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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에 대하여 - 삶은 비운 후 비로소 시작된다
토마스 무어 지음, 박미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공허에 대하여』는 현대인이 끝없이 채우려 애쓰면서도 허무함을 느끼는 이유를 파고든다. 저자 토마스 무어(Thomas Moore)는 사유를 통해 공허의 본질을 깨닫고, 공허를 결핍이 아닌 충만의 시작으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 불교의 ‘무(無)’, 노자의 ‘무위(無爲)’, 기독교의 ‘케노시스(kenosis)’ 등 동서양의 사상과 일상의 일화를 엮어 침묵과 공백의 힘을 독자들에게 나직이 일깨워준다. 무어는 「반지 없는 손가락」, 「화살 없는 활」, 「텅 빈 좌석」 같은 상징적 이야기들을 통해 공허가 삶에 불어넣는 자유를 그려내며, 채움보다 비움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마음 여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노자 『도덕경』의 ‘바퀴 살’처럼 바퀴는 중심이 비어 있어야 돌듯, 마음도 빈틈이 있어야 흐른다. 저자는 일상의 빈자리, 시간의 느슨한 틈, 대화 사이 자리잡는 정적을 억지로 채우지 말고 작은 명상으로 받아들이라 권한다. 그 빈자리, 틈새, 여백이야말로 우리 내면의 숨결이 머무를 공간이며, 진정한 변화가 스며드는 통로라고 강조한다. 들리지 않아도 깊게 울리는 현 없는 비파처럼, 이 책 『공허에 대하여』는 삶의 빈틈 속에서 지혜를 발견하도록 이끌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복잡성과 모순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영혼의 깊이를 발견하는 길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전작 『영혼의 돌봄』에서 단순히 영혼에 대한 관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영혼 충만'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전 세계 수백만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이자 심리치료사인 무어는 우리가 흔히 두려워하는 공허를 본질적으로 사유하고 해석해 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어는 특히 공허를 결핍으로 보지 말라고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무언가 부족해서 허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신호라고 공허를 설명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채우라고 요구한다.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인간관계가 중요한 것처럼 현대인은 누구나 채워지지 않음, 얻지 못한 지식,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외로움과 불안에 휩싸여 삶의 본질과 점점 멀어지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채워 넣는다고 우리의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공허해서 쇼핑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비어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무어는 이 지점에서 멈추라는 이야기를 한다. 공허를 채워 없애려 하지 말고, 그 안에 머무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제안이다.
"공허와 충만은 놀랍도록 가까이 있다. 그 둘은 배 양쪽에 있다. 가득 채우고 싶다면 먼저 텅 빈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p.48, 이하 높임말을 예삿말로 바꿈, 독자 주)
"공허는 단순히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문제가 아니다. 수학적 계산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공허는 마음과 인격의 깊이에서 비롯되는 삶의 태도이다."(p.293)
현대를 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며 살아간다. 일정표를 일로 빽빽이 채우고, 쓰지도 않을 물건으로 집을 가득 채우고, 마음을 온갖 생각들로, 말들로, 감정들로, 욕망들로, 관계들로… 채운다. 그렇게 애써 채워 넣으면서도 우리는 왜 자꾸만 허무함을 느끼는 걸까? 앞서 언급한 대로 무어는 공허를 무의미한 것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더 많이 가지려는 삶이 오히려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우리 삶을 비워낼 때 진정한 충만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어는 조용히 일러준다. 이 책은 사색적 에세이를 넘어 공허의 충만함을 찾는 영적 산책으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이에 따라 무어는 스스로를 억지로 몰아붙이기보다 공허 속에서 차분히 머물며 다음을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40개 장(章)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통해 공허는 우리를 멈추게 하고, 멈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허'는 사실 철학적이고 정신의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다. 정신분석용어사전(2002)에 따르면 공허는 내부 감정이 황폐해지고 환상과 소망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거나 단순히 기계적인 반응만을 보이는 주관적인 정신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개인은 확신, 열성, 타인들과의 연결됨을 상실하고 무감각, 권태 그리고 피상적인 감정에 시달린다. 개인은 공허감을 호소하며, 자신이 변했고, 타인과 다르며, 미래의 행복에 대한 희망이 없고, 타인을 사랑하거나 관심을 가질 수 없고, 타인의 애정과 관심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없다고 느낀다. 이 상태는 잠깐 일어날 수도 있고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도 있다.
공허감은 특히 경계선 장애나 자기애적 환자들이 경험하는 주관적 자기-경험의 기본적 특징이 될 수 있다. 공허감은 종종 우울, 권태 그리고 이인증과 함께 나타난다. 공허감은 때때로 다른 모든 감정을 배제해 버리기 때문에 그것이 개인의 전체 경험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공허감에 대한 몇 가지 정신분석적 가설들이 있다. ① 개인이 감당할 수 없거나 수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공허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수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공허감이라는 의식적 경험으로 대치된다는 것이다. ② 욕구 충족에 대한 요구 또는 불만족스러운 대상에 대한 불만이 공허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③ 내재화된 대상관계가 퇴화된 결과로, 특히 안정적이고 신뢰로운 좋은 내부 대상이 없을 때 공허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④ 공허감은 자기애적 인격 장애 환자의 자기-분열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무어는 이 책을 통해 동서양의 영적 전통과 일상적 이야기들을 명상적으로 엮어내며, 침묵과 공허의 힘을 일깨우는 문장들로 독자의 내면을 조용히 흔든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은 공허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공허(空虛, emptiness)는 단순한 '제로(zero)'나 '아무것도 없음(nothingness)'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활동에서 과도한 통제나 고정관념이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특질"이라고 밝힌다.

무어는 인도 철학에서 수냐타(sunyata)로 알려진 교훈으로, 특별하고 깊은 영적 의미를 지닌 공(空)의 상태를 말한다고 설명한다. 수냐타는 탐구하고 성찰해야 할 사상이자, 위대한 『반야심경』과 현자 나가르주나의 방대한 이론적 저술에서 중심이 되는 신비로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집착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을 중시하는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무어는 이 책에서 영적 전통, 민간 설화, 문학,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각 이야기가 일상생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찰한다고 밝힌다. 앞서 언급한 많은 장(章)의 제목으로 쓰인 「빈 화분」, 「장식 없는 손가락」, 「화살 없는 활」, 「빈 무덤」 같은 이야기는 공허라는 위대한 영적, 철학적 개념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빈 상자, 극장의 빈 좌석, 북적이는 공간 속 고요한 침묵 등 삶의 모든 면에서 평범한 공허의 사례를 발견하고 그 안에 담긴 미스터리와 시적인 의미를 깨달을 것이라고 알린다. 또한 예상치 못한 의미의 원천을 알게 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허를 삶에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무어는 주장한다. 이 점이 바로 저자가 영적 공허를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털어놓는다. 즉 열린 마음과 깨어 있는 태도로 삶을 진지하면서도 가볍게 수용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친구를 잃으면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공허를 느낄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그 상실의 감정은 때때로 인생 자체가 공허하며, 그 공허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허가 불러일으키는 어두운 감정 속에서도 어딘가에는 희미한 빛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우리는 공허의 진가를 인정하고 일상적 경험으로 삼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면 삶이 바쁘게 돌아갈 때도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지나치게 많은 일을 벌이거나 과도하게 생각하고 느끼려는 경향을 균형 있게 조절하려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영적 공허는 훨씬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의 신념과 가치관은 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빈틈이 존재한다. 그러니 거기에 너무 집착하거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는 말 것"을 당부한다. 공허는 우리들이 앞으로 나아각고 유연성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공허를 포함하면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찾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에 따르면 공허는 우리가 통제하려 애쓰는 삶의 균형추를 놓는 연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공허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순간을 급히 채우려는 충동을 멈추는 것이다. 친구가 오지 않은 자리에서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을, 말을 삼키며 침묵을 지키는 순간을, 채우지 않은 빈자리 하나를 그대로 두어보자. 무어는 일상 속 이런 비움의 순간을 오히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작은 명상처럼 받아들이라고 무어는 조언한다.
마치 현 없는 비파처럼 들리지 않아도 분명하게 울리는 다정한 목소리로, 『공허에 대하여』는 세상의 빈틈, 멈춤, 공백 속에 숨어 있는 놀라운 지혜를 발견하는 여정을 안내한다. 삶이 버겁고 영혼이 무겁게 느껴질 때 조용한 해독제이자 쉼표가 되어줄 책이다. 지금 이 순간, 바쁘고 복잡한 삶을 잠시 멈추고 공허에 귀 기울여보자. 공허는 때로 가장 충만한 형태의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시인 나태주는 〈추천사〉를 통해 '결핍의 시대'를 지적한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결핍이 결핍된 시대입니다. 너나없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아등바등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입니다. 빈곤이 아니라 풍요의 늪입니다. 풍요하면서도 풍요를 모르는 맹목(盲目), 눈멀음입니다.
마땅히 비워야 하고 줄여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아예 해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만족 없는 세상이 우리를 불만족의 세상으로 이끕니다. 어쩌겠습니까! 이런 때는 좋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발밑을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책이 바로 《공허에 대하여》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겸손을 알려줄 것이고 근면과 검소와 정직과 타인 배려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비어 있는 컵은 절대로 비어 있는 컵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공기가 들어 있고 또 비어 있음으로 다른 무엇인가를 채울 가능성이 들어 있습니다. 맑고 밝은 이 책이 우리네 삶에 부족한 청빈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가르쳐줄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토록 또 다른 순수함의 조각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장하고, 언제나 또 다른 푸른 사발과 맑고 푸른 하늘과 유일한 태양을 잃어버립니다. 가벼운 순수와 무거운 상실이 교차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리듬, 그것이 바로 인생의 본질입니다. 삶은 채워지기보다는 더 많이 비워집니다."(p.185)
"비움은 무조건 덜어내야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무언가를 더함으로써 완성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공(空)’을 깨닫기 위해 반야심경을 외우거나 서예에 몰두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비움’을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채움’인지도 모릅니다."(p.292)
저자 : 토마스 무어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이자 심리치료사다. 그가 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영혼의 돌봄』은 46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영혼의 종교』, 『섹스의 영혼』, 『영혼의 오푸스, 일의 즐거움』 등 스물네 권의 책을 썼다. 그중 세 권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서상(Books for a Better Life Award)’을 수상했다. 또한 융 심리학, 원형 심리학, 신화, 상상력, 예술 분야에서 많은 글을 발표해왔다.
그는 한때 수도사였고 음악가였으며 대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열세 살 때 집을 떠나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고 드폴 대학교에서 음악과 철학을 접했으며 미시간 대학교에서 음악학 석사를, 윈저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를,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삶의 부정적인 요인들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그의 글과 책들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자기 내면에 잠자고 있는 영혼을 일깨우고 영적인 삶의 길을 찾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현재 그는 뉴햄프셔에 살면서 영성, 심리 치료, 생태학 등을 주제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역자 : 박미경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외국 항공사 승무원, 법률회사 비서, 영어 강사 등을 거쳐 현재 바른번역에서 전문 출판번역가이자 글밥아카데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탁월한 인생을 만드는 법』,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나를 바꾸는 인생의 마법』, 『혼자인 내가 좋다』, 『완벽한 날들』,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 『살인 기술자』, 『포가튼 걸』, 『프랙처드』, 『언틸유아마인』,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에게 배우는 사랑과 우정과 인생』, 『이어 제로』, 『슈퍼히어로의 에로틱 라이프』, 『남편이 임신했어요』, 『내가 행복해지는 거절의 힘』, 『행복 탐닉』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