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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역사 - 소리로 말하고 함께 어울리다
로버트 필립 지음, 이석호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6월
평점 :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책 읽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면서 누구나 예술에 접근한다. 그러나 독자는 독서와 그림에는 약간의 재주를 보였기에 꽤 관심이 있었지만, 음악은 별로 잘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학문과 예술이란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학원 등을 다니면서 따로 배운 사람도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공부'라고 생각하고 익혔을 뿐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예술이란 말의 이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이어서 그 선생님과 꽤 친했고, 독자가 그린 그림을 칭찬해 주시는 덕에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이 혼자 학교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옆에서 그림 그리시는 모습을 보고 그림을 조금 더 익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음악·미술·문학 등 분야별로 나뉘어 각 담당 선생님에게 각각 따로 배우면서 '예술'의 개념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음악만은 집안 분위기 때문(독자의 부모님은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노래 부르시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것 같다)인지 노래 부르는 것은 늘 친구들에 비해 뒤떨어졌다. 교실에서 합창을 할 때도 입만 달싹거릴 뿐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 씁쓸한 기억도 있다. 독자와 음악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어울릴 때 자리는 지키지만 스스로 나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잘 다루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음악 시간(1학년 때 주 1시간)에 5곡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합창하면서 부르다 보니 조금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2~3학년 때 대학입시를 위해 음악·미술 시간이 빠지는 바람에 다시 멀어지게 됐다. 이처럼 고1때 클래식이라는 서양 음악을 몇 곡 배워 부를 줄 알게 된 것은 대학과 사회에서 매우 유용했다. 서양 음악 몇 곡을 알고 있는 것은 사회 생활에서는 또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젊은 시절엔 유행가를 누구나 듣고 또 부르기도 한다. 유난히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기타를 다룰 줄 알았다. 그러나 친구들과 부르는 노래는 모두 유행가이지 '성악'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즉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술 전공이 아닌 사람이 친구들과 음악을 접하는 것은 대개 대중 음악이다. 고1때 배웠던 5곡의 서양 음악을 안 것은 개인적인 품격을 높여주는 좋은 판단 요소로 작용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세계적 화가나 음악가에 대한 책을 가끔 읽었지만 체계적으로 읽지는 않았다. 몇 권 읽었다고 예술의 역사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서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었다. 이때 온라인 서점가에 음악, 미술, 문학 책과 정신의학, 심리학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로 화가의 생애나 작품의 해설 등이 많았다. 또 작곡가도 마찬가지다. 가끔 '서양 미술사'나 '서양 음악사'에 대한 책이 있었지만 독자로서는 거기까지 수준을 높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예술 관련 구매한 책이 권수가 한 권, 두 권 늘어가면서 클래식 해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이때는 클래식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읽고 듣다 보니 위대한 음악가들을 다룬 책은 무척 재미가 있었다. 그들의 생애와 작품은 세계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물론 미술이나 문학도 마찬가지다.
이 책 『음악의 역사』는 세계의 음악사를 의미한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이 책은 음악의 기원부터 현대 음악까지 다룬다. 특히 우리가 말하는 클래식은 물론, 재즈와 록, 힙합, 케이팝 등 대중 음악까지도 모두 망라한다. 음악 이야기를 모두 40장(章)에 걸쳐 다루고 있다. 저자 로버트 필립은 1장 「음악의 '무엇'과 '왜'」에서 '음악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음악'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우리는 어머니 자궁 안에서부터 이미 음악의 여러 요소를 처음 접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도 태내 15주 무렵부터 듣기 시작한다. 어머니 배 속에 든 아기의 삶을 지배하는 소리는 어머니의 심장이 튀는 소리다. 어머니가 숨 쉬는 소리와 더불어 어머니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언제나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언제나 진행 중인,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활동량에 따라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두 가지 리듬을 인식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대부분이 어떠한 종류는 리듬감을 갖고 태어나는 것도 놀랍게 여길 일은 아니다."(p.13~14)
이어 저자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음악은 어떤 힘을 갖고 있을까?를 묻는다. 이렇게 시작한 '음악의 역사'는 세계 각지의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악기와 음악 전통의 특징,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음악의 변화 등으로 확대해 나아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형태를 둘러싼 궁금증은 무척 다양하고 그 범위가 방대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음악의 역사를,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려 정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지역과 인물, 형태, 악기, 장르 등을 넘나들면서 세계 음악의 역사를 간결하고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이 책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전통음악부터 중세 성가,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그리고 힙합, 케이팝 같은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변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 ① 여러 역사적 사건과 시대 상황이 음악의 발전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② 유명 작곡가들의 삶과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③ 현대의 음악 장르와 그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등을 분석하고 가늠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전 세계의 청년 인구 중 10억 명 이상이 헤드폰과 콘서트장에서 접하는 시끄러운 팝 음악 때문에 심대한 청력 상실을 겪을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 오늘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늘 자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각종 방송매체를 비롯해 매장과 커피숍, 길거리 등 어디를 가도 음악 소리가 들려오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인들은 너무 고요하면 오히려 불안해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리듬이 빠른 노래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들썩인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에 대해 역자 이석호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중류의 음악사 입문서를 읽고 접해보았지만, 로버트 필립이 쓴 이 책이 유독 빛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비유럽권 음악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 미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특별히 반가울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시장에는제목에 '음악사' 운운해놓고 정작 책장을 펴보면 내용은 '서양 음악의 역사' 혹은 '유럽 음악의 역사'인 책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역적으로 아프리카 대륙, 아랍 문명권, 인도, 동아시아 음악뿐만 아니라, 장르 면에서도 클래식과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록과 재즈, 케이팝까지 흡수합니다."(p.399)

이와 관련 저자가 주목한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 세기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연속성과 문화 간 교류이다. 아랍-이슬람 세계의 마캄, 인도 음악의 라가와 탈라, 중국의 편종과 금(琴),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아프리카의 폴리포니 등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 전통이 다른 지역으로 어떻게 전파되거나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이 책은 아메리카와 유럽 음악의 전통과 변화 양상을 살피는데, 특히 지중해 주변 문화권과 종교적 영향, 그리고 규칙에 따라 기호로 악곡을 기록하는 기보법이 발전하면서 유럽 음악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책에 따르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열강이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의 찬송가와 아프리카의 노래 및 춤이 뒤섞여 새로운 문화적 혼종 장르로 발현될 기회도 생겨났다. 이는 훗날 형식에 얽매인 유럽 음악의 주도면밀함을 버리고 대중음악에 좀 더 가까워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이탈리아에서 악기 반주에 맞춰 시를 즉흥적으로 노래로 바꿔 부르는 오페라(극음악)가 성장하여 독일과 영국으로 퍼져나가며, 여러 악기가 개량되고 전문 연주자가 등장하면서 오케스트라라고 부름직한 최초의 앙상블이 구성된다.
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는 음악가와 관객의 관계, 그리고 음악에 자금을 대는 방식이 크게 변화한 시기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본주의와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후 교회의 권력이 약화되었고, 음악가들은 귀족 궁정을 비롯해 교회 담장 바깥의 후원자를 물색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상인 계급과 전문 직업인 계층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극장과 연주회장이 늘어났다. 이러한 사회 변화의 바람을 타고 오페라계에는 스타 성악가가 등장했고 카스트라토라는 남성 소프라노까지 양성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이는 변성기에 접어든 노래 잘하는 소년을 거세해 고음역 목소리를 간직한 채로 성인이 되게 하는 잔인한 과정이었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새로운 악기의 등장과 발전, 그리고 기악 레퍼토리의 증가는 연주회 및 가정 음악의 성장과 함께 18세기 후반을 거쳐 19세기까지 이어졌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공공 행사용 관현악곡의 수요가 꾸준했고, 사사로운 목적을 위한 실내악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 그리고 나중에는 피아노를 위한 독주 건반 레퍼토리도 늘어났다.

저자에 따르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여 음악 산업이 본격화되었다. 상설 오페라 극장과 음악학교가 생겨나고 음악 출판업의 규모도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20세기 들어서는 세계사의 격변, 즉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음악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을 돌려놓았다. 많은 모순과 적대적 견해가 가득한 가운데 해방된 흑인 노예들(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 대중음악 장르가 배태되고 분화되었다. 1900년경 미국과 유럽 전역을 휩쓴 래그타임부터 끈질긴 저항의 느낌을 전달하는 블루스, 약동적이고 즉흥적 연주를 중시하는 재즈까지. 흑인 음악 전통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음악은 저항의 이면에 놓인 분노, 애도, 어리석은 인간의 폭력성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소망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기능했다.
지난 50년간 대중음악의 성장세는 거침이 없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집 안팎에서 언제든 원하는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인터넷의 스트리밍 채널에 자신이 만든 음악을 업로드할 수 있는 시대다. 기업 가치가 수십억 파운드에 달하는 음악 회사들이 생겨났고, 레코딩 아티스트로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구조도 확립되었다. 음악 양식뿐만 아니라 뮤지션도 가지각색인데다 팝 음악을 즐기는 대중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오늘날의 음악계를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것도 당연하다. 전 세계의 문화가 서양 클래식, 재즈, 팝 음악과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어우러지고 교류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건축되고 있으며, 중국부터 베네수엘라까지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서양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있다. 음악 페스티벌은 전 세계 모든 대륙 출신의 뮤지션들을 초빙하는 것이 기본값이며, 여러 문화권 출신의 뮤지션들이 서양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도 일상화되었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음악을 만들어왔고,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낼 방법을 탐구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건강과 안녕의 본질적인 요소인 음악은 인간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근본적인 형식이길 멈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저자는 이에 따라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음악은 늘 우리와 함께 진화해나갈 것이라고 역설한다.

28장 「가정에서, 해외에서 연주하는 여인들」에서 저자는 음악 활동에서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꺼내든다. 독자가 서양 음악에서 여성들은 왜 위대한 음악가와 미술가들은 이름이 별로 없을까?라고 의문을 가진 부분에 대한 답이 나온다. 이 장에서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집단에서는 남성이 전통적인 노래와 연주를 맡고 여성은 애가(哀歌)를 불렀다고 구분한다. 15세기에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여성들은 신분이 높은 빈객을 접대하기 위해 노래를 하고 오르간을 연주했다고 한다. 당시 부유한 상인들도 딸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쳤는데, 단순히 여흥과 교육 차원뿐만 아니라 남편감을 구하는 데 음악이 도움되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음악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이를 표적 삼아 음악의 잠재적 위험성을 논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 : 로버트 필립(Robert Philip)
음악가이자 작가. BBC 예술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선임 교수로서 다년간 오픈 대학교와 함께 일해왔다. BBC의 제3라디오와 월드 서비스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면서 진행까지 맡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코렐리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작곡가 68명의 400곡을 흥미롭게 분석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관현악곡 안내서(The Classical Music Lover’s Companion to Orchestral Music)], 20세기 초의 음악 공연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탐구한 [초기 녹음과 음악 양식(Early Recordings and Musical Style)], 오케스트라 음악에 대한 서사시적 연구서인 [녹음 시대의 음악 연주(Performing Music in the Age of Recording)] 등이 있다.
역자 : 이석호
보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뒤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옮긴 책으로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슈베르트 평전』, 『스타인웨이 만들기』, 『라흐마니노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