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담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1856년 출간된 이 책 『독일인의 사랑』은 동양학, 비교언어학의 세계적 학자인 막스 뮐러가 전 생애 동안 남긴 유일한 소설 작품이다. 평생 성실한 학자였던 뮐러는 『고대 산스크리트 문학가』, 『신비주의학』, 『종교의 기원과 생성』 등의 저서를 남겼다. 아버지 빌헬름 뮐러가 예술적 기질이었다면 막스 뮐러 자신은 연구하는 학자 기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 빌헬름 뮐러는 유명한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겨울 나그네」의 노랫말을 쓴 독일의 낭만적 서정시인이다. 『독일인의 사랑』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번역본이 출간되었으나, 소담출판사의 이번 번역본은 저자 막스 뮐러의 탁월한 언어 사용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막스 뮐러가 언어학자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언어의 사용과 문학적 감수성의 어우러짐에 초점을 맞춘, 출판사의 재출간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독일인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의 대표격인 작품이다. 뚜렷한 기교나 독창적인 서술 방식 없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언어학에 뛰어난 재능과 세련된 감성을 가진 그의 어휘 구사 능력이 독자들에게 어필된 점이 평론가들에 의해 호평을 받았을 것으로 풀이된다. 이 소설이 크게 주목받은 것은 우리나라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같은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일인의 사랑』은 비교언어 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동양학자인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가 남긴 단 한 편의 소설 작품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얇은 책에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인지 궁금하다. "풍부한 감수성과 시적인 문체로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는가 하면 독일 신학과 철학, 동양학으로 이성을 일깨우기 때문"인 듯하다. 단순한 스토리에 담긴 짧은 내용이 때로는 로맨틱하게, 때로는 심오하게 ‘사랑’을 그리고 이야기하면서 독자의 가슴을 두드린다.

『독일인의 사랑』이란 표제어가 독자에게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면도 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말하는 그들(유럽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독일인'을 내세울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순수한 사랑'이 주제인데···. 그러나 소설가 이근미가 이 작품에 대한 평(評) 가운데 "1850년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 강의 교수로 초빙돼 문학사와 비교독문학을 강의하게 됐다. 3년 뒤인 30세 때 당시 열아홉 살이던 영국 소녀 애들레이드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대단한 귀족 딸인 애들레이드와의 만남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결국 나이, 신분, 국적, 종교의 벽을 넘어 결혼했다."는 점에서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서전적 사랑의 결실을 보여주는 것이리란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 『독일인의 사랑』에서 평범한 ‘나’가 좋아하는 마리아도 영주의 딸이라는 높은 신분에 속한다. 소설 속의 ‘나’(주인공)는 갈등을 느끼고 주변의 반대로 인한 아픔을 겪는다. 막스 뮐러는 애들레이드를 사랑하면서 ‘사랑의 조건’에는 무엇이 있으며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 상념의 결실을 『독일인의 사랑』에 고스란히 담았을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작자 미상'으로 출간했고,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고 알려져 추측이 사실로 더욱 확고해진다. 이 작품 『독일인의 사랑』은 1877년 아내 애들레이드에 의해 영어로 번역 출간됐다고 한다.
역자 안영란은 소설이 "시와 같이 아름답고 순수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두 남녀의 사랑을 더욱 애달프고 아름답게 이끌어낸다."며 전제한 뒤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모두 각자의 사랑을 품고 있으며, 이들의 사랑은 이윽고 개인적인 사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어 인류애로까지 확장된다."고 밝힌다. 또 세련되고 아름다운 언어로 이야기하다 다시금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하는 막스 뮐러의 세련된 문장은 독자에게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고 설명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더없이 신실하고 순수한 마리아와, 그런 그녀의 마음뿐 아니라 전체를 갈구하게 되며 그녀를 향한 사랑을 평생 간직하는 주인공의 사랑은 독자들의 감성을 일깨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순수한 두 영혼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깨끗한 물로 가슴을 적시듯 맑아진 듯한 기분을 준다. 순수하고 깨끗한, 감성적인 언어가 독자를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은 속세를 초월한 탁월하고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다.
소설은 여덟 개의 회상으로 구성돼 있다. 유년 시절 얘기를 담은 세 번째 회상까지는 동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6세경 '나'는 마을 영주인 후작의 집에 초대받는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교회보다 더 크고 첨탑도 여럿인 거대한 저택’에 방문해 후작부인을 만난다. 어머니께 하듯 아름다운 후작부인에게 목을 안고 볼에 입을 맞춘 나는 집에 와서 아버지께 ‘그분은 '남'이고 신분이 높은 분이니 조심해야 한다’며 야단맞는다. 그 이후에도 성에 갔는데 후작의 딸인 마리아가 있었다. 나이가 몇 살인지도 잘 모르지만 그녀는 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영혼의 아름다움도 지니고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마리아는 몸이 매우 안 좋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리아는 심장병으로 항상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했다.
마리아는 견진성사를 받을 때 다섯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마지막 하나는 자신이 끼고 있었다. 나에겐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리아는 그 반지를 주면서 말했다. '원래는 내가 가지고 있으려고 했는데 너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 살아있는 동안 나를 기억해주렴' 대충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너의 것은 모두 나의 것이라는 말과 함께 반지를 돌려준다.

주인공인 '나'는 나중에 대학생 성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다. 오랫동안 성에는 가지 않지만 늘 마리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친구로서 한번 만나자고 주인공에게 편지를 보낸다. 마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주인공은 마리아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기독교의 사랑에 대해 대화와 토론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둘은 매일 같이 만난다.
하지만 마리아를 돌보던 의사가 마리아의 건강을 위해서 나에게 떠나달라고 요청하고 나는 갑작스런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해도 마리아를 잊지 못한 나는 마리아가 요양하고 있다는 시골 성에 찾아가 마리아를 만난다. 자신이 마리아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결국 마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마리아는 두 사람 간에 놓인 장벽이 많다며 거절한다. 먼저 마리아가 높은 계급이라서 주인공이 감히 사랑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고, 또 마리아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사랑 사이에는 장벽이 없다고 설득하고 서로 키스를 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안타깝게 마리아는 그 다음날 죽고 만다.
마지막에 마리아를 돌보던 의사의 비밀도 밝혀진다. 마리아는 의사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자의 딸이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후작이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의사는 사랑하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포기한다. 결국 그녀는 후작의 아내가 되었고 딸 마리아가 태어나는데 안타깝게도 마리아를 낳으며 그녀는 죽고 만다. 마리아의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했던 의사는 마리아를 살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마리아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그 덕에 마리아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데 마음을 드러내면 안 되는 그 ‘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데서 나의 성장이 시작된다. 마리아를 보면서 ‘저 소녀도 역시 남일까?’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이 운명적인 말로 두 사람의 마음은 연결되고, 성인이 돼 재회한다. 마리아가 ‘친애하는 친구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 성으로 초대한 것이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의 마음과 그간 쌓은 지성을 폭넓은 대화로 풀어낸다.

마리아는 숨김없이 자기 생각과 느낌을 얘기하건만 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지 못한다. 끊임없이 속마음을 숨기라고 요구하는 사회에 익숙해진 스스로가 못마땅한 나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여러 편의 ‘시’를 마리아에게 들려준다. 나와 마리아가 인용하는 시를 읽기만 해도 독서의 보람을 느낄 것이다. 병약한 마리아와의 재회는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지만 둘은 아버지의 반대로 이별한다. 결국 나는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뒤 반지와 ‘네 것은 모두 내 것이야. 너의 마리아로부터’라는 편지를 받는다.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 단순하지만 심오한 상념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 『독일인의 사랑』이다. 이 책이 ‘조건이 우선 되는 만남, 이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세태’에 깊은 경종이 되길 바란다.
고결하고 깨끗한 사랑에 대한 찬미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진정한 사랑이란,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인간 세상의 질서를 초월하며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미치는 사랑이다.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마음에 드러나는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자연의 질서에 귀의하고 세계와 합일을 이룰 수 있으며 존재의 충만함에 이를 수 있다. 그렇게 정화된 내 마음에 열리는 사랑이야 말로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이며, 스스로의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사랑을 알 수 있고 모든 이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 막스 뮐러의 종교적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진실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선한 영혼을 가진 여인과의 더 없이 맑고 순순한 사랑의 감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기독교적 진리에 대한 긴 대화와 긴 독백 같은 부분은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없다면 인내심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정결하고 진심이 우러나는 담담한 이야기는 어떤 독자의 마음도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며, 맑고도 맑은 마음의 울림이 투명한 여운을 오래도록 남겨줄 것이다.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냐고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들판에 핀 꽃들에게 왜 피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반으로 대답이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지금 여기 놓은 책,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 책이 나를 대신애서 말해 줄 것입니다."(p.161)
저자 :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동양학, 비교언어학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막스 뮐러는 유명한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겨울 나그네'의 노랫말을 쓴 독일의 낭만적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기도 하다. 베를린 대학에서 F.보프.F.셸링, 파리에서 E.뷔르노프 등을 사사한 그는 1950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인도-게르만어의 비교언어학, 비교종교학 및 비교신화학의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하였다. 막스 뮐러는 전 생애 동안 오직 한 편의 소설을 남겼는데, 그 작품이 바로 『독일인의 사랑』이다. 이기적 격정은 이미 사랑이 아님을 나직이 역설하는 이 철학적 사랑이야기 외에도 막스 뮐러는 『고대 산스크리트 문학가』, 『신비주의학』, 『종교의 기원과 생성』 등의 저서를 남겼다.
역자 : 안영란
전문 번역가, 이화여대 독문학과와 한국외대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뮌스터 대학 독문과를 수료하고 92, 93년 독일 마이츠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주요 역서러는 『한밤의 모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마법사 모야와 보낸 이틀』 『아직 한번도 이야기되지 않은 동화』 『밤』 『수학악마』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