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1일 1책 인문학 세계 고전』을 읽기 전 문득 '고전'에 대한 의미에 대해 의문이 갔다. 무슨 책을 고전이라 할까? 수많은 책에 붙어 있는 '고전'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할까? 지금까지 읽은 '고전'이란 타이틀은 주로 '고전 문학'에서 주로 찾을 수 있다. 문학 작품 이외의 책, 이를 테면 정치·경제·사회에 관련된 인문학 서적은 무엇이라 할까? 생각하다 보니 단 한 번도 '고전'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적지 않은 고전을 읽어왔다. 학교에서 지정하거나 어느 단체에서 지정하거나 고전이란 책은 필독서처럼 받아들였다. 또 읽다보면 "이 책이 왜 고전으로 지정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저절로 해소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고전'은 단순히 범위만 넓혀 이른바 '양서'에 대한 지정일까? 얼핏 내용에 들어 있는 책들의 제목만 보아도 다 한 번 이상은 들어본 책들이다. 전부를 읽지는 못했어도, 몇 권은 또렷이 기억날 정도로 인상적이어서 이름이나 저자, 내용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들도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책이름이나 저자의 이름들은 보았던 게 거의 대부분이다.
'고전'이란 서양에서 이름지어진 것이고,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예를 가리킨다. 근대의 서양고전학은 르네상스와 더불어 시작된다. 그리스 문학에 대해서는 이미 BC 3세기에, 당시 보존되고 있던 본문을 정리·분류한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의 업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학문의 연구는 새로 발견된 고전문학의 검토에 몰두하게 되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의 고전의 인쇄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었으나, 이러한 고전 인쇄에 의하여, 고전 연구는 에라스뮈스 등이 창도한 인본주의적 교육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고 두산백과는 기술하고 있다.
이 경우 동양 고전은 해당되지 않을 듯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국, 인도 등의 '고전'은 서양의 고전에 비해 수가 훨씬 적은 것 같다. 아마 고전이란 개념이 서양에서 이름지어져서 동양에 대해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뿐만 아니라 각 나라별로도 '고전'의 수준으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고전은 시대적으로 볼 때 20세기 중반까지 출판된 책들을 기준으로 하는 것 같다.

이 책 『1일 1책 인문학 세계 고전』은 2004년 초판이 출판된 이후 2015년 개정판을 출간하는 등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다. 이 책은 20년 만에 새로운 개정판이다. 그동안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는 모토 아래 너무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던 터라 이번 개정판은 인문학 영역에만 집중하기로 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서양 고전의 인문학 버전으로 재출간하는 셈이다. 정치, 경제, 법 사상, 철학과 사상, 역사와 종교 등 전체 5장(章)으로 재분류해 인문학 영역의 대표적인 고전 61권을 수록했다. 인류 정신사의 골격을 이루는 명저의 다이제스트를 분야별, 시대별로 정리해 놓아 일독하는 것만으로도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저자는 전 도쿄대학교 총장인 사사키 다케시를 비롯해 각 분야 최고의 교수 필진이 꼭 읽어야 할 서양 고전을 선정해 쉽고 정확한 해설로 정리했다. 여타 서적과는 달리 단순한 내용 요약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저술 의도와 시사점, 시대 상황 등을 함께 설명함으로써 고전의 험한 산을 오르는 우리에게 충실한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담소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천 년 전에 살았던 위대한 현자들의 지식과 지혜를 집대성한 『1일 1책 인문학 세계고전』은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르침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① 고전은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② 줄거리를 이미 다 알고 있어서, ③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여서’와 같은 이유로 읽기를 꺼린다. 사실 고전은 많게는 수천 년 전, 짧게는 수십 년 전에 쓰인 옛글이기 때문에 작품 안에 어떤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고전을 읽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다. 게다가 요즘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고전과 친해지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이 책의 카테고리를 5개 분야로 분류했다는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1장 〈정치〉, 2장 〈경제〉, 3장 〈법 사상〉, 4장 〈철학과 사상〉, 5장 〈역사와 종교〉 등이다. 독자의 눈에 띄는 책의 이름을 각 장마다 3~5개씩 짚어본다. 〈정치〉에서는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가장 앞에서 독자를 부른다. 「통치론」(존 로크), 「공산당 선언」(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국가와 혁명」(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고독한 군중」(데이비드 리스먼), 「후기 자본주의 정당성 연구」(위르겐 하버마스)가 보인다. 〈경제〉 분야에서는 「국부론」(애덤 스미스), 「정치경제학의 원리」(존 스튜어트 밀), 「자본론」(카를 마르크스),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이 눈에 띈다. 〈법 사상〉에서는 5개 장 가운데 가장 적은 8권이 수록돼 있지만 「법의 정신」(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 「로마 법의 정신」(루돌프 폰 예링) 등이 묵직한 언어로 법에 대한 논리를 펴고 있다.
4장 〈철학과 사상〉에는 「정신현상학」(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죽음에 이르는 병」(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역사와 계급의식」(죄르지 루카치), 「존재와 무」(장 폴 사르트르) 등 우리 일반 독자들도 많이 접했던 책이름과 저자들이 보인다. 마지막 〈역사와 종교〉에는 「갈리아 전기」(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리스도교의 자유에 대하여」(마르틴 루터), 「로마 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역사의 연구」(아널드 토인비), 「제2차 세계대전」(윈스턴 처칠) 등이 낯익은 분들의 이름도 들어 있어 반갑다. 독자는 이미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이 책의 절반은커녕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제대로 읽은 게 한 권도 없다는 편에 가깝다. 읽었어도 뚜렷한 목적의식도, 고전에 대한 개념도 안 된 상태에서 누군가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면 사 두고 조금 읽다가 만 것들이 많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책 읽는 사람이 드물 때라 책 읽는다는 건 편안한 직장, 정시에 퇴근 가능한 직장인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직장 이외에는 보통 회사에서 7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별로 없어 바쁘다는 핑계는 책을 읽지 않은 것에 대한 매우 강력한 방어책이었을 때다.

이 책 『1일 1책 인문학 세계 고전』 차례를 들여다보다가 수록 목록에는 유난히 대학 다닐 때 금서였거나 지금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책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독자는 산업화가 한창인 군부 독재 시절 대학에 다녔기 때문에 '공산주의'나 '마르크스'는 금기어였다. 당연히 그들의 책은 금서로 지정돼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었다. 더욱이 독자는 데모에는 참여했지만 학생 운동권이 아니어서 금서를 굳이 읽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썼던 책도 금서로 지정되어 있는데, 공산주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마르크스의 책이라면 당연히 금서로 지정되었다. 불심검문에 걸려 가방 조사하다 그들이 말한 '불온서적'이 나온다면 매우 혹독한 곤욕을 치른다고 알려진 때였으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 금서로 지정된 국내 도서로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이상 이영희) 등이 기억난다. 당시 대표적 진보학자인 한양대 교수 이영희는 몇 년 못 가 강제 해직되고, 다시 1980년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기도 했다.
이 책에는 공산주의 이론과 소련 공산당 건국 메이커들의 저서도 많이 눈에 띈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 읽지 못하고 접하지도 못했던 책들이라 더 눈에 쉽게 띄었다. 1장 〈정치〉에 『공산당 선언』, 『국가와 혁명』, 『영구혁명론』 등이다. 많은 독자들이 아다시피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라드미르 레닌, 레온 트로츠키 등의 이름이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 끈다. 이들 중 두 분은 2장 〈경제〉에서 다시 등장한다. 『자본론』의 마르크스와 『제국주의론』의 레닌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이론을 세워 확고히 했고, 실제 독일에서 혁명을 꾀하다 망명한다. 레닌은 골수 공산주의자로서 제정 러시아 말기 폭정과 부정부패로 붕괴 직전의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국내 사정의 악화(공산주의자들의 발호)로 전쟁에서 손을 떼고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참전 용사들이 상당수 공산주의 혁명(10월 혁명)에 참여해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다. 레닌이 초대 지도자로 추대됐으며, 트로츠키는 혁명 주도 세력 3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유대인 출신으로 나충 스탈린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 멕시코로 망명했다가 한때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애인이 된다. 그러나 암살로써 생을 마친다.

보통 저자가 〈서문〉을 쓰지만 2004년 초판이 출판되었기에 2025년 개정판에는 〈서문〉을 쓸 수가 없었던 듯하다. 대신 송자 전 연세대학교 총장의 〈추천사〉로 대신했다. 〈추천사〉에서 송자 전 총장은 "현대까지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책들은 그 시대의 현실을 명확히 규명하고, 그것을 토대로 인간이 가야 할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p.6) (중략) 이 책이 고전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본질적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인류 정신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독자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정치〉의 「공산당 선언」에 관심이 간다.
10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요약문과 저자의 해설이 곁들여 비교적 쉽게 설명해 준다. 제목 바로 아래에 편집자 주(註)처럼 달린 한 문장이 있다. "구소련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국가들은 물론, 각국의 노동 운동에서 이론적인 지주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현실적인 행동 지침서가 되기도 했다."(p.53)
책에 따르면 "한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공산당 선언』만큼 전 세계에 널리 읽히며 또한 현대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정치적 문서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문서는 1959년까지 8개 국어로 출판되었다는 보고가 있는데,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존재 양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전체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제목으로,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며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2대 계급이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제1장의 첫 문장에는 이와 같은 유명하 구절이 적혀 있다. 실로 명쾌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너무나 명쾌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란 도대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인가. '계급 투쟁'이라는 말의 '계급'이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내용을 의미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이같이 단정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이 책의 뒷 부분에 역자 윤철규는 〈옮긴이의 말〉에서 책 출간의 취지를 밝히고,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따로 적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며 생각해 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첫째로 고전적인 지식이고, 둘째는 교양에 관한 점이이다. 지식과 교양은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고전적 지식에 관한 내용부터 살펴보면, 이 책은 그 구성을 정치, 경제, 법 사상, 철학과 사상, 역사와 종교 등으로 구분해 오늘날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부르는 저술들에 대해 그 저술의 배경과 저자의 기본 생각 그리고 저술의 개략적인 내용 등을 꼼꼼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기원전의 저술들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 사회의 형성과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행사한 현대의 명저들도 고전으로파악하고 있어 고전의 영역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p.568)
저자 : 사사키 다케시
1942년 아키타현 출생. 도쿄대학교 법학부 졸업, 전 도쿄대학교 총장. 현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유명한 사사키 다케시 교수는 1968년부터 조교수, 1978년 교수를 거쳐,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법학정치학 연구과장을 지냈다. 이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제27대 도쿄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가쿠슈인 대학교를 거쳐 2022년부터 일본학사원 원장으로 재임중이다. 저서로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플라톤과 정치』,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등이 있다.
역자 : 윤철규(尹哲圭)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미술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일본 교토 붓쿄 佛敎 대학교와 도쿄 가쿠슈인 學習院 대학교에서 ‘17-18세기 일본 회화사’를 주제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주)서울옥션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지내고 지금은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로 인터넷 사이트 ‘스마트K’를 운영하면서 한국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 그림과 서양 명화: 같은 시대 다른 예술』, 『조선 시대 회화: 오늘 만나는 우리 옛 그림』, 『시를 담은 그림, 그림이 된 시: 조선 시대 시의도』,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 등이 있으며, 그 외 『추사 김정희 연구: 청조문화 동전의 연구』(공역),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 『교양으로 읽어야 할 일본 지식』, 『천지가 다정하니 풍월은 끝이 없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