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저널리즘 리얼리즘』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이란 표제어를 수식하는 문구와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이라는 부제로 앞뒤로 달려 있어 무엇을 이야기하는 책인지 다소 헷갈리게 한다. 핵심어는 '저널리즘'이겠지만 '리얼리즘'이란 단어를 붙여 저널리즘과 리얼리즘의 관계를 먼저 풀어보려는 의도일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수식하는 문구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이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한데 묶어 모호하게 한다. 기자 경력 20여 년의 현직 사회부장으로서 제목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는 저자 김정훈은 왜 혼란스러운 제목의 책을 썼을까? 자칫 제목만 보아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과 분리될 수 없는 당신에게」란 제목의 〈서문〉을 여는 순간 '저널리즘'을 말하기 위한 책이라는 걸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저널리즘을 내건 이 책이 당신에게 닿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저널리즘을 폄하하고, 특히 레거시 미디어*를 외면하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갈수록 뉴스를 믿지 않습니다. 뉴스를 만드는 기자는 조롱받기 일쑤이지요. 권력 놀음을 했던 흑역사가 있었으니, 언론의 침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면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언론이 왜소해지는 현실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전면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테니까요. 이미 우리 사회에 건전한 토론이 사라져 가고 있고, 민주주의도 힘을 잃어 갑니다. 이대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 보면 끔찍합니다. 모두가 정의를 얘기하지만, 종국엔 그 모두가 정의롭지 않게 되는 세상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생각을 하면 참담합니다."(p.9)
* 레거시(L egacy) 미디어 : 웹 기반의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에 견줘 전통적 미디어인 TV, 라디오, 신문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 레거시는 정보 시스템에서 낡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새로 제안하는 방식이나 기술을 부각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즉 레거시 미디어는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지만, 과거에 출시되었거나 개발된 오래된 대중매체를 지칭한다.(시사상식사전)

느닷없는 비상계엄령으로 전 국민을 불안과 공포를 몰아넣은 윤석열 정권은 탄핵되고, 파면되었다. 헌법에 정해진 절자대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여야는 바뀌고 비상계엄령을 옹호하거나 탄핵을 반대하던 당시 여당은 야당이 되었지만 아직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당내 분열로 소수당인 당력마저 한데 모으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계엄 6개월만에 완전히 뒤바뀐 정국이다.
이 책은 현 정국의 틈에서 기존 언론의 한 언론인으로서 한 번쯤 성찰해볼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는 "사상 초유의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2024년과 2025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시 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집필의 전제를 내세운다. 비정상이 이어질 때는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려내기 위해서는 합리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언론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책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비상계엄령의 여파로 생긴 혼란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당장 닥친 민생 경제의 회복과 민주주의 회복력을 세계를 향해 외쳐 달라고 야당인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주어 민생을 꼭 챙겨 줄 것을 당부했다. 아직 20일도 안 된 새 정부가 소기의 성과를 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모자란 탓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저자의 언론 성찰은 뒤늦게라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독자로서는 판단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묻는다. 이제 ‘언론이 더 잘 하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될까요? 그리고 답한다. "언론에 대한 규탄과 이에 따른 성찰만으로는 미사여구로 치장된 장밋빛 청사진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낡고 금이 간 그릇을 올바로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하나는 이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손쉬운 욕지거리만으로는 문제를 푸는 첫 단추도 꿸 수 없습니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지적으로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잘 알게 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분명한 비판의 지점이 보일 것입니다. 알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습니다."(p.9~10)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는 말(서문)〉과 〈맺는 말〉을 제외하면 6장이다. 2장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3장 〈밋밋한 현실 어딘가에 있나, 흰 까마귀〉, 4장 〈사실과 진실, 참과 거짓의 뫼비우스 띠〉, 5장 〈이해와 소통의 폭 넓히는 커뮤니케이션〉, 6장 〈알다가도 모를 한 길 사람 속을 향해〉, 7장 〈저널리즘 심폐소생, 정죄와 자조를 넘어〉 등이다. 2장에는 저자가 CBS의 기자로 입사해 20년 동안 근무하며 느낀 CBS 기자로서의 생활, 자신의 언론관, 우리 언론의 현실 등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기독교방송'이라는 종교 언론으로 시작했지만 방송 본연의 정도 보도를 위한 기본적 체계는 시작부터 잘 갖춰진 방송국이었다.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상업 방송처럼 기업의 압박을 받지 않는 정도 언론을 표방했고 이 기조를 잘 지켜냈다는 CBS 기자로서의 자긍심도 담겨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정부 측 지분이 있어 어떻게든 정권의 영향력 아래 놓이거나, 특정 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나, 경영권이 사주 일가 안에서만 대물림되거나 하는 모습을 띠는 게 일반적입니다. 각기, 기자들이 자유 의지를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지요."(p.29)
저자는 CBS 기자 경력 20여 년 동안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압력도 적은 기자 본연의 자세를 지켜온 데에는 앞서 지적한 권려과 경영주,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 가능했다는 자긍심을 자신의 CBS 기자 경력 동안 충분히 저널리스트로서의 긍지를 갖게 해주었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이는 상대적으로 그런 배경의 언론사는 자사 이익이 먼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도'를 걷기 어려웠다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3장에서는 '흰 까마귀'를 등장시켜 대한민국 언론 역사를 조망하고 역사의 분기점마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해 낸다. 여기서 흰 까마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서 도출한 비유적 표현이다. "검은 까마귀 세 마리를 보았다고 해서 모든 까마귀가 다 검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흰 까마귀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우리는 모든 까마귀가 검은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라고 쓴 것을 인용하고 있다. 수많은 검은색 까마귀와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흰색 까마귀 속에서도, 세상에 흰 까마귀는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흰 까마귀를 인용한 것은 12·3 내란 사태 국면에도 충격적 깨우침에서 비롯된 비유다.
저자는 12·3 비상계엄을 '느닷없는' '불시에' '예상치 못한' 계엄으로 본 것이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광주 5·18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계엄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쓴 것이다. 사실 12·3 비상계엄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설마' '갑자기?' '전쟁?'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화면으로 지켜보면서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설마 가짜 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 이 점에 있어 저자도 귀가하려고 운전하다가 동료로부터 '비상계엄'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독자도 TV를 보면서도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난다. 북한이 전쟁을 시작했나? 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 저자도 너무나도 황당한 소식을 믿지 못해 휴대전화로 TV화면을 보았더니 믿기지 않은 사실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밝힌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2·3 내란 사태는 저자에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흰 까마귀'로 비유한 표현이 등장한 이유다.
"결국 그는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자만, 독재자 윤석열의 망동과 계엄 선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세계관을 교정해야 할 정도의 충격을 남겼습니다. 사실 김민석, 김병주 의원 등이 사전에 계엄령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할 때만 해도 과격한 주장 정도로 흘려들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고쳐야 했다.

'비상계엄령'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은 '5·18 광주'다. 12·3 이전 마지막 비상계엄이기도 하고, 어느 때보다 선량한 시민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5·18은 신군부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국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시민 학살'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광주 시민이나 호남 사람들, 심지어는 5·18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침묵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신군부를 비방하거나 희생된 아들 딸에 관한 이야기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서슬 퍼런 신군부가 계획대로 정권을 잡고 헌법을 고쳐 7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되며 국정을 장악했다. 그들 앞에서 광주 시민들은 죄인이었고, 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일부 떠드는 사람은 일부 국회의원의 발언을 통해 있었지만 그것도 면책 발언이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전두환 아래서는 말 그대로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광주에서조차 5·18에 관한 말은 활발하지 못했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문재인 정권 때인 2017년에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추가적인 진실 규명에 나섰을 때 계엄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한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영, 이희성 등의 목소리가 아니라 광주 거리에서 총을 들었던, 시민들을 향해 실제 방아쇠를 당겼던 그 계엄군들의 목소리 말이다. 실제 게엄군의 목소리는 그때까지 듣기 어려웠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상황이 가장 궁금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묘사되던 전남도청 앞 발포 상황을 가리킨다. 그때 현장에 있던 한 계엄군의 목소리를 여기에서 전한다.
"학생 시민들하고 대치하고 있는데, 시민들 쪽에서 화염병 하나가 날아오더라고. 그게 하필 장갑차 아래로 굴러 들어갔어. 근데 장갑차는 기름 탱크가 아래에 있단 말이야. 그래서 그 상황에 차가 터질까 봐 급히 장갑차를 후진했는데, 마침 뒤에서 졸고 있던 ○○○(장교)가 눈이 뒤집히면서 기관총을 빠바박 쏘더라고. 그렇게 발포된 거지."
그러나 장교가 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쐈는지 시민들을 향해 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책에 기술하고 있다. 다만, 첨예한 대립 속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울리던 총성에 다른 총구에서도 연이어 불꽃이 튀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아직 현직에 있지만 이번 비상계엄령 이후 달라진 언론 환경에서 성찰하고 다짐해 다시 언론의 정론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올곧은 기자의 길을 걸어온 분으로서 기자라는 명함을 갖고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언론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자 노력한 모습으로 독자에게는 기대감을 준다. 또 이 문제를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함으로써 올바른 기자상을 세우고, 언론사 측의 각성도 촉구하는 의미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 훌륭하지도 않고 혁혁한 성과와도 거리가 먼 저의 담백한 고백을 녹여, 언론계에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고민과 과제 등을 솔직히 적어 보았습니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언론 내부를 여실하고도 넉넉히 반영하려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동료 기자들을 향한 제안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올바른 당위를 바로 세우고, 위기를 벗어날 돌파구를 함께 찾아보자는 요청입니다. 대중의 외면과 수익성 하락, 기술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각자도생하기보다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언론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책임은 우리 스스로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에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은 언론과 관계하는 업무 종사자들, 그리고 언론 지망생들을 위한 길라잡이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염두에 두고, 기자라는 직업인과 언론 현장을 가능한 한 생생히 묘사하려 노력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언론에 친숙함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제가 목표한 바는 거의 달성하는 셈입니다. 이 모두를 위해 취재와 보도의 원칙뿐만 아니라, 진짜와 가짜, 사실과 진실을 가리는 작업의 난해함, 주관적 인지 편향과 이로 인한 갈등, 미디어 및 기술의 환경 변화, 그리고 언론의 수익 모델 등을 두루 짚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독자, 기자, 지망생 등 언론과 떨어져 살 수 없는 모든 이들을 향한 언론의 자화상입니다. 이를 보고 기자와 언론을 이해해 주시고 따끔히 지적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가운데 다시 기대와 희망이 생겨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네요.
책은 앞선 현자(賢者)들의 다양한 글들을 종종 인용했습니다. 제 생각의 깊이가 도저히 그들을 따를 수 없는 탓입니다. 제가 탄복해 마지않던 그들의 지혜를, 독자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언론 일반에 관한 글임에도 제 성장 과정과 제가 속한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로 글문을 열겠습니다. 저널리즘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제가 가진 시각이 그 연원부터 더 잘 이해되기를 바라는 취지입니다."(p.10~11)
저자 : 김정훈
2003년 CBS에 입사한 뒤 정치부·사회부·경제부·산업부·뉴미디어팀 등에서 취재 보도를 이어왔다. 또 노동조합과 기획조정실을 거쳤고, 〈김현정의 뉴스쇼〉 팀에 파견돼 PD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험도 익혔다. 현재 보도국 사회부장으로, 저널리즘의 쇠락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언론학 석사)
· 美 위스콘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연구원
·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