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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절집 말씀 - 대자유의 세계로 내딛는 사찰 주련 한 구절
목경찬 지음 / 불광출판사 / 2025년 7월
평점 :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절집 말씀』의 표제어 가운데 '절집 말씀'이란 말은 쉽게 이해된다. 불교 경전에 있는 문구가 아닐까? 특히 법당이나 기타 건물 기둥 곳곳에 쓰여 있는 문구라고 짐작이 된다. 독자도 절에 갔을 때 유심히 보고 문구의 뜻을 헤아려 본 적도 있으니까. 한자로 되어 있고, 불교 경전에 대해 견문이 짧아 쉽게 이해하지 못 했을 뿐이다. 그래도 혹시 독자가 아는 한두 자의 한자만으로 대략 짐작만 했을 때라도 느낌은 분명히 달랐다. 이 책을 보고 기둥에 쓰여 있는 경구를 '주련(柱聯)'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다.
저자 목경찬은 「스쳐 간 한 구절 말씀에도 공덕이 있으니」란 제목의 〈서문〉에서 주련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시구나 문장을 종이나 판자에 새겨 기둥(柱)에 잇달아(聯) 걸어 둔 것"이라고. 또 흔히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귀'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지만, 장식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주련에 새겨진 경전 구절 등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함으로써, 사찰 전각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함께하는 수행 공간임을 일깨워준다."(p.4)
〈서문〉에 따르면 사찰 주련은 법당마다 글귀의 주제가 다르다. 각 법당에 모신 불보살님과 관련된 경전 내용을 인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법당이라도 사찰마다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조금은 알 수 있는데, 쉽지는 않다. 대부분 한문이거나 혹은 한문을 조금 알더라도 흘림체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말로 풀이하여 한글로 되어 있더라도 어려운 내용이라 쉽지 않다.
저자는 우리가 잘 아는(들어본 경험상) 『금강경』의 한 문장을 〈서문〉에 한글로 적었다. "만약 이 경 가운데서 한 게송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한다면, 그 복덕이 이 세상에 가득 찬 일곱 가지 보물을 보시한 복덕보다 뛰어나리라." 저자는 사찰 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 절, 저 절 다닌 지는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주련의 글귀에 여전히 낯설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앞서 『금강경』에서 인용한 말 중 '한 게송만이라도'라고 풀이한 원문의 '乃至四句偈等(내지사구게등)'은 딱 떨어진 네 구절 게송만이 아니라 '한 글자에서 나아가 사구게, 그리고 나아가 경전 전체'라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즉 경전 한 글자도 좋고 나아가 경전 전체도 좋다는 말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주련에 있는 내용 전체를 현재 모르더라도 조금씩 알아간다면 그 자체로 큰 공덕이 있다는 말로 읽힌다고 해석한 데 따른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부처님 가르침에 힘입어 모든 이와 공덕을 함께하고자 우리나라 사찰 주련을 모았다다. 일차로 모은 수백 편의 주련 가운데, 여러 사찰 주련에서 반복하여 보이거나 법문과 불교 서적 등에서 자주 또는 중요하게 언급되는 게송을 백 편 정도 추렸고 이 책에서 다룬다고 말한다. 또 많지는 않지만 당대의 고승·서예가·역사적 인물 등이 쓴 주련도 주요하게 여겨 이 책에 담았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불교 문화와 함께 읽는 사찰 주련'이란 제목을 제시한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산사의 첫 문, 부처님 세계의 문턱〉, 2장 〈부처님이 중심인 법당〉, 3장 〈보살님이 중심인 법당〉, 4장 〈부처님 가르침이 숨 쉬는 법당〉, 5장 〈이 땅의 신앙이 살아 있는 법당〉, 6장 〈수행의 현장에서 묻고 답하다〉 등이다.
저자에 따르면 빠르게 변하고 쉽게 잊히는 현대, 이 변화의 속도가 버거워진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고전’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을 찾기 시작했다. SNS에서는 공자나 쇼펜하우어, 니체의 문장들이 짧은 명언으로 회자되었고, 고전 속 구절을 필사하며 일상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낡은 텍스트로 여겨지던 고전은 이제 복잡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사유와 성찰의 길을 가르쳐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이 책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절집 말씀』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련(柱聯)’이라는 전통의 언어를 새로운 고전으로 조명한다. 수백 년 동안 법당 기둥에 걸린 채 수행자들의 마음을 지탱해 온 주련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꾸준히 던져 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그 짧은 글귀들이 품은 지혜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흐트러졌던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사유의 물꼬를 터 주는 의미에서 집필했다고 밝힌다. 길을 잃기 쉬운 세상 속에서 주련은 시대를 넘나들며 우리가 자기 자신과 마주하면서 내면을 정돈하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고 저자는 기대하고 믿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그 오래된 지혜의 문장들을 어떻게 들려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사찰 안의 문이나 전각 등의 멋들어진 모습을 떠올린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절에 한 번 가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불교 국가였고, 14세기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교(성리학)를 국교로 삼았다. 때문에 사찰이 전국 어디에나 남아 있어, 당시의 융성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원래는 국교로서의 불교는 도시에 사찰을 짓고 그곳에서 수행하고 종교 생활을 했다. 이 시절에는 고승을 국사(國師)로 모셔 국정 운영에 고견을 많이 받아들였다고 학창 시절에 배웠다. 그러나 조선 시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이면서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숭유억불崇儒抑佛) 조선은 정책에 따라 모든 절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고 배운 바 있다. 그래서 오늘날 사찰은 전쟁에도 거의 원형대로 살아남은 이유가 되었다.

저자는 1장 첫 글 「이 문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가지지 마라」란 제목에서 문경 김룡사 홍화문(일주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사로 들어서는 일주문 등 산문에서 볼 수 있는 글로, 〈벽암록〉 중의 문구를 적어 놓았다고 설명한다. "자기 나름의 지식이나 견해를 ‘알음알이’라 한다. 알음알이가 가득 차 있다면,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부처님 가르침, 큰 도를 얻고자 한다면 자신을 비우는 하심이 필요하다. 자신이 잘 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이 들어오겠는가. 비우고 텅 비게 되면, 큰 가르침으로 가득하다."(p.21)
入此門來 莫存知解 無解空器 大道成滿
(이 문 안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가지지 마라.
알음알이 없는 빈그릇이 큰 도를 가득 채운다.)
책에 따르면 부처님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는 신심을 바탕으로 하심(下心)이 필요하다. '하심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수행으로, 불교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 자신이 잘나고 제일이라고 우쭐대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어리석고 모자라는 일이며, 부처님 가르침과 정반대로 가는 행위이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한편으로는 조심해야 한다. '분별하지 마라, 믿어라.'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서 생각과 판단을 무조건 내려놓아도 문제다. 엉뚱한 가르침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우를 가끔 보기 때문이다. 바른 가르침의 길로 가고자 한다면 더디더라도 살피면서 갈 필요가 있다. 상식을 고집하지도, 무조건 내려놓지도 말아야 한다. 참 힘들다. 상식을 너무 고집하면 큰 가르침으로 나아가기 어렵고, 상식을 너무 내려놓으면 엉뚱한 길로 들어서니 말이다.

이 책에는 1장 20, 2장 35, 3장 16, 4장 14, 5장 7, 6장 15개 등 모두 102개의 주련과 수행 현장에서 묻고 답하는 부처님 말씀이 소개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만 소개하거나 그 뜻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실제 사찰의 공간 구조를 따라 구성되어, 산사의 첫 관문인 〈일주문〉에서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과 중심 법당인 〈대웅전〉을 거쳐 〈관음전〉이나 〈지장전〉, 대중 수행처인 〈대방〉에 이르기까지 전각의 흐름에 맞추어 다양한 내용의 주련을 배치했다. 각 주련에 대해 해설할 때도 해당 건물의 상징성과 사회·문화적 맥락까지 함께 짚어내며, 우리가 주련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다. 무엇보다도 이 책 속 주련 글귀는 우리가 각자의 일상에서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에 지침으로 삼을 만한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보여 준다.간단하고 핵심만을 담은 주련을 아침에 읽으며 하루의 마음가짐을 다잡거나, 자기 전 필사를 하며 뜻을 마음에 새기는 습관은 스스로와 마주하며 내면을 다듬는 시간을 제공한다. 마음이 가는 문장을 가족이나 지인과 공유하며 대화를 나눈다면, 소란스러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지금껏 잊고 있었던 제대로 된 말하기와 듣기를 실천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책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절집 말씀』은 말이 가벼워진 오늘날, 내면을 정돈하는 언어를 되새기고 자기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싶은 이들을 위한 굳건한 기둥이 되어 줄 것으로 도자는 믿는다.해탈문은 산사의 마지막 문으로,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한다. ‘불이’는 모든 분별이 사라진 자리, 망상으로 인한 온갖 시시비비가 사라진 자리이자 깨달음의 경지다. 모든 번뇌 망상에서 벗어났기에 해탈이라 한다. 이 문을 들어서면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 나라, 불국 정토이다.(p.46)

우리가 걷는 불교 신행의 길은 처음에는 나를 위한 신행이지만 자연스럽게 너와 나를 위한 신행으로 변화한다. 바로 보살의 길을 걷는 신행이다. 보살은 보리살타菩提薩埵(Bodhisattva)의 준말이다. 보리는 ‘깨달음’이고, 살타는 ‘유정有情’, ‘중생’이다. 따라서 보살은 ‘깨달음을 가진 유정’,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이면서 ‘깨달음을 구하고(自利) 중생을 구제하고자(利他) 노력하는 자’다.(p.69)
해인사 장경각에는 독특한 연꽃이 핀다. 수다라장 중앙 통로로 들어가는 문턱은 약간 둥근 형태인데, 이러한 둥근 형태의 문턱과 지붕 기와가 햇빛과 어우러져 중앙 통로 바닥에는 빛과 그림자로 된 한 송이 연꽃이 핀다. 참배자는 자연스럽게 연꽃을 밟으며 부처님 나라에 들어선다. 이때 연꽃은 부처님 나라를 상징한다. 연꽃을 통해 극락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연꽃을 통해 부처님 나라로 들어간다. 바로 여기가 부처님 나라, 극락이라는 가르침이다.(p.236~237)
저자 : 목경찬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유식철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번역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현재 여러 불교대학에서 불교 교리 및 불교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불교문화 대중화를 위해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사찰기행’ 강좌를 열었고, 인터넷 카페 ‘저 절로 가는 사람(cafe.daum.net/templegoman)’에서 사찰 문화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성유식론에서 식의 상호관계 연구」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정토, 이야기로 보다』,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유식불교의 이해』, 『대승기신론 입문』,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 다가가는 방법』, 『들을수록 신기한 사찰 이야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