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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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처럼 지내기로 결심했다."(p.10)

이 소설 작품 『젊음의 나라』의 첫 문장이다. 저자 손원평은 이미 한국문단에선 중견 작가에 속할 만큼 역량을 보인 몇 작품이 평단의 호평을 끌어냈다. 이번 작품은 미래 한국, 저출생 고령화가 현실이 된 ‘노인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건강한 '젊음'이 제대로 안녕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저자의 질문이다. 사실 이 소설은 근미래의 판타지 소설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을 반영해 썼을 뿐 작품 시점은 근미래라는 이야기다. 더 쉽게 표현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회 부조리나 사람들의 '부'에 대한 인식은 자본주의의 끝까지 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고령화, 저출생, AI의 일상화, 급격한 기술 발전, 극단적 혐오와 차별, 늘어나는 외국인 이민자, 존엄사 등-가 현실이 된 미래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주인공 유나라의 1년 간의 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저출생 고령화의 여파로 노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미래 한국. 스물 아홉의 주인공 나라는 자기보다 더 젊은 사람들과 기계에게 대체되는 삶이 버겁다. 몇 안 되는 좁은 인간관계도 순탄치 못하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는 단 3분의 통화도 어색한 사이이고, 룸메이트 엘리야는 이주 2세대라는 ‘공인된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무기 삼아 나라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외로운 현실 속에서 나라는 유년 시절의 빛이었으나, 이제는 연락조차 닿지 않는 민아 이모의 행방을 늘 궁금해한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게도 꿈은 있다. 바로 시카모어 섬에 정식으로 입도해 배우가 되는 것이다. 카밀리아 레드너라는 묘한 인물이 주축이 되어 남태평양 어딘가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시카모어 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퍼 리치 시니어들이 호화로운 서비스를 누리며 노후를 보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젊은이들 역시 만족스러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유토피아다.


그러나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이야기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딘가 꼭 존재해야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동시에 반드시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p.289)

어느 날 나라에게 우연히 나라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국내 최대의 노인 복지 시설인 유카시엘에 채용되는 것이다. 유카시엘은 시카모어 섬과 업무 협약을 맺고 있어, 유카시엘에서의 경력은 시카모어 섬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유카시엘에 상담사로 들어가 다양한 시니어를 만나게 되는 나라. 과연 그녀는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 희망의 섬 시카모어에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소설 『젊음의 나라』는 인구 노령화가 현실이 된 미래 한국을 그리고 있다. 절대다수의 노인과 소수 그룹인 청년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다. 재력이 차고 넘치는 전 세계의 기업가나 셀럽들은 카밀리아 레드너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남태평양의 시카모어 섬에서 젊은이들의 특급 대우를 받으며 꿈같은 말년을 보낸다. 대한민국의 경우 대부분의 노인들이 정부 지정 업체인 민간 재단 유카시엘에서 운영하는 수용 시설에 들어간다. 유카시엘은 유닛 A부터 F까지 등급이 매겨져 운영되며, 각 유닛에 합당한 재력을 갖춰야 입소할 수 있다. 특히 유닛 F의 노인들은 노동의 의무를 져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퇴출된다. 물론 이러한 노인 수용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를 알아서 건사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노인과 대비되는 청년층의 삶도 이 소설에서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포인트다. 


죽음의 시점을 미리 예약하지 않고 삶이 허락한 만큼 살다 가겠다는 노인들을 비난의 눈초리로 보는 시선이 팽배해졌다. 속된 말로 ‘빨리빨리 죽어버리지, 왜 살아있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노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p.180)


불안한 오늘날의 청춘들과 많이 닮아 있는 나라, 노인 요양 병원의 간호사이면서 노인 혐오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주민 2세대 엘리야, 고액 연봉을 받으며 선택사(신원이 확실하고 재력이 충분한 노인들에게 합법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한 제도)를 시행하는 엘리트 의사 재희, 남북 개방 후 북에서 내려온 불법 선택사 브로커 수현까지. 노인의,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이 소설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세대 간의 대립 뿐 아니라, 가족간의 관계도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스물 아홉의 나라에게 가족은 사이가 어색한 엄마 뿐이지만, 어린 시절 나라에게는 배우라는 꿈을 갖게 해주고 세상을 알게 해준 ‘알리콘(날개 달린 유니콘)’ 같은 민아 이모가 있었다. 민아 이모와 나라, 나라의 엄마인 유진은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나눈다. 그러나 진짜 가족인 아빠가 나타나면서 일종의 유사 가족원이었던 민아 이모는 자취를 감춘다.

이 소설 『젊음의 나라』는 가족이 무엇인지를 묻고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짚으며, 진실한 관계의 회복이 미래 사회에 직면하게 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시대를 초월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족 간의 갈등과 극복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소설은 고령화가 극단으로 치달은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현재 존엄사나 안락사로 불리고 있는 ‘선택사’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는 미래의 선택사 제도가,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을 보장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효율과 비용 절감을 위해 설계된 것임을 암시한다. 

과연 인간의 죽음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그 안에서 선택이라는 이름의 권한을 주는 일이 진정한 존엄일 수 있을까? 『젊음의 나라』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보다 불편한 구조를 낱낱이 드러내 보임으로써 독자 스스로가 윤리적 판단과 성찰의 장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선택사를 단지 미래 사회의 가상 설정 가운데 하나가 아닌 현실과 관련지어 깊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나라로 하여금 유카시엘의 모든 유닛을 경험하게 한다. 이는 노인에 대한 나라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나라가 얼마나, 어떻게 각성했는지 시카모어 섬의 채용 면접에서 나라의 입을 통해 직접 털어놓게 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준다. 저자의 의도된 서술과 유기적 구성을 통해 독자들은 나라의 고백으로 노인과 청년의 세대 갈등, 나아가 인간 대 기술, 자국민 대 이주민,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계급 갈등 같은 사회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 뿐만 아니라 설령 디스토피아적 색채가 짙은 미래일지라도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말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젊음의 나라'는 완전한 낙원이 아닌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으로서의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작품 속 시카모어 섬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지만,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어우러져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상’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즉, 시카모어 섬은 분명히 불완전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인간을 돌보는 방식, 타인을 향한 연대, 예술, 그리고 꿈이 존재한다. 작가는 작품 속 유토피아를 완성형으로 제시하지 않고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둠으로써, 불완전함 속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한때는 모든 것을 지우고 그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뿌리가 이곳에 단단하게 박혀있음을 안다. 그러니까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가지를 뻗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이 아름다울지 추악할지, 내 선택이 다행스러울지 후회로 남을지 모르지만.(p.283~284)



『젊음의 나라』는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내면의 고백과 외부 세계에 대한 관찰을 교차시키는 서사적 실험을 감행한다. 일기라는 장치는 작품에 일관된 시간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로 나라의 감춰지지 않는 내면을 독자와 직접 접촉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나라가 날마다 기록하는 일상은 단순히 개인적 감정을 토로하는 공간을 넘어 한 청년이 겪는 시대적 단면의 기록으로 발전한다. 다시 말해, 나라의 고단한 현실이 피로감이나 환멸의 정서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향한 간절한 희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라의 일기는 점차 일종의 증언이 돼간다. 이에 따라 청년 세대가 감내하는 노동의 불안정, 기계에 대체되는 인간, 가족이나 세대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각성은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공감하고 유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 손원평의 소설은 사회적 부조리나 한계에 대해 "위로보다는 응원"을 보여준다. 『젊음의 나라』가 노인과 젊은이들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갈등과 부조리한 삶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 방향을 제시한다. 삶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위로보다는 응원으로 좀 더 활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동력을 주는 것이다. 

저자의 전작 『튜브』에는 계속된 사업 실패에 이어 자살 시도마저 실패한 남자가 등장한다. 한 번은 너무 추워서, 한 번은 어이없는 실수로 죽지 못한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삶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은 무엇일까. 손원평 저자는 일면식 없는 무명의 누군가를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위로는 다시 일어날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응원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죠." 나락으로 떨어진 젊은이의 재기의 결심, 새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용기를 준다. 독자의 귀에 아직도 생생한 저자의 말은 이 소설 『젊음의 나라』에서도 계속된다. 젊은이들을 향한 응원은 활기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독려하는 것과 같다. 그가 제시하는 사회 비평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메시지다.


응원과 용기라는 작품의 특징은 저자를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 작가로 일약 스타덤에 올린 첫 작품 『아몬드』에서부터 이미 내재돼 있다. 『아몬드』는 감정이 없는 소년이 겪는 우정, 성장, 사랑, 인류애를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지니고 있는 ‘감정’이라는 소통의 도구가 얼마나 버겁고 동시에 소중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윤재가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을 거쳐 여러 명의 등장인물, 심박사, 곤이, 도라와 이어져가며 성장하는 여정은 얼어붙은 독자의 마음을 녹이고 공감의 따뜻함을 되새기며 독자의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 것이다.

감정 없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끄는 윤재의 독백 안에서, 독자는 윤재가 느껴야 할 오만가지 감정을 대신 느끼게 된다. 감정의 무게와 오묘함, 성장의 아픔과 경이로움 등이 휘몰아치는 서사 안에서 독자를 압도하며, 현실에서라면 다만 문제아이자 피하고 싶은 두 소년인 윤재와 곤이를 독자는 오롯이 이해하고 바라보게 된다. 감정이 없기에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자라 나가는 윤재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쌉쌀하고 달콤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느끼며 감동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예언서다! (중략) 소설 속 미래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상 현실을 담고 있지만 놀라우리만큼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다. 현재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변화가 지속될 경우, 더 자라난 우리의 자녀 세대가 살게 될 가능성이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를 통찰하고 비판하는 사람이다. 파국을 외치는 자신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져서 현재가 바뀌고 미래에 대한 자신의 예언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이 소설은 예언서로 다가온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추천사〉는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는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저자 : 손원평(孫元平)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2001년 제6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고, 2006년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너의 의미」 등 다수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첫 장편소설 『아몬드』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여 등단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아몬드』 『서른의 반격』으로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했다. 이외 장편소설 『프리즘』, 소설집 『타인의 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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