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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 바스티유의 포성에서 나폴레옹까지 ㅣ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5
한스울리히 타머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5년 8월
평점 :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요새를 무너뜨린 포성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혁명으로 프랑스는 '절대 왕정'을 끝내고 근대 민주주의의 서막을 열었다. '바스티유'부터 약 5년에 걸쳐 발생한 시민에 의한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 책 『프랑스혁명』은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1799년 나폴레옹 집권까지 이어진 10년의 격동기를 정치,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압축적이면서도 치밀하게 그려낸다. 혁명 전야의 위기에서 시작해 민중 봉기, 국가 재편, 문화 실험 그리고 쿠데타로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역사의 흐름을 독자는 한 권의 책 안에서 따라가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한스울리히 타머는 바스티유부터 1799년 나폴레옹 집권까지, 10년 동안 프랑스를 뒤흔든 정치, 사회, 문화의 거대한 변화를 압축적이면서도 정밀하게 담아냈다. 특히 저자 타머는 독일어권에서 널리 읽히는 프랑스혁명 연구자로, 혁명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명확하게 서술하면서 농민 봉기, 상퀼로트 운동, 혁명 의례와 상징, 언론과 출판 등 문화적 요소까지 폭넓게 조망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저자는 전통적 분석과 현대적 시각을 균형 있게 매치한 저자의 시선은 혁명을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구조와 맥락이 살아 있는 생생한 이야기로 만들고 있으며, 과거의 사건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이라는 가치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울림을 주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헌의회의 개혁과 입헌군주제 실험, 전쟁과 민중 봉기, 산악파 집권과 테러 정치 그리고 테르미도르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나폴레옹의 쿠데타까지, 혁명의 모든 국면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이 책의 역자 나종석은 “전문용어들을 옮길 때에는 국내 학계의 관행을 존중하며 원어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역사적 맥락을 살린 용어를 선택했고, 전공 학생뿐 아니라 일반 독자 모두 읽기 쉽도록 문장을 다듬었다."고 조심스럽게 밝힌다.

프랑스 혁명(la Révolution française)은 프랑스 내부뿐 아니라 유럽 전역과 멀리 미국까지 영향을 받았고, 미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은 좁은 의미로 1789년 7월부터 1794년 7월까지 5년에 걸쳐 발생한 프랑스의 자발적 시민혁명이다. 루이 16세(재위 1774~1792)의 정부는 미국독립혁명을 지원한 군사비 등, 장기에 걸친 누적 적자로 고심해 온 절대군주정은 1788년에 문제해결을 위해 전국 3부회의 소집을 결정한다. 다음 해 5월에 개최된 회의에서는 처음부터 승려 및 귀족신분과 제3 신분*간의 대립이 나타났지만 결국 후자의 주도로 ‘국민의회’라는 명칭으로 바뀐다. 의회 밖에서는 겨울 한파의 영향으로 곡물가격의 폭등에 고심하는 민중의 소동에 대비한 국왕 군대의 결집과 재무총감 네케르의 파면 시 7월 14일에 자기방위용 무기를 구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이것이 프랑스혁명의 발단이다.
농민의 반란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과 병행하여 의회에서는 봉건제도의 폐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의 채택, 교회 재산의 국유화 등 다양한 조치가 실시된다. 무엇보다 제3신분이 ‘무엇인가’가 되는 길을 열고 2년 후인 1791년 9월에는 프랑스를 입헌군주정으로 하는 헌법을 완성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1792년 4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대해서 선전포고가 이루어졌다. 전황이 진척되지 않아 위기감이 높아진 민중은 8월 10일 결국 왕궁을 점거하여 왕권을 정지시키기에 이른다. 9월에는 9월 학살과 바르미에서의 역전적인 승리를 거쳐 새롭게 구성된 의회인 국민공회는 공화정을 선언한다.
* 제3신분: 프랑스 혁명 전의 프랑스 사회는 제1신분, 제2신분, 제3신분 등 세 개의 신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1신분은 성직자, 제2신분은 귀족으로 토지와 관직의 독점, 면세 혜택이 있었다. 이에 비하여 시민·농민·수공업자·소상인 등 귀족과 성직자를 제외한 프랑스 국민 전체를 지칭하는 제3신분은 국가의 재정 대부분을 부담하는 등 무거운 과세의 대상이면서 참정권이 없었고 지위 보장도 되지 않았다. 이러한 신분 제도의 모순은 프랑스 혁명의 발발 원인이 되었다.

당초 존재했던 의회 내에서의 당파 대립은 다음 해 초기에 국왕 루이 16세의 처형을 거쳐 더욱 강해졌다. 이어 6월에는 몽테뉴파가 지론드파에게 승리하여 1793년 헌법이 공포되었지만 전쟁의 계속과 혁명의 급진화 속에서 10월에는 헌법의 실시는 ‘평화의 도래까지’로 연기되어 로베스피에르를 정점으로 하는 공안위원회의 독재가 실시돼 다음 해 7월까지 이른바 '공포 정치'가 이어졌다. 뒤이어 로베스피에르 등을 타도한 것이 테르미도르의 쿠데타이며 그 후 1795년에는 새로운 헌법에 기초한 총재 정부가 성립한다. 이리하여 부르주아지 주도의 정체가 혁명을 종결시키고 사회에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1799년에 시에스 등의 도움을 얻은 보나파르트가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일으켜 결국 프랑스를 제정(帝政)에서 밀어냈다. 지금까지는 약 10년 간의 프랑스 혁명 후 정세를 짚어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프랑스 혁명의 출발을 알린 바스티유 감옥은 왜 도화선이 됐을까? 흔히 정치범이나 정적을 가둬두는 '정치범 수용소' 역할을 했을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습격 사건 당인엔 고작 일곱 명의 죄인에게 생각지도 못한 자유를 안겨 주었다. 그것도 경제사범에다가 정신이상자, 성범죄자뿐 국사범에 해당하는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바스티유(Bastille)는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던 1789년 7월 14일 무장 시위대에 의해 습격을 받고 그곳에 감금되어 있던 죄인들이 방면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시위대의 기대와는 달리 고작 일곱 명의 죄인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렇다면 바스티유는 본래 감옥으로 축조된 것일까? 아니다. 감옥이 시위대에 의해 점령되기 약 450년 전인 1370년 〈백년전쟁〉의 와중에 프랑스 왕 샤를 5세는 영국의 공격으로부터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공고한 요새를 건립하기로 했다. 바스티유라는 명칭 또한 ‘작은 요새’를 뜻하는 ‘바스티드(bastide)’에서 비롯되었다.

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요새로 지어진 바스티유를 감옥으로 사용한 것은 루이 13세 아래서 총리를 지낸 리슐리외(Richelieu, 1585~1642) 추기경이었다. 그래도 요즘 감옥과는 달리 썩 많은 사람을 구금하지는 않았다. 리슐리외는 말이 추기경이지 프랑스의 국무장관과 총리를 지냈고, 절대 왕권의 확립을 위해 온몸을 바쳤으며 복잡한 역학 관계에 놓여 있던 근대 유럽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도권을 제압하는 동시에 프랑스를 유럽의 중심에 놓기 위해 노력한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추기경이었지만 자신이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톨릭 편과 프로테스탄트 편을 넘나들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배신자라는 명칭을 여러 곳에서 들어야 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관용을 베풀어야 할 성직자가 바스티유를 감옥으로 처음 전용하여 구체제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만든 과정을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바스티유는 그 명성에 걸맞게 볼테르, 디드로 같은 저명인사들을 구금한 경험이 있는데, 이는 국사범을 주로 투옥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감옥은 파리 시민들이 생각하는 감옥과는 꽤 거리가 멀었던 듯하다. 자신이 사용하던 가구를 들여놓는 것은 물론 요리사를 고용해 풀코스 요리를 즐기기도 했다니 감옥인지 별장인지 혼동할 만하다. 이러한 사정은 바스티유 감옥이 공격을 받던 날에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점은 앞서 밝힌 바대로다.
다만 금서들도 이곳에 보관하고 있었고, 이러한 역할만으로는 건축물을 유지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따라서 1784년에는 건물을 폐쇄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789년 바스티유는 군중의 공격을 받았고, 군중들은 감옥 소장 베르나르 조르당에게 무기와 탄약의 반출을 요구했다. 두려움에 질린 소장이 몸을 피하자, 격분한 군중들은 감옥을 점령했다. 이로써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즉 구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고, 바스티유 또한 뒤를 이은 혁명정부에 의해 철거되기에 이른다.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바스티유 요새가 무너진 순간, 세계사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날 울린 포성은 왕정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였을 뿐 아니라, 자유와 평등, 시민권이라는 새로운 정치 질서의 서막이었다.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내부의 변혁에 머무르지 않았고, 전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깊이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독일어권에서 오랫동안 프랑스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 한스울리히 타머는, 이 책 『프랑스혁명』에서 사건 중심의 정치사를 기반으로 하되 문화사와 사회사를 가로지르며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루이 16세의 재판과 처형, 지롱드파와 산악파의 권력 다툼 같은 정치 사건은 물론, 혁명 의례와 축제, 언론과 출판, 심지어 복식과 거리 풍경까지 폭넓게 다루면서 독일 역사학 특유의 깊이 있는 분석을 더한다. 이러한 접근은 혁명을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로 복원하는 효과를 내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혁명’이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라 생활세계 전반을 재구성하는 거대한 흐름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혁명의 전 과정을 추적하는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앙시앵레짐의 위기〉, 2장 〈세 가지 사건(1789년 여름)〉, 3장 〈프랑스의 재구성(1789~1791년)〉, 4장 〈두 번째 혁명(1792년)〉, 5장 〈부유하는 혁명(1793년)〉, 6장 〈테러: 혁명의 방어인가, 이데올로기의 지배인가?〉, 7장 〈혁명의 정치 문화〉, 8장 〈혁명이 끝나다(1785~1799년)〉 등이다. 1장과 2장은 18세기 말 위기의 프랑스, 전국신분회 소집과 제3신분의 각성, 바스티유 함락과 봉건제 폐지, 인권선언 채택까지의 ‘혁명의 서막’을 다룬다. 3장과 4장은 제헌의회의 개혁과 입헌군주제 실험, 왕의 바렌 도주 사건, 전쟁과 민중 봉기, 1792년 공화국 선포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5장은 루이 16세의 재판과 처형, 지롱드파와 산악파의 대립, 상퀼로트와 결합한 혁명정부의 수립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6장은 공안위원회 주도의 테러 정치와 로베스피에르의 몰락을 다루고, 수많은 희생의 정치적, 군사적 맥락을 분석한다. 7장은 혁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적 실험을 보여주며, 8장은 테르미도르 이후 온건 공화정, 총재정부의 정치 불안, 왕당파와 좌파의 반격,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로 막을 내리는 혁명의 종결을 서술한다.

프랑스혁명사는 언제나 역사 서술과 정치의 착종(錯綜)을 보여주는 사례였고 각 세대는 혁명의 과거 속에서 현대 해석을 정립했으며, 이로써 혁명 자체가 각 각의 현대의 일부가 되었다.p.10
그날의 함성은 오늘날에도 파리의 거리에서, 우리가 서 있는 서울의 밤거리에서,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메아리치고 있는지 모른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같은 파장으로 진동한다. 모든 시대는 저마다의 바스티유를 가지고 있고 저마다의 포성을 필요로 한다.(p.181)
저자 : 한스울리히 타머(Hans-Ulrich Thamer)
독일 베스트팔렌빌헬름뮌스터대학 명예교수. 마르부르크대학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역사, 고전 문헌학, 정치학을 공부했다. 1971년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에른스트 놀테의 지도하에 〈18세기 프랑스 사회 비판에 있어서 혁명과 반동 Revolution und Reaktion in der franzosischen Sozialkritik des 18. Jahrhunderts〉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2011년 정년 퇴임까지 뮌스터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86년 ‘역사가 논쟁’ 시기에 출간한 저서 《유혹과 폭력: 독일 1933~1945Verfuhrung und Gewalt. Deutschland 1933~1945》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혁명을 중심으로 권력과 의례, 상징적 지배, 정치적 소통 등 혁명의 문화사적 측면을 주로 연구해왔다. 주요 저서로는 《NSDAP: 창당에서 제3제국의 몰락까지Die NSDAP. Von der Grundung bis zum Ende des Dritten Reiches》(2020) 《국가사회주의Der Nationalsozialismus》(2002) 등이 있다.
역자 : 나종석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역사 및 사회 이론을 연구했다. 옮긴 책으로는 《슬로비스의 모자》(공역) 《자본주의의 역사》(공역) 《일상사란 무엇인가》(공역)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