과목이었을 뿐 입시에도 들어가지 않은 과목이었기에 그나마 수업 시수가 적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마디로 철학과는 먼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너무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인지했다. 간단한 말로 시간이 많아서 철학 책을 다시 손에 들었던 것이다.


이 책 『그냥 떠 있는 것 같아도 비상하고 있다네』는 니체 '시' 필사집이다. 다시 말해 니체의 철학이나 에세이도 아니고 아포리즘을 다룬 것도 아니다. 니체가 직접 쓴 시 가운데 100편을 선별해 필사집으로 묶었다. 니체가 근대 이후 가장 위대한 철학자란 말은 들었지만 시인으로서 니체를 생각하진 못했다. 가끔 철학서에서 인용된 시를 본 적이 있고, 에세이에서도 니체의 시 일부를 인용하고 있던 것을 본 기억이 있지만 니체가 이렇게 많은 시를 썼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니체를 읽었지만 겉만 읽었다는 뒤늦은 자책감도 들었다. 

코로나 발생 직후에 한참 쏟아져 나온 철학 책은 대부분 '니체'였다. 니체의 철학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책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철학적 접근이었다. 번역하는 분들도 모두 철학자이고 니체를 전공했던 분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 분들 중에서도 "니체는 쉽지 않다"고 미리 경계하는 분들도 있다. 어설프게 그의 명언 몇 개에 정신을 쏟다보면 그의 위대한 철학에는 접근도 하지 못하고 손에서 책을 놓게 될 것이란 경고에 가까운 말을 하기도 한다. 이 시집의 내용은 어떨까? 이 책에 「삶을 놀이로서 즐긴 철학자 시인」이란 제목의 〈추천사〉를 쓴 시인 장석주는 "니체는 살아 있음을 긍정하는 철학자다. 그는 누구보다 생의 즐거움과 행복을 사랑하고, 생명을 쇠락으로 이끄는 것들을 거부한다. 그리고 삶을 무한 긍정한다."고 썼다. 시인은 이어 "매사에서, 큰일에서나 작은 일에서나, 언젠가 때가 되면 나는 단지 긍정하는 자가 되고자 한다." 그리고 아모르 파티(Amor fati): "이것이 삶이더냐?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을 외치면서 생을 품는다고 니체의 시 세계로의 안내문을 쓰고 있다. 

〈추천사〉에 따르면 신의 돌연한 죽음으로 유럽의 가치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최초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철학자! 니체는 유럽 문명에 곧 황혼이 드리울 것을 알아차렸다. 이 황혼이야말로, 유럽 문명을 덮을 긴 밤, 긴 어둠을 예고한다. 삶이 뒤집히고 유례없는 허무주의의 그림자가 유럽을 뒤덮을 걸 앞서 내다본 니체는 자신도 그 그림자를 밟고 서 있을 운명이라는 걸 알았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아침놀이 밝아오는 예감을 느끼고 받아들인다고 시인 장석주는 설명한다. 허무주의가 빗장을 열고 들어와 세상을 덮치자, 예언자 니체는 허무주의의 그림자, 어둠이 잉태한 여명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오 사람아,

귀 기울여 들어보아라

깊은 밤이 뭐라고 말하는가

나는 잠들었다가

깊은 꿈에서 깨어났다

세상은 깊다

낮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다

세상의 고통은 깊다

쾌학은 마음의 근심보다 더 깊다

고통이 말한다

꺼져버려! 

- 「취가」 중에서


니체는 사람들에게 권유한다. 오 사람아, 귀 기울여 들어보아라, 깊은 밤은 뭐라고 말하는가? 세상은 깊다. 그렇다면 세상의 고통도 깊을 것이라고. 니체는 그것이 우리 실존의 조건임을 알았지만 그것에 체념하고 순순히 그 고통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사람들에게 시를 통해 말한다. 니체는 어떤 경우에도 시에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다만 우리 스스로 공감하고 깨닫기를 갈망한다고 시인은 지적한다.

장석주 시인에 따르면 니체는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 어떤 유명한 시인보다 더 삶의 심연을 궤뚫어 본 시인이다. 그에게 시와 철학은 한 나무에서 뻗어 나온 두 가지였다. 니체는 삶을 궤뚫고 비극적 조건을 끈질기게 응시한 뒤 몇 개의 지헤를 거둔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 절망을 견디는 강인함, 행복과 불행, 고독 속에서 빚는 자유, 놀이로서의 삶, 선악의 피안을 두루 사유하고, 수직적 높이의 숭고함을 찬양한다.

그의 시에서 너무나 많은 인생을 배웠다고 시인은 털어놓는다. 시인이 니체에게서 늘 감탄한 것은 그가 마치 한 쌍이 아니라 여러 겹의 생을 살아낸 사람 같다고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니체는 고독 속에 칩거하여 인생을 궁구하고, 생의 환희를 찾아내서 기쁜 목소리로 노래한다고도 평한다. 니체의 시구들은 촌철살인의 진리를 담아낸다고 말한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p.162,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자, 무수한 등을 타고 춤추어라/ 파도의 등을 타고, 파도의 심술을 견디며 춤추어라"(p.188, 「북서풍에게」), "강인함을 잃지 마라, 내 용감한 심장이여!/ 이유는 묻지 마라!"(p.172, 「해가 저문다」),, "가라, 꺼져버려라/ 너희 침울한 눈빛의 진리여/ 나는 덜 여물어 떫고 성급한 진리가/ 내 산마루에 머무는 걸 보고 싷ㅍ지 않다!"(p.244, 「가장 부유한 자의 가난에 대하여」) 같은 구절을 읽을 때, 나는 전율을 느낀다. 

시인은 또 니체는 높은 산꼭대기를 사랑한 철학자, 삶을 높이로서 즐긴 시인, 하늘과 벼락을 사모한 철학자라고 설명한다. "니체가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숲과 바다의 동물들처럼/ 한참 동안 넋을 잃고 한눈을 파는 것/ 사랑스런 혼란 속에 쪼그려 앉아 사색에 잠기는 것/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 나 자신에게로 이르는 것"(「고독한 자」)이다고 강조한다.



번역자 유영미는 니체와의 만남은 다른 철학자들과의 만남과는 사뭇 다르다고 〈옮긴이의 글〉에서 적고 있다. 이에 따르면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답게, 그의 글 하나하나가 우리의 가슴을 쿵쿵 울려대고 나태한 정신을 흔ㄷ르어 깨운다. 영원한 젊음과 용기로 무장한 정신이 새로운 삶, 세로운 유희로 주저 없이 나아가게 한다. 사유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 그것이 바로 니체다.

역자는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는 니체의 시(詩)에서도 그 모습이 빛난다고 말한다. 알프스의 산속에서, 이탈리아의 햇살 아래서 빚어낸 그의 사색은 시의 형태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밝힌다. 사유의 깊이가 워낙 심오하다 보니 다소 어려운 시도 있고 단번에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시도 있다. 니체의 초기 시들은 약간 서정적이라고 역자는 풀이한다. 냉소적인 시도 있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시도 있다. 삶과 사상이 깊이 연결되어 있던 철학자니만큼 니체의 삶과 철학을 알면 니체의 시도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라고 역자는 조심스럽게 귀띔한다. 하지만 배경 지식이 없다고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역자는 독자들을 안심시킨다. 니체를 좋아해서 젊은 시절 비 내리는 일요일이면 니체를 열 시간씩 탐독하곤 했던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역자는 전한다.

"음악은 다만 우리의 영혼만을 요구한다." 시 또한 음악과 가까운 장르이니, 일단은 헤세가 그랬듯 우리의 영혼만 가지고 니체를 읽어도 충분하리라고 역자는 속내를 드러낸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자리가 다르니만큼, 니체 시를 통해 받아들이는 메시지들도 다른다는 말이다. 아무쪼록 삶을 변화시키는 한 구절, 용기와 힘을 주는 한 구절을 만날 수 있기를 역자는 바란다. 그리하여 삶을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한 니체의 노래를 같이 부를 수 있기를 역자는 기대한다.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독일 뤼첸 근처 뢰켄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사망했다. 1849년, 니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와 여동생, 하녀 등 여성으로만 둘러싸인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신체적으로 쇠약하여 일생을 잔병치레로 고통받았다. 1864년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전공하다가 스승인 리츨 교수를 따라 1865년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 문헌학 전공으로 학문을 이어나갔고 1869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지성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니체는 시인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자 모범생으로, 학교의 수석 학생으로, 마침내 바젤 대학의 최연소 교수로 젊은 나이에 성과에 대한 압박과 고통을 견뎌냈다. 따라서 늘 ‘내면의 혼돈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저서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극의 탄생』 『디오니소스 송가』 『이 사람을 보라』 『바그너의 경우』 『즐거운 지식』 『도덕의 계보학』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반시대적 고찰』 『생성의 무죄』 『힘에의 의지』 『우리 문헌학자들』 등이 있다. 


역자 : 유영미


연세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쓰는 기쁨: 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 《카이로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감정사용설명서》 《가문비나무의 노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예민함이라는 무기》 《부분과 전체》 《혼자가 좋다》 《불행 피하기 기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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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자유 - 일의 미래, 그리고 기본 소득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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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의 시대가 곧 시작해 우리의 삶이 확 바뀔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사람들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 말잔치에 불과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2020년 팬데믹을 계기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정보통신 기술과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이처럼 빠르게 언택트 방식으로 전환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제아무리 번성한다 한들 인간 또한 자연선택이 지배하는 생태계의 환경 앞에서는 취약한 존재다. 다만 인간에게는 놀라운 공학 기술을 창조할 수 있는 뛰어난 지적 능력이 있으며 그로부터 비롯된 성취가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도록 이끌었다고 『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저자 김명철은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바꿔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이 바꿔놓을 미래에 대해 공부하고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전문가의 강연을 듣는다.

우리 상상력의 무한함을 이끌어내 높은 문명을 이룩한 인류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갈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4차 산업혁명이 불가피하게 앞당겨지는 역설적인 현실 앞에서 대안은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배터리, 자율주행, 웨어러블 로봇, 3D 프린팅, 레이저, 나노 로봇, 생물 모방 기술 등 7개 분야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기술 혁명의 방향에 모두 관심을 쏟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AI와 빅데이터, 대체에너지 확장 정책은 거대한 도시를 어떻게 바꾸고 인구 감소에 대해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우려스러운 눈초리를 언제 어디서나 마주한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과 인류는 자국 이익 우선이라는 대전제를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극한의 대결로 '인류 멸망' 임계치에 다다른 듯한 크고 작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기에는 더없이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그사이 지구는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벌목과 개간으로 숲은 사라지고 플라스틱과 각종 쓰레기로 바다는 오염되었다. 자동차와 난방 기구, 공장에서 쏟아낸 미세먼지는 대기의 질을 떨어뜨렸고 이산화탄소는 지구를 온도를 높였다. 온난화는 극지의 얼음을 녹이고 사막화를 가속했으며 지엽적인 폭우를 쏟아부었다. 올해 유럽의 폭우와 폭염은 유럽이 열대성 기후로 변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암울한 기후 변화 현상을 보여준다. 또 얼마 전에는 숲을 파괴하고 야생동물들의 터전에까지 난입한 인간의 욕망이 인류 사회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선진국 대도시에서 더 큰 피해를 낳았다. 인구밀도가 높은 거대 도시가 바이러스나 기후 변화의 역습에 훨씬 취약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환경과 자원을 무작정 섭취하고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빌려 쓰고 가능한 한 원상태를 보존해야 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자연과의 공존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인류 번영의 사회보다는 인류 멸망의 사회로 변해가는 듯한 모습에서 인구와 관련된 노동 문제는 어떻게 변화할까? 이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은 인류의 '노동'을 크게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돼 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기후 문제만큼이나 시급한 대안이 필요하다. 이 책 『모두를 위한 자유』에서 저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류 번영을 지속하는 노동 정책, 나아가 기업과 노동자와의 관계, 그리고 국가의 책임 등을 촘촘히 살핀다. 저자는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외쳤던 기적의 무기로는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지만, 사회적 시장 경제라는 경제 기적의 무기로는 세계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가 메르세데스 벤츠 로고로 대체되고, 나치의 상징색인 갈색이 가톨릭의 검은색으로 바뀐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독일의 성실함과 유능함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모두를 위한 번영'은 독일의 무한한 노동력과 능력에 대한 믿음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실현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인류의 꿈을 표준적으로 실현한 것이기도 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제 모든 것이 모두에게 충분할 만큼 존재했다고 선언하고 필요한 것은 커다란 파이 한 조각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성실함뿐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디지털 변화 3부작〉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모두를 위한 자유』를 집필했다. 전작 『사냥꾼, 목동, 비평가』에서는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일반적 개요를 설명하고, 그다음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에서는 말 그대로 인공 지능과 인생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았다면, 이번 『모두를 위한 자유』에서는 '노동의 미래에 대한 성찰'을 심도 있게 다룬다. 컴퓨터와 로봇, 인공 지능이 주도하는 급진적인 기술 진보는 우리를 제2차 기계 시대로 진입시키며, 노동 시장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 프레히트는 현대인이 더 이상 생존을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오히려 사회적 소속감을 추구하려고, 즉 임금 노동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려고 노동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임금 노동 및 성과 사회가 점차 〈의미 사회〉로 전환되면서, 물질적 번영과 양적 성장보다는 일의 질과 조건, 자유로운 삶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책은 오늘날 완전하게 달라진 노동 개념이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보여 준다. 특히 진보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무조건적 기본 소득을 탐구하며, 이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재편이 왜 불가피한 과제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해 나간다. 이 책은 일이 아닌 삶 전체에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고, 느끼며, 교류하는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변화의 시대에 누가 살아남을지에만 몰두하는 세상에서, 도태되어도 마땅한 존재는 없음을 알리는 〈의미 사회〉 개념은 강렬하다. 혁신이란 말이 많아질수록 사유가 얕아지는 역설을 꾸준히 비판한 저자는, 복지 개념에 머물러 있는 기본 소득을 몇 단계 확장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현실로 만든다. 인공 지능에 익숙해질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노동의 공허함을 극복하는 사회적 의미를 찾게 하는 희망의 설계도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가 점점 더 완벽해지는 기계 덕분에 소외된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을 한탄해야 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상황은 오히려 정반대다. (중략) 완전 자동화된 기계 속에는 무한한 노동력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예전보다 훨씬 더 적게 일해도 되고, 그로써 〈해방된 노동 시간〉을 이용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p.220)


저자는 1960년대 서구의 모든 산업국에서 궁핍의 경제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문명을 만든 이후 모두에게 풍족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다 현대에 들어 산업국에서 기술 진보와 끊임없는 생산성 증대가 그것을 가능케했다. 이제 분배의 문제만 남았다.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충분할 만큼 생산된다면 각각의 사람에게 얼마가 돌아가야 할까? 여기서 한 가지가 궁금하다. 풍요 사회는 모두에게 풍족할 만큼 재화만 생산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 성공의 토대가 무엇인지 묻는다. 답은 분명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많은 일을 했다. 이제 그런 노동이 불필요해진다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스스로를 생업 노동 사회의 일부로 정의해야 할까? 저자의 답변은 '그렇지 않다'이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스스로를 망가뜨린 노동에 종지부를 찍었고, 대신에 서비스 부문에서 무한 반복되는 무수한 노동을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혹독한 노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노동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혁명은 과거의 산업 혁명이 일으킨 그 어떤 변화보다도 훨씬 더 큰 격변을 일으킨다. 프레히트는 지금까지 노동 시장의 변화가 주로 생산 기계로 인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전적으로 새로운 정보 기계가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로써 제1차 기계 시대에는 설득력이 있던 경제 이론과 추론이 제2차 기계 시대에는 그렇지 않게 된다. 임금 노동이 점점 불필요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스스로를 생업 노동 사회의 일부로 정의해야 할까?

노동은 오랫동안 인간 존재의 핵심 요소로 간주되어 왔다. 즉, 삶의 지침을 제공하고,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며, 성취 지향적 사회를 유지시키는 수단이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형성해 온 것 역시 노동이었다. 하지만 그 노동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프레히트에 따르면, 급속한 기술 발전이 전통적 의미의 노동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자동화와 인공 지능은 단순히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임금 노동 자체의 필요성을 재검토하게 만든다.


이 전환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노동을 삶의 중심축으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한다. 저자는 과거에는 노동이 천시되었고, 그것이 노예나 하층민의 몫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상황은 어쩌면 진보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 기술이 인간을 노동의 의무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단순한 노동 시장의 재편이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전반적인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 철학적 방향성을 재설정하는 거대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이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의미를 창출하며 살아가는 사회, 즉 〈의미 사회〉를 제안한다. 이는 노동의 불가결성은 점차 약화되고, 자유로운 삶과 자기실현에 대한 욕구는 강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개념인 듯하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 소외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 회복의 계기로 이해되어야 한다. 심각한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려는 이런 시도를 통해, 인간은 단순한 노동력 공급자를 자처하는 대신 자기 주도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 프레히트의 논리다. 

저자는 우리 삶에서 노동을 줄이고도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천명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는다. '오늘날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21세기에 번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동에 대한 요구가 아닌 삶의 의미가 사회 중심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와 연금 제도의 불안정성 속에서,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은 필연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은 인간이 생업 노동에 매이지 않고, 자유와 진정한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하는 제도다. 온전한 시민의 위상을 지키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확언하며,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단순한 분배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기본권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호소한다. 이제는 기본 소득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본 소득을, 언제 도입하는지를 심층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때 특히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은 역사상 유례없는 갑작스러운 구상이 아니며, 경제적 관점에서도 허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당연히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 프레히트는 인간학적으로, 사회 복지적 차원으로, 경제적으로 반론을 펼쳐나가면서, 현실적인 실현 방안을 제시하고 실현 가능성을 검토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디지털 혁명을 두려움의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일의 미래와 기본 소득〉에 관한 성찰은 디지털 혁명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우리 스스로 고민하도록 이끌어 준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노동 세계의 혁명」, 2장 「노동이란 무엇인가?」, 3장 「오늘날의 노동과 사회」, 4장 「무조건적 기본 소득」, 5장 「의미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등이다. 


저자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철학자. 1964년 독일에서 태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중산층 가정에서 유년을 보냈다. 졸링겐 지역의 유서 깊은 김나지움인 슈베르트슈트라세에서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통과한 후 교구 직원으로 대체 복무했다. 이후 쾰른 대학교에서 철학, 독일 문화, 예술사를 공부했다. 1994년 독일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인지 과학 연구 프로젝트 조교로 일했다. 현재 뤼네부르크 대학교,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 대학에서 철학 및 미학과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독일어권의 가장 개성 넘치는 지성인들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7년 발표한 『나는 누구인가』가 100만 부 판매, 3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 잡았다. <철학하는 철학사> 시리즈는 35만 부, 『사냥꾼, 목동, 비평가』 23만 부, 『의무란 무엇인가』 14만 부 등 프레히트의 책은 현재까지 총 30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2012년부터 독일 공영 방송 ZDF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철학 방송 「프레히트」를 진행하면서 철학적 주제를 바탕으로 한 대중서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역자 : 박종대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세상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사냥꾼, 목동, 비평가』 , 『의무란 무엇인가』,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를 포함하여 『1일無식』, 『콘트라바스』, 『승부』, 『어느 독일인의 삶』 ,『9990개의 치즈』,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1백 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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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 나민애의 인생 시 필사 노트
    나민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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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용부터 나태주, 이병률, 황인찬까지 시간과 세대를 넘나드는 우리 시인들의 작품 77편을 주제별로 엮은 이 책은 시 해설집이다. 뿐만 아니라 시의 세계로 안내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위로의 마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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