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철학서 - 철학적 사유를 넘어 삶의 방식과 태도를 알려주는 위대한 문장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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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황제의 철학서』라는 표제어만으로도 누구의 어떤 책인지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책이름은 『명상록』(Meditations)이고, 저자는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황제 철학자는 인류 역사상 한 명뿐이다. 전쟁과 역병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살아가며 아우렐리우스는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 태도로 로마제국을 이끌었고, 매 순간 스스로에게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가 남긴 질문과 답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덕목과 태도에 대한 본질적 통찰을 전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은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명성을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죽음 후에는 잊히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사색과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지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황제의 철학서』는 원문의 깊이와 사색을 고스란히 담아 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독자들에게 일상의 위기와 갈등 속에서 자신만의 평온과 중심을 지키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공하며, 철학적 감동과 명료한 깨달음을 함께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우렐리우스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늘 권력 이상의 도덕적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삶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갈등, 시련, 다른 이들의 평가, 갈수록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는 우리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러한 혼돈을 피하려고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저 눈을 감으면 충분하다고. “너의 요새가 되고 안식처가 되는 곳은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어야 한다. 그보다 강력하고 튼튼한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다.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며, 이를 알고도 그곳을 피난처로 삼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이처럼 그는 혼란을 극복하는 열쇠는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견고히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심지어 전쟁터의 위험 속에서도 자신만의 내적 안식처를 찾으며 “사람들이 물러나 앉을 장소는 자신의 영혼 외에는 없다.”고 기록했다. 외부의 소음과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고요와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임을 강조한다. 황제의 철학은 독자들이 삶의 소란과 혼돈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타인의 인정과 평가를 갈구하며 지쳐 간다.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외부의 인정에 달려 있지 않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남은 생을 타인에 대한 생각이나 공상으로 낭비하지 마라.”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 충실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것. 

"인간은 자신의 생이 날마다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설사 오래 산다고 해도 지적인 능력이 얼마나 기능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만 한다. 지적인 능력은 일과 사업을 판단하고 깊이 사색하는 능력이며, 신성한 것과 세속의 일 모두에 관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중략) 너의 남은 생을 타인에 대한 생각이나 공상으로 낭비하지 마라. 그것이 공동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이 더 나아지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도모하고 있는지를 고심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p.74, 3권 4장)

그는 또한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본래의 가치를 잃고 비루한 물건이 될까? 금과 상아와 진귀한 염료는 어떠한가? 흔히 보이는 꽃과 나무 같은 것들도 그러할까?”라며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 것을 권한다. 자신의 기준이 확실하다면 타인의 판단이나 말에 흔들릴 이유가 없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이 책은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초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며, 각자가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토아의 학도로서 로마 황제의 지위에 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원래 노예였던 스토아의 철인 에픽테토스의 훈계를 명심하여 마음속까지 황제가 되지 않도록 항시 자신을 돌아보고, 로마에 있을 때나 게르만족을 치기 위해 진영에 나가 있을 때, 스스로를 경계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꾸준히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일체의 것이 끊임없이 생생유전(生生流轉)하고, 인생도 과객(過客)의 일시적 체재에 불과하여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는 것은 오직 철학일 뿐, 그 철학이 인도하는 대로 자연의 본성에 알맞은 생활을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우리를 구제하는 길이라는 그의 신념을 끝없이 나타냈다.(두산백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던진 질문들은 특별히 이런 것들이다. 죽음은 무엇이고, 그 대척점으로서 삶은 무엇인가? 삶에서 필연은 무엇이고, 우연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학문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은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했을 혹은 생각함직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근본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의 기록이다. 특히 전장에서 어떻게 이런 사유를 해냈을까를 생각하면 현인이자 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명상록』은 사적인 일기, 즉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사적인 감상을 자신의 세계관, 즉 스토아철학의 기본틀 밑에서 표현하고 있는 일기이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자신과의 독백 형식이란 점에서 알 수 있다. 흔히 등장하는 2인칭 표현 '그대'는 물론 독자를 뜻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우렐리우스 자신이라고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명상록』은 애초에 책으로 계획되지도 않았다. 즉, 출판을 목적으로, 다시 말해 공중(公衆)에게 보여 줄 목적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다. '명상록'이라는 제목도 그리고 권수 및 절수의 표시도 아우렐리우스 사후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다.


이에 따라 『명상록』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쓴 글이다. 따라서 글의 흐름은 비조직적이고 산발적이면서 단편적이다. 『명상록』은 철학 냄새는 물씬 풍기지만, 전형적인 철학 텍스트는 아니다. 철학 텍스트는 주로 논증적 또는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명상록』은 그렇지 않다. 일기는 논리적 구조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상록』이 전쟁 막사에서 쓴 일기라고 보는 이유이다. 로마 황제 또는 그와 비슷한 신분의 사람이 게르만의 숲속 전쟁터에서 쓴 일기로는 『명상록』 외에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가 전한다. 하지만 두 텍스트는 성격상 판이하게 다르다. 『갈리아 전기』는 전쟁과 정치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다. 『갈리아 전기』는 일반 사회의 공중에게 카이사르 자신의 군사적·정치적 역량을 증명할 목적으로 씌어진 전쟁 기록물이다. 하지만 『명상록』은 전쟁터에서 씌어졌지만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깊은 성찰을 자기 자신과 나누는 일기이다.

이런 점에서 『명상록』은 영성적 문학 작품의 효시인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유명해지자 『명상록』도 그제야 유명해지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명상록』은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파스칼(Blaise Pascal)3)의 『팡세(고백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 맨 앞에 편집진이 썼을 법한 〈작품 소개〉에도 두 저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한다. 두 책 모두 절제라는 동일한 이상을 지향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이겨 내야 하며, 자신보다 강해지는 것을 매일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욕망을 이겨 내는 곳에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깃든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무심하고 자기 주도적인 데 비해 기독교인들은 겸손하고 온유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현현과 개인적 체험을 중시하는, 다소 수동적인 신앙을 지녔다. 로만인들도 자신의 잘못을 엄정하게 고백하지만 기독교인도 로마인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하고 권고한다.


"앞서 말한 두 책 사이에는 한 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라면, 『명상록』은 저자가 자기 자신을 향해 쓴 책이다. 전자에는 저자의 개인적인 삶이 전혀 묘사돼 있지 않으며, 독자들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실천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p.23)

아우렐리우스는 일기처럼 전쟁터에서의 사유를 써내렸다. 살륙이 일상이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필에 열심인 황제가 쉽게 공감이 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감성은 물론 냉정한 이성도 갖춘 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주위와 우주까지 나아간 그의 사유는 마침내 "인생은 무엇인가?"에 이른다.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인생은 하나의 연극이다. 연극의 무대는 이 우주 전체다. '나', 즉 자아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등장 인물이다. 한 사람의 인생사는 이미 신이 쓴 각본으로 씌어져 있다. 내가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될 온갖 사건들은 각본에 의해 예고·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비극이라 부르는 사건은 이미 예고·결정된 것이기에 내가 절망할 필요도,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회적 직업과 역할로 인생을 살 것인지도 우주적 연출가인 신이 결정한다. 그것이 황제의 역할이든, 노예의 역할-예컨대, 에픽테토스이든, 전업 주부의 역할이든, 내게 맡겨진 역할과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배우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역할 이탈을 자제하면서 자기 역할을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충실히 소화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주어진 배역에 완전히 일치시키는 연기를 보여 주는 사람이 좋은 배우이듯이, 신에 의해 주어진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완전히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인생이 '좋은' 인생, 즉 행복한 인생이다. 반대로 주어진 배역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자는 나쁜 배우이다. 이런 사람은 연극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배우는 연출가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대해 불평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불평을 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탓하지 마라. 만일 네 힘으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만일 할 수 없다면 불평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일은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갖고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p.217)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노윤기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공기업에서 국제관계와 기업 홍보 업무를 보았으나 좋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번역가의 업에 매료되어 바른번역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군중의 망상』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옥스퍼드 튜토리얼』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남자의 미래』 『단순한 삶의 철학』 『커피의 모든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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