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과 폭발
이유소 지음 / 한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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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소설 작품 『호흡과 폭발』은 주인공인 '유소'가 중학교 동창 친구의 집에서 '구멍'을 발견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니 방에 하나 터놓은 창문에서 햇빛을 가득 머금은 바람이 조수처럼 밀려들었다 사그라졌다. 내가 그걸 발견한 건 그때였다.

구멍.

아주, 아주, 아주 시커먼 구멍이었다. 무슨 발판 같기도 했다. 그게 한구석 방바닥에 붙어 있었다. 지름은 50센티가량, 높이는 0에 가까웠다. 아니, 바닥보다 더 낮아 보였다."(p.26) 

이 소설 『호흡과 폭발』은 한 '구멍'의 이야기다. 이 구멍은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의 경계로 설정된다. 표제어 '호흡'이나 '폭발'이 내포하는 의미와는 다소 다른 듯한 소재가 등장해 환상 소설을 많이 읽지 못한 독자로서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을 차분하게 읽어본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저자 이유소의 작품 집필 의도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어느 날, 학창 시절 이후로 소식이 끊겼던 중학교 동창 고유상이 주인공 유소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그는 유소에게 다짜고짜 보여줄 게 있다면서 집으로 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유상은 집 안에 물건이 하나도 없는 이유가 이 정체 모를 구멍 때문이라며, “이제 더 이상 넣을 것도 없어, 난 그저 저 구멍 안이 궁금할 따름이야”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구멍으로 뛰어든다. 눈앞에서 펼쳐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놀란 유소는 멍하니 구멍만 바라본다. 겨우 정신을 차린 유소는 일단 집으로 구멍을 가져온다. 그리고 자신 역시, 구멍으로 들어가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호흡과 폭발』은 ‘구멍’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호흡처럼 반복되는 일상, 그 끝에 환상이 폭발한다.

이 소설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출판사 〈한끼〉의 '경장편 시리즈'에서 「미스 마플 클럽」의 서미애, 홍선주, 이유소, 한새마 등 네 명의 작가가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미스터리 시리즈를 준비해 차례로 선보이는 기획 시리즈의 한 작품이다. 첫 작품 홍선주의 『꽃거지를 찾습니다』를 시작으로, 이유소의 『호흡과 폭발』이 두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저자의 이름과 같은 주인공 유소는 뇌혈관 질환 진단을 받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지내던 어느 날, 학창 시절 거의 교류가 없었던 고유상의 연락을 받는다. 유상은 보여 줄 것이 있다며 유소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유소는 그를 만나러 간다. 그 집엔 이상하게도 가구나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어 의아해하던 찰나, 방바닥에 붙어 있는 이상한 구멍을 보게 된다. 깊이가 없어 저게 구멍인지 단순한 깔개인지, 아니면 블랙홀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다. 아주, 아주, 아주 시커먼 구멍이었다. “넌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저 속이 궁금해서 미쳐버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지금까지 참고 참다가 도저히 안 돼서 널 불렀어. 너라면 이해해 줄 것 같았거든.” “저 세계에서 진짜 내 존재가 뭔지 확인해 보고 싶어. 너도 꼭 자신을 되찾길 바라.”라고 말하며 구멍 속으로 뛰어든다. 친구가 사라진 이후, 두려워진 유소는 구멍을 챙겨 자기 집으로 가져온다. 망설임과 두려움 속에서 결국 유소 역시 그 구멍으로 들어간다. “구멍을 본 사람은 그게 누가 되었든 구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것이다.”(p.46) 그렇게 일상이라는 평면에, ‘구멍’을 만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입체화된다.

이 소설 『호흡과 폭발』은 모두 3부로 나뉜다. 1부는 현실, 2부는 구멍 속 세상, 3부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 유소의 이야기다. 유소는 구멍의 반복된 통과를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산책, 친구와의 만남 등에서 이전과 다른 불연속성과 이질감을 겪으며,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이 세계가 과연 본래의 현실인지 불확실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자던 중 천장에서 손을 내민 ‘릴’이라는 인물을 만나 사막의 세계로 이동한다. 릴은 오랜 시간 자신의 무덤을 찾아 헤매고 있는 존재다. 유소는 릴과 함께 ‘자각몽의 천장’ 개념에 대해 듣게 되고, 천장이 곧 현실 세계로의 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릴은 수백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자신의 무덤을 찾아내고, 유소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사라진다. 유소 역시 구멍 속 세계에서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방을 찾는 여정을 계속한다. 유소는 결국 자신이 떠나왔던 원래의 방을 찾아 돌아오지만, 그것 역시 구멍 속의 한 세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유소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 만난 사람들-가장 친한 친구 수혜, 선으로 된 소녀, 사막의 여자, 뒤로 걷는 소년-은 모두 주인공이 마주해야 하는 ‘또 다른 나’이자,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사는 트라우마와 결핍의 은유다. “이 소설이 그리는 구멍 속의 세계는 평행세계라기보다는 인간 정신과 무의식이 반영된 내면세계에 더 가깝다.”(p.223)고 문학평론 박인성은 풀이했다. 구멍은 어디에나 있다. 당신의 마음에도. 이 작품 “『호흡과 폭발』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뿌리를 둔 현대적 변형이다.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유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멍을 통해서 지금껏 가 본 적 없는 세계로 진입한다. 하지만 앨리스와 유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스스로 구멍 속에 떨어지길 원하는 자발성이다. 뇌혈관 질환 진단을 받고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 가는 유소는 근대의 막다른 길에 처한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유소가 구멍으로 들어가는 자발성은 미래를 직면하기도 죽음을 수용하기도 어려운 현대인이 택할 수 있는 퇴행적인 도피다. 

오늘날 장르 문학의 관점에서 평행세계와 이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유행하는 것은 사회·문학적인 흐름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잃은 이 시대 청년세대의 현실 인식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고 해석한다. 중간 세계는 탈출구를 찾는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숙고의 시공간이다. 주인공 유소가 그러하듯 이 세계는 현실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다시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신의 무대이며,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탐색을 수행하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표현처럼, 세계가 알이라면 우리는 이 알을 부수고 나옴으로써만 비로소 자신을 태어나게 할 것이다.”며 박인성 평론가는 〈작품 해설〉을 통해 평가하고 있다.


구멍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며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뭘까. 나는 왜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뛰어든 걸까. 고유상은 왜 내가 구멍을 가져가길 바랐던 걸까.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무서울까. 현실의 죽음이란 이런 걸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고 직시할 수도 없다.(p.64)


저자는 책 뒷 부분의 〈작가의 말〉을 통해 자신이 병원에서 비슷한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이 소설은 자신의 삶과 무의식을 통과하며 쓴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구멍'을 통해 저자가 뭘 형상화했는지 비로소 공감하게 된다. 이 구멍은 환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현실 세계로 나오는 출구이기도 하다. “어떤 장소나 사물을 보면 뜬금없는 상상이 밀려왔고, 그걸 글로 써야만 견딜 수 있었다.”라고 말하며 이 소설의 소재도 수년 전 메모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호흡과 폭발』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충동과 동시에 그곳으로 되돌아오려는 내면의 분열을 정직하게 마주하고자 한 것이다. 저자는 심리적인 시공간을 환상적으로 연출하는 이야기 마술사답게 구멍 밖의 세계와 구멍 안의 세계를 넘나들며 독자를 환상 문학의 절정으로 끌고 간다. “나는 계속해서 나의 세계에서 안정적으로 호흡했고, 그사이 내 속에서 창조되는 희망과 염원이 크고 작은 별처럼 수축하고 폭발했다.”(p.216). 이로써 '호흡'과 '폭발'의 의미도 제 모습을 찾는다. ‘구멍’이라는 상징은 존재와 실존, 그리고 인간적 구원의 불가능성과 희망을 동시에 암시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환상이 끝나는 곳이다. 유소는 반복된 구멍 속 세계를 경험한 후, 결국 구멍을 떠나 현실로 돌아온다. 구멍은 숨고 싶은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삶을 다시 껴안을 수 있는 입구였던 셈이다. 저자는 구멍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내면이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 위한 숨구멍이기도 하다. 


* 경동맥 협착증(carotid artery stenosis): 경동맥은 외경동맥과 내경동맥으로 나눠지며, 외경동맥은 주로 두개골 밖에 있는 피부나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고 내경동맥은 두개골 내의 뇌나 신경조직에 혈액을 공급한다. 외경동맥은 좁아지거나 막히더라도 다른 혈관을 통해서 비교적 풍부하게 혈액이 공급되므로 특별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경동맥은 좁아지거나 막히면 뇌에 혈액공급이 감소할 수 있으며, 내경동맥 벽에 침착되어 있는(쌓여서 들러붙어 있는) 지방 조직들이 떨어져 나와 뇌혈관의 말단 부위로 흘러가 혈관을 막을 수도 있다. 이처럼 내경동맥을 포함한 경동맥이 좁아지는 경우를 경동맥 협착증이라고 지칭하며, 이는 혈류를 감소시키거나 혈관을 막게 되어 허혈성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경동맥 협착증이 있는 경우 뇌졸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치료 대상이 된다.(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뇌혈관 질환 진단을 받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소설 속 주인공 유소의 마음은 이미 죽음과 무관심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나 구멍 속 세상을 경험하고 그곳에서 만난 인물들을 통해 ‘살고 싶다’는 마음을 되찾는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이 소설이 가진 키워드다. 현실 도피가 나쁜 것이 아니라, 도피 이후에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품은 것이다. 

저자는 지금껏 써내온 소설 작품에서 환상 세계와 심리를 결합한 독창적인 문체로 평가돼 왔다. 미묘한 심리 묘사와 상징적 소재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인간 내면의 불안과 삶에의 갈망을 그려냈다. 이 작품 『호흡과 폭발』도 중편 소설의 응축된 형식으로 독자의 몰입을 끌어올린다. 주인공 유소가 뇌혈관 질환 진단을 받고 삶의 의미를 잃은 상태에서 ‘구멍’을 발견하고 뛰어드는 설정은, 일차적으로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 현실의 압박과 무력감 속에서 선택하는 ‘내적 도피’를 은유한다. 그러나 저자는 구멍은 숨고 싶은 곳이자, 동시에 다시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입구로 만들어낸다. 즉, 도망친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돌아오려는 의지까지 포함한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한다. 


"구멍이었다.

아주, 아주, 아주 까만 구멍.

5년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것이 내가 한때 소중히 여겼던 통기타가 있던 자리에 있었다. 초반에 연습하다 싫증이 나서 그 후로 몇 년을 방치한 기타였다. 조금 전에 기타를 옮긴 건 아저씨여서 나는 그 공간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그저···

그저···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p.212)


저자 : 이유소


환상문학 작가. 2021년 계간 미스터리 〈졸린 여자의 쇼크〉로 등단. 소설집 《우울의 중점》, 앤솔로지 중편 《사일런트 디스코》 《히즈 마이 블러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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