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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귀신 도감 - 전설과 민담에서 찾아낸
강민구 지음 / 북오션 / 2025년 10월
평점 :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동남아시아 귀신 도감』은 동남아시아 생활 문화와 그들의 의식 속에 깃들어 있는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파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단순 정보 전달보다는 귀신들의 모습을 직접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도록 이미지 중점의 특징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하나씩 살펴 가며 나라별, 지형별, 또는 종교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또 이들 일상 속에서 어떤 일을 터부시하고 어떤 일을 숭배했는지 연구할 경우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속신앙이나 괴물, 귀신 등에 대해 공통점이나 이질적 요소가 있음을 파악하는 것도 영감을 얻기에 도움이 될 듯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귀신이나 괴물은 그들의 전통적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문학적,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강민구는 책의 〈서문〉에서 "동남아시아인들은 종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떠도는 괴담들의 존재들을 '영혼'이나 '귀신'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숭배하거나 이용하는 등 일상생활에 그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간다."고 밝히고, "특히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던 생물체가 죽어 원혼이나 풀리지 않은 염원 등 살아생전의 감정을 품은 채 영혼이 되어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는 이야기가 많다."며 연구 결과를 귀띔한다. 이는 아시아 범주권의 나라(동남아·동북아 등)에서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다. 그러나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기록해서 그림의 도움을 받아 매우 생생하게 재탄생시킨 일도 주목할 만하다. 같은 아시아권이라도 산이 많은 동북아와 바다와 밀림지역의 동남아인들의 생활이 각기 다르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일일 생활권으로 좁혀진 지구촌이라 할지라도 민간의 전통적 생활방식이나 특히 터부시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이 책은 그런 미흡한 점을 잘 드러내주는 데 손색이 없다.

사실 동남아시아의 지역적 배경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서 우선 주식이 '쌀'이고 농업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우거진 숲에는 식물들의 분포가 확실히 갈리는 이질적인 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지역이지만 동남아의 대부분의 국가는 우리보다 훨씬 덥고 비도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는 명백한 다른 점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계절에 따라 출현하는 귀신도 다르다는 점은 연구 결과 주목할 만한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 민간 신앙도 공통점이 많다. 그림으로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랑종」, 「셔터」, 「피막」 등의 공포 영화를 통해 이미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책에서는 동남아시아의 괴이한 존재들을 도감화했다. 민담, 신화 혹은 구전으로 존재하는 귀신, 괴물 등 100가지를 선정했고, 각 존재들마다 얽힌 이야기를 서술했다."며 "각 나라에서 귀신을 지칭하는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태국에서는 피(Phi), 말레이시아에서는 '한투(Hantu), 베트남에서는 혼 마(Hon ma)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기념하는 귀신들을 위한 축제를 보면, 우리나라에 비해 귀신을 좀 더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국의 삿 타이(Sat Thai), 베트남의 텟 트렁 옹구옌(Tet Trung Ngyuyen) 등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 사람들은 굶주리고 저승으로 가지 못해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베푼다 또 동남아시아는 나라마다 두드러지는 종교는 다르지만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의 문화가 퍼져 있어 이와 관련된 귀신들을 다수 볼 수 있었다. 종교뿐만 아니라 중국계, 인도계 등의 여러 인종들이 한 사회 내 혼합되어 있어, 한 나라에서도 귀신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경우들도 많다.
저자는 동남아시아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미 동남아시아에서는 귀신이 문화의 깊숙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고, 이들을 소재로 영화·드라마·소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특히 이 책에서 등장하는 귀신들은 형태가 불분명하게 회자되는 것들도 많았으며,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경우 저자가 상상력을 더해 귀신의 외형과 능력치를 설정하는 등 빈 부분을 채웠다고 밝힌다. 출판사 측은 이번 출간된 『동남아시아 귀신 도감』은 동남아시아 귀신에 대한 도감 해설집으로서 동남아시아 귀신을 망라하여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호기심을 넘어 동남아시아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이 품어온 두려움과 신앙을 탐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과 가까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듯 믿어지는 귀신들의 세계. 그 생생한 이야기와 상상력 가득한 묘사는 독자들을 알 수 없는 호기심과 공포 속으로 초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전작인 『유럽 괴물 도감』의 2탄의 성격을 띤 책으로 단순히 민속학적 접근을 넘어 귀신의 외형과 특징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도감 형식으로 구성했다. 책에 등장하는 귀신들 또한 단순히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불안이 빚어낸 문화적 산물이다. 책 속에 담긴 귀신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의 머릿속에도 영감이 샘솟게 되는데 이는 귀신들을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잠재적인 소재로 확장시킨 덕분이라는 책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또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는 말이 새삼 머리에 떠오른다.
인간이 지어내는 이야기는 애초부터 인간 고유의 속성과 문화가 녹아들어서 형성된 민담에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민담 속에 담긴 공포와 미지의 귀신들은 이야기를 갈구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만일 독자들 중에서 작가를 지망한다면 창작자로서 써나갈 이야기의 창의성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캐릭터와 세계관을 설정하는 창작자의 아이디어에 담겨 있다."고 역설한다. 아이디어의 곳간이 되어줄 『동남아시아 귀신 도감』은 동남아시아에 떠돌던 민담의 귀신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특성과 그 유래가 되는 배경을 알려주기 위해 집필했다는 의미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 책은 인문학적 뿌리를 토대로 미신을 창조해낸 인간의 오래된 보편적 욕망이 스며있는 매력적인 괴물 캐릭터들을 따라 가보면 어느새 독자들의 가슴 속에도 창작의 샘이 마구 솟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이 떠올랐다. 나타나는 귀신들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스토리마다 절절했기에 우리들의 감성에 잘 들어맞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독자가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처녀 귀신' 이야긴데 처녀 귀신은 대체로 시집 가기 전 모략으로 죽은 처녀, 첫날 밤 남편을 만나지도 못한 채 죽은 원한 등 스토리가 각각이지만 이들의 명칭은 '처녀 귀신'으로 같았다. 아마 조선 시대 유교 문화에서 억울한 시집살이, 원하지 않은 결혼, 또는 팔려간 경우 등 여성들의 목소리가 억눌렸던 시대에 원한을 품고 죽은 여성들이 많아서 그랬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귀신은 「낭 타니」다. 낭타니는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의 야생 바나나 나무에 서식하는 여자 귀신이다. 책에 따르면 녹색 전통 태국 의상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 모습을 하고 있으며,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목격된다. 낭 타니의 얼굴은 초록빛을 내며, 입술은 매력적인 붉은색이고,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흐른다. 그녀의 특징은 발을 땅에 디디지 않고 바나나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낭 타니는 성격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뉜다. 자비로운 낭 타니들은 지나가는 여행자들이나 승려들에게 바나나와 같은 간식을 주기도 하지만 좋지 못한 성격을 가진 낭 타니들은 아름다운 외형으로 숲을 지나는 남성들을 유혹해 함께 하룻밤을 보낸 뒤, 남자가 자신을 배신하면 비명횡사하도록 만든다.
말레이시아에도 처녀 귀신은 아니지만 여성 귀신이 있다. 「랑 수아르」는 말레이시아 민담에서 전해 내려오는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한 여성의 귀신이다. 랑 수아르는 긴 손톱, 발목까지 오는 머리카락, 녹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랑 수아르는 사산아를 낳다가 죽었기에 엄청난 슬픔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으며, 건강한 아이를 잉태한 임산부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껴 임산부의 아이와 임산부를 저주하고 공격한다. 랑 수아르에게 공격을 당해 죽은 임산부는 또 다른 랑 수아르로 태어날 수 있는데, 이때 임산부의 시신이 랑 수아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죽은 임산부의 입에 유리 구슬을 넣고 양쪽 겨드랑이에 달걀을 넣은 다음, 손에 바늘을 꽂는 의식을 해야 한다.(p.33)

귀신이 모두 흉칙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 보았던 그림책의 요정의 모습도 이 책에서 보인다. 필리핀 전설에 전해 내려오는 숲에 사는 매우 작은 요정 「람바나」가 눈에 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날개로 갖고 있는데 이 「람바나」는 잠자리의 날개를 갖고 있다. 필리핀 전역에 있는 깊은 숲에서 거주하며 또 다른 요정인 디와타들과 함게 어울려서 지낸다. 람바나들은 떼를 지어 살며 디와타와 함께 숲을 보호하고 숲에 사는 다양한 동식물들을 관리한다. 람바나들은 호기심이 많아 숲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다. 람바나들은 작은 외형에도 불구하고 마법을 굉장히 잘 부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순간이동, 정신지배, 저주, 축복 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적절하게 마법을 통해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타인에게 악한 짓을 하거나 숲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으면 마법으로 벌을 주기도 한다.
서양 귀신에 가까운 유령도 있다. 「포네기 타예」는 미얀마 민담에서 전해지는, 승려가 죽어 형성되는 귀신이다. 포네기 타예는 성불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며, 승려가 입는 천을 두르고 다닌다. 그들의 뒷모습은 키가 매우 큰 승려처럼 생겼으나, 고개를 돌리면 하얀 해골이 드러나며 큰 귀, 긴 혀, 뽀족한 송곳니를 갖고 있다. 주로 자정 전후로 활동을 시작하며, 포네기 타예를 목격한 사람들에게 질병을 옮긴다. 포네기 타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는 지그재그로 뛰면 된다고 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도망가다 다시 잡힌다면, 불경을 외우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을 수 있으니 늦은 밤에 마을을 배욓하지 않는 편이 좋다.(p.144)
저자 : 강민구
단편영화 〈흔적〉으로 데뷔, 장편영화 〈뉴타운 생존자 수색작전〉과 〈수면이라는 경계 부근에서〉 등에서 연출 및 각본을 맡아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감독이자 영화연구자이다. 다양한 기관에서 영상제작, 연구, 강의 활동도 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인도어, 아랍어 그리고 영화를 전공하였으며, 인도 유학 이후 힌디어 통역사이자 인도 문화 전문가로도 활동 중이다. 괴담에 대한 흥미를 바탕으로 재미있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영상 매체 이외에도 연극, 전시, 출판, NFT 등의 매체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바른 힌디어 첫걸음》, 《인도 영화》, 《인도 도시 괴담》, 《한국 괴담》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kang.kang.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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