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정신질환 명칭들이다. 정신질환은 예부터 밝히기도, 알려지기도 꺼리는 질환이다. 의사로부터 정신질환 판단을 받아도 치료가 쉽지 않다. 물론 정신질환 치료의 역사가 무척 짧은 데다 뇌의 이상으로 생기는 정신질환은 아직까지 이른바 '신의 영역'이라고 일컬어지며 치료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 질환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겨우 '치매 치료 국가책임제'가 도입돼 뇌 질환의 사회적 책임에 나섰지만 아직 완전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것 같다. 정신질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는 정신질환자가 사건 피의자로 중대 범죄를 저질렀을 때뿐이다. 의료계에서는 정신질환이 중대 범죄의 요인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시민들은 중대 범죄가 특별한 이유 없이 벌어진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불안 요인이고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의 저자는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우리나라 정신건강 치료 현황이나 사회적 책임, 국민건강보건 차원의 국가책임제 등을 살펴보고 대책을 추진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저자 백종우는 2012년 정신질환자 치료 중 내원한 환자의 불의의 공격으로 고인이 된 고 임세원 교수의 2년 후배라고 한다. 이 책 표제어 '처음 만나는~'이란 문구는 신입 정신과 의사로 일을 시작할 때 들었던, 평생 잊히지 않는 2년 선배의 독려의 말이었기에 이 책의 제목이 된 것 같다. "이 환자분께는 네가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잖아.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가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라는 지적의 말이었다. 저자는 그 말을 듣고 있을 때 소름이 돋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응급실 환자를 처음 배정받아 첫 보고를 하던 날의 일이다. 내가 배정받은 환자는 정신과 의사를 처음 만나보는 초진환자였다. (중략) 당연히 신입 의사도 초짜들이다. 가운에 달린 '정신과 의사'라는 명찰에 설레면서도 매일 실수와 지적의 연속인 날들이다. 그날 2년 차 선배 임세원은 내가 작성한 의무 기록에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며 한 말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책임의 무게에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당신이 우울한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2장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3장 〈트라우마, 산산조각이 된 마음〉, 4장 〈정신질환 치료의 장벽, 몰라서 또는 알고도〉, 5장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것들〉 등이다. 신입의사로서 '응급실 100일 당직'이 끝나기까지 저자가 처음 만나게 된 많은 환자는 그 병원 진료 문턱을 넘는 데 많은 사연을 겪은 분들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그 문턱을 넘는 것을 주저했다는 것. 특히 응급실에 온 분들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정신과 환자들은 자신은 환자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집안에서는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병원을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뜻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사회에서는 환자에게 배타적이고, 학교에서는 친구가 되기를 꺼린다. 결국 학교도 사회에도 삶을 이어갈 곳이 없게 된다. 이 분들을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의 마음도 갈렸다고 말한다. 그간 이 환자의 삶을 이렇게까지 힘들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환자가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뿌듯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 '나는 이 환자를 돕고 싶은데 이분은 왜 이렇게 마음을 정하기가 힘든 걸까?' 싶은 마음에 환자와 이 사회가 답답할 때도 있었다고 속내를 밝힌다. 책에 따르면 2010년 정신과가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을 바꾸었다. 어느새 매년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국민이 400만 명이 넘었다. 편견과 차별도 줄었지만, 아직도 문턱을 넘는 데는 때로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은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문턱을 넘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물론 옆에서 이들을 도우려는 선의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저자는 집필 취지를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고도 산업사회에 진입해 핵가족화되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이루어졌던 공동체의 힘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고민이 훨씬 많아진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자살률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증가한 자살률은 지금까지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1위로 가장 높다. 쉼 없이 달려온 대한민국이 넘어지지 않게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마음 건강에 관심을 가질 때다.

1장의 첫 글은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이란 제목으로 쓰였다. 독자는 우울증의 정확한 증세를 모르지만, 일부 의사들은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했다는 말도 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커다란 위기를 겪은 세계 사람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대면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고 한다.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유행했던 기억이 독자에게도 있다. 그만큼 누구나 쉽게 우울증이 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도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현대인에게 우울증은 감기처럼 흔한 증상이다. 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지만, 마음 기댈 곳이나 마음 나눌 사람 하나 없다면 더 힘들 수 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 충동, 조현병, 공황장애 등으로 악화되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몇 년 이상 장기 치료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울증은 조기에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정신과를 방문하고 싶어도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치료받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마음의 병을 질환으로 인식하기보다 의지가 약하거나 성격이 예민해서 생기는 것으로 보는 시선, 정신과를 방문하면 기록이 남아 취업이 어려울 거라는 편견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년 남성들은 남성의 성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에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 문을 두드리기는커녕 자신의 속내를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쉽지 않다. 저자가 책에 쓴 미국 연수 기간에 경험해 전해주는 한 에피소드가 오래 남는다. "미국에서 연수할 때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었다. 취업 면접을 앞둔 대학생들이 병원에 우울증 진단서를 받겠다고 온 것이다. 너무 의아한 일이라 그게 취업 면접을 하는 데 도대체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인즉 우울증을 겪었는데 그것을 치료하고 극복했다는 점을 면접관에게 어필하면 취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취약한 시기를 겪을 수 있음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발판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한 이야기에 박수를 쳐주는 사회적 풍토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무척 부러웠다.(p.35)

정신질환은 어느덧 사회의 '금기어'가 될 정도로 기피했다. 사실 증세가 가벼운 질환은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하거나, 남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심각한 증세로 악화될 수 있다. 요즘도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공황장애, 조울증, 조현병 등은 치료하지 않을 경우 급작히 병세가 악화되거나 급성 발작 증세도 일으킨다고 의사들은 경고하고 있다. 중대 범죄의 피의자로 정신질환자가 지목될 경우 더욱 편견과 혐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도 우울증이 심해진 조울증, 혹은 심각한 공황 장애, 조현병의 발작으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잦다. 이 경우 자살의 원인은 모두 정신질환에 의한 것으로 일반 국민들은 생각할 것이다. 자살할 이유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꼽는 경우도 많다.
자살은 앞서 언급한 대로 수십 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지키고 있다. 사회적 원인이 크겠지만 실제 자살자들 중 절반은 청년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이들 자살한 사람들은 대개 정신질환자라고 단정하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우선일 것 같다. 내놓고 분석하고, 잘 알려질수록 정신질환이 범죄나 자살의 원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란 인식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신과 병원을 찾는 일을 기피하거나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숨기려 노력할 필요도 없어질 것 아닌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는 사회적 원인이 큰 경우가 많아 치료나 병원 가기를 크게 기피하지는 않겠지만 쉽게 치료되지 않는 질환임은 분명한 듯하다.
사회적 문제가 된 질환은 또 조현병이 있다. 조현병은 예전에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을 갖고 있었지만 차별적·혐오적 용어라고 해서 '조현병'으로 바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현병(schizophrenia)이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정서적 둔마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정신과 질환을 말한다. 조현병은 일부 환자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여 환자나 가족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지만, 최근 약물 요법을 포함한 치료법에 뚜렷한 발전이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질환이다. ‘조현병(調絃病)’이란 용어는 2011년에 정신분열병(정신분열증)이란 병명이 바뀐 것이라고 저자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 '치매' 역시 '인지흐림증' '인지장애'로 순화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개정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훨씬 이전 '한센병'도 마찬가지 이유로 순화된 병명이다. 의료계에서 사회적인 이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편견을 없애기 위하여 개명한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조현(調絃)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으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현재 조현병의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조현병은 뇌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질환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고혈압,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들과 마찬가지로 조현병의 원인을 한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생물학적인 원인 및 유전적인 원인, 스트레스 등 심리학적 원인들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는 가정과 직장 문제, 경제 상황 등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는 사회환경적 상황에 주목해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사회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청소년과 청년 우울증, 산후우울증, 중년 남성 우울증, 노인 우울증과 같이 생애주기별로 겪을 수 있는 우울증뿐 아니라 수면장애, 코로나, 경제 문제로 인한 우울증 등 다양한 우울증의 원인과 그 양상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소중한 사람을 잃은 마음의 상처, 왕따, 또는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그로 인한 자살 충동, 조현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어떻게 해야 극복하고 예방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책에 나오는 ‘자가 진단 테스트’를 통해 나의 현재 마음 상태를 진단할 수 있으며, 정신과를 처음 방문할 때 알아두면 좋은 정보를 부록으로 실어 정신과를 선뜻 방문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현대 의학 수준으로 우울증 같은 질환은 조기에 치료하면 회복될 수 있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자살 같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을 넘어서는 국가적 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가족이나 소중한 이를 자살로 잃은 자살생존자들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조현병 역시 정기적으로 진료받으며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함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예비 범죄자로 낙인을 찍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묻지 마 범죄나 진주 아파트 방화 및 흉기난동 사건의 비극은 조현병 환자가 사회에서 방치된 결과로, 조현병 환자와 관련된 강력 범죄의 발생 비율이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낮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환자와 보호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환자의 병을 낫게 하기 힘든 상황도 분명 있다. 이럴 땐 환자와 보호자 옆에 버팀목처럼 있어 주는 것이 최선이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곁에서 이들을 지지해주고 함께하는 동안 기적 같은 일들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미래가 올지 인간인 우리는 알 수 없다. 이것이 25년간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과 함께하면서 얻은 교훈이다.(p.189)
저자 :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트라우마 분야의 다학제 전문학회인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3대 회장,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장과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회자살예방포럼 자문위원장, 2024년부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신경정신의학 정책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12년 고 임세원 교수, 서울대학교 김재원 교수와 함께 500만 명 이상이 수료한 한국자살예방협회의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 개발간사로 일했으며, 해군과 소방관 버전의 개발 책임을 맡았다. 또한 한국형 재난 정신건강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
우울증과 트라우마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임상에서 만나면서 진료실 안에만 머물러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회정신의학자로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중증 정신질환자와 가족, 사회적 재난 피해자, 천안함 생존 장병, 자살유가족을 만나 관련 연구와 정책 개발에 참여했고 자살 고위험군에 관한 사례관리 임상연구, 코로나 등 감염재난 정신건강 솔루션 개발, 인공지능을 통한 자살·자해 예방 등 국책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동료 의사 고 임세원 교수의 꿈이었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는 마음의 아픔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국민의 마음에 닿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믿고,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이사 등으로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핵가족화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에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사회는 마음건강을 챙기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KBS1 <아침마당>, MBC <100분 토론> 등 방송 매체와 뉴스에 출연했으며, 서울신문에 칼럼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을 연재 중이다.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관한 논문 200여 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공저),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공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