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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
대릴 샤프 지음, 고혜경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7월
평점 :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은 카를 구스타프 융이 사용한 용어와 개념어만을 모아 정리한 사전이다. 국내 최초의 사전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중에 널리 쓰이는 MBTI 모델의 원형이 되는 유형학을 제시한 융이 다루는 핵심 용어를 융 전집에서 직접 발췌한 원문과 함께 소개한다. 무의식, 자아,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자기(self) 등 융의 주요 개념들을 융이 직접 전하는 목소리로 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융의 사유와 개념의 맥락을 체감할 수 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지금까지 심리학 전반을 다룬 사전은 있었지만, 융의 개념어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원문과 함께 해설한 작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사전의 형식을 취했지만 단순한 정의에 그치지 않고, 각 개념어는 융이 실제로 사용한 서술과 맥락 속에서 개념을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밝힌다. 이 책은 내면으로 눈을 돌려 자기탐색의 영역을 무의식으로 확장하려는 이들에게, 융이 그린 ‘영혼의 지도’를 펼쳐 보일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융의 실제 서술을 그대로 담고 있어 융 심리학 입문자는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신뢰할 만한 자료가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고형, 감정형, 감각형, 직관형 등 유형 이론, 내향형과 외향형이라는 성격의 특성을 설명하는 융의 실제 문장을 확인할 수 있어, MBTI의 뿌리를 이해하려는 일반 독자에게도 지적 흥미를 채워줄 것이는 소감을 말하고 있다.
독자들이 사전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카를 융의 저서와 이론, 생애까지도 두루 살펴볼 이유가 있다. 특히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의 친소(親疏) 관계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에 앞서 저자 대릴 샤프의 〈서문〉이 중요할 것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의 심리학에 대한 체계적인 요약은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30여 년간 융의 아이디어를 수천의 사람들이 설명하고, 탐색하고, 확충해서 다양한 결실을 보았다. 『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은 독자들에게 원출처가 어디인지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융이 사용했던 관련 용어들과 그 개념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였다. 융의 『전집』을 중심으로 엄선, 발췌했으며, 다른 저자들에 대한 참고문헌은 없다. 이 사전은 융의 견해를 비판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풍요로운 융의 사고에 대한 지침이자 융의 관심삳르의 광범위한 범위와 상호 관련성에 대한 해설서다."(p.8)

카를 구스타프 융은 스위스 정신과 의사이며,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이다. 일찍이 단어연상 검사 연구로 콤플렉스의 개념을 정립했고,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한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나 그의 '성욕 중심설'에 이의를 제기하여 독자적인 학설을 내세워 분석심리학이라 불렀다. 여기에서 집단무의식이론이 나왔는데, 이 개념은 원형이론과 결합되어 종교심리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융의 업적은 오늘날 심리학뿐 아니라 종교와 문학 등 인문 전 분야의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4년본 『해외저자사전』에 따르면 1895년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정신과 개원의 중 한 명이었던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를 발표하고 1900년 『꿈의 해석』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프로이트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정신분석 사례를 토론하거나, 문학작품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는 모임인 〈수요회〉를 결성했다. 정신과 의사뿐 아니라 루 살로메 등의 문화예술인들까지 참여하면서 수요회는 점점 더 활성화되었다.
어느덧 정신분석은 유럽 전역으로 조금씩 퍼져나가며 중요한 학문이자 치료법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학의 지지자가 되거나 제자가 되었다. 칼 아브라함, 알프레드 아들러, 산도르 페렌치 등이 핵심 멤버였다. 하지만 빈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이트의 모임은 유럽 전역을 아우르지 못했고, 대부분의 멤버들이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소수민족인 유대인었다. 이것이 정신분석학 발전의 한계로 작용할 것을 절감한 프로이트는 적극적으로 외연을 넓히고자 했다.
이때 스위스 정신과 의사 카를 구스타프 융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프로이트보다 스무 살 정도 어리고 스위스 출신에, 목사의 아들이며, 무엇보다도 유대인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가장 유명한 정신과 의사 중 한 명인 오이겐 블로일러가 운영하는 〈부르크휠츨리〉라는 명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융은 1906년 프로이트의 자유연상이론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어연상검사를 개발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구름’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단어를 말하는데,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때 만일 ‘하늘’이라고 답한다면 자극이 된 ‘구름’을 듣고 대답하기까지의 시간차를 정교하게 측정한다.

너무 빠르거나 늦게 대답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와 무의식적 콤플렉스가 연관이 있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었다. 정신분석이 비과학적이고 지나치게 성(性)에 집착한다고 비판받았던 프로이트에게 융의 단어연상검사는 가뭄에 단비와 같았을 것으로 추론된다. 프로이트는 제자 아브라함에게 “융의 지지가 훨씬 귀중하네. 오로지 그가 나타났기 때문에 정신분석이 유대인의 민족적 관심사가 될 위험에서 벗어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융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고 융도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등한 자격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처럼 교수님과 우정을 나눌 수 있게 해주실 것”을 요청하는 등 프로이트의 제자가 되어 더욱 친근하고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을 기꺼이 여겼다. 프로이트는 1911년 국제정신분석학회를 처음 발족하면서 초대 회장으로 융을 선출할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 지시했다. 즉, 공식적으로 융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프로이트의 생각대로 되는 듯했다. 사람들은 정신분석을 신기해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빈 출신 유대인의 비기(秘技)로 인식되던 정신분석이 유럽 전체에서 받아들여졌고, 미국에서 프로이트는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정신의학에서 정신분석의 비중이 더욱 커지면서 제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스승의 이론에 의구심을 가지며 자기만의 깃발을 세우고 싶다는 야심을 갖게 되는 이들이 나왔다. 그 첫 번째 인물이 아들러였다.
아들러는 187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헝가리계 유대인이었다. 빈 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되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모임의 초기 멤버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기에 은연중에 빈에서는 2인자로 인정받았다. 1902년에 매주 수요일 저녁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 관심있는 지인들과 함께 토론을 하는 모임으로 시작한 수요회가 1908년 정식으로 빈 정신분석학회로 발족하면서 초대 회장을 맡았다. 프로이트도 아들러를 아껴서 1906년 아들러가 처음으로 발표한 「신경증의 심리학적 근거」에 대한 논문이 자신의 이론과 차이가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 책의 역자 고혜경은 신화학자이자 꿈 분석가로, 강단에서 꿈과 융 심리학 그리고 개인의 신화와 집단의 꿈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이번 번역작업을 통해 융이 다루는 각 개념어의 맥락을 확인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거쳤다. 역자 고혜경은 〈역자 서문〉을 통해 융을 ‘진정한 영웅’이라 평가한다. “아무도 탐색하지 않은 세상을 먼저 탐험하고 그 세계를 탐색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다. 융은 중년의 위기 상황에서 눈을 내면으로 돌려 무려 16년간의 고독하고 지난한 실험을 자기 자신에게 감행함으로써 인간의 심층을 탐구했다. 융은 현대인이 각종 신경증과 정신병으로 시달리는 이유는 무의식과 단절했기 때문이라 진단하며, 무의식을 탐색해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담아 현대인을 위한 ‘영혼의 지도’를 선사했다.
〈역자 서문〉에 따르면 융은 인간의 심층은 개인적인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조상과 역사의 무게라는 것을 인식한다. 아울러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 집단 무의식, 원형, 개성화 이론이 이렇게 탐색하던 중에 잉태되었다. 이후 융의 삶은 이 시기에 경험한 내용을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체계화시키는 것으로 채워졌다. 융은 현대인이 각종 신경증과 정신병으로 시달리는 이유를 한마디로 무의식과의 단절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무의식에 접근하여 탐색하고 통합하는 과업이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시대적인 미션으로 대두된 이 시점에서 융의 삶은 현대인에게 모델이 되어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융이 저서에서 사용한 단어 중 자주 거론되던 아니마(Anima)에 대해 살펴본다. 책에서 아니마는 '남성 내면의 여성적인 측면'이란 뜻으로 풀이한다. "아니마는 남성의 정신에 있는 개인적 콤플렉스이자 여성에 관한 원형 이미지다. 모든 사내아이에게서 새롭게 구현되는 무의식의 요소이고, 투사가 일어나도록 하는 원인이다. 처음에 아니마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일시되고, 이후 다른 여성들 사이에서 경험될 뿐 아니라 남성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p.28)
저자 대릴 샤프는 이 용어의 출전을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란 저작물에서 찾는다. 이 저작물에서 "아니마는 생명 자체의 원형이다."라고 적혀 있다. 아니마의 해석은 이 책의 일곱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다.

현대인은 각자가 속한 공동체나 조직 안에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다. 심리를 통해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심리학과 MBTI에 대중적 관심도 높아진다. 불안, 정체성, 관계, 트라우마 등의 주제는 이제 일상에 자연히 녹아들어, 심리학은 삶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MBTI가 대중에게 친숙해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원형인 융 심리학은 어렵다. 이 책은 이러한 틈을 메우고자 융이 사용한 개념어를 중점적으로 선별해 융의 전집에 등장하는 맥락 속에서 용어를 독자가 직접 체감하도록 구성했다.
"기능 유형은 사고형, 감정형, 감각형, 직관형이라 부를 수 있는데, 기본 기능의 특질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즉 합리적인 유형과 비합리적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사고형과 감정형은 전자에 속하고 감각형과 직관형은 후자에 속한다. 이는 리비도의 움직임에 대한 지배적인 경향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더 나눌 수 있는데, 바로 내향형과 외향형이다."(p.255) - 「정의」 《전집》 6권
이 책은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편찬한 볼링겐 시리즈 중 융의 《전집》 20권을 기반으로 개념어를 정리했다. 각 항목에는 해당 개념이 등장하는 융의 원문을 직접 인용했다. 해당 부분의 출처는 미주에 모두 실었으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각 전집에 실린 글 제목을 번역해 해당 부분을 찾기 쉽도록 안내했다. 또한 출처에 실린 책은 참고문헌 목록으로 정리해 융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또한 번역어가 주는 왜곡을 피하고자 용어를 싣는 순서 역시 원전을 따라 ‘가나다’ 순이 아닌 알파벳 순으로 실었다. 예를 들어 ‘Adaption(적응)’은 다음과 같은 융의 문장이 실렸다.
"[개성화를] 목적으로 삼기 전에 최소로 필요한 집단 규범에 적응하는 교육적 목표가 먼저 성취되어야 한다. 식물이 고유한 본성을 만개하려면, 먼저 씨앗이 파종된 토양에서 자랄 수 있어야 한다. - 「정의」 《전집》 14권
생명의 영속적 흐름은 거듭 새로운 적응이 필요하다. 적응은 결코 한 번에, 그리고 전부 달성되지는 않는다."(p.22) 「초월적 기능」 《전집》 6권

Persona 페르소나
용어가 암시하듯, 페르소나는 단지 집단적 정신의 가면일 뿐이다. 개성을 가장하는 가면을 쓰고 자신과 타인에게 개인이라고 믿게 만들지만, 실상 당사자는 단순히 집단정신이 말하는 역할을 연기할 뿐이다. 페르소나를 분석할 때 우리는 가면을 벗겨내고, 개인적으로 보였던 것이 실제로는 집단적이었음을 발견한다. 바꿔 말해, 페르소나는 집단정신의 가면일 뿐이었다. 본질적으로 페르소나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 할지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타협한 결과물이다. 사람은 이름을 갖고, 직위를 얻고, 특정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러저러하게 보이는 인물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어떤 면에서는 실제일 수 있지만, 본질적인 개성을 기준으로 보면 부차적인 현실일 뿐이다. 또한 이렇게 타협하는 과정에서 종종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p.181)
Unconscious 무의식
의식은 이성을 방어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며, 무의식의 혼란스러운 삶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길을 걷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는 열린 갈등과 열린 협력을 동시에 의미한다. 결국 인간의 삶은 이러해야 한다. 이는 망치와 모루의 오래된 게임이다. 둘 사이에 인내하는 쇳덩이는 파괴될 수 없는 전체, 즉 ‘개인individual’으로 단련된다.(p.267)
저자 : 대릴 샤프(Daryl Sharp)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업 중인 융 학파의 정신분석가. 융 심리학 책들을 주로 출판하는 이너시티북스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취리히에 있는 칼 융 연구소를 졸업한 그는 융 학파의 분석 방식으로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서로 『비밀스런 까마귀-갈등과 변형』, 『성격의 유형-성격 유형에 대한 융의 모델』 등이 있다.
역자 : 고혜경
신화학 박사이자 그룹 투사 꿈작업가. 현재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꿈과 융 심리학 그리고 개인의 신화와 집단의 꿈을 가르친다. 오클랜드 창조영성대학원에서 제레미 테일러 박사를 만나 꿈 세계를 접한 후 좀 더 깊이 꿈 말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퍼시피카대학원에서 신화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기간 꿈 일기를 작성해오면서 꿈이 가진 놀라운 힘을 느꼈다. 꿈 공부 후 한국에 돌아와 지금까지 그룹 투사 꿈작업과 워크숍을 이끌며 이 땅에 꿈 친구를 늘리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나의 꿈사용법》 《꿈에게 길을 묻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 《꿈이 이끄는 치유의 길》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여신의 언어》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