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 - 양자 역학부터 양자 컴퓨터 까지 처음 만나는 세계 시리즈 1
채은미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은 거리가 멀었다. 이해도 어려웠고, 시험을 쳐도 점수가 기대만큼 나오지 못했다. 나중에는 이런 게 사회 나가서 쓰임새가 있을까? 하는 '수포자'가 되는 포기 단계를 밟았다. 고2부터는 문·이과 선택제였는데 부모님 의견대로 이과를 선택했지만 수학 물리가 이래서야... 할 정도로 낮은 점수에 거의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학도 이공계가 아닌 문과계열로 치렀다. 본 시험이 있을 때인데 문과계열은 수학이 선택 과목이었고 따라서 수학 대신 사회 과목으로 치렀다. 다행히 점수가 괜찮았는지 무난히 입학했다. 덕분에(?) 수학이나 물리학은 영원히 멀어졌다. 대학 생활은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수학 못한다고 사회 생활에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래도 수학이나 물리학에 대해 이론의 이름이나 과학자·수학자의 이름은 아는 사람이 몇 명은 있었다. 

그렇게 사회 생활도 적응해(엄밀히 이야기하면 반쪽짜리) 가다가 몇년 전 〈양자물리학〉이란 영화를 봤다. 양자물리학이란 생소한 이름의 영화여서 관심이 갔다. 그러나 내용은 제목을 보고 상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라는 양자물리학적 신념을 인생의 모토로 삼은 '유흥계의 화타' 주인공 이찬우가 어느 날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마약 파티 사건을 눈치챈다. “불법 없이! 탈세 없이!” 이 바닥에서도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 그는 오랫동안 알고지낸 범죄정보과 계장 박기헌에게 이 정보를 흘린다. 단순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마약파티가 연예계는 물론 검찰, 정치계까지 연루된 거대한 마약 스캔들임을 알게 된 이찬우는 이제 살기 위해 거대 권력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찬우는 박기헌 계장을 비롯해 황금인맥을 자랑하는 '업계 퀸' 성은영 등 업계 에이스들과 함께 이 사건을 파헤치기로 한다. 부패 권력에 통쾌하게 맞서라! 생각은 현실을 만드니까!라는 슬로건은 양자물리학과 관계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영화의 분위기는 전형적인 범죄오락액션이다. 무슨 제목과 내용이 이렇게 맞지 않은 영화가 다 있나? 하면서도 양자물리학이란 용어를 제대로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았다.



백과사전을 찾아 읽어도 쉽지 않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것 같지만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줍잖다. "양자역학은 분자, 원자 등 아주 작은 입자들을 연구하는 분야로 현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이라고 한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계기로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양자역학은 뉴턴의 고전역학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고전역학이 거시세계를 탐구하며 현재의 조건으로 미래의 상태를 완전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인 관점이라면, 양자역학은 미시세계를 탐구하며 현재 상태에 대해 알더라도 미래에 일어나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확률론적 입장이다. 양자역학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과학기술, 철학, 문학, 예술 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래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물리학의 기초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일 터, 이쯤해서 이 책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로 다시 눈을 돌린다. 

저자 채은미는 〈서문〉을 통해 '양자 과학 기술'에 관한 관심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다고 강조한다. 양자 역학이라는 이론이 가진 신비함과 그 신비함이 열어줄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며, 저자는 많은 분들이 양자 과학 기술의 근간인 양자 역학에서부터 그 기술의 특징, 현재 상황,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까지 모두 이 책에 싣는다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양자 역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이다. 이 책은 어렵고 낯설게만 여겨졌던 양자 세계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풀어냈다.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불확정성 원리, 양자 중첩과 얽힘 같은 핵심 개념을 생생한 비유와 흥미로운 이야기로 설명해, 수학에 자신이 없어도 읽는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손에 쥔 스마트폰, 매일 사용하는 GPS, 인터넷과 레이저, 그리고 미래를 바꿀 양자 컴퓨터까지, 일상과 연결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양자가 얼마나 가까운 교양인지 보여준다. 특히 양자 컴퓨터는 비트코인 보안과 금융 시스템, 신약 개발,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전반을 뒤흔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저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초저온 분자와 양자정보를 연구하는 젊은 물리학자다.



저자는 양자 역학을 교양의 중심에 세우며 독자에게 다정히 말을 건넨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양자는 더 이상 낯선 학문이 아니라 독자들의 교양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대체 ‘양자역학’이라는 낯선 물리학 이론이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리 일상과 관계가 깊다는 말에 독자처럼 문외한도 관심을 갖게 되고 궁금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백과사전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반도체 없는 컴퓨터를 상상해 볼 것을 권유한다. 반도체가 없다면 노트북, 스마트폰과 같이 작은 컴퓨터의 탄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양자역학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하는 등 현대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많은 기술들의 이론적 바탕이 됐다고 사전은 밝히고 있다. 또한 양자역학은 과학기술의 측면뿐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20세기 과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가 된 양자역학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르면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이다. 그는 Quantenmechanik(크반텐메하닉)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그대로 영어로 번역된 뒤에, 일본에서 ‘量子力學(료오시리키가쿠)’라 새로 번역됐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와 ‘양자역학’이란 용어로 번역됐다. 양자역학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양자’와 ‘역학’을 각각 살펴보는 것이 좋다. ‘양자’로 번역된 영어의 quantum은 양을 의미하는 quantity에서 온 말로, 무엇인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학’은 말 그대로는 ‘힘의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힘과 운동’의 이론이다. 이렇듯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2부 29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아름답고 신비한 양자의 세계〉, 2부 〈양자 컴퓨터가 이끄는 미래〉이다. 1부에는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양자, 빛」, 「양자가 안내하는 길, GPS의 비밀」 등 14개 장이 있다. 2부에는 「어떤 문제든 풀 수 있는 범용 앙자 컴퓨터」, 「큐비트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양자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만남」 등 15개 장이 이어진다. 1부 2장 「거인들의 질문이 모여 양자의 길을 열다」에서 저자는 19세기 말 이미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공간 속에서 펴져 나가는 전자기파임이 밝혀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빛을 단순히 전자기파로 본다면 냉광이나 광전 효과를 설명할 수 없었다. 빛이 파동이라면 진동수와 파장을 가질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 발표한 ‘빛알이론’은 양자론의 기초가 됐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파동이긴 하지만 그 에너지가 일정한 단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빛이 ‘양자’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한다. 1900년, 아인슈타인의 스승이었던 독일의 막스 플랑크가 흑체복사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빛알 이론과 직접 통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플랑크의 복사 법칙이라 불리는 이 법칙을 설명하면서 그는 최초로 ‘양자’의 개념을 주장했고, 이는 양자역학의 토대가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1911년 영국의 어니스트 러더퍼드, 1913년 덴마크의 닐스 보어가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했고, 이들의 모형은 마치 태양계처럼 한가운데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들이 궤도를 이루면서 회전한다. 닐스 보어는 이 원자 모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궤도가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떨어진 몇 개의 궤도만 허용 가능하다고 가정해야 함을 주장했다. 이후 양자역학은 초기의 ‘양자’ 가설을 기본으로 삼아 전혀 새로운 역학으로 탄생했다. 1925년 무렵부터 독일의 막스 보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파스쿠알 요르단 등이 행렬이라 부르는 수학 기법을 이용해 기존의 역학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그동안의 어려움을 모두 극복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역학을 ‘행렬역학’이라 불렀다.

그 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새로운 방정식과 더불어 ‘파동역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역학을 제안했다. 행렬역학과 파동역학 모두 그동안 난관에 부딪혔던 현상들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냈다. 여기에 영국의 폴 디랙이 제안한 새로운 이론이 덧붙여졌다. 막스 보른은 이 새로운 역학에 ‘양자역학’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2부에서 저자는 실제 양자 역학을 이용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있고, 양자 컴퓨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해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양자 역학은 더 이상 학문의 언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는 인류의 미래를 근본부터 흔들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기존의 슈퍼컴퓨터가 수억 년을 투자해야 풀 수 있는 난제를 단숨에 계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특히 쇼어 알고리즘은 오늘날 비트코인과 인터넷 보안의 핵심인 암호 체계를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금융과 사이버 보안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대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복잡한 물류망 최적화, 신약과 신소재 개발, 인공지능의 비약적 도약까지?양자 컴퓨터가 열어 갈 미래는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 책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는 양자 역학의 최신 연구 흐름을 알기 쉽게 정리하며, 초전도·중성 원자·이온 트랩·광자 기반 등 다양한 양자 컴퓨터의 원리를 한눈에 보여 준다. 나아가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유망 기업과 기술 현황까지 소개해, 독자가 다가올 양자 시대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통찰을 전한다. 이 책은 이러한 최첨단 흐름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롭게 설명하며, 우리가 곧 맞이할 ‘양자 시대’를 준비하는 지적 무기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집 안의 LED 조명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내비게이션을 켜는 일상적인 순간마다 사실은 ‘양자 역학’이 숨어 있다고 한다. 앞서 독자가 언급한 대로 막상 양자 역학을 공부하려 들면, 수식과 낯선 개념 앞에서 쉽게 포기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두려움을 다정하게 덜어 준다.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전자의 드 브로이 파동,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교과서에서 이름만 듣고 지나쳤던 주제들을 생활 속 사례와 직관적인 비유로 풀어내며, 어렵게만 느껴졌던 양자 세계를 눈앞에 그리듯 설명한다. 이 책은 복잡한 공식 대신 이야기와 상상을 통해 독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읽는 순간 곧바로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만드는, 친절한 양자 교양서라고 독자는 믿는다.



양자 역학은 이처럼 수많은 과학자들의 통찰과 도전이 쌓여 완성된 학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반도체, 레이저, 양자 컴퓨터 등 첨단 기술의 토대가 되었지요.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기술이 이 작은 양자의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과학의 경이로움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결국 우리가 사는 거대한 세상의 원리를 밝혀내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양자 역학은 단지 물리학의 한 분야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지적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요.(p.29) - 「인간의 위대한 지적 여정」 중에서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해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양자 내성 암호로의 전환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더리움Ethereum이나 퀀텀 레지스턴트 레저QRL 같은 일부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양자 내성 암호를 실험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또 비트코인 사용자 입장에서는 공개키가 노출된 오래된 주소 대신 새로운 주소를 사용하거나 다중 서명 지갑과 하드웨어 월렛을 활용하는 것이 보안을 강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 프로토콜 자체도 필요하다면 하드포크30를 통해 양자 내성 암호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하드포크는 네트워크의 모든 참여자가 새로운 규칙을 따르도록 소프트웨어를 교체해야 하며, 그 과정에 시간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미래 상황에 대응할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p.230) - 「내 비트코인은 안전할까」 중에서


저자 : 채은미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레이저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빛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실험 물리학의 길에 들어섰다.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본 교토대학교 박사후연구원, 도쿄대학교 Photon Science Center 조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극저온 분자와 레이저를 활용한 양자 기술을 연구하는 동시에, 대중과 소통하며 과학을 쉽고 친근하게 전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EBS 특집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 출연해 어렵게만 느껴지는 양자 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미래 세대를 위한 과학 교육과 융합 연구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는 그가 집필한 첫 대중 교양서로, 더 많은 사람에게 양자 역학과 양자 컴퓨터의 세계를 알리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허에 대하여 - 삶은 비운 후 비로소 시작된다
토마스 무어 지음, 박미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공허에 대하여』는 현대인이 끝없이 채우려 애쓰면서도 허무함을 느끼는 이유를 파고든다. 저자 토마스 무어(Thomas Moore)는 사유를 통해 공허의 본질을 깨닫고, 공허를 결핍이 아닌 충만의 시작으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 불교의 ‘무(無)’, 노자의 ‘무위(無爲)’, 기독교의 ‘케노시스(kenosis)’ 등 동서양의 사상과 일상의 일화를 엮어 침묵과 공백의 힘을 독자들에게 나직이 일깨워준다. 무어는 「반지 없는 손가락」, 「화살 없는 활」, 「텅 빈 좌석」 같은 상징적 이야기들을 통해 공허가 삶에 불어넣는 자유를 그려내며, 채움보다 비움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마음 여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노자 『도덕경』의 ‘바퀴 살’처럼 바퀴는 중심이 비어 있어야 돌듯, 마음도 빈틈이 있어야 흐른다. 저자는 일상의 빈자리, 시간의 느슨한 틈, 대화 사이 자리잡는 정적을 억지로 채우지 말고 작은 명상으로 받아들이라 권한다. 그 빈자리, 틈새, 여백이야말로 우리 내면의 숨결이 머무를 공간이며, 진정한 변화가 스며드는 통로라고 강조한다. 들리지 않아도 깊게 울리는 현 없는 비파처럼, 이 책 『공허에 대하여』는 삶의 빈틈 속에서 지혜를 발견하도록 이끌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복잡성과 모순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영혼의 깊이를 발견하는 길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전작 『영혼의 돌봄』에서 단순히 영혼에 대한 관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영혼 충만'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전 세계 수백만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이자 심리치료사인 무어는 우리가 흔히 두려워하는 공허를 본질적으로 사유하고 해석해 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어는 특히 공허를 결핍으로 보지 말라고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무언가 부족해서 허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신호라고 공허를 설명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채우라고 요구한다.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인간관계가 중요한 것처럼 현대인은 누구나 채워지지 않음, 얻지 못한 지식,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외로움과 불안에 휩싸여 삶의 본질과 점점 멀어지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채워 넣는다고 우리의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공허해서 쇼핑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비어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무어는 이 지점에서 멈추라는 이야기를 한다. 공허를 채워 없애려 하지 말고, 그 안에 머무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제안이다.

"공허와 충만은 놀랍도록 가까이 있다. 그 둘은 배 양쪽에 있다. 가득 채우고 싶다면 먼저 텅 빈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p.48, 이하 높임말을 예삿말로 바꿈, 독자 주)

"공허는 단순히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문제가 아니다. 수학적 계산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공허는 마음과 인격의 깊이에서 비롯되는 삶의 태도이다."(p.293)

현대를 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며 살아간다. 일정표를 일로 빽빽이 채우고, 쓰지도 않을 물건으로 집을 가득 채우고, 마음을 온갖 생각들로, 말들로, 감정들로, 욕망들로, 관계들로… 채운다. 그렇게 애써 채워 넣으면서도 우리는 왜 자꾸만 허무함을 느끼는 걸까? 앞서 언급한 대로 무어는 공허를 무의미한 것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더 많이 가지려는 삶이 오히려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우리 삶을 비워낼 때 진정한 충만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어는 조용히 일러준다. 이 책은 사색적 에세이를 넘어 공허의 충만함을 찾는 영적 산책으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이에 따라 무어는 스스로를 억지로 몰아붙이기보다 공허 속에서 차분히 머물며 다음을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40개 장(章)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통해 공허는 우리를 멈추게 하고, 멈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허'는 사실 철학적이고 정신의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다. 정신분석용어사전(2002)에 따르면 공허는 내부 감정이 황폐해지고 환상과 소망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거나 단순히 기계적인 반응만을 보이는 주관적인 정신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개인은 확신, 열성, 타인들과의 연결됨을 상실하고 무감각, 권태 그리고 피상적인 감정에 시달린다. 개인은 공허감을 호소하며, 자신이 변했고, 타인과 다르며, 미래의 행복에 대한 희망이 없고, 타인을 사랑하거나 관심을 가질 수 없고, 타인의 애정과 관심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없다고 느낀다. 이 상태는 잠깐 일어날 수도 있고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도 있다. 

공허감은 특히 경계선 장애나 자기애적 환자들이 경험하는 주관적 자기-경험의 기본적 특징이 될 수 있다. 공허감은 종종 우울, 권태 그리고 이인증과 함께 나타난다. 공허감은 때때로 다른 모든 감정을 배제해 버리기 때문에 그것이 개인의 전체 경험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공허감에 대한 몇 가지 정신분석적 가설들이 있다. ① 개인이 감당할 수 없거나 수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공허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수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공허감이라는 의식적 경험으로 대치된다는 것이다. ② 욕구 충족에 대한 요구 또는 불만족스러운 대상에 대한 불만이 공허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③ 내재화된 대상관계가 퇴화된 결과로, 특히 안정적이고 신뢰로운 좋은 내부 대상이 없을 때 공허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④ 공허감은 자기애적 인격 장애 환자의 자기-분열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무어는 이 책을 통해 동서양의 영적 전통과 일상적 이야기들을 명상적으로 엮어내며, 침묵과 공허의 힘을 일깨우는 문장들로 독자의 내면을 조용히 흔든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은 공허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공허(空虛, emptiness)는 단순한 '제로(zero)'나 '아무것도 없음(nothingness)'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활동에서 과도한 통제나 고정관념이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특질"이라고 밝힌다.



무어는 인도 철학에서 수냐타(sunyata)로 알려진 교훈으로, 특별하고 깊은 영적 의미를 지닌 공(空)의 상태를 말한다고 설명한다. 수냐타는 탐구하고 성찰해야 할 사상이자, 위대한 『반야심경』과 현자 나가르주나의 방대한 이론적 저술에서 중심이 되는 신비로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집착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을 중시하는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무어는 이 책에서 영적 전통, 민간 설화, 문학,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각 이야기가 일상생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찰한다고 밝힌다. 앞서 언급한 많은 장(章)의 제목으로 쓰인 「빈 화분」, 「장식 없는 손가락」, 「화살 없는 활」, 「빈 무덤」 같은 이야기는 공허라는 위대한 영적, 철학적 개념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빈 상자, 극장의 빈 좌석, 북적이는 공간 속 고요한 침묵 등 삶의 모든 면에서 평범한 공허의 사례를 발견하고 그 안에 담긴 미스터리와 시적인 의미를 깨달을 것이라고 알린다. 또한 예상치 못한 의미의 원천을 알게 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허를 삶에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무어는 주장한다. 이 점이 바로 저자가 영적 공허를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털어놓는다. 즉 열린 마음과 깨어 있는 태도로 삶을 진지하면서도 가볍게 수용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친구를 잃으면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공허를 느낄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그 상실의 감정은 때때로 인생 자체가 공허하며, 그 공허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허가 불러일으키는 어두운 감정 속에서도 어딘가에는 희미한 빛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우리는 공허의 진가를 인정하고 일상적 경험으로 삼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면 삶이 바쁘게 돌아갈 때도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지나치게 많은 일을 벌이거나 과도하게 생각하고 느끼려는 경향을 균형 있게 조절하려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영적 공허는 훨씬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의 신념과 가치관은 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빈틈이 존재한다. 그러니 거기에 너무 집착하거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는 말 것"을 당부한다. 공허는 우리들이 앞으로 나아각고 유연성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공허를 포함하면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찾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에 따르면 공허는 우리가 통제하려 애쓰는 삶의 균형추를 놓는 연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공허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순간을 급히 채우려는 충동을 멈추는 것이다. 친구가 오지 않은 자리에서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을, 말을 삼키며 침묵을 지키는 순간을, 채우지 않은 빈자리 하나를 그대로 두어보자. 무어는 일상 속 이런 비움의 순간을 오히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작은 명상처럼 받아들이라고 무어는 조언한다.

마치 현 없는 비파처럼 들리지 않아도 분명하게 울리는 다정한 목소리로, 『공허에 대하여』는 세상의 빈틈, 멈춤, 공백 속에 숨어 있는 놀라운 지혜를 발견하는 여정을 안내한다. 삶이 버겁고 영혼이 무겁게 느껴질 때 조용한 해독제이자 쉼표가 되어줄 책이다. 지금 이 순간, 바쁘고 복잡한 삶을 잠시 멈추고 공허에 귀 기울여보자. 공허는 때로 가장 충만한 형태의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시인 나태주는 〈추천사〉를 통해 '결핍의 시대'를 지적한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결핍이 결핍된 시대입니다. 너나없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아등바등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입니다. 빈곤이 아니라 풍요의 늪입니다. 풍요하면서도 풍요를 모르는 맹목(盲目), 눈멀음입니다.

마땅히 비워야 하고 줄여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아예 해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만족 없는 세상이 우리를 불만족의 세상으로 이끕니다. 어쩌겠습니까! 이런 때는 좋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발밑을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책이 바로 《공허에 대하여》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겸손을 알려줄 것이고 근면과 검소와 정직과 타인 배려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비어 있는 컵은 절대로 비어 있는 컵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공기가 들어 있고 또 비어 있음으로 다른 무엇인가를 채울 가능성이 들어 있습니다. 맑고 밝은 이 책이 우리네 삶에 부족한 청빈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가르쳐줄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토록 또 다른 순수함의 조각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장하고, 언제나 또 다른 푸른 사발과 맑고 푸른 하늘과 유일한 태양을 잃어버립니다. 가벼운 순수와 무거운 상실이 교차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리듬, 그것이 바로 인생의 본질입니다. 삶은 채워지기보다는 더 많이 비워집니다."(p.185)


"비움은 무조건 덜어내야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무언가를 더함으로써 완성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공(空)’을 깨닫기 위해 반야심경을 외우거나 서예에 몰두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비움’을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채움’인지도 모릅니다."(p.292)


저자 : 토마스 무어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이자 심리치료사다. 그가 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영혼의 돌봄』은 46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영혼의 종교』, 『섹스의 영혼』, 『영혼의 오푸스, 일의 즐거움』 등 스물네 권의 책을 썼다. 그중 세 권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서상(Books for a Better Life Award)’을 수상했다. 또한 융 심리학, 원형 심리학, 신화, 상상력, 예술 분야에서 많은 글을 발표해왔다.

그는 한때 수도사였고 음악가였으며 대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열세 살 때 집을 떠나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고 드폴 대학교에서 음악과 철학을 접했으며 미시간 대학교에서 음악학 석사를, 윈저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를,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삶의 부정적인 요인들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그의 글과 책들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자기 내면에 잠자고 있는 영혼을 일깨우고 영적인 삶의 길을 찾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현재 그는 뉴햄프셔에 살면서 영성, 심리 치료, 생태학 등을 주제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역자 : 박미경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외국 항공사 승무원, 법률회사 비서, 영어 강사 등을 거쳐 현재 바른번역에서 전문 출판번역가이자 글밥아카데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탁월한 인생을 만드는 법』,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나를 바꾸는 인생의 마법』, 『혼자인 내가 좋다』, 『완벽한 날들』,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 『살인 기술자』, 『포가튼 걸』, 『프랙처드』, 『언틸유아마인』,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에게 배우는 사랑과 우정과 인생』, 『이어 제로』, 『슈퍼히어로의 에로틱 라이프』, 『남편이 임신했어요』, 『내가 행복해지는 거절의 힘』, 『행복 탐닉』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멀어지기 연습 - 퇴직 그리고 이후의 삶
김인구 지음 / 리브레토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음표에서 쉼표로>... 이 책은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멀어지기 연습 - 퇴직 그리고 이후의 삶
김인구 지음 / 리브레토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도 예전에는 열심히 살다 정년 퇴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인생, 이럴 줄 몰랐다.” "일만 하다 보니 어느덧 죽을 때가 다 됐네." 등 열심히 살았더라도 역시 많은 후회를 남기는 게 인생일까?라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생각을 멈추게 된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왜 자책하는 말들이 많을까? 아마 현재의 '나'가 만족할 만한 은퇴 후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필요한 경제력이나 노후에 즐길 만한 취미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익도 하다. 그렇다고 국가가 노후를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만족할 만하지는 못하더라도 국가 역시 국민 복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고 본다. 다만 워낙 없는 나라라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50년 이상 매달려 겨우 선진국 입구에 다다른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 안다. 50년 동안 부모와 또 그 아래 세대의 부모들까지 평생 돈 벌어 가족 생계 유지하고 자녀 교육에 번 돈의 거의 모두를 쏟아부었다. 그동안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열심히 일했다. 그건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중심 세대가 보기에도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은퇴를 앞두거나 이제 막 은퇴한 사람들에겐 "나라는 부자가 됐지만 분배나 복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느끼는 요즘에야 겨우 복지라는 부분에 눈을 돌리게 된 국가 입장에선 한꺼번에 노후 복지를 모두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이렇다보니 60~70세에 접어든 노년층의 복지 혜택은 엄두도 내지를 못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국민들은 중 은퇴를 앞둔 사람이나 은퇴한 사람은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의학과 기술 발전으로 늘어난 수명에 따라 인생주기가 길어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또 알았다고 해도 주택 마련, 자녀교육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노후를 위한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은퇴 후 맞이하게 되는 현실은 녹록지 않고,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건사하기 어려운 81세 이후의 삶은 오히려 계획하지도 않고, 하기도 두렵다.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게 되리란 뻔한 미래에 절망할 뿐이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50~60대가 노후 삶이 불안하고 두렵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경고음에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이럴수록 국가 차원에서 차근차근 준비해가야 한다.

이 책 『멀어지기 연습』은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라는 S기업에서 거의 평생을 일하다 정년 퇴직한 저자 김인구가 은퇴 후 10년 동안 겪었던 정신적 혼란과 뒤바뀐 일상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리고 좀더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결심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낸 '홀로서기 연습'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장 아쉬웠던 점과 잘 했던 점을 되짚어가며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위한 준비를 해나갈 것을 당부하는 글이기도 하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대기업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낸 저자가 퇴직 후 겪는 삶의 거대한 전환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풀어냈다. 저자는 회사, 직함, 타인의 시선 등 평생 ‘가까워지려’ 애썼던 모든 것과 의식적으로 ‘멀어지는 연습’을 시작한다. 매일 가던 곳이 사라진 공허함, 명함 없는 삶의 막막함 속에서 그는 청소와 요리, 새벽 미사와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가족의 곁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서툰 설거지로 아내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손자와의 놀이 속에서 ‘지금’을 사는 지혜를 배운다.

이 책은 단순히 은퇴 후의 삶을 그리는 것을 넘어, 한 남자가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고, 종가의 후손으로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공공역사학자’이자 ‘칼리디자이너’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멀어짐’이 단절이 아닌 더 깊은 연결의 시작임을 알려주는 다정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우리는 가까워지는 법만 배웠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30년 대기업 근무를 마치고 한 사람이 되며 발견한 '멀어짐'의 지혜를 아낌없이 풀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에 가까워지는 법만 배워왔다. 성공에 가까워지고, 목표에 가까워지고,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가까워지려 애썼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나 자신'과는 점점 멀어져 왔는지도 모른다. 매일 출근하던 회사가 사라지고, 명함이 없어지고, '부장님'이라는 호칭이 사라졌을 때 찾아온 공허함. 텅 빈 시간 앞에서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저자에 따르면 퇴직 초기의 달콤했던 여유는 곧 무력감으로 변했고, '제2의 인생도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렸다. 하지만 "이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아요"라는 아내의 한마디가 전환점이 되었다. 비로소 '멀어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청소와 요리, 새벽 미사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30년간 가족 곁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서툰 설거지로 아내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일상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똑같이 할 순 없지만 좋은 제안에는 똑같이 하려는 결심만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저자는 손자와의 놀이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지혜를 배우고, 아버지의 동창회 이야기에서 인생의 유한함을 실감한다. 저자가 퇴직 후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그것을 경험하는 과정은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이 겪는 일이지만,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6부 41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이름표를 떼다〉, 2부 〈새로운 리듬을 만들다〉, 3부 〈가장 가까운 사람〉, 4부 〈세대를 잇는 마음〉, 5부 〈인생의 유한함을 준비하다〉, 6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일〉 등이다. 1부에서 저자는 노후, 은퇴 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막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공허함과 무력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와 딸 등의 사랑의 조언 등에 힘입어 드디어 '홀로서기' 결심을 하고 의미를 새로 설정했다.



"이제 나도 안다. 살아있다는 의미를 찾으려면 매일 가는 곳을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꿈을 실현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매일 가던 곳이 없어진 것은 끝이 아닌 내가 선택한 곳으로 가 보려고 한다. '멀어지기 연습'을 생각하게 된 첫걸음이었다."(p.23)

2부 〈새로운 리듬을 만들다〉에서 저자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위한 주변 정리와 청소를 실시한다.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 무작정 시작한 청소와 정리. 그런데 신기하게도 먼지를닦고 물건을 정돈하다 보니 마음속 어지러움도 함께 정리되었다. 새벽 미사의 고요함 속에서, 글쓰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걷는 산책길에서 나는 새로운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회사의 시계가 아닌 내 몸의 시계를 따르는 법을, 성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워갔다. 때로는 멈춤이 전진보다 더 큰 용기임을 깨달았다."(p.45)

3부 〈가장 가까운 사람〉에서 저자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다시 느낀다. 아내와 딸에 대한 소중함에 비로소 눈을 제대로 떴음을 완곡한 표현으로 풀어낸다. 15장 「이제야 앞치마를 둘렀다」는 그의 가족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깊숙이 감춰졌던 애틋함에 대해 자각한다. "그날부터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까짓 것 앞치마 두르는 게 뭐라고 마음이 짠했다. 60년 인생에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싱크대 앞에 서니 별것 아니었다. 그릇을 씻고 행주로 닦고 정리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매일 해야 하는 일이어서 만만치 않았다.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말했다. 

"고마워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흔들었다.

'아내는 30년 동안 매일 이 일을 했는데 나는 고맙다는 말을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구나.' 18장에 이르러 저자는 아내에게 '미리 보내는 편지' 한 장을 남긴다. 

"여보, 오늘처럼 눈 오는 날 혹시 내가 보고 싶거든 그냥 창문을 열고 눈 내리는 풍경을 즐겨요. 그래도 그리움이 밀려오거든 따뜻한 차 한 잔 하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을 들어요. 나 없는 날들에도 당신이 항상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래요. 물론 지금처럼 함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이하 생략)



은퇴 후 10년. 멀어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회사에서 멀어지니 가족이 보였고 직함에서 멀어지니 이름이 보였고 현재에서 멀어지니 과거와 미래가 보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를 맺는다. 가족, 친구, 동료, 스승과 제자. 그 관계들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계는 자신과의 관계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가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차근차근 되짚어보니 나 자신에 대한 물음표가 어느새 쉼표로 바뀌었다. (중략) 내가 새로 시작한 칼리디자인도 그런 쉼표가 되었다. 몽오종가의 오래된 기록을 현대 언어로 번역하며 나는 비로소 숨쉴수 있었다. 서둘지 않아도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 지점에서 나는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다."(p.206~207)


저자 : 김인구


조선 정조 시대의 명신 몽오 김종수의 8대 종손으로 600년 청풍김씨 종가의 역사를 계승한 저자는, 삼성물산, 삼성JP모건, 삼성증권, KB증권에서 쌓은 풍부한 금융 경험을 바탕으로 퇴임 후 예술가로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학문적 영역에서는 성균관대 동아시아한문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며, 홍콩대학교 국제학술대회에서 칼리디자인을 학술적으로 발표하는 등 동아시아 문자 문화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종가의 소중한 고서와 유물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생활사박물관에 기탁·기증해 문화유산의 공공적 활용에 기여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대 규장각, 수원화성박물관 등에서 관련 전시와 학술대회를 주도하며 전통문화의 보존과 현대적 계승을 실현해왔다. 특히 저자의 칼리디자인은 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 종가의 역사와 기록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공공 역사학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국사대부리더십센터 활동을 통해 전통문화가 지닌 현대적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도로 읽는다 기상천외 세계지도 지식도감 지도로 읽는다
롬 인터내셔널 지음, 정미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0세기 말부터 뉴밀레니엄 초까지 세계의 가장 큰 이슈가 된 지역은 단연 '아랍'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에 이은 9·11 테러까지 모두 서양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아랍 간의 종교 분쟁의 모습을 띠고 일어났다. 실제 중세 십자군 전쟁처럼 종교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적어도 겉모습은 종교 분쟁의 모양새다. 세계 정세에 둔감한 독자도 이 기간 전쟁과 분쟁의 모습은 아프리카보다 오히려 훨씬 심각한 상태로 보여졌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한반도 내에서는 종교 갈등은 없었던 것으로 배우고 있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정치 이념적·사상적 갈등이 워낙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어쩌면 종교가 끼어들 틈이 없었을 것이다. 
전쟁까지 치르고서야 세계의 정치사상적 이념이 두 가지로 크게 나뉘어지는 바람에 남과 북은 각각의 정치·경제·사회적 갈등이 심해져 전쟁까지 치렀다. 이때가 미소간 냉전 시대로 돌입하는 시기다. 남과 북은 각각의 이념 토대를 중심으로 각각의 나라를 세웠다. 
이즈음까지 대부분의 우리 국민은 아랍에 대해  알지 못했고,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미국 등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분단에는 결사 반대였지만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노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의 정치·경제 체제에 따라 일찌감치 예고된 분단이었다. 냉전이 끝난 건도 어느날 갑자기였다. 마치 자고 일어나니 하늘에서 선물이 떨어진 느낌이랄까.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구심점 역할을 한 소비에트 연방(구 소련)은 무너졌고, 결국 냉전은 끝난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인간 사는 세상이 그렇게 단조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체감했다.


냉전이 끝난 후 걸프전이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외부로 드러난 전쟁 명분은 모두 기독교, 특히 미국과 서방 사회에 저항하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무력진압의 성격을 띠고 있다. 걸프전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알다시피 이라크의 쿠웨이트 불법 침공에 따라 미국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무력으로 응징한 결과다. 이때 미군을 주축으로 한 이라크 주둔군은 후세인 이라크 정부가 버티자 전면 공격을 감행했다.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공격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무기 체계 등 현저한 무력의 차이에 이라크 정부군은 제대로 전쟁 한 번 치르지 못하고 퇴각을 거듭하다 살아남은 자들끼리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반미' 최일선에 섰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ISIS로 일컬어지기도 함)를 결성해 무장테러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뉴밀레니엄의 해가 돋자마자 미국 본토에 있는 세계 무역센터 빌딩이 민간 항공기에 의해 자폭 테러를 당해 무려 3,000명에 이르는 사망·실종자를 내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미국은 즉각 9·11 테러에 대한 보복과 오사마 빈 라덴 체포(사살 포함) 작전에 돌입해 십수 년만에 그의 아지트(파키스탄 소재)에서 사살했다. 그러나 그것을 명분으로 침공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에게 실패를 인정하고, 결국 철수하고 말았다. 

이들 전쟁에 쏟아부은 미국이지만 결국 최종 목표는 달성했고, 더 이상의 불필요한 미군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철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베트남전에 이어 두 번째 실패한 전쟁임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무력을 과시하는 기회였고, 이슬람 입장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저항하겠다는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수십 년간 중동 지역은 이렇게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어지며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중동 지역이 시발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분쟁은 직접 전쟁을 하는 것은 100년도 안 됐지만 사실 그들의 영토 갈등은 수천 년을 이어져 온 것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오랜 분쟁처럼 보였지만 이스라엘이 미국과 유럽 서방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자신들의 땅을 지키겠다는 각오다.



'아랍(Arab)'을 이야기하다 조금 길어졌지만 이 책 『기상천외 세계지도 지식도감』은 학문적 연구라기보다는 일반 상식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한다. 다만 상식적이지만 상식적이지 않게 보이는 것들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궁금하고 호기심은 발동하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인간의 삶 등이 어우러져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우선 '아랍(Arab)'은 어떻게 생긴 단어인가? 페르시아만·인도양·홍해로 둘러싸인 '아라비아(Arabia)반도'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통상적으로는 서남아시아·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을 지칭한다고 책의 저자 '롬 인터내셔널'은 밝힌다.

아랍은 지리적·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한다고 하니 헷갈리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아랍(Arab)은 '아라비아(Arabia) 반도'를 지칭하거나, 7~12세기 무렵까지 아랍인들이 세운 아랍제국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아라비아반도 인근의 국가들이 주권 수호와 상호협력을 위해 1945년 결성한 지역협력기구인 '아랍연맹'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통상적 의미에서 아랍(Arab)은 서남아시아·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을 통칭하며, 대부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지역을 가리킨다. 

대체로 '아랍'과 '이슬람'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 쉬운데, 이 두 용어는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저자의 설명이다. 우선 '아랍'은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슬람'은 종교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랍(Arab)'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민족'에 관련된 용어로 7~12세기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치는 세 대륙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사라센 제국을 건설했던 민족이기도 하다. 아랍국가는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이슬람국가이지만, 민족적으로 아랍인이 아니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이슬람국가가 아랍국가는 아니다. 예컨대 중동에 위치한 이란의 경우 과거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했던 아리아인들의 나라로, 아랍인들과는 민족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물론 넘치는 인터넷 정보와 뉴스, 그리고 세계여행을 통해 하루가 멀다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세계 각지를 경험한다. 하지만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흥미로운 수수께끼가 많이 숨어있다. 더러 학창 시절, 지리 시간이나 역사 시간에 수업은 제쳐놓고 세계지도를 이리저리 들여다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독자도 그래본 경험이 있다. 이 책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 이야기, 놀라운 지형과 국경선, 그리고 땅의 신비한 현상과 기후의 비밀은 여전히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흘러도 되풀이하는 종교와 민족 분쟁의 지정학적 원인은 무엇일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세계 역사나 문화, 정치, 경제, 지리,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비상식적이거나, 신비로 포장되어 있는 기묘한 현상 등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모두 96개 항목을 6장(章)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1장 〈기상천외한 재밌는 세계지도〉, 2장 〈지구의 놀라운 현상과 비밀〉, 3장 〈재미있는 땅, 이상한 기후〉, 4장 〈세계 각국의 깜짝 속사정〉, 5장 〈지역 분쟁의 불씨, 영토와 민족〉, 6장 〈상식을 뒤엎는 지리 이야기〉 등이다.

1장 네 번째 항목은 「제국주의 유럽은 여전히 미국에 살아있다!」란 주제가 흥미있어 보인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열강들이 앞다퉈 식민지를 건설하고 착취와 수탈로 얼마나 잔인하게 식민지를 유린했는지를 살펴보면 인간의 악함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화 중 영국이 식민지 잃을 것을 걱정하면서 미국의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면 식민지를 잃게 된다며 동병상련의 지원을 요청했을 때 루스벨트가 우린 식민지를 갖지 않았고, 식민지를 경영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점잖게 받아졌다는 일화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미국 내에 제국주의가 살아 있다고? 이 책을 읽다보면 미·영의 수반이 만나서 낯뜨거운 이야기를 나눈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하다는 느낌이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1776년에 영국 식민지가 독립하여 탄생한 나라이다. 건국 당시에는 아메리카 대륙 동해안에 있던 13개주에 불과했으나, 북아메리카 대륙의 중서부에 있던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의 식민지를 잇달아 손에 넣으며 점차 영토를 넓혀갔다. 현재 미국은 총 50개주이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이런 탄생 비화 때문에 미국 지명에는 아직도 곳곳에 유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과 관련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대륙의 북동쪽에 있는 뉴잉글랜드 지방이다. 

뉴잉글랜드는 메인주, 버몬트주, 뉴햄프셔주, 매사추세츠주, 코네티컷주, 로드아일랜드주의 6개 주를 가리킨다. 이 지역은 강과 산맥에 둘러싸여 다른 지역과 교류가 적기 때문에 영국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이곳에는 도버, 포츠머스,그로틴, 댄버리, 뉴브리튼, 뉴런던 등 영국에서 유래한 지명이 다수 있으며 동부 지역 전체에 영국에서 유래한 지명은 100개가 넘는다. 미국 제1의 도시 뉴욕도 영국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남아메리카 칠레는 세로로 길쭉한 나라다. 영토 면적이 세계 5위 안에 드는 큰 나라들은 국내에서 시차가 난다. 그러나 칠레처럼 길쭉한 나라가 시차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기본 상식이다. 뭐 다 아는 상태이니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시차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서의 너비가 비행기로도 네 시간 이상 가야 한다는데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다. 중국을 가본 적이 없어서 더 몰랐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행객에게는 매우 불편할 것 같은데... 중국의 서쪽 끝자락인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동쪽 끝자락인 헤이룽장성까지 경도 차이는 60도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그것은 곧 4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시간대는 상하이와 난징을 지나는 동경 120도의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는 단 하나뿐이다. 따라서 서해에 인접한 상하이가 일몰을 맞이해 저녁이 되었을 무렵, 티베트고원은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이고, 서쪽 어느 지역은 시간으로 치면 이른 새벽인데 하늘은 이미 정오이며, 태양이 남쪽에 있을 무렵에는 오후 4시나 5시가 된다.



요즘 뜨거운 지역으로 떠오른 곳은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이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특별군사작전'을 명분으로 침공을 개시했다. 밀고 밀리는 우여곡절 끝에 이제 휴전이나 종전의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는다. 다만 영토 문제가 아직 말끔하지 않아 서로 폭탄을 주고 받으며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2025년 10월 7일 현재 올해 들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내 약 5,000㎢의 영토를 점령했으며, 전장에서 완전한 전략적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푸틴 대통령이 밝혔다. 혼전 상태라고 봐도 될 듯한 분위기다. 소모전 형국으로 흐르는 전쟁을 종식하고 애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눈물을 이젠 닦아줘야 하지 않을까? 구 소련 체제에서 냉전 이후 반러시아로 돌아선 발트해 3개국에 관한 이야기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이른바 '발트 3국'이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동서 냉전 시대에는 구소련 연방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공화국 중에서도 발트 3국 연대가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했다. 발트 3국은 언어와 문화가 모두 달랐지만, 협력을 이루며 독립운동을 전개해온 만큼 큰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열강의 표적이 되어온 역사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와 연대감도 느껴진다.

책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7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에스토니아, 내란 상태였던 라트비아, 대전 중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던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의 붕괴와 독일의 패전을 틈타 1918년 각각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독립은 20여 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1940년 3국 모두 소련에 다시 병합되고 만 것이다. 소련의 점령 정책은 매우 가혹해 많은 사람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 유형에 처했다. 그 후 1941년에 독일과 소련이 전쟁을 벌이면서 발트 3국은 나치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나,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소련군이 독일군을 격퇴하자 다시 소련에 합병되었다. 발트 3국이 열강, 특히 소련의 표적이 되어왔던 것은 발트해와 면하고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소련의 부동항 확보 차원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소련의 지배가 가혹했던 만큼 개혁과 독립을 원하는 발트 3국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강렬했다.(p.260~262)


저자 : 롬 인터내셔널


1983년에 설립한 출판 기획 제작 그룹으로 지리, 역사, 과학 등 교양서와 비즈니스를 비롯한 생활 실용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책을 펴내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 시작해 원고 집필과 제작까지 책임지는 통합 시스템으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내면서 출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독자의 니즈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기획력을 바탕으로 연간 80여 종의 책을 만들어낸다.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지도 상식도감》, 《세계 분쟁이 한눈에 보이는 책》, 《도쿄의 숨겨진 명소를 걷는 지도》, 《강대국 미국의 비밀을 2시간이면 알 수 있는 책》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역자 : 정미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출판 편집 및 번역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지도로 보는 세계지도의 비밀』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 『할머니의 수프』 『친구』 『내 친구는 멍구』 등 다양한 도서를 번역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