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 절망의 이야기에서 희망의 이야기로 나아가는 길
로냐 폰 부름프자이벨 지음, 유영미 옮김 / 지베르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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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디지털 문화, 특히 AI와 빅데이터를 빼놓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의 시대란 말도 있다. 디지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대량 정보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새로운 이야기로 미래를 그린다. 디지털 문화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십년 전 시작되었다. 발전 속도는 주체인 인간마저 놀랍고,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새로운 소식들은 가치를 판별하지도 못한 채, 선악을 구별하지 못한 채 쌓이고 있다. 21세기는 미래로 가는 가상공간의 세계인 듯한 느낌이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만큼 지구 반대편의 소식도 실시간으로 접하고 영상으로 확인 가능하다. 

현대인들은 대체로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 전까지 뉴스를 확인한다. 책에 따르면 홍수, 산불, 지진, 교통사고, 테러, 전쟁, 팬데믹 등 미디어에는 나쁜 소식들이 넘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 어디에서나 그런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다.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나 전철에서 그런 소식을 접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나 가족과 이를 화두 삼아 대화를 나눈다. 하루 종일 가판대에 놓인 신문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오고, 스마트폰에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온갖 소식들이 날아든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상을 보내든, 어떤 삶을 살아가든 상관없이, 우리 곁에는 늘 뉴스가 함께한다. 대부분 부정적인 뉴스들이다.

이 책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의 저자 로냐 폰 부름프자이벨은 저널리스트이고, 이야기를 사랑하며, 신문을 좋아하는 평범한 기자 출신이다. 독일의 유력지 〈차이트(Die Zeit)〉 편집국 정치부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건너가 2년간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어쩌다 뉴스 읽기를 그만두었는지, 어쩌다 그리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분명 의식적인 결정이었고, 그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만은 똑똑히 기억난다."고 이 책의 첫 문장에 썼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바로 카불에서의 경험과 고민에서부터 비롯된 책이라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하루 24시간을 뉴스 속에서 산 저자가 이젠 신문·방송의 뉴스를 읽지도, 보지도 않는다. 왜? 저자는 자신의 주변 변화를 이 책에 쓰고자 하는 게 아니다. 뉴스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과 관련해 최근 몇 년 동안 알게 된 내용을 다루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에 따르면 뉴스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소식을 이야기로 만들어 전한다. 독자나 시청자들은 뉴스를 읽고, 본 다음 이야기로 기억한다. 저자는 이야기 속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다른 세계를 구경하고,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발견하는 게 좋았다고 말한다. 기자라는 직업을 오랫동안 자부심을 갖고 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다시 땅에 발을 딛고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질 때까지 실컷 이야기 속에 몰입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것을 "마법 같은 일", "마법 같은 시간"이라고 되돌아본다.

저자는 "우리가 읽고, 보고, 듣는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주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접하는 이야기들, 우리가 전달하는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더 많이 우리 삶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경험을 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서도 이야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의미를 만들어내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중략) 표면적이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는 중대한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내리는 거의 모든 결정은 우리가 평소 어떤 뉴스를 접하고 사는지, 어떤 이야기를 소비하고 사는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p.13~14)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전쟁과 갈등, 재난과 위기의 소식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희망은 없다’는 무력감과 냉소주의가 우리의 세계관을 잠식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책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킨다. 개별적인 이야기 하나하나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모여 신념을 형성한다. 신념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한다. 우리의 의사결정에도,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념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도 신념이며, ‘모든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거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라면 이룰 수 있다’는 것도 신념이다. 신념은 종종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믿으면, 일상에서 그 믿음에 부합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고, 이에 따라 그 믿음이 세계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신념은 변화될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이야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신념도 변화시킬 수 있다.

세계의 석학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지배적인 종이 된 가장 큰 이유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꼽았다. 인간은 역사 이전 시대부터 이미 이야기를 만들고, 전파하고, 공유함으로써 연대하고 결속했다. 이야기는 인간 개개인의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집단의 규율이 되고,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었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위해 굳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차원, 종의 역사의 차원까지 확장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갓 태어나 인간으로서 삶을 시작한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스스로 이야기가 되고, 그런 숱한 이야기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개인으로서, 집단으로서 삶의 서사를 형성해 나간다. 인간의 삶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바로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전파하는 일을 하는 저널리스트다. 그는 이야기를 쓰고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그건 바로 우리가 ‘부정적이기만 한 이야기’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렇듯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넘쳐날 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나 믿음을 접은 채,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든다고 지적한다. 부정 일변도의 이야기가 개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지를 깨달은 저자는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당신은 우리의 미래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길 원하는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고 소비하며, 또 어떤 이야기를 재생산할 것인가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가 된다. 이는 미셸 푸코가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논했듯, ‘이야기’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를 넘어 권력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야기 주체’로서의 자각을 촉구한다. 수동적인 정보 수용자가 아닌, 자신의 삶과 세상의 서사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라고 강조한다. 심리학자 조디 잭슨이 말한 것처럼 ‘당신이 읽는 것이 바로 당신’이며, SNS와 유튜브 시대에 적용한다면 ‘당신이 보는 것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고, 신념을 형성하고, 이에 기초한 행동에도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이야기는 무엇인가. 저널리스트로서 저자가 이 화두를 틀어쥐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수십 년째 전쟁의 참화 속에 놓여 있던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에 나서면서부터다. 아프가니스탄의 사정은 분명 좋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테러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전쟁 이후 가난에 허덕이던 어느 가족은 온 식구들이 마약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 저자가 본 것은 참혹한 현실만은 아니었다. 거기서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고, 바깥세상에서 고개를 외로 꼬고 보듯 오로지 절망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일상을 살아가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소재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절망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소위 ‘이야깃거리’가 되고 ‘기사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체로 ‘나쁜’ 뉴스, ‘부정적인’ 소식에 귀 기울일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부정적인 뉴스의 전파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이런 경향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불안해지면, 두려움을 더 불러일으키는 정보를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벼운 감기나 바이러스성 위장염을 겪으면서도, 혹시 암은 아닐까, 심근경색 전조 증상은 아닐까, 다른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건 아닐까 의심한다. 저자는 자신도 카불에서 그런 순간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테러가 벌어진 뒤, 관련 뉴스들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온 도시가 테러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부정 일변도의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가장 문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에 빠지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그것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든,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든, 혹은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이야기이든 간에, 세상이 얼마나 나쁘고 절망적인 상황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변화와 진보에 대한 의지를 다져야 할 자리에 냉담함과 무관심이 자리 잡게 된다. 어차피 모든 것이 나빠지고 있는데, 굳이 변화를 위해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소설가 엘리프 샤팍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번개처럼 빠르고 광범위하게 야만적인 폭력이 발생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꼭 더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해지거나 악해질 필요는 없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무감각해지기만 하면 된다. 무관심하고, 고립되고, 파편화된 채 자기 삶에만 너무 골몰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상태가 될 때,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고 전혀 관여하지 않는 상태가 될 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감정의 결여는 모든 감정 중 가장 위험한 감정이다.” 나쁜 소식, 부정적인 이야기에 길들여진 개인들의 집단적 무관심과 냉담함이 가장 위험하다는 얘기다.


저자는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비관주의’를 넘어, 실은 점점 나아져 왔으며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낙관주의’로의 전환을 주문한다. 이와 함께 낙관주의는 비현실적 몽상이 아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현실 부정을 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작금의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우리가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관주의는 미래가 과거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낙관주의는 아무 생각 없이 양지의 아늑한 벤치에 팔짱을 끼고 앉아, 어차피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안이한 믿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낙관주의는 모든 일에 우리의 행동이 중요하며, 우리가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곧장 포기하느냐,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 인간 사회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우리가 속한 사회를 어떤 이야기로 채워 나가느냐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리의 지금을, 우리의 미래를, 절망과 비관의 이야기로 단정 짓지 말고, 희망의 이야기로 만들어 나가자고 말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저자 : 로냐 폰 부름프자이벨(Ronja von Wurmb-Seibel)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며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기도 한 저자는 〈차이트Die Zeit〉 편집국 정치부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건너가 2년간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바로 카불에서의 경험과 고민에서부터 비롯된 책으로, 출간 직후 독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는 매일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갖가지 소식들과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산다. 저널리스트로서 저자가 다룬 ‘뉴스’ 역시 그런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어우러진 인간 존재의 삶 그 자체가 이야기이며, 우리가 읽고, 듣고, 보며 전파하는 뉴스들 역시 삶의 이야기들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최근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는 이야기들이 온통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색채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많은 매체들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부정적이기만 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열을 올린다. 저자는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나쁜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제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이야기 말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역자 : 유영미


연세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동 도서에서부터 인문, 교양과학, 사회과학, 에세이, 기독교 도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더 클럽』, 『삶이라는 동물원』, 『안녕히 주무셨어요?』, 『부분과 전체』, 『소행성 적인가 친구인가』, 『지금 지구에 소행성이 돌진해 온다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감정 사용 설명서』, 『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 『내 몸에 이로운 식사를 하고 있습니까?』,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여자와 책』, 『평정심, 나를 지켜내는 힘』,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등이 있다. 2001년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 로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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