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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기 연습 - 퇴직 그리고 이후의 삶
김인구 지음 / 리브레토 / 2025년 9월
평점 :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도 예전에는 열심히 살다 정년 퇴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인생, 이럴 줄 몰랐다.” "일만 하다 보니 어느덧 죽을 때가 다 됐네." 등 열심히 살았더라도 역시 많은 후회를 남기는 게 인생일까?라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생각을 멈추게 된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왜 자책하는 말들이 많을까? 아마 현재의 '나'가 만족할 만한 은퇴 후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필요한 경제력이나 노후에 즐길 만한 취미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익도 하다. 그렇다고 국가가 노후를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만족할 만하지는 못하더라도 국가 역시 국민 복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고 본다. 다만 워낙 없는 나라라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50년 이상 매달려 겨우 선진국 입구에 다다른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 안다. 50년 동안 부모와 또 그 아래 세대의 부모들까지 평생 돈 벌어 가족 생계 유지하고 자녀 교육에 번 돈의 거의 모두를 쏟아부었다. 그동안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열심히 일했다. 그건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중심 세대가 보기에도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은퇴를 앞두거나 이제 막 은퇴한 사람들에겐 "나라는 부자가 됐지만 분배나 복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느끼는 요즘에야 겨우 복지라는 부분에 눈을 돌리게 된 국가 입장에선 한꺼번에 노후 복지를 모두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이렇다보니 60~70세에 접어든 노년층의 복지 혜택은 엄두도 내지를 못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국민들은 중 은퇴를 앞둔 사람이나 은퇴한 사람은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의학과 기술 발전으로 늘어난 수명에 따라 인생주기가 길어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또 알았다고 해도 주택 마련, 자녀교육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노후를 위한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은퇴 후 맞이하게 되는 현실은 녹록지 않고,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건사하기 어려운 81세 이후의 삶은 오히려 계획하지도 않고, 하기도 두렵다.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게 되리란 뻔한 미래에 절망할 뿐이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50~60대가 노후 삶이 불안하고 두렵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경고음에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이럴수록 국가 차원에서 차근차근 준비해가야 한다.
이 책 『멀어지기 연습』은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라는 S기업에서 거의 평생을 일하다 정년 퇴직한 저자 김인구가 은퇴 후 10년 동안 겪었던 정신적 혼란과 뒤바뀐 일상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리고 좀더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결심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낸 '홀로서기 연습'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장 아쉬웠던 점과 잘 했던 점을 되짚어가며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위한 준비를 해나갈 것을 당부하는 글이기도 하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대기업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낸 저자가 퇴직 후 겪는 삶의 거대한 전환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풀어냈다. 저자는 회사, 직함, 타인의 시선 등 평생 ‘가까워지려’ 애썼던 모든 것과 의식적으로 ‘멀어지는 연습’을 시작한다. 매일 가던 곳이 사라진 공허함, 명함 없는 삶의 막막함 속에서 그는 청소와 요리, 새벽 미사와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가족의 곁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서툰 설거지로 아내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손자와의 놀이 속에서 ‘지금’을 사는 지혜를 배운다.
이 책은 단순히 은퇴 후의 삶을 그리는 것을 넘어, 한 남자가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고, 종가의 후손으로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공공역사학자’이자 ‘칼리디자이너’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멀어짐’이 단절이 아닌 더 깊은 연결의 시작임을 알려주는 다정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우리는 가까워지는 법만 배웠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30년 대기업 근무를 마치고 한 사람이 되며 발견한 '멀어짐'의 지혜를 아낌없이 풀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에 가까워지는 법만 배워왔다. 성공에 가까워지고, 목표에 가까워지고,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가까워지려 애썼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나 자신'과는 점점 멀어져 왔는지도 모른다. 매일 출근하던 회사가 사라지고, 명함이 없어지고, '부장님'이라는 호칭이 사라졌을 때 찾아온 공허함. 텅 빈 시간 앞에서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저자에 따르면 퇴직 초기의 달콤했던 여유는 곧 무력감으로 변했고, '제2의 인생도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렸다. 하지만 "이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아요"라는 아내의 한마디가 전환점이 되었다. 비로소 '멀어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청소와 요리, 새벽 미사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30년간 가족 곁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서툰 설거지로 아내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일상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똑같이 할 순 없지만 좋은 제안에는 똑같이 하려는 결심만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저자는 손자와의 놀이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지혜를 배우고, 아버지의 동창회 이야기에서 인생의 유한함을 실감한다. 저자가 퇴직 후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그것을 경험하는 과정은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이 겪는 일이지만,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6부 41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이름표를 떼다〉, 2부 〈새로운 리듬을 만들다〉, 3부 〈가장 가까운 사람〉, 4부 〈세대를 잇는 마음〉, 5부 〈인생의 유한함을 준비하다〉, 6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일〉 등이다. 1부에서 저자는 노후, 은퇴 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막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공허함과 무력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와 딸 등의 사랑의 조언 등에 힘입어 드디어 '홀로서기' 결심을 하고 의미를 새로 설정했다.

"이제 나도 안다. 살아있다는 의미를 찾으려면 매일 가는 곳을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꿈을 실현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매일 가던 곳이 없어진 것은 끝이 아닌 내가 선택한 곳으로 가 보려고 한다. '멀어지기 연습'을 생각하게 된 첫걸음이었다."(p.23)
2부 〈새로운 리듬을 만들다〉에서 저자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위한 주변 정리와 청소를 실시한다.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 무작정 시작한 청소와 정리. 그런데 신기하게도 먼지를닦고 물건을 정돈하다 보니 마음속 어지러움도 함께 정리되었다. 새벽 미사의 고요함 속에서, 글쓰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걷는 산책길에서 나는 새로운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회사의 시계가 아닌 내 몸의 시계를 따르는 법을, 성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워갔다. 때로는 멈춤이 전진보다 더 큰 용기임을 깨달았다."(p.45)
3부 〈가장 가까운 사람〉에서 저자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다시 느낀다. 아내와 딸에 대한 소중함에 비로소 눈을 제대로 떴음을 완곡한 표현으로 풀어낸다. 15장 「이제야 앞치마를 둘렀다」는 그의 가족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깊숙이 감춰졌던 애틋함에 대해 자각한다. "그날부터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까짓 것 앞치마 두르는 게 뭐라고 마음이 짠했다. 60년 인생에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싱크대 앞에 서니 별것 아니었다. 그릇을 씻고 행주로 닦고 정리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매일 해야 하는 일이어서 만만치 않았다.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말했다.
"고마워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흔들었다.
'아내는 30년 동안 매일 이 일을 했는데 나는 고맙다는 말을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구나.' 18장에 이르러 저자는 아내에게 '미리 보내는 편지' 한 장을 남긴다.
"여보, 오늘처럼 눈 오는 날 혹시 내가 보고 싶거든 그냥 창문을 열고 눈 내리는 풍경을 즐겨요. 그래도 그리움이 밀려오거든 따뜻한 차 한 잔 하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을 들어요. 나 없는 날들에도 당신이 항상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래요. 물론 지금처럼 함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이하 생략)

은퇴 후 10년. 멀어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회사에서 멀어지니 가족이 보였고 직함에서 멀어지니 이름이 보였고 현재에서 멀어지니 과거와 미래가 보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를 맺는다. 가족, 친구, 동료, 스승과 제자. 그 관계들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계는 자신과의 관계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가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차근차근 되짚어보니 나 자신에 대한 물음표가 어느새 쉼표로 바뀌었다. (중략) 내가 새로 시작한 칼리디자인도 그런 쉼표가 되었다. 몽오종가의 오래된 기록을 현대 언어로 번역하며 나는 비로소 숨쉴수 있었다. 서둘지 않아도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 지점에서 나는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다."(p.206~207)
저자 : 김인구
조선 정조 시대의 명신 몽오 김종수의 8대 종손으로 600년 청풍김씨 종가의 역사를 계승한 저자는, 삼성물산, 삼성JP모건, 삼성증권, KB증권에서 쌓은 풍부한 금융 경험을 바탕으로 퇴임 후 예술가로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학문적 영역에서는 성균관대 동아시아한문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며, 홍콩대학교 국제학술대회에서 칼리디자인을 학술적으로 발표하는 등 동아시아 문자 문화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종가의 소중한 고서와 유물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생활사박물관에 기탁·기증해 문화유산의 공공적 활용에 기여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대 규장각, 수원화성박물관 등에서 관련 전시와 학술대회를 주도하며 전통문화의 보존과 현대적 계승을 실현해왔다. 특히 저자의 칼리디자인은 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 종가의 역사와 기록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공공 역사학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국사대부리더십센터 활동을 통해 전통문화가 지닌 현대적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