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술'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독자도 사실 예전에 술을 무척 좋아했다. 지금은 술을 건강상의 이유로 끊었지만 말이다.(사실은 의사가 지시한 권유) 독자는 술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고, 또 마실 줄만 알았지 술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책 『소설 한 잔』은 부제 「소설 속 칵테일, 한 잔에 담긴 세계」에 나타나듯이 칵테일과 소설 이야기를 한데 묶었다. 그야말로 술과 소설의 콜라보인 셈이다. 인류가 등장한 세월만큼 기나긴 세월을 함께해 온 술과, 문자 발명 이후 인류 문명과 함께한 문학을 한데 엮어 이처럼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술'과 '문학'이란 단어는 자체적으로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술은 인류가 생긴 이래 함께했다고 들었다. 시작은 아무래도 과일(포도)이 자연 발효된 것을 먹다가 기분 좋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돼 끊임없이 인류와 함께해 왔을 것이다. 또 문자 발명 이후엔 각종 기록으로 술 이야기를 남겼다. 저자 정인성은 책과 술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독자 생각으로는 천생연분인 것으로 생각한다. 술의 효용성은 마시면 목마름을 완화시키고 또 기분까지 좋아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학은 인간 감정 밑바탕까지 훑어내는 데 더 없이 좋은 도구이자 장치다. 또 우리의 삶의 한 단면을 문자로 기록하는 문학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쓴다. 이처럼 술과 문학은 인류가 지향하는 삶과 궤도를 같이 한다고 독자는 판단하기 때문이다.
『소설 한 잔』의 저자 정인성은 책과 술이 공존하는 ‘책바’를 10년째 운영 중이라고 한다. 저자가 술꾼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술 장사는 술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100% 망한다고 들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걸까? 어쨌든 저자는 용케도 10년이 넘는 세월을 끌어왔으니, 그를 만나지는 못해도 이야기는 들어볼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이 책에는 칵테일 23가지와 소설 23편이 사진, 일러스트와 함께 잘 어울려 독자들의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 둘 다 잡았다. 책 속에 담긴 술과 소설 이야기에 흠뻑 젖어볼 일이다.

『위대한 개츠비』 속 진 리키와 민트 줄렙, 『캐롤』의 올드패션드, 『1Q84』의 커티삭 하이볼처럼 소설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술 한 잔이 이 책에서는 각기 다른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저자는 책바를 운영하며 얻은 소설에 대한 생각과 등장하는 술의 이야기를 엮어서 책으로 써보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 책바의 성격과 소설의 맥락 속에서 칵테일이 가진 상징적 의미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에 따라 저자는 책바에서 실제로 직접 마셔볼 수 있는 칵테일 레시피도 포함해 '소설 속 칵테일'이 나오는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에는 책바에서 마셔볼 수 있는 칵테일 레시피도 수록해 독자들이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도 함께 실었다. 독자들은 잔을 채우고 책 속의 소설 내용과 함께 음미하는,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 특별한 체험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색다른 감상의 확장을, 술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지적인 음주의 세계를 열어주는 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책과 술의 정체성과 관계성을 부각한다. "책과 술, 이 두 가지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온 매개체였다. 둘 중 하나만 즐겨도 분명 멋진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과 술을 함께 즐긴다고 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하필이면 두 가지를 동시에 즐기는 취향을 가졌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자는 마음으로 책바라는 공간을 처음 열었을 때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몇 달 안에 망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책과 술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여서, 함께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지난 10년의 여정은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공간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p.3, 이하 존칭어를 예삿말로 바꿈)
저자는 소설은 시대적 정체성을 담고 술은 시대의 문화상을 보여주기에, 두 요소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읽다가 술이 등장하는 장면을 발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많은 작가들이 실제로 술을 사랑하기도 했다고 밝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각각 서양과 동양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애주가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들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술이 고유명사로 등장하며,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의미가 담긴 상징으로 기능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책바를 준비하던 시절, 이들의 작품을 읽다가 어떤 술을 발견하면 유난히 눈길이 갔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그 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름은 왜 그렇게 붙였는지, 그리고 작가는 왜 하필 그 장면에서 그 술을 넣었는지··· 물론 맛도 궁금했다고 고백한다. 저자가 소설과 칵테일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책을 내려는 마음은 책바 운영 10주년이 지나가는 즈음에 결실을 보았다.
이 책은 앞서 말한 대로 23개의 칵테일 이야기가 23장(章)에 걸쳐 조명된다. 「전주볼×애주가의 결심」「올드패션드×캐롤」「맨해튼×유리열쇠」「위스키&소다×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커티삭 하이볼×1Q84」「진 리키, 민트 줄렙×위대한 개츠비」「드라이 마티니×호밀밭의 파수꾼」「베스퍼 마티니×007 카지노 로얄」「압생트 마티니×면도날」「김렛×기나긴 이별」「잭 로즈×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발랄라이카×기사단장 죽이기」「핸드릭스 진 토닉×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보트카 토닉×상실의 시대」「피냐 콜라다×우리는 사랑일까」「시칠리안 키스×하느님의 보트」「비숍×크리스마스 캐럴」「알렉산드라×살인자의 건강법」「와인 스포디오디×길 위에서」「핀×롤리타」「로빈스 네스트×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촉테일×속죄」「팬 갈랙틱 가글 블래스터×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등이다. 독자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3장 「맨해튼×유리열쇠」제목이다.
"혹시 '하드보일드'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하드보일드는 글자 그대로는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이지만, 문화예술의 맥락에서는 비정함과 냉혹함을 뜻하는 형용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폭력적인 사건이나 어두운 현실을 냉정한 시선으로 묘사하는 문학 장르를 말한다. 인물의 내면을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고,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행동만으로 인물을 그려낸다. 현재는 추리 소설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하드보일드는 특히 1920년대에서 1950년대 무렵까지 미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금주법이 시행되고 범죄가 난무하던 그 시대에 마치 숙명처럼 등장한 셈이다. 이 책에서도 소개할 레이먼드 챈들러가 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이며,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문체와 스타일에서 영향을 깊이 받았다."(p.27)

서두를 꺼낸 저자는 드디어 맨해튼이라는 칵테일 이름과 대실 해밋의 소설 『유리 열쇠』을 소개한다. 그야말로 소설과 칵테일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하드보일드의 창조자로 일컬어지는 작가는 대실 해밋이다. 그는 작가가 되기 전 당시 미국 최대의 사립 탐정 회사인 〈핑거턴〉에서 6년간 탐정을 했던 경험이 있다. 이 정도 경력이 있는 작가라면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창조할 만하다. 『유리 열쇠』는 대실 해밋 스스로도 최고로 꼽은 작품이며, 후대에 이르러서는 스칸디나비아 추리 작가 협회에서 수여하는 북유럽 추리문학상의 이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코엔 형제의 빼어난 영화 〈밀러스 크로싱〉(1990)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네드 보몬트이다. 그의 직업은 딱히 명확하게 소개되지는 않는다. 그저 외투와 장갑으로 무장하고 얼룩덜룩한 초록빛 시가를 태우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이다. 무뚝뚝하지만 행동력 있는 남자다. 네드는 정치인 폴 매드빅과 가까운 사이로, 두 사람은 거의 형제처럼 지낸다. 폴은 도시의 행정을 관리하는 인물이지만, 그 방식은 늘 양지와 음지를 넘나든다. 폴은 상원의원 헨리의 재선을 도우려 하고, 동시에 헨리의 딸 재닛을 사랑한다. 폴에게는 오팔이라는 딸이 있다. 오팔은 아버지 몰래 헨리의 아들인 테일러와 데이트를 하는 관계이다. (저자는 이게 무슨 관계인가 싶어서 세 번 정도 읽은 뒤에서야 이해를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테일러가 살해당한다. 범인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때 네드 보몬트는 자신에게 큰돈을 빚진 버니 디스페인이 테일러에게 차용증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단서를 시작으로, 그는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네드는 술을 참 좋아하는 인물이다. 집에는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은색 셰이커가 있고 다양한 바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술을 마신다. 주로 마시는 술은 라이 위스키와 더블 스카치이다. 확실히 주당이라고 불 수 있다. 호텔에서는 벨보이에게 1파인트(473ml)짜리 라이 위스키를 방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바에서는 한 자리에서 더블 스카치를 석 잔 이상 마시기도 한다. 더블 스카치는 일반적으로 두 배 분량의 스카치 위스키를 의미하므로, 오늘날 기준으로는 여섯 잔을 단번에 마시는 셈이다. 그러던 그가 흔치 않게 칵테일을 주문하는 순간이 있다. 그는 어떤 칵테일을 주문했을까?

그가 선택한 칵테일은 맨해트니었다. 어찌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주문이 아닐까 싶다. 왜 그런지는 이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맨해튼은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듯, 뉴욕 맨해튼에서 탄생했다. 워낙 오래된 칵테일이다 보니 그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1874년, 뉴욕 맨해튼 클럽에서 열린 한 만찬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 레이디 랜돌프 처칠이 뉴욕 주지사 사무엘 틸든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이 칵테일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설은 시간적으로 모순이 있다. 해당 만찬이 열렸다고 알려진 시점은 레이디 처칠이 윈스턴 처칠을 임신하고 세례를 받았던 시기와 겹친다. 이러 이유로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맨해튼 클럽에서 만들었다는 주장은 여럿 있다. 1893년 〈뉴욕선〉, 1902년 〈뉴욕타임스〉, 1915년 〈맨해튼 클럽의 공식 역사서〉네는 모두 맨해튼이 맨해튼 클럽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다른 설은, 호프만 하우스의 바텐더이자 작가인 윌리엄 멀홀의 증언에 기반한다. 그는 1922년에 쓴 회고록에서 맨해튼은 1860년대 브로드웨이 근처에서 바를 운영하던 블랙이라는 인물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맨해튼의 재료는 위스키와 스위트 베르무트 그리고 앙고스투라 비터이다. 위스키 중에서는 버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라이를 사용한다. 그래서 평소에 라이를 마시던 네드 보몬트가 주문할 만한 칵테일이다. 당연히 바텐더마다 레시피가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위스키의 비율이 베르무트보다 높다는 것이다. 맨해트닝란 칵테일은 기본적으로 묵직한 위스키의 맛을 달콤한 베르무트가 받쳐주는 풍미를 가졌다. 하지만 초기 맨해튼을 만들었던 바텐더들은 보다 달콤한 맛을 추구했나 보다. 가장 유명했던 맨해튼 클럽 메뉴에 따르면, 위스키와 베르쿠트의 1:1 비율에 검 시럽과 비터가 들어간다. 베르무트의 비율도 높은데 시럽까지 들어갔으니 꽤나 달콤한 맛일 것이다. 만드는 방법이 다른 경우도 있다. 오늘날 맨해튼은 스터링*을 해서 만드는 것이 암묵적이지만, 이때는 셰이킹을 해서 만들기도 했다. 바텐더들의 교수로 불리는 제리 토마스도 셰이킹해서 만들었을 정도니 이때는 명백히 하나의 기법으로 존재한 셈이다.
* 스터링: Stir:액체를 믹싱글라스에 넣고 얼음과 함께 저어서 만드는 방법. 그 유명한 '젓지 말고 흔들어서'의 원문이 'Shaken, Not Stirred'이다.(저자 주)

맨해튼 칵테일의 일반적 호칭과 만드는 방법을 서술한 저자는 개인적 입장에서 맨해튼은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클래식 칵테일임을 털어놓는다. 원하는 맛을 찾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저자는 국내의 바는 물론,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갔을 때도 어김없이 맨해튼을 주문하며 각 바의 레시피를 유심히 살펴보고 연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요즘은 두 가지 버전으로 레시피를 정착시켰다고 설명한다. 맨해튼의 주재료인 위스키와 스위트 베르무트 모두 저자가 책바에서 주로 사용하는 브랜드가 있지만, 이따금 국내에서 수급이 어려운 경우도 있어 차선책도 항상 준비해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 옵션은 라이 위스키와 스위트 베르무트만 이용해서 만드는 방법이다. 이럴 경우에는 대체로 불렛 라이와 안티카 포뮬라를 사용한다. 불렛의 두툼하고 스파이시한 풍미와 안티카 포뮬라의 깊은 맛이 잘 어우러진다. 두 번째 옵션은 라이 위스키와 버번 위스키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럴 때는 와이들 터키 라이에 버팔로 트레이스를 더하고 친자노 로쏘를 사용한다. 부드러운 와이들 터키에 버팔로 트레이스가 불륨감을 더해주고 친자노의 깔끕한 맛까지 더해져 매력적인 맨해튼을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맨해튼은 다양한 변주로도 가능하다고.
저자 : 정인성
책바의 오너 바텐더. 출근 전후에는 틈틈이 글을 쓴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학과 통계학을 전공했고, 술과 문화예술을 연결하는 강연 및 프로젝트를 발렌티노, 벤틀리, 아모레퍼시픽, 코오롱, 퍼시스, LG전자 등과 함께 했다. 책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을 썼고, 『애주가의 대모험』과 『칵테일 탐구생활』을 감수했다. 중앙일보와 채널예스에 문화예술과 술을 주제로 정기 기고를 했다. 술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홈페이지 insungjung.com
인스타그램 @insung58 @chaegbar
그림 : 엄소정
경희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중, 맛있는 음식과 술이 주는 즐거움에 이끌려, 그 순간들을 그림으로 담기 시작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땡구리’로 활동하며 음식 일러스트와 따뜻한 일상툰을 그려나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daeng_gu_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