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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시간 2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 존 그리샴은 이 소설 『자비의 시간』을 통해 가정 폭력이 발생하는 배경과 그러한 문제가 왜 밖으로 드러나기 어려운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나 일본 등 우리나라에서 사회 문제로 드러난 가정 폭력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미국은 세계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는 나라의 가정에서 다양화하고, 극단적으로 확대되고, 가정이라는 은밀한 장소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조사나 예방이 쉽지 않다. 미국의 경우 개인의 거주지를 경찰도 강제로 들어갈 때에는 분명한 이유와 고발 등이 있어야 들어가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다. '사생활 보호'라는 까다로운 법적 뒷받침 때문에 사실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부각된 지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왔다. 이에 따라 가정 폭력 근절은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문제는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사회 문제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가정 폭력은 대상이 가족이지만 주로 가장인 남편, 혹은 아버지가 아내나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일이어서 피해 신고도 어려운 데다, 증거도 확보하기 어렵다. 때문에 확실한 물적 증거나 피해 가족 진술이 없으면 조사를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가정 폭력은 자녀에게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사회로의 자연스러운 진출이 어렵다는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책임을 함께 떠맡아야 한다는 심각한 실정에 이르렀다. 존 그리샴은 『자비의 시간』에서 전적으로 이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어머니가 학대 받다 사망한 것으로 착각한 열여섯 살 아들 드루를 중심으로 피해자에게 드리워진 각종 부정적 시선을 배제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는 이에 따라 드루의 범행 동기와 다른 가족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보다 그저 하루빨리 사형선고를 내리길 바라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드루와 조시, 키이라를 지역 사회로부터 배제시킨다. 이로써 저자는 제이크와 드루의 재판 과정을 보여주면서 폭력의 악순환을 지적할 수 있게 된다. 실제 드루를 비롯한 세 사람은 코퍼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났으나 지역 사회와 검찰로 대변되는 공권력으로부터 또 다른 폭력을 당하게 된다. 드루의 재판을 통해 그들이 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피해를 호소하려 하지만 그 시작부터도 쉽지 않다.

‘이미 사형선고라는 결과를 예단하고 진행하는 재판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 제이크 브리건스를 통해 그 불합리함을 깨뜨리고자 한다. 법의 이름으로 열여섯 살 소년에게 무조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지키는 것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드루는 코퍼를 죽인 살인범인가, 아니면 끔찍한 폭력의 피해자인가?’ 우리 모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볼 때이기도 하다.
『자비의 시간』은 하나의 사건이 두 권으로 구성된 긴 소설 작품이지만 사건의 원인과 조사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하는 경찰과 일부 법조계의 인사들이 있다. 그러나 역시 사건의 핵심을 파고들어 해결하려는 노력엔 미흡하다. 중대한 살인 사건이고, 피해자가 경찰이고, 유력한 백인 지역 유산자라는 의미에서다. 1권에서 미국 앨라배마주의 작은 도시 클랜턴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제이크 브리건스가 휴일 이른 아침 동료의 전화를 받으며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 지역의 보안관보 스튜어트 코퍼가 자기 집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으며, 동거하던 여자친구의 아들이 범인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열여섯 살 소년 드루 갬블은 어머니 조시와 함께 보안관보 스튜어트 코퍼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살해된 스튜어트는 평소 조시와 그녀의 자녀들인 드루와 딸 키이라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했다. 그날 밤도 예외가 아니었다. 잔뜩 술에 취한 스튜어트가 조시에게 폭력을 가해 그녀가 정신을 잃었다. 이때 드루는 자신과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스튜어트를 향해 권총을 쏘고 만다.
그러나, 문제는 지역 사회에서 스튜어트는 보안관으로서 좋은 평판을 쌓아온 인물이다.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의붓아들에게 살해당하자, 자연스럽게 드루에게 불리한 여론이 형성된다. 검찰은 드루의 사형을 주장하지만, 이에 맞서 제이크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고 맞선다. 드루가 가정폭력에서 가족을 지키려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는 점을 입증하려 노력한다.

소설의 초반부는 이러한 사건의 발단, 그리고 제이크가 사건을 맡게 되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초반부터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심리를 세심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특히 드루의 복잡성을 부각시킨다. 권위적인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가정폭력이 은폐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를 들춰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은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 이슈다. 드루는 단순히 피해자나 가해자로 규정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이고, 이는 현실의 복잡성을 잘 반영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법정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미 그의 작품을 접했다면 어색하지 않은 장면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배심원제도라는 우리와는 다른 형태의 재판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공방에 흥미를 돋군다. 법적 논리와 인간적 감정 사이의 긴장감은 법정을 가득 채우며,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은 동일하다는 묘한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다. 변호사였던 저자 존 그리샴이 이 점을 놓칠 리 없다.
다이어는 8×10 크기로 확대한 컬러 사진 하나를 오지에게 건네고 말했다. “월스 보안관, 이 사진은 검찰의 증거 제2호입니다. 무슨 사진인지 알아보겠습니까?”
오지는 사진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곤 말했다. “이건 스튜어트 코퍼 사진으로 그의 침실 입구에서 찍은 것입니다.”
“증인이 본 장면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오지는 사진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다이어가 말했다. “재판장님, 같은 사진의 사본 세 장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스크린에도 보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세요.”
제이크는 커다란 스크린에 피투성이 사진을 비추는 데 이의를 제기했다. 누스가 그의 이의를 기각했다. 갑자기 침대에 누워 다리를 매트리스 너머로 뻗은 스튜어트의 모습이 나타났다. 머리 옆에는 권총이 놓여 있고, 흘러내려 고인 검붉은 피가 시트와 매트리스를 적시고 있었다.
방청객들이 신음을 내고 숨을 몰아쉬었다. 제이크가 슬쩍 배심원들을 훔쳐봤는데, 몇 명은 사진과 스크린에서 고개를 돌렸다. 몇몇 다른 배심원들은 강한 경멸을 담아 드루를 바라보았다.(2권, p.216~217)

『자비의 시간』은 존 그리샴이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초기 작품들이 보여준 그 압도적인 스릴과 몰입감은 약간 무른 느낌도 들지만, 세월의 흐름은 저자의 경륜으로 고스란히 흡수돼 깊이 있는 인간 탐구와 사회적 성찰로 담아낸다. 단순한 장르 소설을 넘어서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을 위치에 우뚝 선 느낌이다. 『자비의 시간』은 오락성과 문학성, 현실성과 이상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한 작품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성숙한 작가의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잘 빚어진 도자기를 감상하는 느낌을 독자에게 안긴다. 소설의 결말부로 가면서 저자는 백인, 교회, 이웃 주민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 한 소년의 살인 사건이 가정 폭력으로부터 일어났음을 상기시키며 이들과 화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형제를 좋아하는 백인들이 왜 그렇게 많은 거죠?"
"그냥 지역이 그런 거야. 우린 그런 세상에서 자랐어. 집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친구 사이에서 그런 얘기를 듣고 자라지. 이곳은 바이블 벨트야. 눈에는 눈, 뭐 그런 거지."
"신약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용서에 대한 설교는 다 어떻게 된 거죠?"
"그건 받아들이기 불편하잖아. 예수님은 사랑이 먼저라고 하셨고 인내, 포용, 평등도 가르치셨지. 그렇지만 내가 아는 기독교인 대부분은 성경에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내는 데 아주 솜씨가 좋아."
"그건 백인 기독교인들만 그런 건 아니에요."(2권, p.346-347)

우리나라 재판 과정과 전혀 다른 배심원제가 눈에 띄이기도 했다. 배심원들이 논의를 거쳐 만장일치 판결을 해야 한다는 배심원제는 우리나라에 도입해 일부 재판에서 이용된 적이 있지만 자주 등장하는 제도가 아니라서 독자 입장에서는 신기하기도 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배심원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재판은 다시 시작된다는 점도 이채로웠다. 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이 제이크 혼자라면 재판 결과가 나왔을 때 이야기는 끝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이크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드루의 미래를 계획하면서 감동적이기도 했다. 이 책의 표지어에 쓰인 '자비'란 단어의 의미가 다시 한 번 가슴에 와 담기는 느낌이다.
저자 : 존 그리샴(John Grisham)
전 세계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법정 스릴러의 대가인 존 그리샴은 불공정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 캐릭터를 창조한 전문 스토리텔러다. 미국 주 의회 하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던 그는 변호사 생활을 하며 구상하고 집필한 첫 장편소설인 《타임 투 킬》 출간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언론과 평론가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존 그리샴의 책은 50권 연속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으며, 50여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3억 부 이상 판매되었다. 수많은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했으며, 제이크 브리건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자비의 시간》도 매슈 매코너헤이 주연의 HBO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다. 하퍼 리 상을 두 차례 수상하고 미국 의회 도서관 평생 공로상을 받은 그는 작품 집필 외에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다.
페이스북 @JohnGrisham | 트위터 @JohnGrisham | 인스타그램 @JohnGrishamAuthor | www.jgrisham.com
역자 : 남명성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PD와 IT 기획자로 일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수호자들》, 《카미노 아일랜드》, 《육질은 부드러워》, 《마지막 거짓말》, 《메이든스》, 《스노 크래시》(전 2권), 《경계선》, 《사일런트 페이션트》, 《셜록 홈즈: 주홍색 연구》, 《셜록 홈즈: 바스커빌 가문의 개》 외 다수가 있다.
